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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진안고원길 9구간(운일암반일암 숲길)
여행일 : ‘24. 5. 4(토)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주천면 일원
여행코스 : 운일암반일암 주차장→구름다리→국민여가캠핑장→닭밭골 산림욕장→와룡암→주천면사무소(거리/시간 : 9.0km, 실제는 알바 포함 12.66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무진장(茂鎭長)’은 무주·진안·장수를 일컫는 말로 수려한 경관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중 진안은 ‘북한에는 개마고원, 남한에는 진안고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산과 고갯마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길도 마음껏 굽이진다. 그런 진안에 일상에서 찌든 근심을 훌훌 털고 자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을 내었으니 이게 ‘진안고원 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놀며 쉬며 걷는 재미있는 느린 여행길로 ‘미슐랭가이드지’로부터 별3개 만점을 받은 세계적인 둘레길이기도 하다.
▼ 운일암반일암 주차장(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통영-대전고속도로 금산 IC에서 내려와 13번 국도를 타고 용담호 방면으로 내려오다 ‘용수목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5번 지방도. ‘주천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삼거마을’에 있는 운일암반일암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 주천면 삼거에서 출발 주천면사무소에 이르는 코스로, 운일암반일암의 계곡을 따라 조성해놓은 8.8km의 숲길을 따라 걷는다. 명덕봉과 명도봉을 잇는 구름다리와 무지개다리에서 운일암반일암의 빼어난 자태를 바라보고, 천변을 따라 조성한 산책로에서는 숲속의 속삭임을 듣는다. 진안고원길 13구간 중 가장 짧으나 난이도는 ‘중’. 구름다리까지 올라가려면 땀깨나 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11 : 03. 주차장 앞. 주자천에 걸쳐놓은 ‘노적교’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정면에 보이는 산은 ‘노적봉’으로 운일암반일암 28경 중 26경이라고 한다.
▼ 국내 유일의 ‘홍삼특구’답게 다리의 조형물까지도 ‘인삼’을 내걸었다. 평균 해발 400m의 남한 유일 고원지대에서 재배되는 진안인삼은 사포닌과 진세노사이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단다. 그 지리적 특성으로 2005년 홍삼한방특구로 지정된 바 있다.
▼ 다리 아래로는 주자천이 흐른다. 천길단애와 쪽두리·천렵·대불바위 등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계곡을 따라 5km 거리의 와룡암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을 따로 ‘운일암반일암계곡’이라 부른다. 골이 워낙 깊어 오가는 것은 구름밖에 없는 데다 햇빛은 반나절밖에 들지 않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 9구간(운일암반일암 숲길)의 출발지임을 알리는 조형물은 다리 건너에 세워져 있다. 마침 코스 지도까지 그려져 있으니 머릿속에 기억해 둔 다음 출발하도록 하자. 하긴 나는 GPX트랙까지 깔아놓고도 종점을 놓치고 한참이나 더 걸었지만...
▼ 탐방로는 주자천을 따라 내려간다. 산자락에 들어앉은 ‘노적봉 쉼터’의 울타리와 냇가 사이로 길이 나있다. 쉼터에는 농구·족구 코트와 오토·글램핑(Glamping) 캠핑장이 들어서 있었다.
▼ 쉼터를 지나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연록’. 그 속으로 길이 나있다. 길가에 늘어선 돌탑들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 수백 기가 늘어섰는데, 개중에는 아크로바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슬아슬함을 보이기도 한다.
▼ 11 19. ‘칠은교’에 이른다. 이름처럼 7명의 도인이 은둔하여 살면서 인삼씨를 심고 가꾸었다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물놀이 장소로 더 유명하다. 지자체에서 수인성 전염병 예방을 위한 수질검사를 수시로 해오고 있을 정도로...
▼ 탐방로는 칠은교에서 오른쪽 명도봉 방향 산길을 올라간다. 대불바위 주변 바위벼랑에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운일암반일암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한 ‘구름다리’로 인도하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하겠다.
▼ 안내판은 이곳이 구름다리로 올라가는 길임을 알려준다. 구름다리를 건넌 탐방객들이 내려올 수는 없다는 얘기다. 구름다리가 일방통행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도중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명도봉’을 다녀오는 등산객들로 보면 된다.
▼ 탐방로 입구는 지자체에서 나온 관리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기상악화(강우·강설·강풍·결빙) 때나 탐방 허용시간(하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을 못 맞춘 탐방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 구름다리로 오르는 길은 꽤 가팔랐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40층(90m 높이) 아파트를 걸어 올라간다고 여기면 되겠다. 그 거리가 400m밖에 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11 : 32.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에야 ‘운일정(雲日亭)에 올라설 수 있었다. 시야가 툭 트이는 바위벼랑 위에 팔각의 정자를 지어놓았다. 협곡에서 부는 바람하며, 바라보이는 뷰가 장난이 아닌 곳이니 정자에 꼭 올라보도록 하자.
▼ 정자는 조망의 명소다. 구름다리를 놓으면서 함께 세운 듯, 난간에 서자 구름다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운일정에서 구름다리까지는 300m. 걷기 딱 좋은 내리막길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 11 : 39. 잠시 후 도착한 ‘구름다리’는 운일암반일암의 새로운 명소로 이미 자리매김 됐다. 명도봉과 명덕봉을 잇는 길이 220m, 폭 1.5m의 다리가 높이 80m의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 구름다리는 교량기술의 결정체라고 했다. 우선 바위를 철근콘크리트(앵커리지)로 단단히 보강한 다음 양쪽 앵커리지 위에 2개의 기둥(주탑)을 세우고 케이블 두 가닥을 빨랫줄처럼 길게 늘어뜨린다. 이어서 앵커리지 뒤쪽을 단단히 잡아당겨 고정시킨 케이블 사이사이에 세로로 뻗은 강철선(행어케이블)을 내린 다음 상판을 연결해서 고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높이와 길이는 물론이고, 풍력·장력·하중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계산한단다.
▼ 다리를 걷는다. 마치 허공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거기다 상판 바닥이 송송 구멍 뚫려 있어서 까마득히 지상이 내려다보이니 소름끼치는 스릴감까지 만끽할 수 있다. 하나 더. 구름다리는 ‘일방통행’이라서 명도봉쪽에서 명덕봉쪽으로 건너는 것만 허용된단다. 그래선지 오고가는 사람들로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는 여느 출렁다리들과는 달리 다리가 뻥 뚫렸다. 전환의 발상이 만들어낸 비현실적 풍경이 아닐까 싶다.
▼ 발아래로 ‘운일암반일암’의 비경이 펼쳐진다. 70여 년 전만 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어서 ‘운일암(雲日岩)’이라 했고, 또한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半日岩)’이라 불렸다고 한다.
▼ 반대 방향으로는 ‘무지개다리’가 내려다보인다. 또 다른 ‘출렁다리’이다.
▼ 11 : 43. 하산을 시작한다. 길은 산비탈을 옆으로 째며 이어진다. 까마득한 바위절벽이라서 내려가는 길을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 진안의 ‘랜드 마크’로까지 대접받는다는 ‘구름다리’. 그런 명소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던지 산비탈에 멋진 전망대 하나를 만들어놓았다.
▼ 난간에 서자 조금 전 건너왔던 ‘구름다리’가 그 전모를 드러낸다. 그런데 화려한 붉은색 위주인 여느 구름다리들과는 달리, 이곳은 온통 은빛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저 모습을 보고 은빛갈치가 우아한 비늘을 움직이며 하늘을 나는 형상이라고 했다.
▼ 내려가는 길은 계단의 연속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나무계단이 ‘갈 지(之)’자를 써가며 아래로 향한다.
▼ 11 : 52. 길고 긴 계단의 끝나고 55번 지방도(동상주천로)로 내려선다. 이곳도 역시 지자체에서 나온 관리원이 지키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이니 진입을 금지한다는 팻말도 눈에 띈다.
▼ 공중화장실과 식수대 등의 편의시설도 만들어져 있었다. 구름다리를 다녀오느라 참았던 인간 본능을 해결하라는 모양이다.
▼ 고원길은 도로를 횡단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하지만 우리부부는 ‘주자천’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운일암반일암이 자랑하는 비경이 저 위에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진안고원길은 그 비경을 살짝 비켜 지나간다).
▼ 도로의 왼쪽 가장자리, 그러니까 주자천의 천변을 따라 나무 덱 길을 따로 내놓았다. 운일암반일암의 은밀한 속살을 눈에 담으며 걷는 기분 좋은 구간이다. 아니 ‘국가지질공원’으로까지 지정되어 있다니 꼼꼼히 살펴보며 걷도록 하자.
▼ 운일암반일암은 ‘진안·무주 국가지질공원’ 영역 안의 지질명소다. 중생대(中生代)의 마지막 지질시대인 백악기(白堊紀), 8,000만 년 전의 흔적으로 화산폭발로 용암이 여러 차례 분출하고 쌓이기를 반복하며 만들어졌다. 그게 또 침식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처럼 변했다.
▼ 크고 작은 기암과 절벽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자랑하고, 계류를 딛고 일어선 절벽에서는 풍상을 이긴 소나무들이 절벽과 어우러지며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낸다.
▼ 깎아지른 기암절벽 아래를 옥수가 휘감아 돌면서 곳곳에 작은 폭포와 소(沼)를 연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대자연이 만들어 낸 절경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 운일암반일암의 얼굴마담격인 ‘대불바위’는 높이가 40m인데 말뚝바위에다 공깃돌을 올린 모습이 부처님을 닮았다. 바위에 새겨진 ‘쌍고도덕 대명일월(雙高道德 大明日月)’이란 글씨는 조선 후기의 학자 김중정(1602~1700년)이 썼다고 전해진다. 주천 산간오지에서 안빈낙도하며 낙향의 한을 시와 거문고를 통해 달랬고 후학들에게 충효와 근검정신을 일깨운 인물이다.
▼ ‘운일암반일암 28경’ 중 하나이기도 한 ‘대불바위’는 2019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생태·경관·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유·무형의 자산으로 꼽혔다는 얘기일 것이다. 백제가 망할 때 열두 장군이 은거하며 충절과 패기로 신라의 침공을 막으려 했다는 ‘열두 굴’도 함께 지정되었다는데, 어디를 얘기하지는 알 수 없었다.
▼ 계곡은 감입곡류의 하천이 펼쳐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계곡 안에 줄지어 들어앉아 있기도 하고, 기괴한 형상의 바위가 뜬금없이 솟구쳐 하천 자락을 붙들고 서 있기도 한다.
▼ 숫제 야외에 만들어놓은 수석(壽石)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각양각색의 기암괴석들이 곳곳에 흩어져 각자의 빼어난 몸매를 자랑한다. 족두리바위, 천렵바위 등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데 일일이 구분해 낼 수는 없었다.
▼ 산자락에서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이 크고 작은 폭포와 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물이 깊지 않아 계곡 전체가 물놀이에 적당한 조건을 갖췄다.
▼ 12 : 03 – 12 : 09. 400m쯤 거슬러 올라갔을까 자그만 바위봉우리에 ‘도덕정(道德亭)’이란 정자가 걸터앉았다. 운일암반일암의 백미로 꼽히는 명소인데, ‘도덕’이란 이름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명덕봉(明德峰, 846m)과 명도봉(明道峰, 863m)에서 한 글자씩 따왔지 않나 싶다.
▼ 정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풍광을 빚어내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은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정자에 앉아 산수를 굽어본다. 크고 작은 기암과 절벽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자랑한다.
▼ 주자천 상류. 55번 지방도가 산골짜기를 파고든다. 저 골짜기는 옛날 용담현에서 전주(전라도 감영)로 가던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하지만 길이 너무 험해서 공물을 지고 가다 보면 얼마가지 못하고 해가 떨어진다 해서 떨어질 운(隕)자를 써서 ‘운일암(隕日岩)’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시집가는 새색시가 새파란 물이 흐르는 깎아지른 절벽 위를 가자니 너무 겁이나 울면서 기어갔다 하여 ‘운일암’이라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런 지명들은 해동지도와 지방지도, 호남지도 등에 표기되어 있다.
▼ ‘고원길’로 되돌아가는데 한 무리의 라이더들이 지나간다. 운장산의 고갯마루를 넘어오느라 지쳤을 텐데도, 젊음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다.
▼ 이때도 ‘구름다리’를 만날 수 있었다. 명덕봉과 명도봉의 사이를 지나는 좁고 긴 협곡, 이 골짜기를 흐르는 물길(주자천) 위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다리가 걸려있다.
▼ 12 : 16. ‘고원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무지개다리란 ‘양쪽 끝은 처지고 가운데가 무지개처럼 휘어져 높이 솟게 만든 다리’를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다리 어디서도 그런 모양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다리의 난간을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로 칠했을 따름이다.
▼ 무지개다리도 역시 현수교이다. 양쪽에 주탑을 세우고 케이블로 연결한 다음, 상판을 매달았다. 아까 건넜던 ‘구름다리’와 같은 형식이다. 하지만 까마득히 높은 위치가 아니니 ‘구름다리’라는 이름은 어불성설. 그렇다고 그 흔한 ‘출렁다리’로 놓아둘 수는 없었던지 일곱 색깔 페인팅의 수고로움을 더해 ‘무지개’라는 예쁜 이름을 만들어냈다.
▼ 무지개다리를 건너면서 위를 쳐다보면 방금 전에 건너온 구름다리가 보인다. 두 다리를 오버랩 시켜봤다. 그러자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 다리 아래 ‘주자천’은 고려 때 송나라에서 온 주자의 종손 ‘주찬’이 다녀갔다는 이름부터가 걸쭉한 하천이다. 운장산 북쪽 골짜기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굽어 주천면과 용담면을 거친 다음 용담면 월계리에서 금강 상류에 합류된다.
▼ 이후부터는 ‘숲길 산책로’를 따른다. 계곡과 나란히 산자락으로 이동하는 길로, ‘운일암반일암’이란 이름처럼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서늘한 숲길이다. 군락을 이루는 참나무와 소나무, 서어나무가 차양막이 되고, 길가 바닥에는 조리대가 빼곡하게 뒤덮여 있다. 참! 중간에 ‘명도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도 만날 수 있었다.
▼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목재 덱 산책로는 곳곳에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잠시 쉬어가기에 딱 좋다는 얘기다. 아니 잠시 물가로 내려가 보면 어떨까? 시원한 물속에 발 담근 채로 주변 풍광에 푹 빠질 테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 12 : 30. 길은 ‘생태 숲(이정표 : 주천면사사무도 5.5km/ 삼거 3.5km)’으로 인도한다. ‘운일암반일암 국민관광지’의 엄청나게 큰 주차장 옆에 만들어놓은 일종의 힐링 공간이다. 숲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다나?
▼ 숲에는 체험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짚라인, 통나무 건너기, 통나무 오르기, 터널 통과하기, 흔들마루 등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각종 운동기구들을 배치했다.
▼ 생태 숲 안내도. 다수를 위한 공간이니 타프(tarp) 설치나 야영·취사를 금지한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차량이나 자전거의 출입도 금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12 : 35.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국민여가캠핑장’이 들어섰다. 운일암반일암의 아름다운 풍광 곁에서 머물 수 있다는 입지 덕분에 개장 전부터 캠퍼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던 곳이다.
▼ 시설은 자동차야영장 78면과, 일반야영장 32면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샤워장 및 취사장, 화장실, 잔디광장 등 편의시설과 전기시설 등을 갖추고 있단다.
▼ 안내도는 글램핑(glamping) 시설도 갖추고 있음을 알려준다. 침대가 딸린 침실과 욕실이 있는가 하면, 주방에는 냉장고·오븐·밥솥·커피포트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주방기구를 갖췄다고 한다. TV에 에어컨까지 있다니 웬만한 호텔이 부럽지 않겠다.
▼ 12 : 40. 고원길은 캠핑장을 가로지른 다음 ‘명도교(이정표 : 주천면사무소 5.0km/ 삼거 4,0km)’를 건넌다. 이어서 55번 지방도를 따라 주천면소재지로 간다. 도로 가장자리에 덱 산책로를 따로 내놓았다.
▼ 주자천은 보를 막아 노천 수영장을 만들었다. 주자천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캠핑장의 인지도를 한결 업그레이드시켰다고 보면 되겠다. 1-2급수에만 사는 민물고기 ‘꺽지’와 함께 물놀이하는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 12 : 49. 200m쯤 도로를 따르다가 숲속으로 들어간다(12 : 43). 그리고 운치 있는 소나무숲길을 400m쯤 더 걸어 ‘주양교’에 이른다.
▼ 이정표(주천면사무소 4.3km/ 삼거 4.7km)가 다리를 건너란다. 그런데 공식 안내지도보다 구간거리를 0.1km 늘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까지 오면서 만난 모든 이정표가 구간거리를 9km로 적고 있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사소한 것이지만 바로잡아야하지 않을까?
▼ 다리 건너에서 만난 멋들어진 주택. ‘목가촌’이라는 식당인데 유럽의 산간지역에서나 볼 법한 통나무집이 이국적인 멋을 퐁퐁 풍기고 있다.
▼ 다리를 건넌 고원길은 ‘닥밭골’ 골짜기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는 개울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1km쯤 올라가다가, 반대편 임도를 따라 되돌아온다. 여기서 팁 하나. 울창한 숲속을 걷는다는 것을 빼놓고는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 구간이다. 그러니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주양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갈려나가는 도로로 살짝 빠져나가도 될 일이다.
▼ 12 : 53. 매번 얘기했듯이 ‘진안고원길’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난 길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8구간까지 이어오면서 처음으로 방향표지판이 없는 갈림길을 만났기 때문이다. 길을 인도하고 있는 산행대장이 바닥에 방향표시지를 깔아놓고 갔지만 사진 촬영에 바쁜 내 눈에까지 들어오지 못했던 모양이다.(사진은 길을 제대로 찾고 난 다음 찍은 것이다)
▼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에도 나는 초연했다. 울타리 옆으로 가면 되니까. 하지만 정점을 찍고 되돌아오던 다른 일행들이 내지르는 ‘길을 잘못 들었다’는 외침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진안고원길을 걸어오면서 처음으로 겪은 알바였다.
▼ 길을 잃었던 지점으로 되돌아와 방향표시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오솔길을 따라 개울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몇 걸음 걷지 않아 진안 특산물인 인삼과 홍삼을 상징한다는 노란색과 분홍색 묶음 리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올라가는 도중 반대편 임도(내려올 때 걷게 된다)로 연결되는 갈림길도 만난다. 개울에 잘 생긴 다리까지 놓았다. 볼거리도 없는 산길을 걷는 게 지겨워졌다면 이제라도 저 다리를 건너면 된다.
▼ 잠깐이지만 요런 오르막길을 걷기도 한다. 길은 널찍하게 나 있었다. 질퍽거릴만한 곳에는 야자매트를 깔았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자갈길(지압 길)도 눈에 띈다. 거기다 졸졸거리는 물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 제각으로 여겨지는 한옥을 스치듯 지나기도 한다. 후손들이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찾아오는지 마당에는 웃자란 잡초와 잡목들만 가득했다.
▼ ‘닥밭골’은 ‘닥나무’가 많이 자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했다. 진짜로 닥나무가 많은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지금 그 숲은 ‘산림욕장’으로 변신해 있다. 정자와 평상, 벤치에 운동기구까지 갖춘 힐링 공간이다. 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드문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 13 : 06. 오솔길을 빠져나오니 진안고원길 이정표(주천면사무소 3.4km/ 삼거 5.6km)가 반긴다. 이곳은 9구간의 첫 번째 인증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완주를 목표로 하는 나그네라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13 : 10- 13 : 20. ‘주자천’으로 되돌아간다. 이 구간도 탐방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을 품었다. 단체 모임을 위한 무대(공연장)가 보이는가 하면 정자와 평상까지 배치했다. 덕분에 우리부부도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느긋하게 쉬다 갈 수 있었다.
▼ 길을 가다 멋진 삶을 영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갓지게 살아가는 모습이 컨테이너에 딸린 널찍한 잔디밭에서 그려진다. 더울 때 이용하려는 듯 개울로 내려가는 길을 냈는가하면, 취미생활을 위한 간이 골프연습시설까지 만들어놓았다.
▼ 인삼의 고장답게 곳곳에서 인삼포가 얼굴을 내민다.
▼ ‘큰꽃 으아리’라고 한다. 줄기가 약해 쉽게 끊어질 것 같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고 오히려 살로 파고들어 ‘으아~’하는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나? 아무튼 꽃말이 ‘아름다운 당신의 마음, 고결’이라니 우리 집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꽃이라 하겠다.
▼ 13 : 48. 725번 지방도(정주천로)를 횡단한다. 횡단보도가 따로 나있지 않으니 오가는 차량을 살펴가며 건너야 한다. 참고로 이곳을 ‘먹고개’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 9구간의 종점인 ‘주천면사무소’는 이곳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도로를 따라가면 금방 이를 수 있다. 하지만 탐방로는 반대편 348m봉 아래를 돌아가는 오솔길(초반은 농로)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주자천’을 만난다.
▼ 이곳도 만만찮은 풍경을 보여준다. 문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생각난다. ‘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가/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섬진강 5’에 나오는 시 구절이다.
▼ 13 : 59.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만난 또 다른 비경. 조선 시대에 지어졌다는 정자, 와룡암이 주자천의 풍치를 더해준다. 용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의 와룡바위를 걸터앉은 저 정자는 원래 이쪽에서 주천서원의 강당(講堂) 역할을 수행했었다. 그러다 물 때문에 왕래가 불편하자 순조 때인 1827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단다.
▼ 돌다리 사이로 흐르는 물이 온몸에 청량함을 전해주고, 숲속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은 몸속 깊이 자연의 숨결을 불어 넣어준다. 물이 흙탕물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속세에서 살다보면 비일비재한 게 공사판이 아니겠는가.
▼ 아무튼 풍치에 반해 무턱대고 징검다리를 건너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오른편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조금 전 거론한 주천서원이 있으니 말이다. 사당과 홍살문, 외삼문인 월요문(月要門)으로 이루어진 주천서원(朱川書院)은 1924년 김대현(金大鉉)이 전국의 유림과 광산김씨 문중의 협조를 받아 세웠다. 초기에는 주천사(朱川祠)라 불리다가 1975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 서원은 주자를 중심으로 여대림과 주잠,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인 이황과 이이, 여기에 광산김씨인 김충림과 김중정 등 7인을 모신다고 했다.
▼ 징검다리를 건너자 ‘와룡암(臥龍庵, 전북문화유산자료)’이 반긴다.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 1602-1689)이 병자호란 때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면서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효종 때인 1650년 건축한 암자이다. 김중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항복하자 할아버지인 김충립(金忠立)과 함께 진안 용담(주천)으로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다 생을 마쳤다.
▼ 건물은 도리 기둥에 난간을 갖추고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누각이다. 루에는 기정(起亭)·와룡암(臥龍菴)·와룡암기(臥龍菴記)·와룡암중수기(臥龍菴重修記)·주천사중수기(朱川祠重修記)·주천서원기(朱川書院記) 등 많은 편액과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기정과 와룡암은 도암(陶菴) 이재(李縡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가 직접 썼다고 한다.
▼ 와룡암 이정표가 이곳이 두 번째 인증지점임을 알려준다. 그러니 이정표와 본인의 얼굴이 한꺼번에 나오는 사진을 꼭 찍어두도록 하자. 그래야만 완주를 인증해준다니 말이다.
▼ 와룡암 부근에서 만난 이 빗돌 때문에 알바를 하고 말았다. 1965년 겨울 와룡보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다 물에 빠진 두 어린이를 구하고 나머지 한 명을 더 구하려다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김영덕’님의 행적을 기리는 빗돌이다. 아무튼 이 빗돌의 뒤로 보이는 이정표가 길고 긴 알바의 단초를 제공했다. 진행방향을 가리키는 노란색 표지판이 ‘주신교’를 건너라고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구간의 이정표인데도 이를 모르고 따라버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 14 : 11 – 14 : 41. 덕분에 우리 부부는 1.5km나 더 걷다가 ‘성암마을’에 이르러서야 잘못된 것을 알고 돌아올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와룡암’. 진행방향 저만큼에 주천면소재지가 놓여있다.
▼ 14 : 47. 식당과 상점 등이 늘어선 중심가를 지나 ‘주천면사무소’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10코스의 시작 지점임을 알리는 조형물은 면사무소 앞 화단에 설치되어 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알바시간을 포함해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이 12.66km를 찍고 있으니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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