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내달 '공식 해체'...정치권 영입 이미지 훼손 우려
2002-10-22 12:05
무엇이 '붉은 악마'의 쓸쓸한 퇴장을 불렀나.
열광적 응원을 통해 월드컵붐을 이끌어낸 붉은 악마의 공식조직이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
붉은 악마 신인철회장(34)이 21일 공식 사퇴한 데 이어 그간 조직을 이끌었던 사무국 요원 20여명도 다음달 16일 대의원회의에서 진로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집행부 해체쪽으로 이미 가닥을 잡았다. 법인화 방안도 제시됐지만 재정문제 등 현실적 걸림돌이 너무 많다. 이에 따라 붉은 악마는 동호인 성격의 지역별 소모임으로만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붉은 악마 신동민 미디어팀장은 "신회장을 비롯한 사무국 요원들이 생업을 팽개치다시피하며 힘들게 조직을 꾸려왔는데 월드컵 후 안팎의 '집행부 흔들기'가 부쩍 심해져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월드컵 후 붉은 악마에 대한 외풍은 주로 정치권에서 불어왔다. 붉은 악마 회원은 전국에 걸쳐 28만명 정도. 득표전략상 수백만명과 맞먹는 파급력을 지닌 이 조직에 정치권은 집요한 공세를 해왔다.
우선 이미지 빌려쓰기. 지난달 17일 '국민통합 21' 정몽준후보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는 자리에서 2000여명의 지지자들이 붉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붉은 스카프를 두른 채 '정몽준 대통령'을 연호
했다.
이 즈음 붉은 악마 자유게시판엔 "내 생애 이렇게 믿음직스런 후보를 안 찍을 수 없지", "월드컵 4강신화를 만든 뒤에 정몽준이란 든든한 백이 있었다는 걸 명심합시다" 등 노골적인 지지글이 올랐다. 경쟁후보 캠프에선 "월드컵과 스포츠정신을 정치에 이용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정후보측도 "붉은 악마 회원을 가장한 정치 브로커의 짓"이라며 맞공세를 취했다.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와 민주당 노무현후보측도 수차례 '구애공세'를 했던 것으로 붉은 악마측에 의해 확인됐다. 이후보측은 동반응원과 좌담회를, 노후보측은 붉은 악마 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간 친선축구를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신팀장은 "정당은 물론 시민단체, 지자체로부터 식사, 모임, 세미나 등 참여제의가 끊이질 않았다"면서 "정중히 거절해도 포기하질 않아 며칠씩 휴대폰을 꺼놓고 지냈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모 후보측은 "붉은 악마회원 다수가 '축구는 좋지만 정치인 정몽준은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까지 내놓았다. 또 다른 후보측은 신회장 등을 상대로 직접 영입 공세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정치권의 '고래 싸움'에 애꿎게 붉은 악마의 '새우등'이 터졌다. 회원간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순수성을 지키려는 집행부의 노력이 의심받기에 이른 것이다. 붉은 악마 게시판은 온통 소모적인 논쟁으로 가득하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우리 국민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했던 붉은 악마의 쓸쓸한 퇴장에 가장 가슴 아픈 사람들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