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Part of Untitled Story
[Kyrie
Eleison]
0-Kyrie Eleison
3
[내기를 하자꾸나.]
[내기?]
아이레네는 테이블 주변으로 쳐진 휘장을 걷으며
그렇게 말했다. 보랏빛 끝없는 몽환이 겹겹이 둘러져 있는 망향(望鄕)의 땅에 홀로 오롯이 존재하던 그녀의 제의에 귀가 솔깃한 유왕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오랜 기간동안 느껴온 무료함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달콤했던 그녀의 유혹.
[너는 비천(飛天)의 이름을 걸고, 현존하는 모든 일족을 깨우렴. 그리고 네가 그 일에 성공적으로 종지부를 찍어낼 수 있을
지의 여부에 내기를 거는 거지.]
[가만, ‘모든’ 일족?]
그의 질문을 들은 아이레네는 고개를 살짝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질문의 여운이 아스라이 공간에서 사라질 즈음 해서야 정신을 차린 유왕은 바락,
소리를 질러 항의했다.
[처음부터 내가 이길 확률따윈 없는 거잖아,
그럼!]
[없는 것이 아니라 낮은 것이겠지.]
[그거나 저거나! 도대체 무슨 수로 그 개 떼를 다 찾아내라는 거야? 이미 죽은 것도 만만치 않게 많을 텐데!]
[‘현존하는’이라고 하지않았니.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구나. 기회가 닿는 대로 시휘(矢納)에게 일러두마.]
[말도 안 돼! 그런 거 안 필요해!]
[네게는 필수적인 것이란다.]
거침없이, 청산유수와도 같이 쏟아져 내리는 아이레네의 말을 들은 유왕의 얼굴에 ‘어이없음’이라는 의미를 내보이는 표정이 스쳤다. 그는 곧은 눈썹을 찌푸리며 약간 길다 싶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고, 그런 유왕을 모호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아이레네는 어느새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찻주전자를
잡으며 스치듯 물었다.
[혹시 네가 질까 두려운 거니?
나를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로구나.]
[아냣!]
순간 발끈해버린 유왕은 지극히 어린애다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아이레네는 살포시 승리의 미소를 떠올렸고, 그녀의
공간에는 잠시의 침묵이 찾아 들었다.
[…불공평하지 않아, 아이레네?]
아이레네의 발치에 내려앉아 기분 좋게 그르렁대던
침묵을 먼저 두드려 깨운 것은, 조금 잠잠해졌다 싶은 유왕이었다.
*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던 유왕의 두 눈이 번쩍
떠진 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다. 그의 투명한 어린 떡갈나무빛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 은하수가 아름다운 밤하늘을 담은 바다였다. 하지만, 아주 조금 더 가까이 수면에 다가간 그가 본 것은 새카만 입을 벌린 채 그를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있는 바다의 모습이었다.
빠질까? 아니면 관둘까? 그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이미 수면은 그의 코끝과 만나버렸다. 유왕은 한 조각의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
하지만 얼굴 가득 시원한 물이 닿기를 기대했던
유왕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물
대신 축축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시린 액체대신 산뜻한 기체가 그의 옷깃 사이로 스며들었다.
유왕은 감았던 눈을 떴다.
큰 키, 굳은 눈매, 차가운 인상, 그리고 다부진 몸.
결정적인 것은, 어깻죽지부터 시작된 짙은 밤하늘 빛의,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 커다란 두 장의 날개. 눈에 익은 사내였다. 유왕은 나직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시휘(矢納).”
“…다행이군,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서.”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약간
어눌한 발음. 시휘에게 안겨 하늘을 나는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어차피 유왕은 날개를 펼 수도 없는 상태다- 어쩐지 억울한 감이 좀 있다고 생각한 유왕은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너도 참 악취미야. 뛰어내리기 전에 나타났으면 서로 좋았을걸. 모처럼 물에 들어가나 했더니, 기분 잡쳤어.”
원망을 해도, 억지 힐난을 해도, 과묵한 시휘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말수가 적은 그에게서는 애초부터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지, 유왕은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호곡선을 그려내는 그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시휘.”
반짝, 오랜만의 흥미거리를 찾은 유왕의 두 눈이, 마치 놀잇감을 찾은 고양이의 그것과도 같이 빛났다.
그는 시휘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풀어 허공에 뿌렸다. 펄럭- 은빛 자수가 아름다운 진녹색 옷자락이 춤을 춘다.
“역시 게임은 이길 확률이 적어야 스릴 있는
거겠지.”
아이레네에게서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들었던 시휘로서는, 다양한 의미를 한데 묶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Bullshit Lullaby >>
에, 어쩌다 보니 2연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합시다-_);;
이 것으로 Kyrie Eleison의 프롤로그는
마침표를 찍습니다. 긴 분량도 아닌데 이렇게 나눠서 올리는 이유는, 각 글마다 약간씩 다른 시도를 해봤기 때문에 한참 후에 돌아보면서 ‘이딴 걸 시도한 거냐~
우헤헤~’ 라고 스스로를 비웃어볼 생각… 이라는 건 역시 변명에 불과하군요-_ㅡa
아무튼 그렇고 그런 겁니다! (탕탕탕-!
/ 아아악!!;)
p.s. 목각인형 님, 감상 떼어먹을 생각 하지 마세요. 분명 2월 내로 한 파트 완성했습니다(히죽). 그럼 감상 기다리겠습니다-. (가증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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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그런말 한적 없...(도주)
-_- 한지만 말씀드리고 싶은게.. 글 색 바꾸면 안되나요? 너무 차분한 느낌도 글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으므로.... 라는건 변명이고. 음.. 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