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조적 편: 제2회 북벌을 준비하다
제2회 북벌을 준비하다
건흥 원년(建興元年, 313년), 진민제(晉愍帝)가 즉위했다. 이 때 진 나라는 서산에 지는 해와 같은 신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진민제는 사마예를 좌승상(左丞相)으로 임명하고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낙양을 공격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사마예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북벌은 근본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데 왜 황실을 위해 나를 바쳐야 하겠느냐? 하물며 낙양을 점령한다 쳐도 나에게 무슨 이익이 돌아오겠는가? 제일 강한 나의 실력은 모두 강남에 있어서 이 곳에 나의 왕조를 세울 수 있다. 절반 강산도 강산이다. 천하를 지배하는 것과 좌승상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쪽으로 이주한 명문가들은 모두 나를 지지하고 그들은 모두 강남에서 잘 살며 북방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러니 이 일은 그냥 뒤로 미루자. 그런다 한들 저 꼬마 황제가 나를 어쩔 건데. 내 주먹이 이렇게 큰데.”
사마예는 자신의 강남 지배권에만 신경을 썼고 왕도(王導)를 중심으로 하는 명문가들도 사마예의 남방정권을 극력 지지했다. 하지만 북방의 백성들은 여전히 오랑캐의 말발굽 아래 도탄 속에서 허덕이며 진 나라 군대가 다시 중원으로 쳐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때 조적이 선뜻 나서서 사마예에게 간언했다.
“사직이 무너지고 진 나라 황실에 내분이 일어난 것은 폐하께서 덕이 없으시고 신하들이 난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왕들이 황권을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틈에 오랑캐가 쳐들어와 중원을 어지럽혀 북방의 유민(遺民)들은 억압 속에 살고 사람들은 모두 분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 대왕께서 명령을 내리시어 저와 같은 사람을 북벌에 파견하신다면 각 지의 영웅들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국치를 씻고 진 왕실도 회복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민의를 저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조적은 현 상황에 만족하고 방어만 하는 다른 명문가의 자제나 강남의 관리와 달리 북상해 오랑캐를 쫓아내고 진 왕실을 회복할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다. 사마예는 큰 포부를 가진 이 멋진 하북의 의사(義士)를 보며 이런 생각에 빠졌다.
“민의를 거스르면 안 된다. 그러면 민심을 잃게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조적의 요구를 받아 들이면 또 나의 병력과 재력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모르는 이 자를 위해 빈 말이라도 해야 되겠다. 그의 북벌을 허락은 하지만 군량은 스스로 조달하게 하면 내가 잃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자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도 보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한 사마예가 입을 열었다.
“그대를 분위장군(奮威將軍)과 예주자사(豫州刺使)로 임명하니 군대를 거느리고 북벌을 떠나시오. 어떻소?”
조적이 기뻐하며 물었다.
“대왕께서는 과연 지혜로우십니다. 대왕께서는 저에게 얼마의 군사를 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대는 큰 포부와 엄청난 용기를 가졌소!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많은 물자는 주지 못하겠소. 그대에게 군사 천 명과 1개월치 군량을 주고 거기에 군복을 지을 3천필의 천을 주겠소. 병력과 무기는 그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오.”
사마예의 말에 깜짝 놀란 조적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사마예의 속마음을 모를까? 하지만 그가 나의 북벌을 동의한 것만 해도 일단은 성공이다. 어찌 그가 나에게 물자와 군사를 줄 것까지 바라겠는가?”
사마예는 조적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북벌을 후회하는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
“많이 어렵지요? 나도 북벌의 밑천이 없어서 지금까지 출병하지 못하고 있소. 그대도 스스로 병력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만 두시오. 몇 년이 지나 다시 봅시다.”
“대왕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북벌 군대를 모을 것입니다! 대왕의 지지에 사의를 표합니다. 대왕께서는 저의 낭보를 기다리십시오!”
조적의 말에 사마예는 깜짝 놀라 혼자 생각했다.
“이 하북의 지사가 무슨 각오를 한 거지? 빈 손으로 어떻게 북벌하겠다고? 좋아. 그럼 이 젊은이가 적수공권으로 어떻게 오랑캐들과 맞서는지 보기나 하자.”
사마예의 임명을 받은 조적이 분위장군의 군기를 만들어 걸자 제일 먼저 그를 지지한 한 갈래 군대는 바로 그를 따라 남쪽으로 온, 백여 가구의 친척들로 된 군대였다. 그들은 문명으로 야만을 전승하고 잃은 땅을 되찾기 위해 결연히 경구(京口)에서 강을 건너 북상했다.
배가 장강(長江)의 중류에 이르러 동쪽으로 흘러만 가는 넓은 강물을 바라보며 조적은 강북의 넓은 땅이 오랑캐의 손에 들어가 산천이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도탄 속에 빠진 것을 생각했고 그러니 가슴에 슬픔이 벅차 올랐다. 또 진 나라 왕실이 북쪽에 두고 온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고 북벌은 고사하고 한 귀퉁이에서의 안녕에만 빠져 있고 개인의 힘으로 동분서주하며 군사를 모아 북벌을 시작한 자신을 떠올리니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비오 듯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 북벌의 중요한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어깨에 걸린 중임을 상기하자 조적은 호방한 감정이 북받치고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조적은 검을 뽑아 들고 호기로운 선서를 했다.
“내가 만약 중원을 평정하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조적의 부하들은 눈물을 머금고 비장한 각오를 하는 조적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회음(淮陰)에 이른 조적은 군사를 모으는 동시에 무기를 장만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아주 많아서 조적이 가산을 털어 개인의 힘으로 북벌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감동되어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군인이 되겠다고 너도나도 조적을 찾아왔다.
조적은 곧 2천명이 넘는 군사를 모아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이 때 놀라운 소식이 북방에서 전해졌다. 진민제가 평양(平陽)에서 흉노의 정권인 한조(漢趙) 황제 유총(劉聰)에 의해 살해되어 서진(西晉)이 멸망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예가 건업에서 황제로 즉위했다는 또 다른 소식이 강남에서 전해졌다. 역사에서 진원제(晉元帝)라 불리는 사마예가 서진의 뒤를 이어 세워진 동진(東晉)의 개국황제가 된 것이다.
한 부하가 조적에게 물었다.
“우리 계속 북벌해야 할까요?”
조적이 대로했다.
“북쪽에 황제가 없어서 북방의 백성들은 오랑캐로 전락되어 망국노가 되었다. 우리가 가서 잃어 버린 땅을 되찾고 그들을 구해야지 않겠느냐? 하물며 랑야왕이 현재 황제가 되었으니 우리의 북벌을 더욱 지지할 것이다. 그가 북벌을 지지하지 않고 설마 영원히 절반 강산의 황제가 될 생각이겠느냐?”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