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기회는 없다.
약 두 달 전부터 왼쪽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엉덩이부터 발꿈치까지 뒤쪽으로 찌릿찌릿 전기오는 것처럼 쥐나는 것처럼 저리기 시작했다. 특히 서있거나 앉아 있으면 통증이 심했다. 장단지에 하지정맥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지 염려되어 순천 안아파병원에 가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참고 살았는데, 정작 6/14 날짜가 다가오니 겁이 났다.
그래서 늦게라도 연습도 하면서 한방 침치료를 병행하였다.
의사는 당장 중단하라고 하였다.
최소 3주 길면 3 달 걸린단다. 정말 3달 걸리면 내 생활리듬은 완전히 망가지겠지만.
아무튼 하프대회 마치고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동지가 없다.
심지어 먼저 제안했던 김비제이도 안 보인다.
동냥하듯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연락하여 연습을 청하였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봉강 언덕을 두 바퀴하였다.
그래도 20킬로 정도를 2번 정도 하고 말았다.
몸은 아프죠. 연습은 턱없이 부족하죠.
이제 방법은 자가충전 방식으로 천천히 즉 제한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세시반경에 광주상무시민공원에 도착했는데 벌써 달림이들이 나와서 몸 풀고 식사하고 사진찍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땀나게 준비하였다. 먼저 마찰부위에 바세린을 바르고, 얼굴과 다리에는 썬크림을 바르고 배번 한 장은 배낭에 다른 한 장은 앞가슴에 달았다. 울트라는 배번도 두 장이나 된다.
식사는 하지 않았다. 늦은 식사는 출렁거리게 될 것이고 곧 배가 아프게 될 것이기에.
의무대에서 소염진통제인지 뭔지 바세린 같은 것을 바르니 시원한 자극이 온다.
이것이 부적이 되어 골인까지 아프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혹시 못 돌아 오더라도 출발 기념사진은 필요하지 않을까?
처음 2킬로는 아주 걷다시피하여 이게 울트라인가 싶었는데
이제 킬로당 6분대 이상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우리는 과속하면 끝이다.
8분대를 유지해야 살아올 수 있다.
그런데 원어민 제임스를 만났다. 지금은 학원이 아니라 순천대 어학원에서 근무한단다.
이 친구도 마라톤에 빠져 대회장마다 꼭 만나게 된다.
키도 크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기록도 좋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니까 적은 나이가 아닌데 아직 펄펄하다.
오늘도 100 킬로에 12시간이 목표라고 하니까 대단하다.
문제는 킴비제이가 이 친구와 함께 달리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과속임이 분명한데...
한참을 달리다가 김샘을 다시 만났다.
석양을 등에 지고 영산강 상류를 따라 달리는 기분이나 주변환경은 다른 외국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
햇빛에 비치는 잔물결이 마치 간난어린애의 손짓처럼 귀엽고 앙증스러웠다.
강변 고수부지에는 잔디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많이 만들었고 쉼터로 정자로 훌륭하였다.
다만 이용하는 손님들이 적어 아쉬었다.
멀리 북광주 톨게이트가 보인다.
신용동. 처음 들어보는 동네이다.
부근에 김샘의 여동생이 사는데 공기 좋고 주택지로서 안성맞춤이란다.
여기서 우회전하고 담양 방향으로 꺽어 다시 망월동 공동묘지로 가야한다.
달빛이 좋아 라이트도 필요없다,
혼자 달리는 것도 좋고 둘이서 혹은 셋이서 서로의 호흡을 느끼면 달리는 것도 좋다.
상대방의 땀냄새마저 나를 자극한다.
나는 51.8 킬로이지만, 100 킬로에 도전하는 여자분들도 많다.
듣자하니 75세 할아버지가 이번에 100킬로에 함께 한단다.
위암 수술하여 먹는 것도 적은데도....
글쎄, 무엇이 인생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전하는 삶, 이것도 한 판의 인생이 아닐련지.
이것이 행복이고 이것이 한 판 인생 아닌가!
이것이 욕심을 비운 자들의 행복한 주말 나들이가 아닐까?
언젠가 아내도 나의 이런 철학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날이 올까?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꿀꿀하면 운동화 하나에 팬티 한 장만 걸치고 대자연 속으로 달려보자.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대자연의 정기를 온몸에 가득히 채우자.
사실 이상스럽고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풀코스보다 훨씬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목표 시간을 정해두고 킬로당 시간대를 따지면서 하는 달리기보다는
그저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오면 성공인 달리기,
함께 달리는 사람들과 긴 시간 호흡과 인생사를 나눌 수 있는 달리기가 울트라인 듯하다.
드디어 반환점, 담양인지 무등산 입구 즉 행정상 광주시에 속하는지 모를 작은 단위농협 앞에서 김샘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래떡과 물 두 병으로 식사와 급수를 마쳤다.
양말을 벚어 보니 아직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다.
지난 삼 주 동안 연습을 한 번도 안했다는 김샘이 정말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스럽다.
사실 체중이 나처럼 70이 넘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60kg가 안된다해도 연습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무플 고장이 나면 말리지 않은 내가 엄청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다시 김샘이 먼저 출발했다.
반환점 부근의 갈비집에서 손님들이 이를 쑤시며 우르르 몰려 나왔다.
어두운 밤이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미친 놈들'과 함께 부러움이 묻어 나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처리를 부러워 하면서도, 항생제 사료 먹고 자란 소.돼지를 먹는 행복해하는 '미친 놈들'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달리니 (사실 걷기보다 조금 빠른 속도이나 시간이 흐르면 엄청난 차이이다.) 5.18 묘지 입구에서 깜빡거리는 불빛이 보인다. 혹시 김샘이나 싶어 속도를 내어 보니 다른 분이다.
경기도 송탄에서 단협 조합장을 하는 분이고 나보다 한 살 위다.
충청도 느린 말투가 배어 있어 그런지 달리기도 그런 식이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망월동 묘지를 향해 묵념하는 것을 깜빡했다. 명색 5.18 기념 대회인데...)
막대사탕과 초코릿을 건내 주었다.
작은 언덕은 같이 걸었다가 내리막길은 다시 달렸다.
십여년 했은데 울트라 몇 번 했단다.
이야기에 몰두하다가 삼거리에서 앞꼬리를 놓쳤다.
그러나 둘이라는 느낌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
바닥에 보니 화살표가 그려져 있어 이게 맞겠거니 하고 좌회전하였다.
약 300미터를 가다보니 길을 잘못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누구도 되돌아가자 소리를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몇 백 미터이건 정식 코스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마음이 개운치 않다.
늦은 밤 동네 아낙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 밤에 뭐하시나요?' 물었다.
'달리기 시합요.'
동문서답에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멀리 불빛을 보면 크게 보아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큰 도로를 만났다. 분명히 좀 더 짧아 진 것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정식 100 킬로를 도전해야할까?)
다시 김샘을 만나 에너지 보충하고 영산강 하구둑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원한 밤길 마라톤, 멀리 도시의 불빛이 우리 영혼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제 이 좀 지루한 둑방길을 달리면 된다.
헨드폰을 꺼내 멜론 음악을 들으면서 몸을 밤바람에 던지면 된다.
팔은 바람을 스치듯 가볍게 흔들기만 하면 된다.
김샘이 서서히 힘들어 한다. 자주 멈추어 걷는다.
'샘, 걸으면 제한 시간 8시간 넘는다.' 고 말하자 나더러 먼저 가란다.
그러나 같이 달리는 사람도 거의 없는 이 고요한 밤, 어떻게 혼자 두고 갈 수 있나! 인간이 아니지.
그러나 정말 걸으면 대책없다. 참, 막막하다. 몇 번을 다독거려 걷다가 달리기를 반복하였다.
사실 달리기는 어려 조건으로 보아 나보다 김샘이 한 수 위다.
나이나 체중, 체형 등으로 보아.
그러나 오늘밤 그는 울지 않을 뿐 후회와 반성이 가득하리라.
다시는 울트라를 하지 않겠노라고 몇번이고 다짐하였다.
반환점에서 3시간 20분 찍고, 40 킬로 지점에서 6시간 찍었다.
지금 7시가 넘었다.
이제 약 오킬로 남았을까?
사실 기록을 단축 시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걸어서 골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달릴 힘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라토너답게 제자리라도 달려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거짓말 같지만, 왼쪽 다리의 통증, 즉 좌골 신경통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걷기와 서있을 때만 고통이 심하다.
내가 불편한 것은 양 가랭이가 마찰하여 피부가 쓰리다. 땀에 젖은 손으로 만지면 따끔거리다.
이 고통이 다른 고통을 잊게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이통치통!
나도 모르게 김샘을 나두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미안함과 한편으로 달림이의 사명감으로.
용서하라. 김선생! 미안하다. 김비제이.
다행히 곧 유도요원을 만났는데 이제 2 킬로 남았단다.
김샘에 대한 미안함이 멀리 달아났다. 걸어와도 8시간 이내에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치평동 시내도로를 달렸다.
서울에서 온 들과 함께 달렸는데 길을 다시 잘못든 것이다.
광주를 자주 다닌 나도 모르니 어찌 하랴!
한 블럭을 더 돌아 왔다. 길을 잃는 것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것도 울트라의 필수코스일까?
억울한 느낌이 있었지만, 일부러 처음 출발했던 그길로 다시 가니 위해 길을 건너고 육교를 지났다.
드디어 피니시 라인,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포토존에서 할 일을 안내해 주었다.
차례 차례 골인 장면에서 다양한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두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향하며 팔을 들었다.
왜 달렸을까?
길이 있기에.
100 킬로. 진정한 울트라의 거리이다.
두렵다.
그러나 사나이로서 마라토너로서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다.
남선생도, 최선생님도, 회장님도 했잖는가?
이 희망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 밖에 없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오늘밤처럼 그저 밤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즐기면 될련지.
그것은 해 보아야 알 것이다.
첫댓글 안아파병원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