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그린은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였다. 조금 냉정한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 훌륭한 저널리스트는 아니었던 듯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보도 기사에는 어딘지 저널리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적 태도와 주관적 판단이 (약간의 과장과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특종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생생한 이야기에 더 이끌렸다. 아이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독재자의 공포 정치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제삼자의 위치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코미디언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아이티 내부에 속한 자들로, 파파 독이 집권하기 전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절과 독재와 검열이 시작된 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시절 모두를 담담히 살아내고 있다. 생존은 치열하다. 사랑은 찌질하다. 죽음은 가소롭다. 여기에 제삼자는 없다. 1954년부터 10년간 아이티를 오가며 그곳의 급변하는 정치, 경제, 사회를 두 눈으로 목격한 내부자나 다름없던 그린은, 아이티의 민낯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써 저널리즘이 아닌 소설을 택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서구의 서슬 퍼런 알력 다툼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아이티에게 진정으로 독특한 얼굴을 만들어주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을 편집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차례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땐 브라운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웃었고, 두 번 읽었을 땐 존스의 차마 웃을 수 없는 코미디 연기가 서글퍼 마음이 아팠고, 세 번 읽었을 땐 마치 내가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뿌리를 잃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떠돌이가 된 것만 같아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코미디언스』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읽는 이로 하여금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의 정수.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우리는 형편없는 코미디언들입니다.
나쁜 인간이 아니라.”
영미문학의 거장 그레이엄 그린이
독재자의 나라, 아이티를 배경으로 그려낸 희비극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가 냉전으로 얼어붙은 시절의 아이티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아이티의 대통령은 프랑수아 뒤발리에(일명 ‘파파 독’)로,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인권 탄압으로 악명을 떨친 독재자였다. 오늘날 아이티를 최빈국으로 만든 원흉이라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독재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비밀경찰 조직 ‘통통 마쿠트’가 있다. 이들은 험상궂은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지프차를 몰고 다니며, 수시로 국민들을 수색 검문하는 폭력배들이다.
독재자의 치하 아래 반군이 들끓는다. 아이티는 점점 험악한 나라가 되어가고, 관람객은 발길을 끊었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아이티의 지식인들마저 아이티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황량해진 아이티에서 다 쓰러져가는 호텔을 운영하는 영국인, 브라운은 이곳에 남아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와 함께 메데이아호를 타고 온 이들─존스, 스미스 등─은 아이티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나를 위해 우연히 선택된, 무섭고 황폐한 이 땅에 더 큰 유대감이 느껴졌다.”_본문에서
주인공 브라운은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호텔 트리아농을 운영하고 있다. 파파 독의 독재가 시작되고부터 관광객이 줄어들자 브라운의 호텔 사업은 망조에 접어들었다. 브라운은 호텔을 팔기로 결심하고 호텔을 사줄 구매자를 찾으러 미국으로 떠났지만 허탕을 치고 다시 아이티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버지는 얼굴을 본 기억도 없고, 어머니는 살 길을 찾아 일찌감치 자신을 버리고 떠난 탓에 홀로 먹고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브라운은 매사에 냉소적이다. 그런 그의 눈에는 모든 이가 허영과 가식으로 둘러싸인 코미디언처럼 보인다. ‘모든 이’에는 브라운 자신도 포함된다. 메데이아호에 동승한 스미스 씨는 채식주의자 대표로 미국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정치인이며, 존스는 세계대전 때 일본군을 상대로 큰 전투를 벌여 전쟁 영웅이 된 소령이다. 이 셋은 기묘한 한 쌍을 이루며 아이티에 당도한다.
브라운은 한 달 만에 호텔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기는 건 성대한 저녁 식사도, 충실한 집사의 마중도, 정부情婦의 무조건적인 사랑도, 우글거리는 손님들도 아니다. 호텔 수영장 한 구석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체 한 구였다. 시체의 정체는 닥터 필리포, 아이티의 사회복지부 장관이었다. 사회복지부 장관은 독재자의 미움을 사 비밀경찰들에게 쫓기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때, 호텔 진입로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시신을 발견하고 당혹감에 휩싸인 브라운이 서둘러 호텔 입구로 가자, 스미스 부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메데이아호에서 만난 ‘친구’ 브라운의 호텔에 머물기 위해 친히 찾아온 것이었다. 브라운은 그들이 시신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시신을 언제까지고 수영장에 방치할 수는 없는 일. 대통령과 관련된 일에 휘말리면 누구든 안전할 수 없는 아이티에서 브라운은 어쩔 수 없이 갑작스런 죽음과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인생은 내가 각오하고 있던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었으며……
우리 모두 어느 권위 있는 짓궂은 익살꾼에게 놀아나
희극의 극단으로 내몰리는 느낌이었다.”
울고 웃는 인간들
그 이면에 숨은 진짜 민낯
그레이엄 그린은 1954년에 처음으로 아이티를 여행했다. 그리고 10여 년 후 『코미디언스』가 아이티의 대통령 ‘파파 독’의 분노를 사기 전까지 수없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린은 아이티에서 벌어지는 학대 행위를 개탄하면서, 아이티에 관한 글을 신문에 기고할 뿐만 아니라 보도문까지 발표했다. 분노한 파파 독은 그린을 비난하는 팸플릿 「그레이엄 그린: 드디어 가면이 벗겨지다」를 발행하기까지 한다.
찰리 채플린의 말마따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린은 자신이 익히 경험한 아이티의 비극을 저널리스트로서 충실히 보도했지만, 소설가로서는 그곳을 멀찍이 관조하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기이한 희극을 창조해 냈다. 텅 빈 호텔들, 과장된 소문들, 검문소를 지키는 폭력배들, 모든 게 실패하다 못해 반란마저 실패로 돌아간 상황, 병정놀이하듯 너무도 쉽게 죽고 죽이는 무의미한 싸움들…….
“우리는 비극이 아닌 희극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_본문에서
“『코미디언스』는 불안정의 소설이다. 아이티에도, 아이티인들에게도 희망은 없다. 먹을 것도 없다. 정부는 기생충처럼 국민을 괴롭힌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 흠, 섹스(그건 가능하다). 신앙(부두교는 나름의 흥취를 갖고 있으며, 가톨릭교의 하느님은 천국에서 구원을 약속한다). 사랑(이곳에 사랑은 별로 없다). 코미디(이건 꽤 많다. 사실, 꼭 필요하다). 비극은 희극에 꽤 가깝다고, 그린은 쓴 바 있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갈 때-이 소설에서도 다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웃음만은 항상 존재한다.”_해설에서
이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은 각자 위태롭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나서 눈물을 벅벅 닦고 바보같이 웃어보이는 광대처럼. 소설 속 사건들은 현실감이 떨어질지 몰라도, 섬뜩한 코미디가 펼쳐지는 그 장소에 대한 그린의 집착 어린 사랑은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린이 『코미디언스』를 집필함으로써 비로소 아이티는 소설을, 얼굴을 갖게 되었다.
비극을 견디기 위해 코미디언이 된 자들을 우리는 비웃을 수 있을까. 위기에 직면할 용기가 없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브라운, 존스, 스미스는 그 진부한 이름들만큼이나 시시한 인간일지 모르나, 그들이 소설 속에서 추구하는 이상과 삶의 태도는 결코 시시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한 챕터를 연기하고 있는 코미디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