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 발달사 (5)
악보의 발달
어떤 상황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문명과 야만의 차이를 민족이 가지고있는 문자의 유무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문자의 발명이 인류의 문명을 꽃 피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과 같이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의 발명 역시 음악발전을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악보는 오랜 기간동안 조금씩 발전되어서 오늘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비교적 간단한 기호로 이루어진 네우마 악보로부터 오늘날의 5선보와 같은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음악 분야에서 가장 낙후된 부분이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 부분이다.
똑같은 악보를 보면서, 또 악보를 틀리지 않게 연주하면서도 훌륭한 연주가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연주가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심오한 음악성과 감정은 악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음악적인 기록의 한계인 것 같다.
앞으로 악보가 더 발전한다 할 지라도 이런 부분은 보완이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마치 음식의 맛이나 아름다운 색깔을 말로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네우마 악보는 6세기에서 10세기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14세기경까지 사용되었다.
모양새는 4선보도 있었고 6선보도 있었다.
추측하기는 현이 4개인 악기는 4선보를 사용하였고 현이 6개인 악기는 6선보를 사용하였으리라 짐작케 한다.
프랑스의 파리에 가면 문화의 중심지답게 유서 깊은 관광명소가 참 많이 있다.
"노트르담" 사원도 그 중 하나다.
1163년에 기공해서 무려 82년의 대 역사 끝에 준공한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대표적인 고딕 건축물로 꼽힌다.
프랑스가 중세 유럽의 문화를 대표하면서 파리의 "노트르담"성당은 유럽 음악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레오낭"과 "페로땅"으로 대표되는 노트르담 악파는 중세기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단조로운 단 선율 음악으로부터 3성이나 4성의 다 성부 음악을 도입하고 발전시킨 장본인들이 바로 노트르담 악파였다.
이때부터 비로소 다성 음악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 다성 음악을 "오르가눔"이라 부른다.
모든 새로운 것들의 처음이 그렇듯이 엄격하고 보수적인 프랑스 성직자들 때문에 "오르가눔"도 심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화음으로 이어져 음악의 3요소중의 하나로 자리 매김 하게 되었다.
또 하나 노트르담 악파의 공로가 있다면 그것은 악보를 발전시킨 일일 것이다.
단 선율이나 아니면 같은 멜로디를 조금 뒤에 따라나오는 윤창 즉 "캐논"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워서 부를 수 있고 전승도 가능했다.
그러나 노트르담 악파가 개발한 "오르가눔"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선율의 변화가 너무나도 복잡하여 효과적으로 개량된 기호법이 있어야지만 이 노래들을 쉽고 정확하게 가르치고 전수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들은 자연히 악보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부터 5선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음자리표, 마디표, 조기호등은 세월이 많이 지난 바로크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쓰이기 시작하였다.
악보의 발달은 음악을 기록으로 정확히 남길 수 있어서 지금도 그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수가 있다.
만약에 기원전 10세기경에 이런 음악의 기호법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시편에 붙여졌던 곡들을 원형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악보는 그로부터 2천 여 년이 지난 후에야 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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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인의 글방
서양 음악 발달사 (5) - 악보의 발달
임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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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2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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