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에 오는 봄
입춘 절기 설 전 고3은 졸업식을 마쳤다. 그 무렵 공립학교 교사들은 신학기를 앞둔 정기 인사 발표가 있었다. 중등은 한 학교 5년이 만기이고, 시내에서는 8년간만 근무할 수 있다. 그간 김해에서 창원으로 전입해 와 5년째 근무하고 있어 학교 만기를 채웠다. 올봄 옮겨 가는 학교에서 3년을 채우면 훗날은 어떻게 될 지 …. 설을 쇠고 이틀 더 근무하니 재학생들은 봄방학에 들었다.
학교에서 학년도 마무리는 2월의 종업식이다. 아침나절로 끝나는 일과였다. 1·2교시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청소 후 강당에 모여 종업식을 가졌다. 종업식 앞부분 십여 명 전출 교사들은 연단 위로 올라 이임 인사를 나누었다. 이후 학생들은 짧은 봄방학에 들어 삼월이면 한 학년씩 오를 테다. 나는 근무지를 옮겨 다른 학교에 가 있을 몸이다. 교직원들은 친목회 주관 송별연 자리로 갔다.
친목회에서 전 교직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횟집을 물색 예약해 놓았다. 일식집에 못하지 않은 풍성한 해산물이 나왔다. 점심 자리지만 좋은 안주로 맑은 술을 느긋하게 비울 수 있는 기회였으나 나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올봄 옮겨가는 학교로부터 전입교사 간담회라는 제목으로 하필 오후 2시 소집을 통보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잔을 마다 않고 연거푸 비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송별연을 마치고 자리서 일어났다. 마침 옮겨가는 학교로 현 근무지 동료가 두 명 더 있어 우중에 편히 갔다. 일전 옮겨가는 학교에서 온 공문에 따르면 모두 열 한 명이 전입해 가는데 남교사는 나 혼자였다. 교단 여성화가 뚜렷해짐을 느끼는 단면이었다. 창원 시내 공립 고등학교가 열 네 곳이다. 수능 감독이나 이런저런 기회 거의 다 들려보았다만 내가 옮겨가는 학교는 처음이었다.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는 봄이 오는 길목 오후였다. 우산을 받쳐 쓰고 낯선 학교 교정으로 들었다. 옮겨가는 학교는 설 전 봄방학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간담회 장소를 1층 교장실로 통보 받았으나 2층 교무실에 먼저 들렸다. 따뜻한 녹차를 대접받지만 마음은 오그라들었다. 함께 전입한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지 싶었다. 잠시 후 전입교사들은 1층 교장실로 옮겨가 부임 인사를 나누었다.
교감으로부터 학교 현황을 소개 받고 신학년도 업무 설계를 경청했다. 담임과 업무 분장 희망은 이미 오고갔더랬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겠지만 의례적 절차였다. 내 나이가 부장 보직이나 담임 경계선에 있는 어중간한 처지다. 나는 부장이나 담임을 원하지 않고 업무만 교지와 안전과 환경 순으로 희망했다. 그 결과가 어떠할 지는 2월 말 한 차례 전교사들이 출근하는 날에 공표된다.
무슨 수 있겠나. 맡기는 대로 따를 수밖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면담을 끝내고 현관을 나섰다. 묵음으로 해둔 휴대폰에는 바깥소식이 몇 건 있었다. 두어 시간 전 해거름에 접선이 가능하다는 친구는 그새 다른 일정이 생겼다는 회신이 왔다. 거제 갯가 교장으로 나간 대학 동기는 간밤 청어를 여러 마리 낚아 비늘을 다듬어 나한테 건네려고 했지만 내가 접수할 사정이 아니라고 했다.
올봄부터 새로이 근무할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출발선에 선 길이었다. 함께 왔던 현 근무지 동료가 귀로에 동승하길 청했지만 사양하고 혼자 교정을 빠져나왔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렸다. 나는 충혼탑 사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소 전광 표지판에는 우리 집 앞으로 가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정보가 떴다. 잠시 뒤 그 버스를 탔더니 반송시장을 지났다.
몇 시간 전 점심자리서 좋은 안주에 못다 비운 술잔이 아쉬웠다. 현 근무지 동료들도 다 떠나고 낯선 환경에 새로이 적응해야 할 처지였다. 나는 서글픈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반송시장 정류소에 내렸다. 시장골목 칼국수 가게를 지나다가 막걸리를 파느냐고 여쭈었더니 이웃한 밥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 밥집은 점심때가 지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계란말이로 느긋하게 곡차를 비웠다. 201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