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후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 이 세상을 떠나지만 나를 찾은 나의 후손들이 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근원적 질문 앞에 한 개인의 생애란 아침 이슬처럼 덧없이 짧다. 우리는 스스로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고, 기원을 결정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눈을 떴을 때 이미 하나의 이름이 주어졌고, 하나의 혈연이 얽혀 있었으며, 그 맥을 거슬러 오르면 필멸의 운명을 초월해 흘러온 수많은 생명의 대하(大河)가 숨 쉬고 있었다.
나는 나 이전의 모든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 이후의 모든 이들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를 현재라는 단 한 점의 시공간에 가두는 것은, 스스로의 영속성을 짓밟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단절된 개체가 아니요, 수백 년의 세대를 관통하여 유유히 흐르는 생명의 거대한 한 순간이다.
선조는 저 멀리 사라져간 타인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 안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이 남긴 생물학적 유산뿐 아니라, 부르던 이름과 언어, 뼈저린 기억과 숭고한 가치, 삶의 거친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리에게 이어져 있다. 우리가 선조를 기억하는 것은 지나간 과오를 미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절대적 조건을 엄숙히 승인하는 일이다.
가문 역시 그러하다. 단순히 우연한 혈연의 집합으로 칭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문이란 여러 세대의 영혼이 서로를 통과하며 빚어낸 하나의 장엄한 서사이요, 도도한 시간의 흐름이다. 족보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문자로 새긴 거울이요, 묘역은 그 시간이 대지 위에 뿌리내린 성소이며, 기억은 그 지나온 세월을 현재의 호흡으로 불러내는 주술이다. 후손은 그 성스러운 시간을 미래라는 미지의 바다로 운반하는 항해자다.
이 네 가지의 거룩한 고리가 맞물릴 때, 한 가문의 역사는 비로소 영원을 향한다.
우리는 지금 과거와 미래가 맞닿는 위대한 경계에 서 있다. 뒤를 돌아보면 수많은 이름들이 서성이고, 앞을 바라보면 아직 이름조차 얻지 못한 후손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 양쪽의 단애(斷崖) 사이에 선 파수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오만한 소유자도 아니며, 미래의 무정한 주인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선조에게서 빌려온 시간을 잠시 맡아 보존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고결한 유산을 함부로 소멸시키지 않고, 우리가 이 땅을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 그 위에 새로운 의미의 금은보화를 더하여 다음 세대에 온전히 넘겨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한 세대에게 부여된 가장 거룩하고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재물은 흩어지고, 땅은 매매되며, 화려한 건물은 잿더미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끊어진 기억의 계보는 그 어떤 정교한 기술로도 다시 잇기 어렵다. 그렇기에 역사는 기록되어야 하고, 이름은 보존되어야 하며, 기억은 의지할 장소를 필요로 한다. 기억은 마침내 대지 위에 머물 장소를 얻을 때 비로소 모진 세월을 견뎌낸다.
묘역은 단순히 육신이 묻히는 차가운 무덤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했음을 증거하는 가장 오래된 성채이자,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영혼의 나침반이다. 우리가 선조의 영면을 한곳에 모으고 하나의 묘원을 조성하려는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흩어져 허공으로 사라질 기억들을 한곳에 불러 모아 영원의 불을 지피는 것이다.
그 장소에는 과거의 눈물만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있고, 다가올 미래의 후손들이 서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듯,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지고 한 집안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 그 공간은 시간의 거대한 저장소가 된다.
가문의 진정한 긍지는 무엇으로 측정되는가. 조상이 거머쥔 벼슬의 높이나 쌓아둔 재산의 크기로 가늠할 것인가. 역사책에 이름 석 자 올린 위인을 몇이나 배출했는가로 그 가치를 재단할 것인가. 그것들은 한 조각의 역사적 사실일망정 가문의 본질은 될 수 없다.
가문의 품격은 오직 '기억을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난다. 자신의 기원을 뚜렷이 알면서도 그것에 맹목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것. 과거를 한없이 존중하되 과거의 미로 속에 갇히지 않는 것. 유서 깊은 전통을 묵묵히 계승하면서도, 거세게 몰아치는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응답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를 다음 세대가 온전히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할 언어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가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격일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선조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더 위대한 존재인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단지 더 길게 펼쳐진 시간의 맨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을 뿐이다.
우리 뒤에 도래할 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광활한 지혜를 가질 것이며, 우리를 스쳐 지나 또다시 그들만의 치열한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그 먼 미래의 날, 후손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척도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재물을 움켜쥐었는가 하는 헛된 물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리 이전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했고, 무엇을 남겼는가?”
그 엄숙한 질문 앞에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생애는 단 한 세대의 길이만큼으로 찰나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남기는 정신과 족적은 그 생애보다 훨씬 오래도록 살아 숨 쉴 수 있다.
한 권의 족보는 백 년의 풍파를 건너갈 수 있고, 하나의 묘역은 수 세대의 발걸음과 눈물을 기억할 수 있으며, 우리가 남긴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은 집안의 뼈대를 이루는 정신이 되어 먼 후일의 후손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호흡하느냐에 있지 않다. 짧은 생애를 어떤 영원한 시간의 연속성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느냐에 있다.
나는 나의 시작이 아니며, 우리 세대는 역사의 종착점이 아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세대일 뿐이지만,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굳게 이어주는 유일한 가교(架橋)다.
언젠가 우리 또한 선조의 자리에 누울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눈물로 바라보는 묘비의 이름들처럼, 우리 자신의 이름 역시 머지않아 차가운 과거형이 될 것이다.
그날, 우리에게 과연 어떤 기념비가 필요하겠는가. 휘황찬란한 석물이나 거창한 치사는 바람 속에 흩어질 뿐이다. 다만, 먼 훗날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우리의 이름 앞에 숙연히 서서,
“이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라고 가슴 뜨겁게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 단 하나의 기억이 끊어진 세대를 다시 묶어 세우고, 한 가문의 거대한 시간을 멈춤 없이 흐르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나간 과거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사무치게 기억하고, 현재를 무겁게 책임지며, 미래를 향해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생명의 불꽃을 현재의 치열한 삶으로 온전히 완성하고, 그 삶의 자취를 후손을 위한 찬란한 역사로 남겨주는 것.
가족은 비록 혈연이라는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될지 모른다. 그러나 혈연이라는 단출한 줄기만으로는 그 긴 세월을 버텨낼 수 없다. 기억이 혈연에 영원의 시간을 부여하고, 역사가 가족에게 고귀한 정체성을 불어넣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문을 깊이 사유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족보를 굳건히 보존해야 하는 이유이며, 선조의 묘를 지켜야 하는 이유이고, 먼 장날 후손들이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수많은 삶들이 피 흘리며 이어온 눈부신 연속에서 왔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거대한 연속의 한가운데,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현재에 서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마침내 다음 세대가 딛고 일어설 영원한 과거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무는 실로 명백하다. 우리가 대대로 이어받은 이 소중한 시간의 끈을 결코 허무하게 끊지 않는 것. 그리고 우리가 스쳐 지나간 그 쓸쓸한 자리에, 다음 세대가 스스로의 뿌리와 영혼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것.
오직 그것이면 충분하다.
한 인간의 생애는 찰나의 바람처럼 짧으나, 한 가문의 시간은 그 어떤 유한한 목숨보다 길고도 장엄하다. 우리는 그 머나먼 시간의 절대적 주인이 아니다. 단지 잠시 그 영광된 시간을 맡아 지키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뜨겁고도 무거운 시간을 묵묵히 다음 사람들의 손에 넘겨줄 때가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