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애 대상에서 상이란 상을 모두 노미네이트 한 “해 품 달”을
드디어 저도 보았습니다. 시청률40%는 아마도 모래시계이후 처음일
것입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아주 탁월했고요, 아역들의 연기 또한 영악할 정도로 대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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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김 수 현이 이놈 어디서 그런 상큼하고 발칙한 연기가 나오는지
그냥 꽃미남 왕 만이 아니라 지가 언제 가슴 아픈 사랑을 해봤다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로미오 연기를 하는데 어찌나 리얼한지 제 멍이 멍멍합니다.
해 품 달 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라서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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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가 치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여타의 멜로물에서 보기
어려운 치밀한 구성력이 멜로라인에 큰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해 품 달 구성의 핵심은 “운명의 어긋남”입니다.
주인공들의 운명이 가혹할수록 그 속의 로맨스는 그에 반비례해서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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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아닙니까? 정쟁의 희생양이 된 세자빈 연우와 그 일가의 비극, 그 뒤
기억상실로 가장 가까이서도 훤(수현)을 알아보지 못하는 액 받이 무녀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 둘의 로맨스를 더욱 애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자 훤과 연우(한가인)의 로맨스는 아직 정치나 세상물정을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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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던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연우의 죽음과 함께 그 시절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비극적 운명의 직접적인 원인인 윤 씨 일파의 추악한 모략과 절묘하고도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훤의 합방거부에는 원자 생산 시 자신이 외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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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 곧 암살될 것이라는 현실인식이 또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훤은 그만큼의 시간을 버는 셈이므로 그때까지는 자신이
정적들로부터 암살되지 않을 것임을 꿰뚫어보고 정국을 운영합니다.
중전에게 연심이나 최소한의 동정심이 있다 해도 합방을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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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운명이 꼬여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훤이 무녀 월을 구하기 위해 중전과의
합방에 응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일종의 도박이었고, 그런 만큼 애절함도
배가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연우와의 연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던
혜각 도사의 심정도 대단히 절박했음을 납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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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해 품 달 원작에서 성종이 승하한 뒤 원래 내정됐던 이판대감의 여식 윤 씨가
중전 자리에 올랐습니다. 훤은 그 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렸고 그녀와의 합방을
거부했습니다. 드라마에는 그녀가 혹독하게 변할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제 원작에서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뿐더러 불쌍하다는 이미지가 더 큽니다. 훤을 사랑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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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방을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덧붙이자면 원작에는 민화공주가 더 나쁜 이미지로 나옵니다.
민화공주는 어린나이에 염을 사랑해서 염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연우를
죽이는 공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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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들이 살을 날릴 때 신선로 같은 곳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제물이 죽는
신비주의는 음향효과 때문인지 몰라도 저 같은 성경 학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칭찬합니다. 하여간 꼬이고 꼬이는 스토리를 노느니 염불하는
심정으로 풀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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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뭔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약간 어긋나 있으면 그것을 똑바로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답니다. 젓가락이 약간 어긋나 있거나 옷매무새가 살짝
틀어져 있으면 대부분 거의 반사적으로 반듯하게 정리하지요 드라마의 스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뒤틀리고 어긋난 것을 바로 펴고 싶은 시청자들의 이런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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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탓에 제가 1-20회까지 단숨에 해 품 달 을 보지 않았겠습니까?
연우가 기억을 잃기 전인 극 초반(1~6회)에는 세자와 연우의 계속된 어긋남이
있었습니다. 어린 세자는 어린 연우에게 잠시나마 신분을 감추었고, 어린
연우는 어린 세자가 자신을 염의 동생이라고 인지한 것으로 잠깐 착각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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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자가 자기보다 윤 보경(이후의 중전)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엇갈림을 다잡아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시청자는 다음 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멜로드라마이기에 다소 사소한 점이긴 하나, 절대 악인 외척 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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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의 경우 그 존재이유가 단순한 권력욕뿐이라는 것이나, 연출부분에서
클라이맥스가 약했다는 것입니다. 뺨만 때려주면 밤새 엉엉 울 준비가 돼 있는데
정작 드라마에는 뺨 때려주는 임팩트가 다소 약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화가 살을 맞고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아버지가 딸을 죽이기 위해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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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려는 장면에서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통곡하였습니다. 엉, 엉,
해서 해 품 달 은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입니다.
“정치란 만물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어디 옷고름 한번 풀어 볼까”
2015.2.3.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