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고대산 자락에 동막리골짜기.
그곳은 나의 눈물과 행복.
그리고 가족구성으로 추억이 많은 곳이죠.
1981년 5월.
24살에 결혼하고.
이듬해 82년도
낯선 전라도 광주로 이사해 삼복더위속에(8월6일)큰아들 낳고 아름다운 단풍이
한창인 10월 중순쯤
남편 근무지 연천으로
백일도 안된 아들을 데리고
대한통운 8톤 트럭에 짐 실고
새벽에 출발해 밤 8시가 넘어
도착 한 곳이 동막리 상류
내산리라는 곳이였죠.
광주에서 새벽6시에 출발해
하루종일 달려 저녁시간이
지나가도 도착은 못하고
날은 어두워 지는데 동막리
입구부터는 비포장도로로
덜컹대고 민가도 드물어 불빛도 없이 깜깜한데 유격장을 지나는데 그 물빛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부터 눈물은 나오고.
우는 나를 보는 남편은 당황해
어찌할지 몰라하고.
아무튼 덜컹거리며 20분을 더 가서 도착한 그곳은 관사만 20채 정도 있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대충 짐 들어 놓고 이틑날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양쪽이 다 산이고 골짜기옆에 예쁘게 집들이 있고
산에는 단풍이 울긋불긋하고
구절초꽃이 만발해 있고
어제 눈물은 어디로 가고
너무 아름다워 싱글벙글이였죠.
헌데 먹을게 쌀과
김치 고추장 된장 뿐인데
가게도 차 타고 30분거리
연천 대광리로 가야 한다는군요
대중교통은 아침저녁 2번만 다니다 하니.ㅠ
출근했던 남편이 짚차를 가지고
나와 장보러 가자 하더군요.
짚차를 타고 고대산 비상도로로
대광리로 넘어 가는데 비포장도로에
꼬불꼬불 커브 돌때마다
낭떠러지기에 심장은 쫄깃해지기도 했지만
그곳에 생활은
가을은 식탁에 구절초을
꼿아놓고....
겨울엔 발자국도 없는
하얀설경을...
봄에는 예쁜꽃과
달래 냉이 취나물로
식탁을 풍성하게...
여름엔 계곡에서 물놀이에
돌판에 삼결살도 구워먹고
계곡물에 빨래도 해보고
다슬기도 잡고....
84년 3월에
작은아들도 낳고...
그곳에서 눈물 콧물.그리고 행복한 시간 3년을 보내고 다음 근무지로 이사했어요.
그곳에 생활이 그리워 가끔 그곳을 드라이브 가면서
동막리입구 들어서면 깔끔한 포장도로에
옛이야기에 눈물도 찔끔 짜면서
비상도로도 포장된거 보면서
그때 심장 쫄깃한 이야기도 하면서.
그시간 그추억이 결혼생활에
잊혀지지않는 추억입니다.
첫댓글 좋은 남편 만나서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추억들을 많이 쌓았네요.
그래도 좋은 추억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시골에서 살때 지역 토배기 사람들이 군인가족을 제일 부러워 했다는 것을
알랑가 모르겠네요.
우리집에서 닭을 키웠는데 ~
계란을 군인가족
김상사네. 이중사네. 선임하사네 등 달걀10개 볏짚으로 만든 꾸러미 몇개를 자전거를 타고 윗 동래 갖다 주고 오라고 어머가 말하면 다 알아 듣고 실행했던 어린 시절도 좋은 추억입니다.
연천 한탄강.임진강 참게 번개때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그때가 좋은추억으로 기억되는건
주변에 아름다운 자연이 더해져 그런거
같아요.가을엔 정말 내설악 못지않게
아름다웠어요.
광솔님 글을 보면 다 아는 지명이라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김니다.
그때는 힘들때도 즐거울때도
모든게 추억으로 남아 먹먹해질때도
그때는 넘 힘들었는데
생각하며서 얘기 나누면
깔깔거리며 웃을일도 많더라구요
울 나이엔 추억을 먹고 산다고해도
과언은 아니죠
지이나 좋은추억 올려줘서 고마워요
ㅎㅎ 뭔일이든 나쁜것만 있는게 아니라
좋은것도 있죠.
그래서 울다웃고...ㅋ
나의 군대생활 00사단, 한많은 한탄강,
제대하면 그쪽으로 오줌도 안눈다는
힘들었던 군대생활,
겉으로는 절경인 한탄강 주상절벽이 주요 훈련장이다.
수천번 오르락 내리락 한맺힌 한탄강,
유격장도 한탄강 절벽위에 있어 유격훈련 받을때 한탄강 다리밑에서 피셔 물놀이 하고 있는 민간인을 보면서 조오뱅이 쳤다.
나에게는 낯설지 않는 연천, 한탄강,
지금은 그시절이 그립고 언제나 가보고 싶은곳이다,
남자들은 평생 군대이야기.
여자들은 평생 아이 낳을때 이야기.
아마도 인생에 최고로 힘들고 아프고 해서
일까요? 고생이 됐어도
그립고 가보고 싶은곳...
가보셔요.그리고 추억을 회상해 보셔요.
젊어 고생하던
추억이 곱게 담긴 곳이 연천이군요.
내게 연천 하면 생각나는 것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연천 동막골 찝질방에 두서너 번 갔던 일입니다.
지금도 영업하고 있나 모르겠지만.
편안한 시간 보내요.
네.동막골 입구 찜질방 요새도 영업 하는거
같아요. 얼마전에 고대산 휴양림에 다녀오길에 보니 찜질방 주차장에 차들이 많이
주차 돼 있더군요.
선배님.찜질방을 먼곳까지
다녀 오셨네요.ㅎ
영업하고 있더군요.
오모
동막골 625. 실화 영화에. 나왔던
그 장면~생생한 그 동막골 인가 봅니디
지이나친구. 글을 통해서
어여쁜 20대의 새댁의 일상을 봅니다
얼굴도 이뻐요 글도 잘써요
무엇이든 만능이야요
ㅎㅎ 영화에 장면 동막골은 강원도래요.
여기는 경기도 연천이구요.
이십대 후반을 그곳에서 아이들 낳고
키우고 그러고 살았쥬.
연천 요즘은 시원하게 도로도
잘 만들어져서 쉽게갈수있는곳이지만
예전에는 꼬불꼬불산길로
가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쉽게 간곳이라면 금방잊어겠지
고생해서 간길이라 가보면
옛날생각이 주마등처럼 생각날거야
나도 딸낳고 보름만에 안고
트럭타고 예천에서 울산으로
분가했던일이 40년이 지났어도
생생한데
군인가족들은 이사도 많이다녔을텐데
어린나이에 고생했네요
ㅋㅋ어린나이라 하니 웃음이...
그때는 어리다 생각 안했는데
지금 그나이 아이들 보면 어리긴 어리더라.
이사 하면 지겨워 일산에 와서
20년이 넘도록 이사를 안했는데
2년전 이사를 했는데 나이들어 이사하는건
아닌거 같아요.
그런 시골생활을 했기에 추억이
남다른거지요
예전엔 시골인심이 후해서 앞집,옆집,뒷집에서 농사지은
푸성귀들이 떨어지질 않았는데
하여간 그 인심이 지금은
변하여 야박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추억이 있다는건
생각할수록 값진재산입니다.
우리 큰애는 4살정도였을때.
그곳에서 강아지 한마리를 관사마당에
키웠는데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산골짜기에서 강아지 키웠다고
기억하더군요.
이젠 시골도 도시처럼 각박 해져가는거
같아요.
세상이 다 그리 변하는데 시골이라고
안변하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