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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픈 걷기명소 스크랩 여름 휴가철을 수놓을 전국의 오지마을 1 - 영월 와석리 어둔마을과
화이부동 추천 0 조회 20 09.09.24 16: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름 휴가철을 수놓을 전국의  오지마을 1


 
1.영월 와석리 어둔마을 과 마대산(1,052m)

                                                        ...............   ( 김삿갓 계곡 )

 

 

1) 어둔마을


경치가 빼어나며 그야말로 오지이다. 이곳의 남쪽 산록은 선달산(1,236m)과 어래산(1,063m)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심산유곡으로 대부분 무인지경의 골짜기이다. 김삿갓의 방랑벽을 잠재운 곳으로 그의 거처와 무덤이 있다.

와석리는 어래산과 마대산 사이를 흐르는 남대천의 중,하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이 발전을 하지 못하고 오지로 남겨져 있는 것은 행정의 사각지대이기 때문, 찻길에서 20리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열악한 교통사정이 겹쳐 더욱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이곳의 특색은 한마디로 절경이라는 점. 산과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바위 병풍과 반석으로 이어지는 계류는 그야말로 별천지여서 "무릉계"라는 찬사를 떠올리게 한다.

무릉계라고 극찬한 이는 김삿갓. 희대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영월의 산수미에 반해 동강의 삼옥리와 영월의 와석리의 안쪽 골짜기인 어둔리에서 수 년간 정착하며 살았다고 한다. 어둔리 일대에는 일년 내내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지로 버려졌었는데 그 절경이 최근에 알려지면서 외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오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곳은 들목인 들모랑이에서 골 어귀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최근에 영월군에서 김삿갓 유적지를 정비한다고 진입로를 포장해놨다. 골짜기가 넓어지면서 민가가 나온다. 이곳의 이름은 싸리골, 이런 산골에서 논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마을에는 논이 있다.

이 마을에서 반듯이 먹어봐야 하는 것이 있다. 물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싸리골에서 좀더 계곡으로 들어가면 곡골, 싸리골에서 곡골 일대와 노루목에 이르는 10리 구간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


김삿갓의 무덤이 있는 노루목까지는 들목 인 들모랑이 부터 20리 거리인 8km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가 살던 집터는 집터가 있는 어둔리는 노루목에서 5리 정도를 마대산 동쪽 골짜기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노루목에는 "김병연지묘"라는 작은 묘가 있다.

노루목에서 김삿갓이 살던 어둔리의 집터로 가다보면 성황당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로 접어들면 김삿갓이 살던 집터로 가는 길인데 초여름에 찾아가면 온갖 야생화가 버려진 묵밭에 피어있다.

 

2) 마대산

 

마대산(1,052m)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김삿갓게곡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태백산에서 이어져온 백두대간이 고치령에서 다시 등날을 밀어 올려 1,032m봉에 이르러 남서쪽으로 휘돌아 소백산으로 이어진다. 마대산은 1,032m봉에서 북쪽으로 가지쳐 달아나는 능선상의 끝머리에 솟은 산이다.

 

   마대산 등산코스는 김삿갓유적지가 있는 와석리 노루목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노루목에서 어둔이계곡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남릉상 어둔이재를 경유해 다시 어둔이계곡으로 내려오거나, 또는 정상에서 북릉을 타고 쌍소나무가 있는 삼거리에 이르러 선낙골을 경유해 다시 노루목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고씨동굴에서부터 약 2km 거리인 대야리 맞대골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인기 있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수년 전 계곡 안에 미륵대도 영월선원이라는 대형 건물이 들어선 후부터 등산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마대산을 오르는 새 코스로는 옥동리에서 남동쪽 골짜기 안으로 2.5km 거리인 댓마루 마을에서 산제당터~약수터를 경유해 처녀봉(930m)에 오른 다음, 처녀봉에서 선낙골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이 코스는 노루목에서 선낙골을 경유하여 처녀봉에 먼저 오른 다음, 역순으로 약수터~산제당터~댓마루 마을을 경유해 옥동리로 내려와도 된다. 그러나 옥동리~댓마루 사이 수렛길을 걸어 들고나는 과정이 지루하고 긴 탓인지 아직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래서 이 코스의 백미인 처녀봉만을 노루목을 기점으로 쉽게 다녀오는 코스가 영월 산악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코스는 선낙골을 경유해 처녀봉에 먼저 오르기보다는 김삿갓 생가터가 있는 어둔이계곡으로 정상을 오른 다음, 북쪽 1,030m봉을 경유해 처녀봉으로 내려와 다시 노루목에 이르는 것이다.

 

 

  3) 마대산의  북동릉상 처녀봉 새 하산코스

 

   김삿갓유적지 기념비가 있는 어둔이계곡 입구는 수십 개의 장승으로 장식되어 있다. 마지막 장승이 있는 제당 앞에서 왼쪽으로 휘도는 오솔길을 따라 20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김삿갓생가터' 라고 쓰인 안내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안내판 방향 산길을 따라 3~4분 거리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너면 곧이어 옛날 김삿갓(난고 김병연)이 숨어 살던 집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김삿갓이 살던 집을 뒤로 하고 무성한 수림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로 발길을 옮겨 20분 더 오르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왼쪽 길을 따라 6~7분 거리에 이르면 계곡길이 끝나고, 오른쪽 지능선길이 시작되는 휴식장소가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왼쪽 15m 아래로 보이는 계류로 내려가 식수를 준비한다.

 

   거으이 북쪽으로 오르는 능선으로 20m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외딴 무덤이 나타난다. 무덤부터 능선은 가팔라진다. 신갈나무 군락이 하늘을 가리는 능선길을 타고 40분 오르면 주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발길을 옮겨 5~6분 더 오르면 정상이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정상에서는 태화산, 응봉산, 망경대산, 곰봉, 어래산, 형제봉 등이 휘돌아 보인다. 곰봉과 어래산 방면으로는 단양군 영춘면 끝인 의풍리가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북서쪽 맞대골 아래로는 태화산 산자락에 있는 고씨동굴 일원이 아름다운 동강과 어우러져 한 폭 그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처녀봉으로 가는 길은 북동쪽 주능선길을 탄다. 정상에서 4분 거리인 올라왔던 삼거리를 지나 8~9분 거리에 이르면 선낙골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는 쌍소나무 삼거리에 닿는다. 쌍소나무 삼거리에서 계속 주능선을 타고 20분 가량 나아가면 해발 1,030m인 전망바위 꼭대기를 밟는다.

 

   전망바위에서는 남동쪽 아래로 선낙골과 노루목 일원이 내려다보이고, 동으로는 처녀봉이 멀리 곰봉(930m) 정상과 함께 마주보인다. 전망바위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은 가파르다. 능선으로 발길을 옮겨 10분 거리에 이르면 옥동리 방면 산제당터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는 삼거리 안부에 닿는다.

 

   삼거리 안부에서 동쪽 오르막길로 10분 더 오르면 노송군락으로 뒤덮인 처녀봉 정상이다. 처녀봉 일원은 송이버섯 군락지로 알려져 있다. 남동릉을 타고 30분 거리인 653m봉을 넘어 20분 더 내려서면 선낙골 계류가에 닿는다. 계류가에서 남동쪽으로 패어져 나간 계곡길을 따라 20분 내려서면 노루목에 닿는다.

 

   노루목 김삿갓기념비를 기점으로 어둔이계곡을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정상에서 1,030m봉~처녀봉~658m봉~선넉골을 경유해 다시 노루목에 이르는 총 산행거리는 약 9km로 5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마대산개념도

 

 


▶ 찾아 가는길
어둔 마을은 영월읍에서 30km 떨어진 곳이지만 들모랑이 까지 관내버스가 다니므로 들모랑이 까지는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다.

옥동 초등학교 주석분교 옆에 노루목상회를 기점으로 남대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데 입구에 김삿갓 조형물을 세워놓아 길손을 이정표 구실을 한다. 들목에서 와석리 노루목까지는 20리를 걸어야 하고 노루목에서 어둔 마을까지 2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최근에 영월군청에서 관광지로 개발을 해 진입로가 모두 포장이 되었고 노루목에서부터 김삿갓이 살던 집터까지는 옛길 그대로다.

 

 

 

 

 

 

 

 

 

 4)  난고 김삿갓(김병연) 유적지  

김삿갓유적지는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과 소백산의 양백지간으로 강원도와 경상도 경계인 선달산에서 발원하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지나 김삿갓유적지로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쳐흐르고 가을철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드는 경치좋은 곳이다.
  
와석리의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와인리와 거석리를 병합하여 그 첫차를 따서 와석리라 명명하여 불리어 오고 있으며, 노루목의 자연 부락명칭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와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의 경계지점의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이곳의 노루목에는 천재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선생의 묘소와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다. 선생은 원래 전남 화순에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선생의 둘째 아들이 시신을 거두어 바로 이곳 골짜기에 묻어주었다.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씨의 노력으로 그의 묘소가 비로소 확인되었다. 그 이후 김병연 선생의 문학정신과 예술혼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로, 1998년부터 매년 10월초에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열리고 있으며, 묘역 주변에는 108개의 장승과 33개의 솟대를 설치하였다.

김삿갓의 대표시를 선정하여 자연석을 이용한 시비 거리를 조성(시비 12개소) 하고, 이외 방랑시인 김삿갓노래비 건립과 목조각 조형물 설치 등 김삿갓유적지를 관광자원화하였다. 한편, 계곡 주변에는 조선민화박물관,  2001년 하반기 개관 예정인 묵산미술관과 토종박물관 건립 예정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공간이 들어서고 있다.
등산객의 편의를 위하여 개설한 마대산(해발 1,052m) 등산로는 김삿갓묘역, 주거유적지 등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며, 계곡의 맑은 물과 아기자기한 폭포수, 가을단풍은 장관을 이룬다.

조선민화박물관을 출발하여 유적지로 연결되는 곰봉(해발 930.3m)등산로는 암릉구간의 바위가 곰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곰봉이라 일컫으며,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은 한마리 용이 되어 꿈틀거리는 형상을 맛 볼 수 있는 등 김삿갓계곡의 좌우에 위치한 등산로는 외지 산악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날은 춥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인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집문당 발행 "방랑시인 김삿갓 시집" 참조.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 출처: http://myhome.shinbiro.com/~yoonas/ -

○ 알려진 김삿갓 방랑코스 또는 유적지  
ㅇ 출생지 :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
ㅇ 홍경래난에 따른 피신코스 :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경기도 광주,강원도 평창, 강원도 영월 삼옥리(三玉里)
ㅇ 영월의 집터 : 영월군 하동면 어둔리 선래골(선낙동)-생가복원 예정
ㅇ 묘소 :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향토박물관 건립 예정
ㅇ 기념시비 : 충북 단양군 영춘면 강원도남부와 접경지역,광주 무등산공원
ㅇ 말년을 보내며 생을 마친 곳 :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적벽(赤璧)초분지와 망향정이 있음.
ㅇ 시(詩)에 나타난 곳 : 금강산 내금강 등
ㅇ 김삿갓계곡 - 묘역(6km) : 김삿갓 문화의 거리 조성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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