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한경면 조수리 1902-1번지
시대 ; 조선
유형 ; 수리시설(봉천수 연못)
조수리에는 173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8년 편찬된 『조수리향토사』에 따르면 조수리는 ‘조호물촌(造乎勿村)’이라고 불러왔다. 사람의 힘으로 물을 얻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 정도로 물이 귀했다. 물을 찾아서 멀ㄹ 두모리(멋물)와 판포리(화상물) 해안까지 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중산간지역은 씨족이 모여살게 되면서 인구가 늘자 봉천수를 파서 이용했다. 조수리에는 전체 31곳의 봉천수가 있었다고 한다. 조수리 마을 표지판에도 ‘연못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표어가 사용될 정도이다. 1964년에 이르러 지하수가 2곳에서 개발되면서 식수와 가축급수가 해결되었다. 이어서 상수도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봉천수 연못들은 점차 주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돗곳물은 조수리 대동에 남아 있는 봉천수이다. ‘돗곳’은 돝(돼지)과 곶(숲)의 합성어이다. 어원을 따지면 ‘돝곶물’이라고 해야 맞지만 통상 ‘돗곳물’로 쓰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멧돼지들이 먹이를 얻기 위해 숲을 헤매다가 주둥이로 땅을 파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땅이 움푹 패이게 되었고 바닥 암반까지 드러났다. 그렇게 생긴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서 연못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넓이는 약 400㎡이다. 돗곳물은 식수용, 가축급수용, 빨래용으로 구분되었었다.
수돗물이 공급되자 방치되다가 1995년부터 정비를 시작했다. 조수리 출신 조승철씨가 한경파출소장 시절에 신철주 북제주군수와 면담을 통하여 예산을 확보했다. 그 이후(2005년)에도 조경 사업을 벌여 연못 안에 대형 잠자리 조각(2012년), 연못가 궤 앞에는 돼지 석상(2010년), 그밖에도 데크 시설, 탁자, 평상, 안내판, 화장실(2010년) 등이 설치되었다. 물이 많을 때에는 돌로 만든 배(2012년) 있는 곳까지 물이 차지만 겨울 갈수기에는 그렇지 않다. 연못의 생태는 다양하지는 않다. 소금쟁이와 골풀, 수련 등이 보인다. 주변에는 수백년 수령의 팽나무(3그루)와 푸조나무(1그루)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남쪽 돗곳동산에는 포제단이 있다.
《작성 2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