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클래식
화면에 스며든 투명함
“당신들은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가 고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대단한 자만이군요.” 1978년 개봉 2주 뒤 USC에서 가진 <할로윈>의 상영 뒤, 한 학생이 참석한 배우와 제작진을 향해 던진 말이다. 겨우 3주간의 시나리오 작업에 20일간의 촬영, 3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급조된 B급 공포영화가 미덥지 않게 받아들여지리란 것은 사실 영화를 만든 이들조차 각오하고 있는 일이었으며, 제대로 된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발판만 되어준다면 그걸로 족했다. 적어도 7500만달러라는 흥행성적과 뒤를 이은 아류작들이 쏟아지기 이전까지는.
이른바 슬래셔 무비의 원조격이라 할 이 영화에는 이렇다 할 잔인한 장면이 좀처럼 드러나질 않는다. 선혈이 낭자하는 공포영화의 선례를 뒤로한 채 <할로윈>의 촬영을 도맡은 딘 컨데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적은 피’였다. 감독인 존 카펜터와 컨데이는 즉물적인 반응 대신 관객이 머릿속으로 그려낼 공포의 공간을 비워둠으로써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서스펜스의 기운을 최고치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서부영화나 전쟁영화 같은 스케일이 큰 영화에나 사용하던 아나모픽 화면의 시도는 음산한 분위기 형성에 한몫했으며, 극도로 절제된 빛과 어둠의 배치 안에서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의 시선에 따른 카메라의 동선은 시점숏의 모범으로, 이후 수많은 공포영화의 답안으로 자리하게 된다.
지금이야 주류 촬영감독으로 인정을 받는다지만,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의 꿈을 키워오던 로스앤젤레스의 외곽 알함브라 태생의 컨데이가 UCLA에서 건축수업을 받게 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당시 <몰리 맥과이어>의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스승 제임스 웡 호웨이와의 만남으로 그는 카메라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렌즈나 조명의 미세한 변화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창출해내던 호웨이의 손길은 마치 마법과도 같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더 많이 찍을수록 더 단순해짐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영화에서 촬영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콘라드 홀이 촬영한 에 꽤 감명을 받았는데 아마 선생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홀이 그 작품에 끼친 예술적인 성과를 미처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졸업 뒤 그는 필름편집에서 다큐멘터리나 광고작업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자동차극장이 판을 치던 상황이었고 이에 따른 저예산 B급영화들의 수요가 급증하던 때였다. 친구 몇과 촬영장비를 갖춘 밴을 저예산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게 대여하였는데, 전화 한통으로 장비와 스탭을 이용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큰 호응을 얻게 된다. 이때의 다양한 현장경험과 인맥으로 그는 존 카펜터와 <할로윈>을 작업할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으며, 영화의 성공은 촬영감독으로의 이력에 돌파구를 마련해준다.
존 카펜터와의 일련의 작업으로 입지를 굳힌 그가 호화로운 할리우드의 스페셜 이펙트를 조율해낸 그만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의 <백 투더 퓨처> 촬영을 하면서부터이다. 실제 삶에서는 볼 수 없는 환영을 창조하는 것, 딘에게 그것은 영화 만들기의 자연스러운 연장에 불과했다. 컴퓨터를 나이 어린 아들에게 배우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이처럼 실제와 환상의 벽을 허무는 시도는 89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된 <제시카와 로저 래빗>를 통해 심화한다.
곧, 피터팬이 날아다니는 환상의 섬이 창조되었고(<후크>), 원시의 공간을 방불케 하는 너른 대지에서 뛰어노는 거대한 공룡들의 장관이 연출되는가 하면(<쥬라기 공원>), 무중력상태의 우주선의 좁은 공간이 재연되기도 하였다(<아폴로 13>). 일종의 ‘과장된 실제’인 이와 같은 상황에서 관객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영화가 제시해주는 실제의 세계에 몰입되게 되고, 어느새 공룡이 거닐고, 사람이 날아다니는 확장되고 뒤틀린 가상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환상의 창조자로서의 이같은 역할을 그는 촬영감독인 자신의 몫으로 상정한다.
그간 컨데이의 필모그래피를 형성하고 있는 유수한 감독들의 화려한 명성이 오히려 그를 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관객의 관심을 끌지 않을 정도로 화면에 스며든 투명한 촬영이야말로 촬영이 지켜나갈 본분이다”라며, 디지털시대인 오늘, ‘옛날’과는 또다른 도구를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는 오늘도 그를 건재하게 하는 무기임에 틀림없다. 글: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Dean Cundey 필모그래피
<굿타임 찰리>(Goodtime Charlie, 2001) 코스타 아니오스 감독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2000) 낸시 마이어스 감독
<배틀스타 갤랙티가>(Battlestar Galactica: The Second Coming, 1999) 리처드 해치 감독
<부모의 덫>(The Parent Trap, 1998) 낸시 마이어스 감독
<크리펜도프 종족>(Krippendorf’s Tribe, 1998) 토드 홀랜드 감독
<플러버>(Flubber, 1997) 레스 메이필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디렉터스 체어>(Steven Spielberg’s Director’s Chair, 1996)(VG) 알렉산드라 콜레트 감독 외
<아폴로 13>(Apollo 13, 1995) 론 하워드 감독
<꼬마 유령 캐스퍼>(Casper, 1995) 브래드 실버링 감독
<고인돌 가족>(The Flintstones, 1994) 브라이언 레반트 감독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 1992)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후크>(Hook, 199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난폭한 주말>(Nothing But Trouble, 1991) 댄 애크로이드 감독
<백 투 더 퓨처3>(Back To The Future Part III, 1990)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백 투 더 퓨처2>(Back To The Future Part 2, 1989)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로드 하우스>(Road House, 1989) 라우디 헤링턴 감독
<제시카와 로저 래빗>(Who Framed Roger Rabbit, 1988)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인생의 반전>(Big Business, 1988) 짐 에이브러햄 감독
<X 전략>(Project X, 1987) 조너선 캐플란 감독
<빅 트러블>(Big Trouble In Little China, 1986) 존 카펜터 감독
<비상 경보>(Warning Sign, 1985) 할 바우드 감독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5)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산타를 찾아서>(If Came Upon The Midnight Clear, 1984)(TV) 피터 헌트 감독
<로맨싱 더 스톤>(Romancing the Stone, 1984)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DC 택시>(D.C. Cab, 1983) 조엘 슈마허 감독
<싸이코2>(Psycho II, 1983) 리처드 프랭클린 감독
<할로윈3>(Halloween III: Season Of The Witch, 1983) 토미 리 웰레스 감독
<괴물>(The Thing, 1982) 존 카펜터 감독
<코브라의 공포>(Jaws of Satan, 1981) 밥 클레버 감독
<세퍼레이트 웨이>(Separate Ways, 1981) 하워드 에버디스 감독
<할로윈2-저주받은 병실>(Halloween II, 1981) 릭 로젠털 감독
<뉴욕 탈출>(Escape from New York, 1981) 존 카펜터 감독
<위다웃 워닝>(Without Warning, 1980) 그레이던 클락 감독
<갤럭시나>(Galaxina, 1980) 윌리엄 사치스 감독
<안개>(The Fog, 1980) 존 카펜터 감독
<앤젤스 브릿지>(Angels’ Brigade, 1979) 그레이던 클락 감독
<돌격 부대>(Charge of the Model T’s, 1979) 짐 맥콜로 감독
<롤러 부기>(Roller Boogie, 1979) 마크 L. 레스터 감독
<로큰롤 고등학교>(Rock ‘N’ Roll High School, 1979) 앨런 애퀴시 감독
<할로윈>(Halloween, 1978) 존 카펜터 감독
<베어 넉클>(Bare Knuckles, 1977) 돈 에드몬드 감독
<하이 라이더>(Hi-Riders, 1977) 그레이던 클락 감독
<사탄의 치어리더>(Satan's Cheerleaders, 1977) 그레이던 클락 감독
<크리처 프럼 블랙 레이크>(Creature from Black Lake, 1976) 조이 앤 후크 주니어 감독
<일사2-오일 시크의 하렘 키퍼>(Ilsa, Harem Keeper of the Oil Sheiks, 1976) 돈 에드몬드 감독
<블랙 샴푸>(Black Shampoo, 1976) 그레이던 클락 감독
<노 머시 맨>(The No Mercy Man, 1975) 대니얼 밴스 감독
<웨어 더 레드 펀 그로>(Where the Red Fern Grows, 1974) 노만 토카 감독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