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발가락/혜관(慧觀) 이상태
발톱이 쪼개져 발가락이 되었다
고향 떠나 퇴화한 변두리쯤
목을 빼고 타인처럼 전생을 건너다본다
산천을 떠돌다 문득 의지하고 싶을 때
이름 없이 짓밟은 길목 어느덧
바람 받아주지 않는 발바닥이 차갑다
꼬무락거리며 번거로운 고자질 뿌리치고
비라도 질펀하게 내리게
어미발가락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라도
기우제 재촉하며 산정으로 향했지
머리 흔들며 질척거리는 하늘
대놓고 한번 버티고 봐야지
육질 질긴 발가락 꼬아 넘기다가
무작정 달려들어도 제자리걸음인데
비 오거든 삶을 박차고 나서게
이때쯤 젖은 신을 벗어던진다
덧자란 생애면 어때 제대로 깎이고 싶어
수모를 당해도 까막눈 모로 뜬다
보이지 않는 살점 귀퉁이 파고들어
오금이 저리고 아파온다
잘라버릴 수 없는 오행의 마지막 음절
발톱을 깎는다. 양말에 구멍 나지 않도록
모서리를 둥글게 문지른다
댓돌 놓인 신발에 빗물이 고인다
2008[울산문학]겨울호
[창작노트]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한가한 여유를 틈타 발톱을 깎다가 문득
마음대로 날뛰고 싶었던 유년이 떠올랐다.
발모양 제대로 된 신발만 있었다면
연 날리던 동구밖으로 내달아봤을 법한
꼬부랑길이 그려지고
한많은 길을 따라 산으로 가로막혔던 하늘
하늘을 보려고 무작정 산정으로 향했다.
새신에다 발을 맞추던 시절
늘 새끼발가락이 아리고 시리다.
우리가 언제 한 번 마음대로
머리 쳐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땀으로 흠뻑 젖은 신발
그만한 기다림으로 비는 내리고
질척이며 올라가는 음절 사이로
아무리 꼼지락거려 봐도 어미발가락은 멀었다.
이제 신을 벗고
발톱을 깎는다.
젖은 신이라도 신고
다시 한 번 뛰어보자!
-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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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발가락/혜관(慧觀) 이상태
혜관 이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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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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