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골프를 어떻게 즐겼을까??
합성수지 커버의 다중 코어 공을 플라스틱 티 위에 놓고, 티타늄 재질 드라이버로 티샷을 한 뒤
그라파이트나 경량스틸 샤프트가 장착된 캐비디백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하고 토우 힐 발란스를 맞춘 퍼터로
홀을 마무리합니다.
골프를 즐기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골프 라운딩 하면 가족, 친구 또는 지인과 4인 1조를 이뤄
도우미와 5인이 전동카트를 타고 18홀을 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과연 100년 전에는 어떤 모습으로 골프를 즐겼을까요?
가장 먼저 전동카트가 그림 속에서 사라집니다.
골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빛바랜 사진 속에서 만난 모습을 떠올려보면 클럽부터 복장까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죠?
국민 드라이버와 골프 공이 탄생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현대 골프의 모습에서 잠시 벗어나
100년 전 사람들이 즐겼던 골프의 모습을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클럽입니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현존 최고 클럽은 17세기에 제작되었습니다.
가시나무 또는 과일 나무로 헤드 모양을 잡고 샤프트는 물푸레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헤드와 샤프트 연결 부위는 타르를 바른 삼실로 마무리했습니다.
헤드가 길어 롱 노우즈라 불리는 초기 형태의 클럽은 1860년대까지 2세기 넘도록 거의 같은 모양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대다수 골퍼들이 6자루 이내의 클럽을 갖고 다녔는데 티샷을 위한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모두 우드였고,
아이언은 1870년까지만 해도 트러블 샷을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1880년부터 로프터와 니블릭이라 불리던 아이언을 사용해서 그린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점차 아이언 숫자가 우드보다 많아지게 됩니다.
1890년대 중반 미국 클럽 제조사들이 생겨나기 전까지 모든 클럽은 스코틀랜드에서 제작되었고,
잉글랜드와 미국의 골퍼들 모두 스코틀랜드 제품을 사용하였습니다.
라운딩 도중 오비가 나면 '통닭 한 마리 날아간다'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브랜드 치킨 반마리나 통큰치킨 한마리 정도 가격이 되겠죠. 그렇다면 100년 전 공 가격은 어땠을까요?
가죽에 젖은 닭털을 채우고 겉을 꿰맨 뒤 서서히 말리며 모양을 잡아 탄성을 갖게 만든
페더볼은 1848년 구타 페르카 고무로 커버를 씌운 공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되다 1860년 경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페더볼 한 개 가격이 클럽 전체 세트보다 비쌌습니다.
깊은 숲에 공이 들어가면 어떻게 했을까요? 얼마가 걸리건 찾아야 했습니다.
당시 5분 규정도 없었고, 극소수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든 공의 가격이 그냥 쿨하게 잊어버릴 정도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구타 페르카 고무 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향상된 성능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상처난 공이 더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제작자들이 다양한 딤플을 새겨 넣으며 19세기 후반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890년대 스코틀랜드의 칼레도니안 러버 웍스라는 공 제조업체에서
구타 페르카, 고무, 코르크를 섞어 만든 '이클립스' 공으로 특허를 받으며 골프 공 기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페더볼 시절 클럽 가격보다 더 비쌌던 공값 때문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골프가
다양한 코어와 딤플이 새겨진 저렴한 고무 커버 공으로 바뀌었고,
1895년부터 미국 내 클럽 제조업체들이 생겨나며 골프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는 티 역시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LPGA의 전설 로라 데이비스가 파3 홀에서 티샷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면
다른 선수들과 뭔가 다르다 하는 점을 느끼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요즘에도 아이언 티샷할 때 티를 사용하지 않고 흙을 조금 모은 뒤 그 위에 공을 올려 놓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모래를 작은 몰드에 눌러 담은 뒤 원뿔 모양으로 만들어 티로 사용했습니다.
다음으로 등장한 티의 재질은 종이입니다. 종이 띠를 고깔 모양으로 동그랗게 말아서 사용했죠.
이후부터 나무 티가 쓰이기 시작했고, 길이와 두께만 약간 달라졌을뿐
플라스틱이 대세가 된 최근까지 100년이 넘도록 전 세계 골퍼들이 널리 사용했습니다.
전동카트가 일반화 된 우리나라는 무겁지만 튼튼한 카트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퍼블릭 코스에서 걸으며 즐기는 골프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은 경량 캐리백이 대세입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 골프백은 어땠을까요?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골프백이 아예 없었습니다. 클럽도 3~6자루 뿐이었고,
공값이 워낙 비싸서 귀족들도 주머니에 여분의 공을 겨우 한두개 준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약간 넓고 긴 가죽 조각으로 클럽 몇 자루를 싸서 들고다녔습니다.
로프터, 니블릭, 클릭 등 아이언 종류와 숫자가 늘어나며 클럽을 들고 다닐 가방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가볍고 튼튼한 캔버스 천과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캐디가 등장하며 골프백은 더 커졌고, R&A에서 숫자를 제한하기 전까지 대회에서 한 선수가
클럽 32자루를 사용하는 경우까지 생기며 골프백 재질은 튼튼함이 장점인 가죽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다시 캔버스로 돌아옵니다. 초기 갈색과 회색이 대부분이던 캔버스백은 1920년대부터 화려한 칼라와 무늬로 장식되었고,
티와 마찬가지로 이후 100여년 동안 유사한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고인이 된 전 US오픈 챔피언 페인 스튜어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가장 먼저 그의 복장이 떠오를 것입니다.
메이저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명예 시타를 할 때에도 니커보커로 불리는 배기 스타일의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골프 관련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볼 때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 바로 복장입니다.
타이거 우즈 이전까지 그 누구도 감히 라운드 티를 입고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아직도 국내다수의 골프장에서 출입시 자켓 착용을 권하는 것을 보면 자유분방한 현대 사회에서도
가장 오랜동안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부분이 골퍼의 복장이 아닌가 싶네요.
백문이불여일견인데 100년 전에는 어떻게 골프를 즐겼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을 했으니
이제 백견이불여일행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지금 필드에 가서 모래티 위에 페더볼을 놓고
롱 노우즈로 티샷을 한 뒤 니블릭으로 어프로치를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21세기 라운딩 도중에도 100년 전 골프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습니다.
타이즈를 준비해서 바짓단을 집어 넣으면 니커보커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고,
야구모자 대신 일본 순사모자로 불리는 헌팅캡만 준비해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파3 홀에서 모래나 종이티를 만들어보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죠.
내친김에 100년 된 클럽도 장만해서 오랜만에 잔디 향기라도 맡게 해주면 어떨까요.
물론 히코리 샤프트 우드나 아이언은 구하기도 어렵고, 실전에서 쓰기도 조심스럽지만
샤프트 부러질 염려없는 퍼터를 하나쯤 구해서 파3 코스나 스크린 골프에서 사용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