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보다 귀중한 야베스
역대상 3 : 9 – 10
‘역대기’는 ‘역사의 연대기’라는 뜻으로 당시 율법학자요 제사장이며 서기관이었던 에스라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서 제사장적인 관점에서 빠진 말씀을 보충하고 기록한 책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조상들을 징계하셨으나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결코 버리지 않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으므로 위대한 선민으로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교훈으로 역대기서를 기록했습니다.
역대기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우리에게도 끝끝내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셔서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강한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바벨론과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고 초토화가 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불탄 재가 되었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잡혀갔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어주신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의 역사는 끊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포로에서 귀환시켜 주시고 다시 예루살렘 성을 쌓고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에스라는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역사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다윗 왕조가 다스리던 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아담에서 포로 귀환한 세대까지 연결된 선민의 12지파별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의 시조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계보(1:1-27)와 아브라함에서 야곱까지의 계보(1:28-54), 야곱에서 다윗에 이르는 계보(2:1-55), 그리고 다윗에서 포로기에 이르는 계보(3:1-24)와 이스라엘 12지파 계보(4:1-8:40)입니다.
에스라가 이렇게 다윗 왕조의 족보를 기록해서 알려준 것은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서 나라와 민족도 없는 디아스포라(흩어진 자)가 되었던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다시 다윗 왕국을 세운 그들에게 계보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조상들의 범죄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흩어졌지만, 다시 돌아온 그들에게 족보는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족보는 다윗 왕국과 백성이 어떤 존재인가를 가르쳐 주는 매우 귀중한 역사적인 자료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사무엘서나 열왕기서에 없는 족보를 역대기상을 시작하면서 아담에서부터 다윗까지의 계보를 세밀하게 1:1-9:44절까지 기록했습니다.
족보란 누가 누구를 낳고 죽었다는 이야기로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대기서를 읽기 시작하면 족보 이야기가 지겹게 느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1-3장까지 포로기까지 이어진 다윗 가문을 중심한 선민의 계보와 12지파별 족보를 이어 유다 자손들의 이름을 소개하다가 갑자기 야베스에 관한 이야기를 삽입하였습니다.(9,10)
에스라가 이렇게 갑자기 야베스를 말씀한 것은 당시 포로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뿐 아니라 오늘에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됩니다.
에스라는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이 낳았다 함이었더라”.(9)고 야베스가 어떤 사람인가를 짧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아버지에 대한 말씀은 없고 그의 어머니가 수고로이 낳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도 아버지가 낳은 아들을 기록하다가 보아스는 그의 어머니 라합에게서 낳고,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낳고, 예수는 마리아에게서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5, 6, 16)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고 하지 않고 마리아가 낳았다고 한 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아버지를 족보에 말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아버지가 족보에 기록할 만한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베스가 유다의 자손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당시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던 때였고 첩도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어머니가 첩에게서 낳았든지, 아니면 족보에 이름을 올릴 만한 자격도 없는 여러 아내 중에 막내로 낳은 아들이 아닌가 하는 추정입니다.
아무튼 야베스는 그의 어머니가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고 말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심리적,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로이 낳은 야베스가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9) ‘귀중한 자’란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귀한 자를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그의 삶이 바로 존귀하신 하나님께로 인도되고 주님을 증거하는 자의 삶이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존귀한 자)’라고 한 것은 그의 형제는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께 간절한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만, 야베스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여 도움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수고로이 낳지 않은 형제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어떤 노력이나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았지만, 고통스럽게 낳은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형제간에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 있는 형제와 믿음 없는 형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복을 받게 하는 자를 ‘귀중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귀중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분으로 믿는 자를 ‘귀중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상이나 신들이 복을 주는 줄로 알기 때문에 우상과 온갖 잡신들에게 복 달라고 빌고 구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라는 말씀에 ‘아뢰어’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간청하였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으로 아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빌지 않고 떠오르는 해나 달을 보고 절하고 소원을 빕니다. 복을 줄 수 없는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는 자는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야베스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구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고 했습니다. 야베스는 지금까지 받은 복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감사해서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역을 넓혀 달라’고 한 것을 보면 땅 한 평도 없는 매우 가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농경시대는 땅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어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곡식을 심어 농사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 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지역을 넓히시고’란 일할 수 있는 직장이나 사업 확장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는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거주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1-7)
다음으로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10) 자신을 헤치려고 하는 악한 자로부터 하나님께서 지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도 위험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내 자신도 위험한 일들을 당할 수 있지만 어린 자녀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위험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주의 손으로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라가 성전을 건축할 많은 예물을 가지고 백성들이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대적들이 길에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구했으며, 하나님께서 손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아하와 강을 떠나 갈 때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고 말했습니다.(스8:31)
야베스를 도와준 하나님의 손과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야베스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신을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자신이 당하는 환난으로 근심하게 된 것은 심적, 육적 고통이 매우 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통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많은 환난을 당하고 근심하며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던가를 짐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청하며 기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만이 자신을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근심이 없도록 해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을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기도하는 자가 귀중한 자입니다.
야베스는 유다의 자손 가운데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잘 섬긴 귀중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본 에스라가 족보 이야기를 하다가 귀중한 자 야베스의 믿음을 소개한 것입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 구한 것을 허락하셨다고 결론적으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한 것을 허락하셨더라”(10)는 말씀은 오늘 우리가 야베스처럼 간절하게 아뢰고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대속물로 내어주셔서 구원하시고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난하고 환난과 근심으로 괴롭게 사는 것도 구하면 주의 손으로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야베스와 같은 귀중한 자가 됩시다. 그래서 어려운 일들을 간절하게 아뢰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주시는 복을 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