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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同生)
나에겐 금쪽같은 동생이 이 세상에 하나있다. 띠 동갑이며 나 보다 훨씬 잘생긴 이 넘
재호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에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줬다.
내가 어린시절 엄마는 늘 검은 염소 똥 같은 약재를 드셨는데, 그것이 이웃 아줌마들과 얘기
하는 것을 들어 알고 있는 냉한 여자들이 먹는 구절초와 아주 쓰다는 육모초였다. 약재의
효과였는지... 엄마가 임신에는 성공하였지만, 반복되는 자연유산으로 힘들어 하시면서도
나 혼자는 외로워 안 된다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귀한 동생을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몸이 허약하여 젖이 부족했던 엄마는 동생에게 “어~휴 내 새끼 엄마 젖이 잘 안나와
어쩌누... 쯧쯧...” 하시며 늘 안타까워하셨다. 지금도 식성이 별로인 동생을 보고 엄마는
어릴 적 뱃골이 작아 지금도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며 걱정이다.
그런 동생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아주 오래 전 동생이 2살, 내가
중1(1970년) 때, 아주 추운 겨울방학 아침의 일이다.
“엄마 목욕 갔다 올게, 재호 깨면 잘 봐야 돼.”
“네 알았어요. 근데 빨리 오셔야 되요.”
“응, 알았어.”
한 번 탕 속에 들어가면 본전을 빼고도 남을 긴 시간을 쓰시는 엄마는 이날도 예외는 아니
어서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에서 깬 동생은 엄마 찌찌를 찾으며 우는데 어르고 달래도
안돼 업어도 보았지만 영 소용이 없다.
한참을 동생과 씨름하며 해서는 안 될 일 손찌검을 했다.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하고
입 꼭 다물고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던 그때의 동생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에 aa...
당시 엄마는 약수동 산동네서 조그만 미용실을 했다. 학교 갔다 와 손님이 있을 경우 동생
을 보는 게 당연한 나는, 포대기에 들쳐 업고 나가 여자 애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금쪽같은 동생이 좋아하는 어부바를 하고... 좀 쪽팔리면 어떤가!
동생도 조금 조금 성장하여 혼자 힘으로 충분히 걸음을 걸을 때, 세상 밖 풍경에 눈을 뜬 이
넘, 어찌나 발발거리고 온 동네를 휘집이고 다니는지 학교 갔다 오면 동생 찾으러 다니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규수업에 운동(유도)을 끝마치고 집에 좀 늦게 왔는데
동생이 없어졌다며 또 난리가 났다.
온 동네를 다 뒤지고 뒤져도 없는 동생...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는데 큰일이다.
온 가족이 모여 긴급 작전을 세운다. 아버지, 엄마, 마침 대전에서 올라오신 작은아버지
근처에 사시는 고모할머니 2명이 한조가 되어 막막하기만 한 길을 떠나는데, 우선 집 근처
파출소부터 실종 신고를 겸사해 하나하나 들르지만, 동생의 소식을 접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온 가족이 이리 저리 방방 뛸뿐 별 뽀족한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어른이 걸어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 청구동(당시 김종필氏 자택) 까지 와도
없는 동생을 어데서 찾아야 하나. 행여 하는 마음에 건너편 부자마을 장충 파출소를 들어
서는데 많이 들어본 소리, 분명 내 동생 재호의 울음소리다. 순경아저씨의 따듯한 품에 안겨
과자봉지 들고 콧물 줄줄... 눈물 뚝뚝... 나도 눈물 뚝뚝...
기다렸다는 듯 얼른 내 품에 안겨 울음을 그치며 과자를 입에 넣던 금쪽같은 내 동생...
“세상에 세 살 밖에 안 먹은 넘이 어떻게 여기까지...”
약수동 산동네 능선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집이라 여기까지 오려면, 어른도 조심해 걸어야
하는 가파른 비탈길에 층층계단... 그 밖의 무수히 많은 장애물... 언뜻 이해가 안 갔지만
암튼 찾았다. 그때 우는 동생을 꼭 껴안고 달래주고 있던 대한민국 포돌이 아저씨가 정말
고마워 허리 한참 숙여 감사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왔지만 미안했다.
자신의 자비로 동생에게 과자를 사 주었을 텐데, 고맙다고 음료수도 한 병 못 전해드리고
그냥 올 수 밖에 없어서였다.(내 주머니 텅텅)
당시 동생이 콧물에 눈물이 범벅되어 울다 핏줄인 내 품에 안겨 금방 울음을 그쳤던 모습이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고도 4년이 흐르고 있는 44년의 긴 세월 속에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소문 빠른 달동네에서 영양가 없는 스타가 되어버린 동생 넘, 다음날 가슴 왼편에는 주소가
적힌 큼지막한 이름표를 붙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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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하하~~~~보는것 같네요~~~
딸 귀한 우리집안에...10살 터울의 막내 여동생 탄생으로 인하여 무쟈게 심통부린 옛기억....
44년의 긴세월이라`~~~~~~~~~~~~~ㅎㅎ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고도 4년이 흐르고 있는 44년의 긴 세월... 에궁~ 뭐에 홀렸낭... <강산을 세 번으로... 34년의 긴 세월로 바로 잡아도 되겠지여..aa..> 나이 묵으면 그래서 빨리 가~ 어어~~ 이건 아닌데... 왜 이럴까... 꿍따리샤바라
꿍따리님~~먼길잘댕겨오세요,,집은꽃샘이가잘지켜드릴테니옷따습게입고한눈팔지마시고후딱댕겨오세요,,그란디언제오신다는추신이없어서언제까지지켜줘야할라나모르겟네요,,앙~~으흐,,
저도 한참 계산 했네요 아무쪼록 머리에 그림이 그려 지네요 저도 옥수동에 몇년 산 기억이 나서 꿍따리님 잘보고 갑니다
ㅎㅎ 저도 어렸을때 남동생이랑 밖에서 놀다가 자의반 타의반 잃어버리고 무쟈게 애 태우던 기억이 문득 떠올려지네요.지금은 징그런 아저씨인데..^^
ㅎㅎ 지금은 마흔줄에 접어든 여동생 두살때 옷보따리 싸들고 가출한거 찾는다고 동네 뒤지던....ㅋㅋㅋ 장농속에서 자다 깨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