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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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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임보 시집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에서 1
동산 추천 0 조회 39 09.10.16 12: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임보 시인 

   시집  <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3 - 한 채의 감옥을 짓고 싶네 / 임보


은빛 햇살, 수정 구름 잘 이겨

투명한 감옥 하나 짓고 싶네


만 그루 넝쿨장미 울을 세우고

수만 리 물길 둘러 섬을 만들고


마뇌 문, 산호 빗장 굳게 달아

바람도 못 스미는 옥사를 지어


피리 불며 불며 그대 오신 날

남 몰래 보쌈하여 가두고 싶네


내 마음 깊은 궁궐 갇힌 종신수

한평생 그대 곁에 종이고 싶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4 - 술과 거문고 / 임보


이른 봄 바늘보다 곧은 솔잎을 따 술을 빚으리
한번 마시면 가슴에 꽂혀 한평생 사랑을 앓는―

이른 봄 선혈보다 붉은 진달래 꺾어 술을 빚으리
한번 마시면 마음이 불타 온 세상을 다 잊는―

이른 봄 한 백년 묵은 칡뿌리 캐 술을 빚으리
한번 마시면 영혼이 뒤엉켜 헤어나지 못하는―

송주, 두견주, 갈근주
그 술들이 잘 익은 늦봄이면 그대 오시리

오시는 달밤, 그대 주안상 곁에
한 채의 거문고로 내 몸져누우리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5 - 밤마다 명주를 펴 봅니다 / 임보


그 분을 그리며 이른 봄 양지녘에 뽕나무를 심습니다

그 뽕나무를 잘 길러 잎이 돋으면 누에를 칩니다

그 누에가 예쁜 고치를 지으면 가는 실을 뽑습니다

그 실을 잘 날아 베틀에 걸고 고운 베를 짭니다

그 베에 풀을 먹여 한겨울 다듬이질을 합니다

그 다듬이가 살결보다 부드러운 명주를 낳습니다

그 명주를 정성스레 펼쳐 그 분의 도포를 짓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분의 품을 내 모르니 밤마다 펼치기만 합니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6 -  그대를 맞으려고 / 임보
 

한 벌의 원삼을 해가 기울도록 짓습니다
오색 색동으로 소매를 붙이고
금실 은실로 원앙의 수를 놓습니다

한 개의 족두리를 밤을 새워 만듭니다
산호 진주 보석들로 구슬을 얹고
청실 홍실을 엮어 꽃술을 답니다

한 켤레의 비단 꽃신을 마릅니다
공단으로 볼 받치고 자단으로 굽 두르고
무늬도 곱게 맞춰 예쁘게 코를 세웁니다

그 화사한 원삼으로 몸을 감싸고
그 눈부신 족두리를 머리에 얹고
그 앙증스런 비단 신발을 발에 신고

첫날 밤
신방을
기다립니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7 - 그대 지금 어디쯤 오시는가 / 임보


낮이라면
열두 무지개를 그대의 머리 위에 화환으로 걸고
밤이라면
은하의 천만 성운을 끌어다 등불로 밝히고저

소심 보세 일만 그루의 난초밭에 꽃을 피우고
천년 침향 일만 향로에 불을 붙여 향을 피우고저

은백의 명주를 풀어 밟으실 길 위를 맑게 하고
취옥의 생황을 울려 허공의 바람도 재우고저

오시기 전에 기별을 주소서
바람결에라도 그대 음성을 실어 미리 알리시고
구름결에라도 그대 향기를 담아 미리 보이소서

오늘도 날은 하염없이 저무는데
그대 지금 어디쯤 오시나요.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8 - 꽃들은 피고 지는데 / 임보
 

그대 오시기도 전에
산수유 진달래 다 지면 어이해

그대 오시기도 전에
영산홍 자목련 미리 피면 어이해

장미 모란 피고도
아직 소식 없는데

그대 오시기도 전에
상사화 합환화 피어나면 어이해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0 - 아마 오시나 봅니다 / 임보
 

뻐꾸기가 저렇게 울어댄 걸 보니
산 너머 어디쯤 아마 오시나 봅니다

가시연꽃 저렇게 피어난 걸 보니
강 건너 어디쯤 아마 오시나 봅니다

이 가슴속 이렇게 울렁거리고
두 볼이 이렇게 달아오르는 걸 보니

건너 마을 어디쯤
아마 오시나 봅니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9 - 꿈에서 봅니다 / 임보


지난밤 그대를 꿈에서 보았습니다

백마의 등위에 늠름히 은빛 별로 오셨습니다


그젯밤 그대를 꿈에서 보았습니다

황금 수술을 늘어뜨린 사각모로 오셨습니다


어젯밤 그대를 꿈에서 보았습니다

수정 무대 위 눈부신 연미복으로 오셨습니다


밤마다 그대 모습 다 다르니

오늘밤엔 또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시려나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1 - 그대는 벼락이었네 / 임보

 

 

어느 날 문득 산처럼 막아선 이여,
어느 날 문득 바다처럼 펼쳐진 이여,

그대 오신 날은
하늘의 구름도
산천초목도
나는 새들
기는 짐승
하찮은 벌레들도

황홀이었네

하루아침에 온 세상을 바꾼 이여,
그대는 혁명,
아니 개벽이었네
나를 무너뜨린
아니, 산산조각을 낸
소리없는
벼락이었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3 - 만남 / 임보
 

이제껏 내가 넘고 넘은 수많은 산들은
당신을 만나러 가는 지름길이었고

이제껏 당신이 건너고 건넌 수많은 강들은
이 몸을 어서 만나려는 나룻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해 두 생애는 빚어졌고
우리의 오늘을 위해 천고는 비롯했습니다

참 신비롭기도 해라
아득한 두 생명의 길이여

설령 누가 영원의 삶을 내게 준다 해도
당신과의 하루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4 - 마중 노래 / 임보


정든 님이 오셨다네
천리 만리 버선발로
은하수 넘고 넘어
밤을 새워 오셨다네


목욕재계(沐浴齋戒) 머리 감고
녹의홍상(綠衣紅裳) 댕기 매고
새벽부터 서성이니
웃는구나 저 산천도


청운으로 차일(遮日)하고
청산으로 병풍(屛風)치고
옥류 가락에 솔바람 장단
합환주(合歡酒)에 취하시면
팔베개를 받치오리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6 - 애무(愛撫) / 임보

거센 파도에 이 가슴 열고 싶어라
번개의 칼날에 이 입술 베이고 싶어라
조여
조여
이 허리 끊기고 싶어라
아, 뜨거운 저 보름달 마시고 싶어라
더 깊이 사랑해 줘요
구천(九泉)의 끝에 닿을 때까지
그네를
그네를
밀어주세요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7 - 붉은 밤 / 임보

 

태양이 서녘으로 그렇게 서둘러 달리는 것도
별들이 밤하늘에 그렇게 황홀히 맴도는 것도
바람과 새들이 그렇게 세상을 잔잔히 흔드는 것도
아, 어둠― 우리의 천국을 그렇게 꾸미고자

그대의 눈동자 속으로
천상의 별들은 쏟아져 내리고
죽음처럼 평온한 어둠
세상에,
사람의 향기가 꿀보다 그렇게 달 줄이야―
밤이 술보다 그렇게 취할 줄이야―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8 - 그대와 함께 눈을 뜨는 이 아침은 / 임보

 

아, 하늘이 그렇게도 맑다니
산들도 그렇게나 푸르르고
강물도 그렇게나 출렁거리다니

문득 축포처럼 숲에서 솟아오른 오색 장끼의 날개
잣나무 가지를 건너뛰는 경쾌한 청설모의 긴 꼬리
푸른 연잎에 올라앉은 청개구리의 왕눈도 아름다워라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도 영롱한 보석
외양간의 말똥 냄새도 구수하기만 하네
아니,
엉겅퀴 가시에 매달린 딱정벌레도
애기똥풀 잎에 코를 박은 민달팽이도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대와 함께 눈을 뜨는 이 세상은
모두가 다 현란한 천국이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9 - 세상에 가득한 그대 / 임보

 

한 떨기
패랭이 꽃잎에도
넘치는구나
그대의 숨결.

우리가 태어나던 날
세상의 절반은 이루어졌고
우리가 만나던 날
세상은 드디어 완성되도다.

 

 

 

임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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