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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9년 '건강사회 건설'이라는 창업 이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유산균 발효유를 처음 소개한 한국야쿠르트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이후 끊임없는 제품 개발을 통해 현재 국내 발효유업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식품업계에서는 9번째로 '1조 클럽'에 가입하는 등 전세계를 휩쓴 경기침체 속에서도 강한 저력을 발휘했다.
영업을 처음 시작한 1971년 60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1972년 첫 흑자를 기록한 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1977년 100억원을 돌파했고 1987년 1000억원, 1997년 5000억원을 넘어섰으며 2007년에는 9800억원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야쿠르트는 사업 초창기 이름조차 생소했던 유산균 발효유를 이제는 누구나 즐겨찾는 보편적인 건강음료로 자리잡게 만들었으며, 이제는 국내 발효유시장의 43%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윌'ㆍ'쿠퍼스' 등 차별화 제품 개발
한국야쿠르트가 이같은 성장세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만든 윌과 쿠퍼스와 같이 차별화된 제품이 있었기 때문였다.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베리 마셜박사를 광고모델로 한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의 판매량은 하루 평균 65만개로 연매출 2500억원을 기록하는 대박상품이 됐다.
특히 지난 2000년 9월 출시된 '윌'은 초기부터 고객들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4개월 후인 지난 2001년 하루 판매량이 40만개를 넘어섰으며 2005년 7월에는 출시 4년 10개월 만에 판매량 10억개,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출시 후 현재까지 20억개 이상이 팔리는 등 '윌'은 발효유 시장에서 확고한 1위 제품의 자리에 등극했다. 지난 2004년 야심작으로 내놓은 쿠퍼스 역시 하루 22만개가 팔리며 제2의 성공신화를 일구고 있다.
이들 제품이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기능성 차별화에 있다. 기존의 발효유가 장건강에 초점을 맞춘 반면 윌은 위, 쿠퍼스는 간기능 활성화에까지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윌이 처음 시장에 나왔을 당시만 해도 유산균 발효유는 장에 좋다는 상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야쿠르트는 이러한 기존 상식을 과감히 깼다. 장은 물론 위염, 위궤양 등의 대표적 원인균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균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기능성을 강조한 마케팅으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활용한 강력한 마케팅력
야쿠르트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야쿠르트 아줌마'. 한국야쿠르트 성장의 또 다른 원동력은 '야쿠르트 아줌마'를 활용한 방문판매방식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강력한 마케팅력은 이미 여러 제품의 성공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유기농 야채즙 '하루야채'는 유산균 발효유와 마찬가지로 야채도 매일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과 야쿠르트 아줌마의 방문 판매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현재 연 600억원이 넘게 팔리며 야채즙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또한 올해 출시된 '하루야채 퍼플'을 통해 20% 이상의 매출신장도 기대하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
효담 박방현
십 수 년을 하루인 듯 한결같이
같은 길거리의 구간을 오가며
제복제모와 단정한 용모한 채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아줌마
어느 새 주름이 늘어 보이지만
몸에 밴 부지런함은 변함이 없다.
서로 스칠 때면 다순 마음으로
내내 눈여겨 정 깊게 바라볼 뿐
그 어떤 분의 아내일까 라던가
어떤 아이들의 착한 어머니일지
굳이 속 깊이 알려 하지는 않는다.
어떻든 그녀의 남편이신 분이나
그 손길에 살들이 자란 아이들
행복하게 오순도순 잘 살 것 같고
심성 착한 조촐한 가족일 듯 하고
내일로 향한 기대와 꿈도 깃들어
활기가 넘치는 가정일 것 같다
오늘도 난 그녀와 스쳐 지나친다.
*나의 시작노트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본격적인 방문판매의 역사는 퍽 오래되었다. 구한말의 보부상이나 방물장사들이 그 원조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현대적인 방문판매의 효시는 아무래도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이라 할 수 있고 1964년에 지정판매소 제도에 한계를 느끼고 작고한 고 서성환 회장이 방문판매를 도입하여 유통의 혁명을 이루었음은 물론 시장점유율을 크게 확대시켰다. 또한 아모레 화장품은 타화장품 업계의 필수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필자는 1975년부터 전남 순천에서 아모래 화장품 특약점을 개설하여 수년간 특약점을 운영하면서 아모래 화장품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회사에서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서 건실한 기업정신은 물론 기업경영에 대해 많은 새로운 지식을 쌓았고 시장점유율을 제고하는 테크닉을 배울 수도 있었다. 다른 사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후에도 아모레에서 취득한 많은 경험과 활용성이 강한 체험은 필자의 사업을 개진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타 업종으로는 두 번째로 한국야쿠르트가 1969년부터 사업에 착수하여 1971년 8월부터 방판을 시작했고 초기에 47명이던 인력은 이제 1만 3천 명에 이르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탄생시켰으며 하루에 판매하는 수량이 760만 개를 넘기고 있다고 하니 방판의 위력이 어떠한지 가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뿐이 아니고 풀무원 역시 방판에 뛰어들어 현재 7천명의 방문판매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한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필자는 방판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5년부터 태평양화학의 아모레 특약점을 운영한 바 있었고 그 기간 동안에 수련회와 교육이수과정 등을 통해서 많은 판매 전략과 시장점유율 제고를 위한 훌륭한 앞선 프로그램과 방판지식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필자가 시계 도매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아모레경영의 그 지식들과 자료들이 필자의 사업에 많은 보탬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가 특약점을 경영한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 특약점의 이윤추구의 목적달성과 효율적으로 특약점운영을 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필자는 부단히 노력을 했다. 40여명의 방문판매사원들과 미용사원들을 관리해야 했고 수입을 증대시키기 위해 필자 나름대로 새로운 관리 시스템과 운영의 묘를 기하기 위해 세일즈에 관계되는 많은 서적들을 탐독했고 그런 새로운 방법들을 판매원들에게 적용 운용함으로 특약점은 날로 신장했고 전국에서 몇 개 안되는 우수특약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늘날 많은 방판 업자들과 다단계 업자 혹은 피라밋 구조의 업자들 중 특정부류들이 교활하고 사악한 방법으로 그런 사업에 선량한 초심자들을 유인하여 패가망신하게 하는 사례들을 목격할 때는 남의 일 같지가 않고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또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사기성 있는 행위를 자행하여 많은 고통과 물질적 피해를 주고 있는 실정이다. 순진한 청장년 대학생들을 회유하고 끌어들여 등록금을 날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학교를 중도파기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고 있으며 가정주부들도 그 사업에 얽혀 재산을 날리고 가정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이다.
우리들이 그런 피해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이 있다. 우선 피해가 많은 피라밋 조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내용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알아야 한다. 첫째 품질이 불량한 상품을 좋은 상품처럼 과대평가 하여 높은 가격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게 하고 둘째 가입비 명목으로 참여자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를 자행하며 셋째 상품구매를 강요하거나 상품 사재기를 종용한다. 새로운 판매원 모집 여하에 따라 수입이 조절되는 행위를 자행하는 것 등이 피라밋 조직이나 악덕 다단계 조직들이 사용하는 수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단계판매는 어떠할까 외형상으로 피라밋과 비슷하지만 자본금이 3억 이상 구비되어 있고 시 도에 업체등록이 되어 있으며 상품과 판매품이 하자가 있을 경우 반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등 소비자보호장치가 되어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소비자 보호 장치가 갖추어진 업체인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제도라 하더라도 그 최고경영인의 행위여하에 따라 예측불허의 결과를 초래하기에 항상 그런 업에 종사하고자 할 때 면밀한 검토나 확인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필자는 한 때 방문 판매업에 종사했고 나름대로 본인에게 있어 그 사업은 성공한 편에 들었으며 필자자신의 능력개발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자평하는 편이다. 그래서 필자는 방판에 종사하는 분과 조우하게 되면 예사롭게 넘겨지질 않는다. 필자가 화장품 특약점을 하면서 필자가 거느린 외판사원들에게 때로는 강경하게 독려도 했고 많은 시상상품을 걸어 경쟁을 유도하기도 했으며 오직 사업을 위해 전력투구한 시기이기도 했다. 필자가 운영했던 사업 중에서 가장 외판원들에게 관심을 갖았었고 그들로 하여금 근면과 성실이 몸에 배이도록 많은 교육을 했었다. 그 업종을 떠난 후에도 필자의 그런 전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제복과 제모를 단정히 차려 입고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격려나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고 차라도 한 잔 사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심정 때문에 <야쿠르트 아줌마>란 시도 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첫댓글 저희 학교 다닐땐 요쿠르트 아줌마들을 아주 쉽게 거리에서 만났었는데
요즘은 보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런것도 마트에 가서 사 먹곤 하니까 그런가봐요~
효담님,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안녕하세요? 요구르트 아줌마 우리집 앞에도 늘 있는데 미쳐 생각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이 글을 보면서 다시 열씸히 사시는 모습이 더 보여질 껏 같네요~~***~건필 하십쇼~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