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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일수록 지명속에 '맑을 청(淸)'자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충북 제천의 청풍호(淸風湖) 주변도 그러하다. 월악산, 소백산 등 골깊은 산과 넉넉한 호반의 절묘한 조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열두폭 동양화 병풍의 감동 이상이다. 제천은 봄꽃과 신록, 단풍과 물안개, 그리고 설경 등 계절마다 담아내는 자연의 빛깔과 자태가 뚜렷한 대표적 4철 기행지이다. 특히 부드러운 담수가 굽이굽이 절경을 연출하며 이뤄내는 멋진 호반 드라이브코스는 훌쩍 떠난 여정에 운치를 더한다. 5월에 찾는 청풍호 주변은 줄지어 늘어선 연초록 벚나무며, 햇살에 일렁이는 푸른 물결이 길 떠난 이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잡아 챈다. 마치 일상속에 굳어버린 심신이 청정 물길속에 한방울 잉크처럼 풀리기라도 하듯 대자연속에 용해되는 기분이다. 풍성한 볼거리에 번지점프, 암벽등반 등 즐길거리와 삼림욕 트레킹속에 만나는 산사(山寺)의 고적감은 초여름의 문턱 청풍호가 주는 싱그러움이다. < 제천=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hwkim@>
▶볼거리, 즐길거리 가득한 내륙의 바다 '청풍호'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잔잔한 호수가 평상심을 찾게 해주는 청풍호는 진정 머무르고 싶은 욕구를 일렁이게 하는 곳이다. 툭트인 언덕 벚나무 그늘 아래 앉아 미풍에 실린 아카시아향을 맡노라면 어느덧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자유인이 돼 있다. 물길, 숲, 하늘이 색상의 농담을 달리할 뿐 푸르름 일색인 청풍호는 그야말로 호안 구석구석에 보배를 품고 있다. 여행의 시작은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를 빠져 나와 597번 지방도에 오르며 시작된다. 구불구불 2차선 도로를 따라 금성쪽으로 10여분 내닫다보면 맨먼저 만나는 게 언덕배기의 기암괴석 군락, '금월봉'. '제천의 만물상'이라고도 불리는 금월봉은 본래 땅속에 묻혔던 것을 몇년전 우연히 발굴해 명소가 된 경우다. 수석처럼 솟아오른 바위들이 마치 금강산의 만물상을 축소해 놓은 듯 신비롭기만 하다. 금월봉을 지나 호반길을 달리다보면 드라마 '왕건' 촬영세트가 나선다. 호숫가 언덕배기에 고려초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마을과 예성강 하구 벽란도 등을 그럴싸하게 재현해 놓았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자동차 전용극장이 마련돼 청풍호의 미풍속에 여름밤의 로맨틱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왕건 촬영장을 빠져 나와 5분쯤 내닫다보면 반도처럼 삐져 나온 호안에 번지점프, 암벽등반, 수상비행기 등을 즐길 수 있는 청풍랜드가 자리하고 있고, 초여름 더위를 말끔하게 씻어주는 162m 높이 수경분수가 시원스레 물줄기를 뿜어올리고 있다. 건너편 청풍문화재단지에는 청풍호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옛가옥, 드라마 '대망' 쵤영세트장 등이 있다. 청풍대교를 되돌아 수산방면으로 달리는 길은 청풍호반 드라이브의 최고 코스가 펼쳐진다. 하지만 최근 낙석방지 작업을 하느라 길을 부분 통제 하고 있어 금수산자락 우회도로를 이용해야한다. 능강리 모퉁이를 돌면 마치 영화에서 본듯한 이국적 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친화적 테마콘도로 알려진 '클럽 ES'의 전경이다. 이곳에는 바위와 잔솔이 조화를 이룬 언덕배기에 스위스 샬레풍의 오두막집들도 구석구석 박혀 있어 마치 외국의 휴양지를 찾은 느낌이다. 때문에 클럽ES는 외국 현지 촬영의 대안지로 각종 영화나 CF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청풍호 전경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하지만 이곳은 회원만 출입이 가능해 구경을 위해서는 사전 연락(02-508-1323)이 필수다.
▶깊은 산속 산사의 정취 청풍호반 주변의 대표적 산행지로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북쪽자락인 금수산(1016m)을 꼽을 수 있다. '클럽 ES' 모퉁이를 돌아 능강계곡과 얼음골 들어가는 입구가 산행의 초입으로 이를 지나쳐 조금더 가면 진경동, 백운동 마을이 나선다. 왕복산행시간 5시간 소요. 빌딩숲속 도시인들이라면 산그림자에 둘러싸인 백운동 오지마을만 들르는 것으로도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금수산자락에는 '얼음골'이라는 대표적 피서지도 있다. 매년 4월초까지 얼었던 얼음이 초가을까지 녹지않는 냉혈지대로 자연의 신비감을 더한다. 금수산 청풍호 주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통일신라시대 고찰 정방사. 클럽ES 뒤 계곡을 따라 6km 남짓 산사 가는 길은 최고의 삼림욕 트레킹 코스이다. 특히 이맘때면 송화가루가 날리며 토해내는 솔향이 숲속을 진동해 맑은 기운을 더해준다. 사찰 입구에 이르러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병풍석 아래 자리한 가람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천년고찰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벼랑위 아담한 대웅전, 요사채가 그저 수수할 따름이다. 초파일 연등제작으로 분주한 요즘 정방사에는 큰 근심거리가 찾아들었다. 며칠전 사찰 법당의 주불로 봉안돼 있던 '목조관음보살좌상'(1689년 제작, 도지정문화재)을 도난당해 수심을 덜기위해 절을 찾은 중생들의 마음마저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 경관만은 여전하다. 월악산 능선과 소백산 청풍호가 한눈에 들어 오는 벼랑끝 절앞마당도 유구하고, 석간수 물맛도 변함없다.
▶가는 길= 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남원주 IC~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금성방면 좌회전 597번 지방도~금월봉~왕건촬영장~청풍랜드~청풍대교~청풍문화재단지~클럽 ES~정방사/금수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