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지 않겠니? 그러나 사랑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
는다. 지금의 나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 자신의 빛이 바래질 것을 알기에. 그래서 사
랑은, 나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서, 너 자신을 열어라. 조금만 더 기다
리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도 좀 열어주어라. 무작정 기다리지만 말고, 우선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는 없겠니?
결국, 나는 그동안 그토록 사랑과 만나고 싶어했지만, 정작 그를 맞이할 준비는 하지 않
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두려워진다. 평생을 reaction으로 살아왔던 나.
진정한 action을 취하는 것은 마치 다른 우주를 경험하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자신을 자신
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나, 그래서 항상 자신의 실체를 부정했던 나. 관찰자는 관찰자
자신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홀로서는 순간, 사랑은 어느새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
닐까.
가장 멀리있다고 생각되는것은, 종종 가장 가까이 있기 마련이다.
2006/5/18(7)
시 간
갓 태어난 아기는 해맑은 미소를 머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점점 자라나면서, 그 미소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가벼워져 간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죽음이라는 결말 앞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모두
들 어떻게든 더 살아보려고 발버둥친다. 무언가가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아직 해야할 일도
많이 남았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이 산더미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똑같
다. 아니, 똑같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어제를 뉘우치고, 내일을 계획한다. ‘어제 술자리의 유혹을 뿌리
쳤다면 지금 레포트 때문에 허둥지둥 거리는 일은 없었을텐데...’ ‘내일 발표는 잘 할 수
있을까?’ 등등...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어제와 내일 투성이이다. 아니, 어제와 내일 뿐이
다.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는 ‘현재’라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의 고민거리
는 어제의 ‘~였던’ 내 모습과 앞으로 ‘~할’ 나의 모습이었지, 지금 이 순간을 인지한 적
은 전무하였다. 분명 나는 지금을 살고 있는데, 그 지금을 잡지 못하고 전부 과거나 미래로
넘겨버린다. 이미 지나가서 없는 과거와 아직은 보지못한 내일로 그 책임을 전가시켜 버린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아니, 그게 꼭 잘못된 일일까... 또 순간 수만가
지의 생각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이놈의 생각. 틈을 주면 안된다. 틈만 나면 나를 물려고
달려든다. 그런데 잠깐, 이 모든 것은 또 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아아... 어쩌면
나는 알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탄생과 죽음. 이미 나의 과거와 미래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한단 말
인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태어난 ‘나’라는 존재는 바뀔 수 없
고,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영생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가장 중요한 시작과 끝은 바뀌
지 않는데, 그 속에서 왜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는가? 지금 이 순간, 시시각각 과거를 흘려보
내고 미래를 맞이하는 이 순간, 왜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는가? 어차피 죽을 것, 왜 나
는 너보다 더 높고 멀리 뛰기 위해 어제와 내일로 나를 혹사하는가? 어떤 과거든, 어떤 미래
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지금’이라는 것을,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
까? 그리고 왜 그들은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지금부터다. 중심은 항상 지금, 현재이다. 어제로, 내일로 그 중심이 쏠리는 순간, 균형
은 깨진다. 그리고 그 균형은, 바로 나 자신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이 흘러가는 현재. 그것
은 포착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나의 실체. 그렇게나 고귀한 나를 더욱 사랑하는 것. 그것
은 바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 뭐,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2006/5/3
열정과 열망
내가 기타를 처음 잡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9년 8월의 어느 더운 날이었다. 여름 방학 숙제로 음악회를 감상하러 서울 예술의 전당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거의 충동 구매에 가깝게 싸구려 통기타를 한 대 사버린 것이다. 다음날 동네 서점에서 교재를 한 권 사서 독학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주변에 딱히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기타를 꼭 쳐보고 싶다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것도 아니었기에 간단한 소리 하나 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져들었다. 그 울림이 나와 통했던 것일까. 나는 곡 입시지옥이라 불리우는 고 3이 되었고 현실적으로 기타를 연습할 시간은 없어보였지만, 평소보다 1~2시간 씩 일찍 일어나서 몰래 연습하는 식으로 꾸준히 실력을 샇아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며느 도대체 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는지, 그토록 빠져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멋잇어 보이고 싶어서’와 같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유가 아닌, 그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그 전까지 음악 자체와는 어렸을 때부터 몇몇 악기들을 꾸준히 다루어 와서 낲설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자발적으로 빠져든 처음이자 마지막인 악기가, 기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대학교에서 몇몇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 상 늘 고독한 싸움이었다. 누구에게서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는 힘들었고, 개인적 성격상 그 고통을 즐기는 편이었다. 기초적인 기법, 음악적 이론 등등, 모조리 홀로 정복해 나갔다.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입시라는 고비가 풀림과 동시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했다. 자연스레 실력은 늘어갔고, 대학교 1학년 2학기 대는 다른 동아리나 단체로부터 연주를 의뢰받기까지 하는 지경을 이르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겁 없이 덜컥덜컥 맡아버린 것 같기고 하고, 성적도 최악이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이때까지는 기타라는 악기를 대함에 있어서 나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것이었다. 아무 조건없이, 그저 같이 있고, 연주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기에... 그러나 2학년 때 상황은 달라졌다. 그놈의 ‘애인’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와 상황으로(변명에 불과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던 기타와 멀어지고 그녀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연주도 점차 어긋난 목적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나를 위한 연주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주...
연애라는 쾌락을 맛보기 위해, 나는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다. 무언가가 후외스러웠지만, 깨닭았을때는 군대에 막 들어갔을 때라서 어찌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역시 무언가 인연이 있는 것인지, 나는 군악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자대배치를 받은지 단 2주만에 다른 고참들을 제치고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소조밴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 곳에서는 연습도 훈련의 일환이기에 틈 날때마다 집중해서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정말 맞을 각오도 하고 몰래몰래 숨어서 연습하기도 햇다. 남들은 군대에서 허송세월을 보낸다고들 하지만, 나의 경우는 확실히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그것이 집착이 되어버렸을 지라도), 밖에서는 돈주고 배워야 할 것들을 세금으로 배웠다. 또 프로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꿈꾸는 음악학도들과의 만남 속에서(비록 고참/후임이라는 한계 속의 관계였기는 하지만) 각종 정보 교류와 우리나라 문화계의 전반적인 면모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봤자 한낱 아마추어에 불과한 나로서는 과분한 경험을 한 셈이다.
모든 상황은 다시금 좋아지는 듯 하였지만, 이 과정 속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은 있었다. 예전에 연주할 때 느꼈던 희열이 점차 사라짐을 느낀 것이다. 예전에는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하면 주변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 공간에는 오로지 나와 기타만이 남게 된다. 고민이나 걱정과 같은 잡생각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린다. 한 번씩 느끼게 되는 최고의 느낌은, 연주에 몰입해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로, 그냥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데로 본능적으로 음을 찾아서 연주하는 것이다(이 느낌은 느끼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새인가 부터, 연습을 할 때, 연주를 할 때마다 늘 머릿속에는 가상의 상대가 그려지고, 나는 그 가상의 누군가를 뛰어넘기 위해서 숨가쁘게 달려가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모든 것은 누구보다 더 잘하기 위한 연주가 되어버렸다. 알고 지내던 프로 음악인들이 항상 경계하라고 주의를 주었던, 순수한 동기의 결여가 나에게도 온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깨닫은 순간, 그동안 흐리게 구름져있던 몇몇 문제들이 많게 개어짐을 느낌 수 있었다. 나는 또 자신을 세상의 기준에 속박시켜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악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기에 기타와 나 사이에는 그 어떤 불순물도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과의 우위 비교 따위는 다 부질없는 일인 것이다. 연주할 때 그 세상의 중심에서는 악기와 나, 단 둘이서 남는다. 그 상태가 ‘열정’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연주는 다시 즐거워 졌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가슴이 뜨거워 짐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잠을 못 자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하루 2시간 이상은 나의 꿈을 위해 연주하낟.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이로 인해 나의 사회적인 가치나 지위가 낮아지더라도, 아는 연주한다. 삶을 삶에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아님을 굳게 믿기에... 이 펜을 놓은 후에도 나만의 어법을 탐구하기 위해, 죽는 그 날까지 악기를 놓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열망하면, 이루지 못할 바는 없지 않을까.
얼마 전에 한 프로 연주인으로부터 나의 연주에 대한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흔희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이며,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용한 열정이 느껴져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로 인해 ‘쏠라당’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Aspiration, in it's simplest definition, is a lovely flame climbing Heavenward.
True aspiration can and does make us feel that if God is for us,
who can eventually stand against us?
We feel a desire to have God on our side.
But we need the asperation to throw ourselves on God's side.
The sun is the only remedy for dark clouds in the sky.
Similarly, there is no other medicine than aspiration for our troubled hearts.
Aspiration is the first rung of the sky-kissing ladder; Realisation is the last.
True human aspiration has three intimate friends: Purification.
Quietude and intensity. Aspirarion has an enemy called impatience.
Aspiration is the mounting flame of our divine wish
to raise ourselves to the crest and crowning of Divine Perfection.
The body aspires through action.
The vital aspires through struggles.
The mind aspires through self-search.
The heart aspires through the feeling of union.
The soul aspires through the perfection fo God's manifestation.
-Sri Chinmoy
2006/5/1
약 속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나는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나만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마음 먹었다. 이를 위해서 친한 후배에게서 어느 여성분을 소개받기로 하였다. 솔직히 스스로 많이 들떠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일에 잎요한 자료들과 물품들을 자비를 들여 하나씩 장만해 나갔다. 덕분에 순식간에 많은 돈을 써버렸지만, 그런 사소한 것 쯤은 전혀 대수롭지 않을 만큼 해 보고 싶었던 것이기에 후회같은 것은 없었다.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첫 만남이 상대의 일방적인 취소로 무산된 것이다. 피차 부담없이 하자고 통보해 놓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까운 시일에 다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약속은 깨졌다. 또 깨졌다. 이런 식으로 4~5번의 만남이 미뤄지고 최종적으로 익일 약속을 잡았다. 그 쪽에서 그 날은 무조건 시간이 있다고 하기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숙을 두 개씩이나 취소시키고, 부푼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시간 10분 전, 그 사람은 또 핑계를 대며 약속을 취소시켰다. 순간 너무나도 화가 나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짐에 괴로워서, 중계를 해준 후배를 통해 없던 일로 하자고 말햇다. 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거의 평생의 염원이 담겼던 일이었기에 기분이 많이 상하였고 보이는 사람들마다 붙잡으며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특히 이 만남을 위해서 각별한 사람들의 송별회마저 참석하지 못하였기에,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부터 얼굴도 보지 못한 한 사람을 난도질하고, 매장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뒤 마음을 비우고 되돌아보니, 내가 그토록 화가 났던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부추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토록 소중한 일이었으면, 애초부터 상대방에게 그러한 의사를 표현했어야 했지만, 나는 상대방을 벼려한다는 차원에서 ‘부담없이’라는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해온 것이다. 솔직히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의 처사가 너무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분석해 보니, 난 또 혼자서 들떠있다가 혼자서 흥분하는 전형적인 쏠라당에 빠져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도 그 결과를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든 면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그렇게 믿으려고만 하다가, 자신을 자해해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슷한 일을 얼마나 겪었을까? 그러고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인간이란, 참으로 유약한 존재이다.
2006/04/11 (4)
군견
군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좋든 싫든 간에 무언가 에피소드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장소.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친구나 선/후배 몃 명 모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이야기는 그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 버린다. 훗날 보면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후회는 없는 추억이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 들어서 그 기억이 물귀신처럼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나는 군악대 출신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군대라는 조직 속에서도 쓸모없는 군기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곳 중 하나이다. 흔히 ‘딴따라’라는 호칭에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만은 않듯이,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사실 ‘딴따라’라고 불러주기조차 낮뜨거운 족속들도 있었지만, 나름데로 ‘예술’을 한다고 믿고 설쳐대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뭐라고 표현할까...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한층 더 일그러져 있는 곳이었다. 까짓거 2년, 인생에서 지우고 보내버리자라는 것이 아닌, 그래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군악대’ 씩이나 온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여기서 꼭 일보 전진을 하고 전역하겠다, 라는, 철모르는 생각을 마지막까지 하다가 나오게 되는 곳...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도 나를 비롯해서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본전생각 말고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라는 조류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위에 눈치보랴 이래저래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차츰 계급이 올라가고 책임이 늘어가면서, 주변의 동지들과 함께 썩은 뿌리를 잘라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전역할 당시 스스로 평가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상을 남기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통했다고 느낀 사람들도 몇몇 건졌고, 나오기 전날 온갖 근무로 피곤할 후임들 몇 명이 자청해 몰래 밤을 새며 이야기 꽃을 피웠던 것을 봐도, 나의 인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기에는 나의 성격이 기인하지 않았나 싶었다. 본성이 모질지 못해서 일단은 친절하고 보는 습성, 인간관계에서 타협을 최우선으로 하는 점, 흔히 말하는 뒤끝없는 성격,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아끼고 남의 말을 끝까지 듣는 점 등, 모두 쑥스럽지만 내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다. 좋게만 보면 장점이 되지만, 나쁘게 보면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평등하지 못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고 자학하는, 그래서 속으로 끙끙 앓다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는 시한폭탄같은 성격인 것이다. 시한폭탄. 아무튼, 이런 점 때문에 그 부조리의 소굴 속에서도 신선 소리 들으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전역을 했다. 사회로 돌아와서 늘상 그랬듯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2년간의 과거를 모두 망각하고 예의 그 성격 그대로... 예예, 좋구말구요. 그렇게... 그러다가 그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한 달 전 쯤, 4년만에 친구를 만났다. 피차 군대에 가서 만나지 못하고 있던 놈이었다. 반가운 척 겉치레를 잠시 떤 후, 아니나다를까 자연스래 군대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군대이야기를 매우 혐오한다. 휴가를 나왔을 때도 그 화제 피하려고 발버둥치다가 공감하기 힘든 세상살이 이야기에 혼자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나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이다. 오호라. 군대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의 의식은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그 놈은 마치 명함을 꺼내듯, 자신이 어디어디 부대 출신이고, 보직이 무엇이었으며, 남들 다 한 고생에 살짝 과장 덧붙여서 ‘죽을 뻔 했지만 끝끝내 버텨냈다’는 말도 안되는 마쵸이즘을 들먹이며 주위 사람들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어찌 여기에다가 딴지를 걸 수 있겠는가? 예예, 좋구말구요.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그 놈의 2년간의 생태보고를 마치고 나서, 이야기는 뻔한 결말로 치닫았다. 놈은 그렇게 무사히 전역했으며, 좀 ‘깐깐했어도 뒤끝없는’ 성격 때문에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에 골인했다... 가 아니고 사회로 방출되었다, 라는 지극히 흔한 결말이었다. 바로 그 순간, 꾹꾹 참고 있던 나는 안에서 폭발했다. “전역한 사람들 중에서 욕 얻어먹고 전역했다는 놈 아무도 없더라. 어처구니 없지만, 이 말 한마디가 그의 명함을 거절하는 나의 의지의 표출이자, 순간 내안의 무언가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물귀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고의 흐름은 이렇다. 나는 그 놈과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그 놈의 그 더러울 정도로 깐깐하고 치사한 정질은 익히 경험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류가 실재로 제일 짜증난다는 것도... 내가 그토록 싸워왔던 군대의 부조리들이 그런 것 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도 결국 같은 부류가 아닌가? 나의 성격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를 보고있는 남들은 전연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지 않은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마저 어떠한 이미지로 굳혀버리는 야비한 내 생각이,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자신에 대해 어떤 속임수를 저지르고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것은 더욱 완벽한 자신을 만들어야 겠다는 사냥개가 쫒아와서 그런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순간 일어났다. 갑자기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솟아나면서,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확실해졌다. 나도 분명 무언가를 크게 잘못했었고, 그때의 상황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며, 지금도 아주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세상이 무너졌다. 거울은 깨져버렸다. 야단이 났다. 아니, 이것을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 자신에게 부끄러워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나닌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줘 왔는가?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도대체 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머리가 복잡하다. 나의 좀재 자체가 이 세상에 폐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 이제 알았으니 된 것 아닌가? 결국 과거는 과거고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지금, 현재이니까... 굳이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을 죽이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아아...
결국 다시 SSDD다. Same shit, Different day... 잠시 이런 나 자신을 떠나있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나는 아직 도망가는 법을 모르고 있다. 그래도 잠시 떠나야지...
‘이야기를 건네는 머리가 내 곁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몹시 소변이 마려웠다. 소변을 보고 오마, 하고 나는 이야기를 건네는 머리에게 말했다.’
결국,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소변부터 봐야하는 법이다.
2006/3/29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마음
뭐랄까. 허무하다고 해야 할까? ‘오직 모를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내가 과연 이 책을 왜 읽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누구를 위해서? 아니면 이 지구별을 위해서? 어떤 삶의 방식을, 색다른 지식을, 진실을 보게 하는 눈을, 궁극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읽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생각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다시 구속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 구속이 두려워 다시 집착하게 되고, 다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삼국지에서 유비가 했던 말도 문득 떠오른다. ‘저는 저 자신도 그걸 잊고자 합니다.’ 그러나 과연 진짜로 잊을 수 있는 것인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다. 이 말을 긍정적으로 수긍해 왔던 나는 이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럼, 나란 존재는 무엇이 되는 것인가? 글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흥미는 있으나 감흥은 얊았고, 알 것은 같았으나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 무언가를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은 생각의 작용이고, 세상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령 종교가 우리를 갈라놓는 칸막이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고 언어라는 이미지로 청자(혹은 독자)에게 심어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분열을 낳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나는 지금 말장난이나 청개구리의 심보로 하나의 새로운 빛을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여전히 나는 모를 뿐이고 그 모른다는 사실조차 잊고자 하는 보통의, ‘아직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생각할 때 생각할 뿐. 들을 때 들을 뿐. 볼 때 보고 먹을 때 먹을 뿐 그게 다일 뿐......
어제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인물에 대해서 친한 벗 두 명과 잠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둘 다 크리슈나무르티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 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흑백논리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이미지로서의 얊은 대화밖에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그 중 한 명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인도 사상 및 종교의 전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 인상깊었다. 요지는, 결국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는 절대적인 자유가 우리가 갈구하는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부자가 식후 마시는 포도주와, 영하 40'C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월급대신 받은 보드카를 훌쩍이고 있는 노동자의 ‘그것’은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의 즐거움과 쾌락은 이상한 것이라서 그 경계마저 모호해 지는 것이 아닌가? 아아......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불완전하고 불완전하기에 인간이 아닐까 싶다.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딘가에 의지하기 위한 나약한 모습일련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지구별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보다는 내가 왜 있는가가 더 급한 과제이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인데, 그럼 나는 어떻해야 하는가?’ 글쎄......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잊을 뿐이다. 내 마음 속에서 헤엄칠 공간을 넓혀가는 것...... 그 물결 속에 작은 돌맹이를 하나 던져주는 것...... 그것이 크리슈나무르티의 참된 뜻이 아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을 뿐이다.
2006/3/21
어느 부끄러움
오랜만에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전에 읽었을 때가 고등학교 때 였으니 거의 6년 만의 재회인 셈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으면서, 묘한 자의식에 사로잡혔다. 6년 전 그때는 느끼지 못하였을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소설은 허구이고, 허구이기에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것이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의 행적과 언행은 비록 논리적으로 미약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무언가의 해답까지는 되어주지 못하였지만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인간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인데... 그 때 인간은 무엇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철학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한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인 즉, 마치 구원이나 해답, 그 어떠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하는 물음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참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판명되면 모든 것을 쏟아 붓지만, 별반 관계가 없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차가운 인간... 아니, 차라리 그렇게 냉정할 수 있다면 오히려 죄책감이 덜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무시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선적인 인간인 내가 무엇을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인데... 결국, 이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이고 그 이유는 내가 고통스럽다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즉,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라는 말이 아닌가... 내가 이 말에 답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지가 의심스럽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미약한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 전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분명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 쪽에서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죄없는 동물들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가축의 새끼들을 요리해 먹기 바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굶어 죽어가는... 이런 세상을 만드신 분 이라면 그럼에 틀림없다. 그가 제시하는 구원의 조건은 종교를 불문하고 실현 불가능한 것 들 투성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왼빰을 맞고 오른빰마저 내밀것이며, 자신이 부처라도 되는 마냥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시각 새벽 두시...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밖에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 담배도 결국 어떤 죄없는 식물을 희생해서 만들어진 것. 이 방을 밝혀주는 불빛도 무언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 하나를 얻으려면 여럿을 희생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무언의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동물. 이런 인간을 어찌해야 하는지, 이런 나를 어찌해야 하는지, 감히 생각하지 못하겠다. 생각을 비우라고 하지만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문다... 얻으려면 희생해야 하나 그것을 피하기 위해 포기하면 또 다른 무언가가 희생된다. 그 희생을 그저 당연한 숙명으로 받아들이자니 무언가가 두렵다...
이 긴 밤을 물어뜯는 부끄러움만이 남는다...
2006/3/14
나의 모습을 찾아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져봤을 만한 의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삶이라는 무게에 짓눌리고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정형화 되어 버리는 것. 그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등의 좀 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기에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혼자서는 그 시도의 점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서로를 밀고 당기는 입장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미 해답에 근접한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도와주는... 남들보다 먼저 나비가 되고 싶어서 다른 애벌레의 머리를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인류라는 존재는 적어도 지금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고 믿고 싶다.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이루면서...
나의 나이 24. 살아오면서 나름의 많은 믿음과 신념을 접해보았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십수년 동안 별 생각없이 출석하던 교회부터 시작해서, 잠시 관심을 가지게 됬던 이슬람과 코란, 각종 스님들의 저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던 불교의 사상, 이런 저런 철학서적 등등... 그러나 점점 머리가 커가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 어느 종교나 사상도 이 땅에서의 내가 누구인지 귀띔해 주지 않았다. 대부분이 대충이라도 범위를 한정지을 수 조차 없는 우리의 구원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니면, 그들이 말하던 나는 이기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세상사의 일과 결탁되어 있어서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교회라는 곳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뛰쳐나와버렸다. 그때부터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정신적 유랑이 시작되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했다. 따지고 보면 손도 두 개, 발도 두 개, 귀도 두 개... 하나 없어져 봤자 불편할 뿐이지만, 심장은 하나고, 목숨은 하나다. 소중한 것인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군대라는 곳도 갔다오게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된 인간상을 양산해 내는 거대한 공장.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하지만 확실히 군대란 곳을 가기 전과 갔다온 후,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앞날의 걱정, 먹고 사는 걱정... 아이러니컬하게도, 군대라는 밀폐되고 억압된 사회에서 자유를 찾아 밖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내 자신이 나를 속박하는, 그런 웃지 못할 상황. 나의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생각.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이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라는 논리는,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울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울림을 느끼는 것과 그 참 뜻을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아니, 예전부터의 연장선이 될 것이다. 비록 종착역은 없을지 모르지만...
첫댓글 지금 다시 보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조차 모호한 글들이었군요...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이토록 힘든일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됩니다. 뭐, 그동안 자신의 실체를 부정하기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내가 내 고통을 해결한 뒤에라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김건영이.. 정말 사랑과 자유와 지성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말일까...?
글쎄요... 이제 와서 갑자기 흔들리는 이유는 왜일까요... 많이 답답합니다...
앞으로 자꾸자꾸 흔들리겠지. 그게 안 흔들리면 그 자체로 이미 지성에 다가 간 것일 테니까.. 엄청난 끈기가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는 척만 하다가 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