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아 우플리스치케 고대 동굴도시
스탈린 고향인 고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대 동굴도시 우플리스치케Uplistsiche로 왔다. 우플리스치케는 기원전 6세기에 쿠라 강변에 동굴을 뚫고 도시를 세워 외침에 저항하던 거대한 암벽도시다. 사암지대로 동굴 파기가 수월했던 지역이다. 입구에는 안내판도 있다. 바위에 설치한 긴 계단을 걸어서 동굴도시에 올랐다. 바람이 온몸을 흔든다. 온통 바위로 뒤덮힌 고대 동굴도시 마을이 전개된다. 동굴도시 앞에는 무트크바라Mtkvari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다. 므트크바리 강은 터키에서 발원하는 1364㎞의 장대한 강이다. 강이다. 조지아 트빌리시를 통과하고, 므츠헤타에서 코카서스 산맥의 아그라비 강과 합류하여,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카스피해로 흘러간다. 조지아어로는 므트크바리 강, 터키어로는 쿠라 강이다. 일반적인 명칭은 쿠라 강이다. 산과 강이 적들의 공격을 막아준다. 맨 먼저 본 곳은 극장터다. 후일엔 거주지로 사용 되었다. 모두 바위 동굴을 뚫어서 만든 생활터전으로 5천 명 정도 거주했다. 어떻게 바위를 저토록 깊이 팠을까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바위 절벽 아래로는 므트크바리 강이 흐르고, 강 건너의 고리 시가지와 코카서스 산맥이 비경이다. 강변에는 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다음으로 간 곳은 조지아 여왕 타마르 대제의 홀이다. 이동할 때마다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르는 길이 아찔하다. 바위를 깎아서 만든 돌문을 지나 타마라 여왕의 홀로 들어가니 바위 기둥들이 우람하고 넓다. 벽면에는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다. 홀을 지나 약국으로 갔다. 큰 규모의 약 저장고로 구멍을 내어놓은 공간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포도주를 만들어 저장하는 장소도 있다. 조지아는 그 옛날부터 최초의 와인 생산지라는 것을 알게하는 대목이다. 죄수를 처형하던 장소로 철창의 둥근 구멍이 소슬하게 남아있다. 엎드리게 하고는 목을 베어 땅속으로 떨어뜨려 죽였다. 감옥도 있다. 소 잡는 곳도 있다. 소를 잡아 죄인들에게 속죄의 피를 묻혀 주었다. 고대 동굴도시의 여러가지 시설을 보며 소름이 돋기도 하고, 철저한 질서가 보이기도 했다. 바위 길 건너 높은 곳에 성 조지 성당이 오롯하다. 10세기에 세워진 성당이다. 동굴도시의 암벽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성당 건물이 현대풍으로 복원한 흔적이 드러나지만 아직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기독교인들의 항쟁지이기도 했다. 이곳 동굴도시가 처음에는 태양신을 모시는 종교도시였다. 코카서스 지역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는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였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태양신 종교 흔적은 서서히 사라졌다. 이곳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살았지만 동굴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4세기경 조지아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곳 교인들은 트빌리시 근처 도시 므츠헤타로 많이 이동했다. 바위로 물 탱크를 만들어 놓고 빗물을 저장하여서 썼던 흔적도 있다. 견고하고 완벽한 동굴도시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약 1천년 동안 번창하던 요새 같은 곳을 3세기에 몽고 징기스칸에 의해서 첫 침략을 받았다. 13세기 파괴 되기 전까지는 몽골로 가는 실크로드이기도 하다. 실크로드의 교역로였던 시기에는 2만명이 거주하기도 했으나 아랍과 몽골의 잦은 침략으로, 지진으로 쇠퇴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지 목록에 올랐다. 내려올 때는 가파른 인공터널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동굴도시의 사람들이 드나들던 쿠라 강쪽 비밀 통로를 복원한 것이다. 적군이 침입할 때는 비상 탈출구로, 강물을 퍼 나르던 통로로 사용하던 동굴터널이다. 두려운 걸음으로 아득한 터널을 내려오니 눈앞에는 쿠라 강이 반갑게 맞이하고 강변에는 푸른 나무와 야생화가 평화를 선사한다. 거센 바람과 함께 가파른 바위 길을 오르내리며 우플리스치케 고대 동굴도시를 체험한 오늘의 여정은 조지아의 역사 한 단면을 오래도록 각인시키는 소중한 현장으로 오래도록 남아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