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놀이'/로 소아 간질에서
벗어난 다섯 살 아람이
엄마 손을 잡고 온 아람이는
다섯 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둔
만 네살짜리 남자아이였다.
엄마 말에 따르면
몇 달 전부터 잘 놀다가 갑자기
입이 씰룩 거리며 옆으로 돌아가는
증상이 수시로 생겼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증상이 생기면 많이 놀라고
같이 있던 다른 아이들 앞에서
위축되어 어쩔 줄 모른다고 했다.
증상이 오기 전에는
머리가 아프다는 전조증상이
있을 때가 많고,
입이 씰룩이는 증상이
1~2분 동안 지속된 후엔
목이 아프다고도 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싫어하고
요즘은 하루에도 두어 번씩
증상이 일어나요.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신경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뇌파검사를 했어요.
거기 선생님이 간질이라고 하면서
빨리 약을 써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 너무 어린데 약을
먹이는 것이 싫어서 찾아왔어요.
최면치료가 도움이 될까요?"
가져온 뇌파검사 결과지에는
분명히 부분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파장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결과를 판독한 의사도
부분발작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글쎄요. 증상이 확실하고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을 때는
1차적으로 약을
쓰는 것이 맞긴 합니다.
최면치료가 도움이
될지는 해봐야 알아요''
''약을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하고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불안해서
다른 방법을 찾다가
선생님을 알게 돼서 왔어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최면치료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해보고 싶어요''
간질은 복잡하고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난치성 질환이다.
뇌의 한부 분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강력한 전류로 인해
사지가 경직되며 의식을 잃는
/'대발작'/이 대표적이지만
신체의 일부분에만 경련을
일으키는 부분발작도 종류가 다양하고
치료 경과가 복잡하다.
특히 소아 시절에 발생하는
간질은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자라면서 증상이 변하거나
심해지는 경우도 많아
어른이 될 때까지
같은 약을 계속 먹거나,
증상 변화에 따라
처방을 바꿔가며 치료하게 된다.
내 환자들 중에도
대여섯 살에 약을 먹기 시작해
어른이 된 지금도 계속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다.
"아이가 어려도
저와 의사소통이 되고
조금만 협조가 되면
치료는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아람이에게 부드럽게
"너 선생님하고 같이 치료해볼까?
주사도 안 맞고 쓴 약도 안 먹고
그냥 가만히 누워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생각만 하면 돼요"
하고 물었다.
아람이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며
"네" 라고 금방 대답했다.
그 또래의 남자아이 치고는
차분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걸로 봐서
최면치료에 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과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이가 이 치료를 배우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
치료를 하게 되면
엄마도 설명을 듣고 집에서
보조치료자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아직 너무 어려서 혼자서는
필요한 연습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좀 더 자세히 병력을 물어보니
발육이나 지능 발달은
정상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아주 예민했고
대인관계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고 했다.
최면치료는 첫 진료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할 수 있었다.
치료를 기다리 는 동안
대학병원 신경과 의사의 권유에 따라
뇌의 컴퓨터단층촬영 검사도 했지만
결과는 정상이었고
입 주위의 경련 증상은
하루 평균 한두 번씩 나타난다고 했다.
엄마에게 치료 원리와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는 최면치료실 의자에
아람이를 눕히고
"지금부터 선생님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할 거예요.
눈을 감고 자기 몸속을
상상해보는 건데,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면 돼요.
몸속을 들여다보면
아픈 데가 어둡게 보이는데,
어디가 그런가 보세요" 하고 말했다.
아이는 정신을 집중하듯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있다가
머리 오른쪽에 검은색
큰 덩어리가 있다고 했다.
그 부위는 뇌파검사에서도
이상이 나타났던 부분이었다.
몸의 다른 부분은
어둡게 느껴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밝은 편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 검은 덩어리가 녹아 없어지도록
햇빛이 들어오는 상상을 해요.
머리에 가득히 밝은 햇빛이 들어와서
그 덩어리가 녹아 없어지는 거예요''
라고 말하고 옆에서 지켜봤다.
아람이는 눈을 감은 채
여러 가지 표정의 변화를 보이며
나름대로 집중해
내가 시킨 상상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루한지
수시로 눈을 뜨고 나를 보며
"선생님 아직
멀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계속
"응, 조금만 더 하면 돼요"
라고 대답하면서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큼
최대한 상상을 이어가도록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치료의 마무리를 지으면서
"어때, 이제 검은 부분이
많이 없어졌니?" 하고 묻자
"네 이제 다 밝아졌어요.
머리가 시원해요" 라고 대답했다.
"이따 끝나고 집에 가서도
지금 했던 것처럼
머릿속을 밝게 해줘야 해" 라고
당부한 후
아이를 깨워 데리고 나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들어오게 한 후
치료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애기해주고
집에 가서도
같은 연습을 수시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라고 했다.
일주일이
조금 지난 다음 치료 시간에
아이 엄마는
"그동안 증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머리가 아프다는 말도 없었고요.
어린이집에서 얘들과도 잘 놀아요.
아침마다
햇님놀이 하자고 하면서
머리가
밝아지는 상상을 시켰는데
잘 따라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의 표정도
첫 시간보다 밝아졌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두 번째 치료를 시작하면서
머릿속을 떠올려보라고 하자
어둡지 않고 밝다고 했다.
지난 시간과
같은 상상을 계속 시키자
2~3분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아직 멀었어요?" 라고 물어
너무 지루하지 않게 조금
앞당겨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 엄마에게
"오늘 돌아가서도
계속 증상이 없으면
그냥 지내면서 일단
치료를 중단하고 지켜보죠.
이대로 나으면 좋지만
아직 속단할 수는 없어요.
집에서 하던 대로
꾸준히 연습을 시키세요.
증상이 한 번 이라도 나타나면
다시 치료 시간을 잡도록 하죠" 라고
당부하고 돌려보냈다.
그 후 두달간 아무 연락이 없어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어요.
그동안 증상이 한 번도 없었고
아이 컨디션도 좋아요.
아침에 한 번씩
잠깐 햇님 놀이만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 드릴게요" 라고
밝은 목소리로 반갑게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6개월이 지나도록
증상은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고 잘 지내고 있다.
아람이의 증상이 사라진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적 치료 원리나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너덧 살 어린 아이들의 간질 증상이
단순한 이미지의 상상만으로
이렇게 회복되는 경우를
나는 여러차례 경험했다.
증상의 원인이 일부 뇌신경의
이상 활동이라는 사실이
뇌파검사에서 분명히 확인되었어도
어떤 약물도 사용하지 않고
환자의 상상만으로
그 원인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경우가 꽤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이 모든 간질 환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간질이나,
아람이처럼 너무 어려
약을 먹이기가 부담스러운 경우,
장기간의 약 복용을 기피하는 환자나
임산부 등에는 권유할 만하며,
현재 약물치료만 받고 있는
환자들도 이 치료를 병행한다면
먹고 있는 약의 양을 휠씬 줄이거나
끊을 수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뇌의 특정 부위나 신체 일부에
영향을 주는 이미지를 상상할 때
그 부위에 흐르는 혈류의 양이나
기능의 변화가 일어나고,
강하고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신체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며,
긍정적 에너지를 담은
이미지와 감정은
분자와 세포, 조직과 기관의
활력과 건강을 실제로 증진시킨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아람이와 같이
상상력을 활용하는 치료만으로
증상이 없어지는 환자들은
그 상상이 불러일으키는 에너지가
치료의 직접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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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이의 '햇님놀이'----김영우
고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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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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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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