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마태복음 4:1~4
찬송가 552장(아침 해가 돋을 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 성령이 임하셨는데, 성령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시려고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처럼 인류의 대표로서 오신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도 시험의 과정을 겪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서 결국 그에게 주어진 축복과 은혜와 생명을 잃게 되고 저주와 슬픔과 사망과 죄의 지배 아래 떨어지고 그와 그의 후손들은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작정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이러한 깊은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셨으니, 그 과정 중에 마귀의 시험 과정이 필수적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심으로써 마귀의 영적 시험을 이기시려고 준비하셨는데, 마침내 마귀가 와서 그를 시험하였을 때에 세 번에 걸쳐 시험하였고 그 세 번의 시험을 다 물리치셨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시험에 대하여 오늘 아침 잠시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사탄의 첫 번째 시험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시험입니다. 광야에서 오랫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은 굶주리셨습니다. 그렇게 굶주리신 예수님을 향하여 마귀가 시험합니다. 광야에 흩어져 있는 그 돌들을 가지고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주리신 예수님을 향하여 금방 쪄낸 맛있는 빵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의 능력을 발휘하라는 마귀의 시험은 너무나도 강력한 도전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육신적 필요에 대하여 우선적인 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라 사십 일 가까이 주린 몸 상태에 있는 예수님께 이 시험은 극히 강력한 유혹이 되었을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그 당시 모든 것이 풍부하고 과일들도 지천인 에덴 동산에 살고 있었는데도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굳이 따먹고 말았으니, 이에 비하면 예수님은 극렬한 육신적 갈망을 이기고 돌을 변하여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따끈한 빵을 만드는 것은 너무 강렬하여 넘어갈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님은 딱 잘라 거절하시면서 대답하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고 하는 신명기 8장 3절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여기서 마귀가 본질적으로 시험한 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마귀는 사람은 육체와 정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것이요 예수님은 인간이 살아가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진리를 먹고 마심으로 살아갈 진정한 힘을 얻는다고 마귀에게 당당하게 선포한 것이요 마귀는 우선 목구멍이 포도청이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도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타락한 후에 이처럼 다 먹고 마시는 것에 인생을 더 투자합니다. 의식주, 정신적인 필요를 채우고 정서적 감수성을 만족하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에게 살아갈 힘이 되고 세상을 이길 힘이 되는 생명의 양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광야로 이끌어서 40년간을 떠돌게 하셨습니다. 광야는 누구도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창고도 짓지 않고 집도 지을 수 없고 내일의 양식을 위하여 저축할 수 없는 불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로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40년 동안 아침 새벽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거두게 하시고, 그 만나를 하루치만 거두고 그 이상 많이 거두면 썩어 벌레가 나게 하시고, 안식일 전날에는 두 배로 거둬 보관하여 안식일에는 거두러 나갈 필요가 없게 하셨습니다. 물은 반석에서 내어 실컷 마시게 하시고 고기도 메추라기를 저녁에 보내어 거두어 먹게 하시고 또 옷이나 신발이 사십년 동안 닳아 없어지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 가운데 임재하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말씀해주며 모세를 통하여 가르침과 교훈의 말씀을 계속 해주셨습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도저히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자는 것,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 필요한 것들 곧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자는 것까지도 다 챙겨주심을 알게 하시어, 그들로 사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시고 공급해주시므로,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고 내일 일도 걱정하지 말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시고자 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다스림이 늘 그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친히 공급해주시어 부족함이 없음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배우고 그분의 율례와 법도를 배워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이라는 것을 배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려다가 잃어버린 더 소중한 영혼과 참된 축복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만나가 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한복음 6:27상)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내린 만나는 진정 사람을 살게 하는 참 양식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영생을 주는 생명의 참 양식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 곧 그리스도 예수를 날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며 먹고 마시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영원히 살리고 이 땅에서 진정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오늘도 마귀는 사람들에게 다가와 강력하게 도전합니다. 배를 먼저 배불리 채우라. 멋진 옷을 차려 입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육신의 즐거움과 성공의 화려함의 욕망을 충족시키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진정으로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한 삶은 결국 허무함 속에서 끝나는 삶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다 풍성히 소유하고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일러 주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며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한복음 6:56~58)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은 바로 진리의 말씀이요 영생의 주인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요 그가 말씀해오신 가르침들입니다. 영원 전부터 말씀해오신 하나님의 말씀,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사람은 비로소 살아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을 잊지 말고 날마다 세상에 범람하는 마귀의 달콤한 가르침, 곧 사람은 떡으로만 산다는 가르침에 넘어가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만나를 받아 먹고 영혼이 새 힘을 얻기 바랍니다. 생명의 참 떡으로 오신 주님을 날마다 믿음으로 먹고 마시며 성경을 통하여 베푸신 생명의 진리 말씀들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써 참 생명이 날마다 충만하여서 이 세상과 다가오는 영원한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