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대와 우려를 낳았던 네오파이트가 드디어 그 속살을 드러냈다. 이미 마크 콜먼의 방한만으로도 MMA매니아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을 만큼 네오파이트가 대중에게 던져 놓은 '관심거리'는 다양했다. 스피릿 MC와 비견되어 "국내 메이저 이종격투기의 양대 단체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들을 지대한 관심으로 바꾸어 놓은 카드로는 마크 콜먼과 웨스 심즈의 경기, K-1 GP 2003 USA 수퍼파이트 참가자 스코트 시리와 전일본격투기 3연패, 판크라스 네오블러드 준우승 경력의 오쿠다 마사카츠, 전통무술 택견명인전 4연패의 홍주표, 명실상부한 국내 메이저이종격투기 초대 챔프 이면주, 전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양진호 등이 있었다.
네오파이트에 참가 선수들. 화려하고 개성있는 등장씬들이 인상적이었다
-80kg 경기 요약
소림권, 태극권, 유도, 택견 등 기존의 수련종목만을 들고 나온 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그와 반대로 이종격투기 룰의 범위 안에서 수련한 선수들은 대부분 선전을 펼쳐 1승 이상을 거두었다. 최종 4강에 오른 임재석, 홍주표, 스캇 시리, 오쿠다 마사카츠외에도 특공무술, 태권도, 유도를 두루 섭렵한 김종만 선수의 선전도 돋보였다. 4강에 오른 임재석 선수와의 2차전에서 두 선수는 수준급의 유술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환호하게 했었다. 새롭게 얼굴을 내비친 공권유술의 김형민 선수와 날카로운 펀치가 돋보이는 최용한 선수도 눈여겨볼 만했다.
-80kg 예선 16강전
A조 제 1경기 고용석 vs 김종만 승(1R 기무라)
제 2경기 이순석 vs 임재석 승(1R 암바)
B조 제 1경기 김주원 vs 홍주표 승(1R 리어네이키드 초크)
제 2경기 최길종 vs 최용한 승(1R TKO)
C조 제 1경기 채인묵 vs 스코트 시리 승(1R TKO)
제 2경기 박성우 vs 박용현 승(1R 프론트 초크)
D조 제 1경기 김대원 vs 오쿠다 마사카츠 승(1R TKO)
제 2경기 임민규 vs 김형민 승(1R 토우 홀드)
-80kg 예선 8강전
A조 김종만 vs 임재석 승(1R 암바)
B조 최영한 vs 홍주표 승(1R 암바)
C조 박용현 vs 스코트 시리 승(1R 리어네이키드 초크)
D조 김형민 vs 오쿠다 마사카츠(1R TKO)
-격투기의 선진에 배우라-
현재 우리 격투기 수준이 세계 수준과 아직 동떨어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림픽을 겨냥한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했던 과오 때문인지 아직 세계를 논할 만한 뚜렷한 무술(태권도와 유도, 레슬링 등 올림픽 종목을 제외하고)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아직 배울 점도 많고 개선해 나아가야 할 점도 많다는 것이 한국 격투계의 가능성이고 원동력일지 모른다.
우리가 두 사람의 외국인 파이터에 관심을 갖는 이유 또한 일맥상통하리라 본다. 무력에 관한 객관적 검증이 된 그들을 바로미터 삼아 현재 한국 격투계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스코트 시리와 오쿠다 마사카츠가 이번 네오파이트에 출전한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스코트 시리의 경우 예선 1차전 대 채인묵 경기와, 2차전 대 최용한 경기에서 보여준 타격과 그라운드의 안정된 테크닉과 파워는 이미 이종격투기에 규격화된 선수라는 느낌을 준다. 체계적인 수련이 밑바탕이 된 듯 스탠딩에서의 파워있는 타격과 그라운드로 넘어가는 유연한 몸짓은 세계 정상급선수들이 포진한 K-1 GP에 출전할 만 했다. 두 번의 경기 모두 무리 없이 승리를 이끌어냈다.
오쿠다 마사카츠는 1차전 대 김대원 경기에서 유도를 주종목으로 하는 김대원 선수가 의외의 펀치 러쉬를 쏫아붇고 테이크 다운을 시도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링 케리어의 우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언뜻 열세로 보였으나 상대의 허술한 가드를 파고드는 오른손 짧은 스트레이트 단발로 턱을 강타, 순식간에 상황을 반전시키고 엎드린 채 후두부를 가드하는 김대원 선수를 싸커 킥으로 마무리 TKO승을 거두었다. 2차전 대 김형민 경기에서도 상대방의 체력적 열세와 미숙한 타격을 물고 늘어져 가라데 특유의 근거리 파이팅으로 상대에게 피할 거리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컴비네이션 공격을 시도해 레프리 스톱으로 TKO승을 거두었다.
오쿠다 선수를 아는 사람들은 수준급의 유술 실력을 겸비한 그가 의도적으로 가라데 스타일을 고집하여 승부를 어렵게 풀어간 것에 대해 의아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만큼의 여유가 링이라는 전장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들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또한 승기를 잡았을 때 늦추지 않고 몰아치는 공격의 결집력 역시 강한 선수로 발돋움하기 위해 겸비해야할 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굳이 외국 선수들을 데려와서 남에 나라 잔치를 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우물안 개구리는 바깥세상을 동경할 뿐, 그 험난함을 이겨낼 용기나 지혜와 경험 등은 가질 수 없다. 현재의 미숙함은 선진의 우수함을 배워 보강하고 한 층 더 나은 모습으로 태어나야만 한다. 지금 무술계는 상업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종격투기의 활성화로 인해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아지는 일대 변혁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겨우 6개월 남짓 한 사이에 우리가 겪은 변화의 속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대중들의 무술에 대한 호기심은 아마도 격투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무술 분야의 수요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러한 기대를 이끌고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우수한 인재들의 양성이고 질적인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나보다 나은 자의 가르침은 오지(奧地)에서라도 배워와야 할 시기인 것이다.
-본래의 스타일을 버려라?-
-80kg급 출전 선수를 살펴보면 소림권, 태극권, 결련 택견, 합기도 등 아직은 순수 무술(격투기 시합에 익숙하지 않은)의 범주에 속하는 무술과 유도, 태권도 등 스포츠화된 무술을 익힌 선수가 대다수였다. 소림무술 최길종 선수는 태권도 선수 출신의 최용한 선수와의 1차전에서 중국무술 특유의 자세를 유지하며 시합에 임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으나 좌수가 중단 이하로 내려오고 우수가 하늘을 향해 있는 상태라 일반적인 가드보다 허술했고 기습적으로 날린 최용한 선수의 빠른 라이트훅이 안면에 꽂히면서 너무나 쉽게 패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다른 경기에서도 드러났다. 결련 택견의 박성우 선수의 경우엔 대치상황에서 품밟기를 보여주며 택견 스타일을 내비치나 싶었지만 실전 우슈 박용현 선수의 로우킥 공격에 의해 제대로 된 발질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라운드 상황에서도 이렇다할 가드 기술 없이 박용현 선수의 프론트 초크에 쉽게 무너져버려 아쉬움을 주었다. 많은 관객들이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대동소이한 스타일을 벗어나 그들을 꺾어줄 '숨은 고수'를 기대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예외는 없었다. 반대로 예선과 4강 결정전에서 승리한 선수들 사이에서도 공통점이 보인다.
A조 임재석 - 킥복싱, 브라질 유술
B조 홍주표 - 택견, 유도, 브라질 유술
C조 스코트 시리 - 킥복싱, 그래플링
D조 오쿠다 마사카츠 - 진무관 가라데, 브라질 유술
이들이 우세한 이유는 공통으로 삼는 유술 내지는 그래플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수련해온 종목들이 갖는 이점은 여러 가지 포지션에서의 다양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종격투기 룰이 인정하는 유효범위에 가장 가까운 공격을 할 수 있는 수련을 거친 자들 인 것이다.
택견의 최고수 홍주표 선수의 경우 짧은 기간이나마 룰에 적합한 플레이를 하기 위해 별도의 유술 트레이닝을 받고 두 경기 모두 유술기로 승부를 냈다. 택견을 주종목으로 하는 그가 왜 날카롭고 화려한 발질을 버리고 그의 경력과 반하는 유술기를 선보였을까. 택견을 수련자와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은 “택견의 홍주표는 없고 브라질 유술의 홍주표만 링에 있었다”라며 서운함을 금하지 않았다. 허나 홍주표 선수는 본인의 뜻이 명확히 선 듯 이종격투기의 룰에 스스로 동화했다.
이종격투기는 하나의 종목이자 단일 무도시합이라고 보는 것이 어쩌면 빠른 이해를 도울 지도 모르겠다. 현재 가장 넓은 범위의 룰에서 행해지는 시합. 이종(異種)이란 말 역시 타 무술 간의 종목을 초월한 시합이라기보다 이젠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다른 종류의 무술이 겨루는 경기으로 본다. 어떤 무술이 강하고 약하고는 규정지을 수 없다. 다만 그 시합 룰에 익숙하고 승리에 근접할 수 있는 무술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검증은 대회가 계속되고 선수층이 안정된 실력으로 자리잡을 때 즈음이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만약 원투 스트레이트를 30년간 뼈를 깎아가며 연마한 자가 어떤 상황 어떤 자세에서도 가공할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릴 수 있다면 그가 강한 것인가 원투 스트레이트가 우월한 것인가 답을 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