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떡국 드세요 / 이정록
네 살 터울 막내에게 큰애 바지를 입힌다. 세 번 접혔던 바짓단, 한 번 더 접어 올린다. 겨우내 나이테가 하나 더 그어질 것이다.
작은애도 바짓단 그득 모레와 검불을 날라 올 것이다. 보잘것없는 흙먼지와 낙엽부스러기가 그 나이테를 하늘 쪽으로 치켜세우는 것이다. 저 낮고 힘없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세상 모든 아이들은 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근 흰머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바닷가 모래펄도 나이테를 쌓으며 넓어지는 것이다.
밤하늘 은하수, 그 올 풀린 바짓단은 누구의 나이테란 말인가?
이정록 시인 :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했다.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혈거시대'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을, 2002년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현재 천안중앙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의자> 등이 있고, 이 밖의 작품으로 장편동화 <귀신골 송사리>, 우화집 <발바닥 가운데가 오목한 이유> 등이 있다.
2009년 기축년의 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떡국을 끓이면서 문득 이 정록 시인의 시 한편이 떠 올랐다
'하느님 떡국 드세요'.......
이 정록의 '하느님 떡국 드세요 ' 라는 시는 네살 터울 막내에게 큰애가 입었던 바지를 입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바지가 커서 바짓단을 네 번 접어 입혀야 하지만 머지않아 바지가 작아질 것을 예감한 시인, 겨울이 다 가기전 바짓단을 풀어야 할 것을 시인은 알고 있는듯 하다 위 시에서는 시인이 보잘것없는 바짓단과 나이테를 동일시 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비록 바짓단 그득 모레와 검불을 묻히고 집에 들어와도 몇번 접어올린 그 바짓단을 하나씩 풀면서 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근 흰머리를 내려다 볼수 있게 커가는 아이들, 나이테에 대한 상상은 그렇듯 작은 바짓단에서 시작했지만 바닷가 모래펄로 이어지고 결국은 밤하늘 은하수로 무한 확장되면서 시인은 접혔던 자국이 성장통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 정록 시인의 시세계는 다분히 서정적인 면이 있다 환몽적이고 난해한 현대시들에 비해서 그의 시는 소통이 원활하고 편하다 독자에게 암호와 슬랭으로 교감하고 싶어하는 현대 시에 비하면 이 정록 시인의 어투는 상당히 서민적이면서도 클라식하다 그러나 우리를 심심치않게 놀래키는 것은 그의 상상력에 있다 위 시의 제목처럼 상상력이 어찌나 자유로운지 독자는 시를 읽는 동안 낯선 여행을 하며 달콤한 일탈을 꿈꾸게 된다
이 시는 제목부터가 황당하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는 하느님에게 떡국을 먹으라니?.......
그러나 위 시에서 시인은 분명 하느님께 떡국을 권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더이상 무서운 아버지는 싫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은 그 무서운 하느님을 단박에 친구처럼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하느님은 꿈 아니, 말 그대로 무소불능 절대적인 존재일수도 있겠다 어쩜, 詩 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접협던 바짓단을 풀면서 커간 아이들이 조상들의 성근 머리를 보게 되리라는 이치를 나이테를 쌓으며 넓어지는 바닷가 모래펄과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다 그것은 단순한 관념과 대상의 이동이 아니라 어찌보면 자연과 순리에 대한 거룩한 신뢰일지도 모른다
제목과는 달리 이 시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마디도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분명 절대 존재를 깊게 인식하고 있다
꿈꾸고 있다 바짓단을 풀듯 낮고 힘없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과 가까워지는 우리를 아주 오래 기다려준 절대자 (그것이 詩여도 좋고 꿈이어도 좋겠다) 가 있었으니 ‘ 하느님 떡국 드세요’………시인은 어서 한 살이 먹고 싶은가보다 접혔던 나이테를 어서 어서 풀고 싶은가 보다
<겨울여행 6 ; 김 은자 >
첫댓글 새 해가 되면 떡국과 더불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도 이젠 불감증이네요. 셋째인 저도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을 한 번도 새 것 입어본 적 없어요. 정말 나이테를 두르고 다녔죠. 이정록시인의 시의 내포와 확장이 대단히 돋보입니다
이시인님, 그러셨군요 그시절엔 우리모두 그렇게 자랐죠 생각해 보면 남의 나이를 내몸에 두르고 살아봤던지라 지금보다는 따스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함께 느껴주어서 감사드립니다 ^^*
이정록 시인님이 여자 분이신가요? '다분히 서정적인 면이 있다'에 동감합니다. 작은 일상에서 우려내는 시안이 참 좋네요. 김 시인님의 해석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몸이 녹아 듭니다. 감사~
꼭 여자분 시같죠? ㅎㅎ 아마 이정록 시인은 아이들 옷도 몸소 입혀주는 자상한 아버지일것 같네요, 단평을 늘 따스하게 읽어주시는 이 시인님께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