블로그 카테고리 이동 kimkwangsooblo 검색 MY메뉴 열기 사진 익어간다는 것 프로필 별명없음 2021. 2. 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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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세상천지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즐기고 있다. 과일이 익어가는 모습에 먹음직스럽다는 생각도 해 보았고 나무에 올라서 감도 따서 떫은맛이지만 즐기기도 하였다. 주먹만 한 사과도 빨간 색깔과 달콤한 과즙의 유혹에 작은 조막손으로 철조망 울타리 넘어 마치 내 것처럼 따서 먹어 보다가 학생과 장님께 찍혀 복도에서 두 손 번쩍 들고 벌을 서본 기억도 새롭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익어가는 가을을 매년 고마움도 없이 즐겼다. 앞산 뒷산에 오색으로 익어가는 단풍은 산불처럼 피어 아래로 내려오다가 들녘도 지나고 강도 건너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가는 길목에서 어린 시절을 즐겼다.
감사하고 고마움도 없이 마치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한 오만함에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다. 어리 섞음이 하늘을 찌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 볼수록 나의 아둔함을 일깨움을 주기도 하였다. 아! 나도 늙어 가는가라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였다. 매일 매식마다 식탁에 오르는 메뉴 들은 역시나 익어가는 산물들이다. 수저를 들기 전에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는 있지만 형식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생산 유통 조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지나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의식도 점점 예전 같지 않아지고 눈도 점점 침침하여 안경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언제부터인지는 가마득히 잊힌 현실이다. 이제 와서는 그 안경을 착용하지만 기능이 점점 떨어져 위기의식을 느끼고 안경점을 찾기도 하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는 중이다. 왈 이것이 늙어가는 과정이란다.
한마디로 노안(老眼)이 왔다는 말씀이다. 믿을 수 없다는 오만도 부려보았지만 생체(生體)는 순서에 입각하여 단계별로 진행됨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 보지만 오래도록 반복하여 사용하는 인지(認知)에 의거 그냥 무의식적으로 두드리는 것이다. 밝은 시야(視野)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無意識)의 의식화(意識化)다. 모두가 나의 업보(業報)다. 평소에 잘 관리하였다면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을 때늦은 후회를 하여보지만 쏟아놓은 물이 되었다. 나의 부주의가 가져온 끝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는 동행이 되었다. 렌즈를 관리하는 일부터 썼다가 벗었다 하는 수고로움에 보관하는 일도 신경 쓰이게 한다. 운전대에 앉을 때면 김이 서려서 시야를 기려 위험을 느끼는 일도 다반사다. 이뿐만이 아니다.
백내장이니 녹내장이니 하면서 수술을 권면 받고 있기도 하지만 나의 옹고집(壅固執)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위해서 눈에 넣는 안약(眼藥)은 정한 시간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 실기(失期)를 하면 바로 그 영향이 돌아온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몸뚱이에 중하지 않는 곳이 없다. 사지 육신 모두가 사용 연수가 오래되면 노화(老化) 되고 퇴화(退化) 되어 서서히 익어가는 과정이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어디 중요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지만 한눈파는 사이에 육신도 영혼도 기다려주질 않는다. 코는 코대로 입은 또 입대로 귀는 청력마저 탈 나게 되어있다. 어깨며 팔다리 어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 보이지 않은 속병은 설명하기도 어렵다. 안면(顔面)도 알게 모르게 일그러져가고 보이지 않는 주름도 경쟁이나 하듯 한밤 자고 나면 또 새로이 보인다.
새치라는 머리카락도 처음에는 하나 둘 보여서 염색으로 되돌려 보았지만 약품의 눈에 미치는 영향이 있어 그만두었는데 이제는 아주 백 새가 되다시피 하였다. 매일 아침저녁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에 익숙하여지고 있다. 무엇인가 갈 때까지 가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가는 세월 붙잡을 수도 없고 애원하다고 될 일도 아님을 깨우친다는 것 자체가 자연의 순환 법칙을 거역할 수 없는 진리임을 알아가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큰 아들이 장손 대경이를 대리고 집으로 왔다. 역병으로 설날에 오지 못하고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전날에 왔다. 이산가족(離散家族)이 6.25전쟁으로 발생된 이산(離散)이 아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 현대판 이산이다. 기막힌 일이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이들을 만날 수 있을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직 하나님의 소관사다.
저녁에 와서 아침 10시 30분에 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출발하였다. 아들이 운전을 하고 나는 옆 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처음으로 부자간에 많이 하였던 같다. 장손 대경이는 뒷좌석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차는 괴산 출입로를 통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시키고 달리고 있다. 오후 2시부터 입실을 허용한다고 하였다. 오전에는 신입생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재학생은 오후 2시부터 입교를 허락한다고 하여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였다. 문경 상주를 지나 김천에서 구미를 거쳐 북 대구를 옆으로 하고 동대구에서 대구 부산 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경산을 지나 청도 휴게소에서 주차를 하였다. 휴게소는 많은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사이에 화장실을 거쳐서 가지고 간 중식을 역병 때문에 사람 없는 곳을 찾아 밖에서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도로는 막히지를 않아 예정된 시간을 타고 있다. 집에서 청도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렸으며 여기서 학교까지 오후 2시까지 달리기 시작하였다. 대경이는 잠에서 깨어나 작성하던 리포트를 노트북을 통하여 계속 작성하면서 모르고 의심이 된 것은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고 어머니에게도 전화로 교육받으면서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밀양을 지나고 대동을 거쳐서 백양터널을 빠져나와 바로 학교로 도착하였다. 전에 인터넷 지도 검색을 하여 보니 학교는 산 중허리 부분을 깎아 터를 만들고 건물을 지었음을 보았다. 가파르고 주차할 곳도 없어 교직원이나 학생 외에는 입교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방문한 학부모를 비롯해서 어느 누구도 입교를 허락하지 않는 방침에 따라서 주차장에서 잠깐 주차하고 대경이 짐을 내려놓으니 교직원 몇 분이 나와서 보조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경이는 짐을 가지고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2학년이 되도록 부모들도 학교 안에는 들어가 보지를 못하였다고 하였다.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외출을 허용하다고 한다. 우수한 인재를 조기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하여 교육부 산하 교육기관인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청도 휴게소에서 운전대를 내가 잡고 집에까지 도착하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아들은 자기 집으로 2시간 정도 운전하여 돌아갔다. 작년도 추석에 잠깐 보고 금년 들어 처음 보았다.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2시간 안에 거리이니 볼 수 있었지만 나라에서 거리두기에 갇혀 버렸다. 흘러가는 물을 가두면 결국에는 넘쳐 흘러버린다는 자연의 이치(理致)쯤은 알았으면 좋겠다.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왕도정치(王道政治)라 맹자(孟子)는 가르쳤다.
왕의 치도(治道)가 백성을 위하는 정치라야 한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생명력이 있는 것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생명이 고갈되어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모두가 잘 알고는 있지만 따르지는 않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인간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거부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국가 역시나 마찬가지다.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오랜 역사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고 실현되는 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로마가 그랬고 신라(新羅)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조선(朝鮮)도 비켜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100여 년 전에 선조님들께서 경험한 역사를 우리는 배우고 다시는 이런 치욕(恥辱)은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노력하여 왔다. 죽고 망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부의 문제로 일어난다.
물론 외부의 침략(侵略)에서 죽고 망하는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역시나 내부의 요인(要因)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으로 보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관리함에 문제가 있어 순명(順命) 하지 못한 것이며 나라 또한 내부의 관리 부족으로 일어나는 망(亡) 하는 길이다. 지금의 우리 정치 상황을 바라보면 마음은 쓰리고 아프다는 데 이론(異論)이 없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뀌었다는 데서 출발하였으니 온전히 굴러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평화라는 메뉴로서 국민들을 쇠뇌 시켰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은 국민들인데 이들을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혹한다고 하여 생명력을 계속 유지한다고 믿는다면 바보 중에 바보일 것이다.
그들도 그것을 알기에 속전속결하고자 하는 모습도 한계에 부딪친 모습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면서 죽은 아이의 동상을 야산에 팽개친 모습이 TV 화면을 통하여 보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하여야만 하였다. 이제 그 명(命)이 다하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국민들이 반드시 깨어 날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