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첫번째 정책비전대회가 오늘 광주에서 열렸다. 홍준표의 가세로 경선의 '흥행요소'가 증가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이명박의 '오락가락' 발언이 대중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에서 이번 토론회의 가장 큰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짚어보자면 이명박은 노회한 '약장사' 같았고, 박근혜는 차분하고도 합리적인 '선생님' 같았고, 홍준표는 손석희에 버금가는 '진행자' 같았다. 원희룡은 자신을 향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분노가 마음에 걸리는 듯 시종일관 당을 앞세우는 모습이었으며, 고진화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좌충우돌'이었다.
오늘 토론을 계속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사회자가 엄길청이 아닌 홍준표인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켰을 것이다. 차분하고 전문적이어야 할 엄길청은 오히려 경직되고 불안한 모습이었고, 홍준표는 사회자를 능가하는 매너와 말솜씨를 뽐냈다. 그만큼 그는 카메라 앵글에 딱맞는 언행을 보여주었고, 목소리 톤이나 논리에 있어서 합리성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신이 원희룡-고진화 등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 토론의 승자는 홍준표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홍준표 지지율이 5%를 넘어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마 이명박은 정말 강적을 만났다. 그리고, 홍준표가 뜰수록 한나라당 경선이 더욱 흥행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탈당한 손학규 보다도 훨씬 더 큰 파괴력이 있다.
이명박은 오늘 답변을 통해 매우 황당한 발언을 쏟아냈다. "신혼부부에게 공짜 아파트를 나눠주겠다"는 발언과 관련 원희룡이 "얼마짜리 아파트를 어떠한 방법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답변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원가 아파트'를 '공짜 아파트'로 표현했다는 것인가? 원가=공짜라는 장사꾼식 사고가 은연중에 베어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리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 원가=공짜라는 사고에 찌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일반 서민들은 '공짜'와 '원가'를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그동안 이명박이 쏟아낸 수많은 단어들의 진짜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따져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과연 필자만 했을까?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원희룡이 "1년에 탄생하는 신혼부부가 과연 몇 쌍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혼부부가 몇 명인지도 모르면서 공짜 아파트를 주겠다는 공약을 했다는 이야기 밖에는 안되는데 이는 그동안 이명박이 쏟아낸 각종 공약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엿장수 마음대로 내놓았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이와 같은 사고 속에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과 '747 정책'이 나왔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장사꾼이 흥정을 하기 위해 쏟아내는 '아니면 말고'식 멘트로 가득차있는 사람이 바로 이명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앞서 '약장수'라는 표현을 했는데, '약장수'가 그 때 그 때는 말을 잘하는 것 같지만 논리의 일관성에 초점을 맞춰서 따져보면 스스로 제시한 논리를 뒤에 가서 스스로 뒤집는 것을 밥 먹듯이 한다. 이명박이 오늘 그러했다.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된 질문에 있어서도 답변이 궁해지자 이명박은 두가지 '약장수 발언'을 들고 나왔다. 첫째는 '한반도 대운하'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라는 것이고, 둘째는 '한반도 대운하'가 물류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관광과 레저를 내다보고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준표와 원희룡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 공중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애시당초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를 들고나온 이유가 자신이 건설 전문가라는 것이었고, 얼마 전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측 자문교수들이 줄기차게 주장한 것이 바로 '물류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명박은 대운하가 '소프트웨어'라고 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명박이 소프트웨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기에 '한반도 대운하'를 한다는 것인가? 그런 것이라면 이건희나 진대제가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강점을 스스로가 무장해제 시켜버린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는 이유가 물류 보다는 관광과 레저라는 것은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계천 사업이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들고나왔던 논리는 '환경 복원 사업'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논리로 겨우 여론을 잠재웠는데 과연 청계천 공사로 환경이 복원되었는가? 천만의 말씀. 환경이 복원된 것처럼 연출했을 뿐이다. 거대한 물펌프가 작동되지 않으면 그 순간에 청계천 물은 바로 썩은 물이 된다. 이로 인한 '막대한 예산'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이명박은 다시 '서울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며 사업 목적을 '환경 복원'에서 '관광/레저'로 슬그머니 바꿔놓았다. 지금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도 똑같은 수법으로 여론 물타기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청계천과 대운하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이 결코 같지 않다는 점이다.
청계천은 복개 및 고가도로로 인해 이미 대다수 국민들에게 하천으로서의 존재의식이 없는 것이었던 반면, 한강과 낙동강은 취수원으로서, 그리고 때때로 홍수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하천'이다. 청계천의 경우 수질과 홍수처리에 대해 국민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가 없었지만 대운하의 경우는 상상의 나래가 자연스럽게 펴지게 된다. 오늘 박근혜와 홍준표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가자 이명박은 답변이 궁해질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러다보니 '소프트웨어'와 '관광과 레저'라는 '약장수 멘트'로 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과연 한강과 낙동강을 '생명의 젖줄'로 이용하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이 '건설토목 전문가'인 이명박에게 '소프트웨어' 대공사를 맡길 것이며, 더욱이 '팔짜 좋은' 사람들의 관광과 레저를 위해 너무나도 절박한 '식수'와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묵인해줄 수 있을까?
박근혜의 '747 정책' 공격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반도 대운하'는 임기 내에 완공하겠다고 하면서 왜 '국민소득 4만달러'와 '세계 7대 경제강국'은 퇴임 후인 10년 후로 데드라인을 잡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명박의 '약장수' 발언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10년간 매년 7%씩 성장하더라도 경제규모 7위인 이탈리아를 넘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부분은 정책의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지적하는 아주 좋은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명박은 "꼭 실현 가능한 것만이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얼마든지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추상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그의 모든 공약 역시 전부 '아니면 말고'라는 이야기인가?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홍준표와 벌인 '출자총액제한' 논쟁도 박근혜의 논리의 견고함을 부각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홍준표의 시각이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고, 박근혜의 시각이야말로 탄탄한 경제철학과 이론적 바탕 위에 올라서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만 '대처리즘'에 관한 답변에 있어서 시간관계상 다소 미진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단순힌 시대적 배경만을 놓고 '대처리즘'이 20년 전의 통치 패러다임이라고 일축한 홍준표의 시각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링컨, 처칠, 루즈벨트 등이 보여준 리더쉽이 모두 시대착오적이고 아무런 학습과 교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인가? 홍준표의 시각 속에 '포퓰리즘'이 상당부분 침투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 토론회를 통해 박근혜는 '재벌기업 CEO' 및 '모래시계 검사'와 일대일로 맞붙어서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정확한 통계수치와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국정운영에 필요한 안정감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보였다. 이명박과 홍준표가 무의식적으로 '박 후보'가 아닌 '박 대표'라고 호칭하는 것만 보더라도 대표 시절 박근혜의 권위와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대표 직을 놓은지가 1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청중석에서 중간중간에 터져나온 우뢰와 같은 박수도 박근혜를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하자는 한나라 당원들의 강력한 열망을 전달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명박-홍준표-원희룡-고진화가 모두 자신들의 홍보와 과시를 위해 토론회에 임했다면 박근혜는 온 몸으로 '정권교체'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의지를 드러내보였다.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박근혜가 얻은 가장 확실한 두가지 전리품은 바로 이명박의 '약장수 이미지'와 '다크호스' 홍준표의 등장이다. 그동안 베일 속에 가려져있던 이명박의 위선, 거짓과 거품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것에서 토론회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며, 홍준표라는 강력한 대안의 등장으로 '이명박 대세론'이 타이타닉호 침몰과 같은 '대세 추락'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관전평을 쓰다보니 글이 다소 엉성해졌지만 다른 논객 분들의 관전평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다 정제된 관전평 2탄을 내놓을 것을 약속하면서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P.S. 그나저나 오늘이 '경제분야'였음에도 이명박이 저렇게 죽 썼는데 '교육/사회/문화'와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나... 더욱이 오늘 이명박의 웃는 모습에서 피곤함과 노쇠함이 많이 묻어나오던데... 이명박 캠프의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관찰자
첫댓글 속이 다 후련하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누님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님의 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