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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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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 격언, 명언들. 스크랩 漢字成語(한자성어)
이영자 추천 0 조회 30 10.01.16 11: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漢字成語(한자성어)

유래가 있는 고사성어

佳人薄命(가인박명) : 용모가 너무 빼어나면 운명이 기박하다.

<아름다운 가><사람 인><엷은 박><목숨 명>

☞  소식(小食)은 그의 시 『박명가인(薄命佳人)』에서 자신이 항주(杭州), 양주(楊州) 등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본 어여쁜 젊은 여승(女僧)의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 시절을 생각해 보니 미인의 운수가 기박한 것 같다고 읊은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지니고 있어서 능히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처지의 사람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도 기구한 길을 걷게 되는 경우를 가리켜 말한다.  미인박명(美人薄命)도 같은 말이다.


刻舟求劍(각주구검) : 칼이 물에 빠지자 나중에 배가 움직일 것은 생각지도 <새길 각><배 주>      못하고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해 두었다가 칼자국 <구할 구><칼 검>     기준으로 뱃전 부근에서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                           로 시세의 흐름에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하고 있다.

☞  초나라 사람이 칼을 껴안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옆의 사람들이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신을 팔다가 배가 강 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껴    안고 있던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앗, 큰일났다!”

    사나이는 외치며 뱃전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칼은 이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한 사나이는 주머니칼을 꺼내 떨어진 방향으로 뱃전에 자국을 내어 표시하    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칼이 여기에서 떨어졌거든.  하지만 표시를 해 놓았으니까 이제 안심이     야.”

    잠시 후 배가 언덕에 닿았다.  사나이는 곧 표시해 놓은 뱃전에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배는 사나이가 칼을 떨어뜨린 곳에서 멀리    이동해 왔으므로, 칼이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배에 표시를 해서 칼을 찾으려 한다(刻舟求劍).”며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肝膽相照(간담상조) : 간과 쓸개를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  <간 간>  <쓸개 담>    놓고 격의 없이 친하게 사귐을 일컫는 말이다.

<서로 상><비출 조>                          

☞  궂은 일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람의 신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서로    의 쓸개와 간을 꺼내 보일 정도로 터놓고 이야기하며 언제까지나 우의를 지키자    고 약속하지만 친구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모른척하는 사람이 많다.  한유(韓    愈)는 평생 맹교(孟郊)나 가도(賈島)와 같은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아마도    여러 번 직면했던 곤경 덕택에 참된 우정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익힌 결과일 것이다.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地銘)에서는 먼저 유종원(柳宗元)의 선조의 사적부터 설    명하고, 그 사람됨과 재능과 정치가로서의 업적을 칭찬하고 나중에는 그 우의가    두터움을 찬양하였다.


改過遷善(개과천선) :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고 새롭게 착한 사람이 된다는  <고칠 개><허물 과>     뜻이다.

<옮길 천><착할 선>

☞  주처(周處)의 아버지 주방(周紡)은 동오(東吳)와 파양(鄱陽)의 태수를 지냈으나    불행히도 주처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잃은 뒤부터 점점 외곬으로 빠져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    다.

    또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 사람들은 대적하지 못할 정도여서 걸핏하    면 남을 두들겨 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주처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과감히 고쳐    서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痛改前非 重新做人 통개전비 중신주인)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하여 모두들 의식주에 대한 걱정없이 사는데, 왜 여러분들    은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오?”

    이 때 어느 대담한 마을 사람이 대답했다.

    “세 가지 해로움도 제거하지 못했는데 어찌 태평을 논할 수 있겠나?”

    “세 가지 해로움이라니요?” 주처는 이상히 여겨서 물었다.  “남산에 있는 사    나운 호랑이, 장교(長橋)에 있는 교룡(蛟龍), 그리고 주처 자네를 합하여 세 가지    해로움이라 하는 걸세.”

    주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는 더욱 바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굳혔     다.  이때부터 주처는 뜻을 세우고 글을 배웠다.  그 후 십여 년간 덕과 학문을    닦고 익혀 마침내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다.


乾坤一擲(건곤일척) : 하늘과 땅을 향해 한번에 내던진다는 뜻으로 천하를   <하늘 건> <땅 곤>    잃느냐 얻느냐, 또는 죽느냐 사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한 일> <던질 척>     등 사생 결단하는 최후의 한판 승부를 일컫는다.

☞  진(秦)이 멸망한 뒤 천하가 통일되지 못하고 있을 때 초(楚)의 항우(項羽)와 한    (漢)의 유방(劉邦)이 이곳에 선을 긋고 천하를 나누어 가졌다.  이시는 당시를     추억한 것이다.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은 피로하고 호랑이는 곤하여 천원을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모든 백성들이 생명을 보존하였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군가가 왕에게 말머리를 돌리길 권하며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진실로 천하를 건 한판의 도박을 벌였구나.

    항우와 유방은 진의 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하였으나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천    하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되었다.  항우가 반란군을 토벌하고 있는 틈에     유방이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 땅을 병합해 버렸다.


結草報恩(결초보은) :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는다.  즉, 죽어서도 은혜를    <맺을 결> <풀 초>     잊지 않고 갚는다는 얘기다.

<갚을 보><은혜 은>

☞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첩이 있    었으나 그 사이에 자식은 두지 않았다.  그래서 위무자는 병이 들자 아들인 과    (顆)를 불러 말했다.

    “반드시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병이 악화되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죽여서 함께 묻어 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魏顆)는 그녀를 다른곳으로 시집보내면서 말했다.

    “병이 심해질 적에는 머리가 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나는 병세가 악화되    기 전의 아버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그 후 선공(宣公) 15년에 진(秦)의 환공(桓公)이 전쟁을 일으켜 군대를 보씨(輔    氏)에 주둔시켰다.  이 보씨의 싸움에서 위과는 진(秦)의 이름난 장수 두회를 사    로잡았다.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에 있는 풀을 엮어 걸려 넘어지게 해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傾國之色(경국지색) :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미색이라는 뜻으로,    <기울 경><나라 국>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갈 지>  <빛 색>

☞  한무제(漢武帝)를 모시고 있는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자가 있었다.  음악적 재    능이 풍부하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므로 무제의 총애를 받고 있    었다.  그는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했다.

        북방에 가인(佳人)이 있어

        절세로 단 한 사람뿐

        일고(一顧)하면 성(城)을 기울게 하고

        재고(再顧)하면 나라를 기울게 했다.

        어찌 경성(傾城) 경국(傾國)을 모르리요마는

        가인은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우니.

    무제는 노래를 듣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 세상에 그런 여인이 정말 있을까?”

    무제의 누이인 평양공주(平陽公主)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연년에게는 누이동생이 있거든요.”

    무제는 곧 연년의 누이동생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더없이 예뻤고 춤도 능숙    했다.  무제는 곧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인에게 빠져서 나라가    망해도 모를 만큼 된다는 뜻이다.


鷄肋(계륵) : 닭의 갈비는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닭 계>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물을 이르는 말로서, 이러<갈비 륵>   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뜻한다.

☞  조조(曹操)와 유비(劉備)가 한중(漢中)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게 되었    다.  유비는 익주(益州)를 근거지로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배치하여 한중을 평정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사전에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보급이 충분하지 못하여 유비의 군대를 공격할 수도 없었고 그대로 지    키고 있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조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부하들은 명령을 내려달라고 조조에게 찾아왔     다.  이때 조조는 닭갈비를 뜯고 있다가 혼자 “계륵 계륵.” 하더니 아무말이 없    었다.

    부하들은 아무도 조조의 말뜻을 몰랐다.  오직 양수(揚修)만이, “닭갈비는 먹    을 만한 것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한중을 포기하기는 아깝지    만 그렇다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철수를 결정하실 것이    다.”라고 조조의 생각을 미리 짐작하였다.

    다음날 조조는 양수의 말대로 한중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양수는     혼자 예견하고 짐을 꾸렸지만 조조에게 참수를 당하였다.


鷄鳴狗盜(계명구도) :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고 개의 흉내를 잘 내서 좀도둑<닭 계><울 명>       질을 잘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기술에 능한 비천한 사  <개 구><훔칠 도>     람을 말한다또는 천한 재주나 기능도 훌륭하게 쓰일                         때가 있음을 말한다.

☞  제(濟)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은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남다른 재주    를 가진 사람이라면 식객(食客)으로 맞아들이니, 그 수가 3천명을 넘었다.  진     (秦)나라의 소왕(素王)은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그    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가자, 소왕은 그가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    록 억류하였다.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소왕의 애첩은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    털로 만든 아주 귀한 털옷인데, 맹상군은 진나라에 들어올 때 이미 소왕에게 이    것을 바쳤기 때문에 다시 구할 수가 없었다.

    이때, 맹상군을 따라간 식객 중의 한 사람이 진나라 대궐에 들어가 개 흉내를    내며 호백구를 훔쳐 와서 소왕의 애첩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호백구를 받은    애첩이 소왕에게 그를 풀어 줄 것을 애원하니, 소왕은 맹상군을 제나라로 돌아    가도록 허락했다.  맹산군은 곧 말을 달려 한밤중에 국경 근처인 함곡관(涵谷關)    에 이르렀다.

    얼마 후 맹상군을 풀어 준 것을 후회한 소왕이 군사를 보내 맹상군을 잡아오    도록 하였다.  맹상군이 급히 관문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곳의 법에 관문은    첫닭이 울기 전에는 열 수가 없었다.

    이때 식객 중의 한 사람이 닭의 울음소리를 내자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이에 관문이 열리고 맹상군은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행이 탈출    한 직후 추격대가 관문에 도착했으나, 이미 떠나간 뒤였으므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股肱之臣(고굉지신) :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다리 고><팔뚝 굉>   가장 가까이하며 신임하는 중신(重臣)을 일컫는 말이    <갈 지> <신하 신>    다.

☞  신작짐고굉이목   여욕좌우유민여익   여욕선력사방여위

    臣作朕股肱耳目   予慾左友有民汝翼   汝慾宣力四方汝爲

  (그대들과 같은 신하들이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들을 돕고자 하니 그    대들도 힘써 도와 달라.  내가 위엄을 만천하에 떨치려 하거든 그대들이 대신해 달라.)

    순임금이 신하들에게 자신을 잘 보좌하여 나랏일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 말이    다.


鼓腹擊壤(고복격양) :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격양놀이를 한다는 뜻 <북 고>  <배 복>      으로, 백성들이 그처럼 태평할 만큼 그 시절이 평화스<칠 격>  <흙 양>      럽다는 뜻이다.

☞  백발 노인 한 사람이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격양놀이(옛날 중국에서 하던 유희의    하나)를 하는데, 배를 두드려 박자를 맞추면서 즐겁게 하고 있었다.

        일출이작  일입이식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들며

       착정이음  정전이식

       鑿井而飮  町田而食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 갈아서 먹나니

       제력하유진아재

       帝力何有珍我哉      임금의 덕 따위야 무엇하리요

    그 옆을 지나던 요(堯) 임금은 이 노래를 듣고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야 마    음이 놓이는구나.  백성들이 아무런 불만도 없이 배를 두드리며 격양놀이 등으    로 자기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하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古稀(고희) :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으로 70세를 고희라고 한다.

<옛 고><드물 희>

☞  두보(杜甫)의 곡강이수(曲江二首)라는 시에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온다.

      조회일일전춘의(朝回日日典春衣)  조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입고

      매일강두진취귀(每日江頭盡醉歸)  하루같이 강가에서 만취해 돌아온다.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술빚은 예사로 도처에 있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소릉(少陵)이 호이다.  전란으로 가족을 잃    는 등 개인적으로는 불행이 잇달았지만, 일생을 통하여 뛰어난 명시를 많이 남    겼다.  ‘고희’라는 말은 이 시의 ‘인생칠십고래희’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예로부터 드물다(稀)는 뜻에서 보기 드물 나이에 도달함을 축하하는 의미로 사용    하게 되었다.  보통 70세를 가리켜 ‘고희’라고 한다.


曲學阿世(곡학아세) : 평소에 자기 신조나 소신, 철학 등을 굽혀 시세에 아   <굽을 곡> <배울 학>  첨함을 말한다.

<아첨할 아><세대 세>

☞  원고생(轅固生)은 전한(前漢) 경제(景帝)때의 학자였는데, 무제(武帝) 때에도     다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엉터리 학자들이 어떻게든 황제의 뜻을 되돌    리려고 원고생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무제는 그 중상모략을 물리치고     원고생을 등용하였다.  원고생과 함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 학자도 부름을    받았다.  공손홍은 늙어빠진 영감이라고 무시하는 눈초리로 원고생을 대했으나    원고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공손자는 부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구부려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말게    나(公孫子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절조를 굽히지 않는 원고생의 훌륭한 인격과 풍부한     학식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空中樓閣(공중누각) :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현실성이 없는 일<빌 공><가운데 중>    이나 근본이 없는 이야기를 지칭하는 성어이다.

<다락 루><누각 각>

☞  심괄(沈括)이 지은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등주사면임해춘하시요견공제유성시누대지장사인위지해시

       登州四面臨海春夏時遙見空際有城市樓臺之狀士人謂之海市

      (등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멀리 수평선 위로          누각들이 줄을 이은 도시가 보인다.  지방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한다)

    그 후 청(靑)나라의 학자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금칭언행허구자왈공중누각용차사

       今稱言行虛構者曰空中樓閣用此事

      (지금 말과 행동이 허황된 사람을 가리켜 궁중누각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               을 말한 것이다)

    비슷한 뜻으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역시 겉모양    은 번드르하지만 기초가 약하여 오래 가지 못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일 등에 빗    대어 사용한다.


管鮑之交(관포지교) :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처럼 서로 믿고 <대롱 관><절인고기 포> 이해하는 친밀하고 두터운 우정이나 교우 관계를 뜻  <갈 지>   <사귈 교>    한다.

☞  관중과 포숙아는 죽마지우였다.  처음에 둘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나누는데    언제나 관중이 많은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를 탐욕스럽다고 여기    지 않았다.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서 일을 할 때에 여러번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유리한 때와 불리한 때가 있음    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무    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이 세 번 전쟁터에 나아가 세 번 모두 도망쳐 왔을 때에도 포숙아는 그를     겁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에게 노모가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제(齊)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관중이 모시고 있던 규(糾)와 포숙아가 모    시던 소백(小白)이라는 왕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포숙아가 모시    던 소백이 승리하였으나 그가 바로 유명한 제나라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왕위에 오른 후 규(糾)를 죽이고, 관중의 목을 베려 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설득으로 그를 용서해 주고 재상에 임명하였다.

    그 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천하를 제패하였다.  포숙아의 관중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제나라를 부국강병한 국가로 만들어 천하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관중은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라    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아의 사람을 정확하게 알    아보는 눈이 밝은 것을 더 칭찬하였다고 한다.


刮目相對(괄목상대) : 얼마 동안 못 보는 사이에 상대가 깜짝 놀랄 정도로    <비빌 괄>  <눈 목>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   <서로 상> <상대 대>  고 상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로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매우 무식    한 사람이었으나 전쟁에서 공이 많아 마침내 장군이 되었는데, 어느 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를 하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손권의 부하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난    노숙이 여몽을 찾아갔다.  노숙은 이야기하는 사이에 여몽의 박삭함에 깜짝 놀    라고 말았다.

    “언제 그렇게 공부했는가?  이제 학식이 대단하니 옛날의 여몽이 아니군.”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    야 하는 법일세.”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충실한 사냥개도 쓸 <교활할 교><토끼 토><죽을 사>  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소     <어질 양><개 구><삶을 팽>    용이 없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없애 버                            림을 가리킨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도 함.  

☞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한신(韓信)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    王)으로 봉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였다.  이때, 항우의 부    하였던 종리매(鐘離昧)라는 장수가 옛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보    고가 들었다.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차마 옛친    구를 배반할 수 없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도리어 그를 숨겨 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었으므로 유방은 진평(陳平)의 책략에 따라 제후들의     군대를 소집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    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했다.  그러자 약삭빠른 가신이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배알하시면 폐하도 기뻐하시리다.”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말을 종리매에게 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    를 죽여 유방에게 보인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는 정말 한    심한 일을 생각했군.  내가 자네를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    이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그러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그 주인에게 먹히듯이, 온 힘을 다해 섬긴 내가 이번에는 유방의    손에 죽는구나.”

    그러나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초왕(楚王)에서 회음후(澮陰     候)로 좌천시켰기 때문에 이후로는 회음후로 불리게 되었다.

群鷄一鶴(군계일학) :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평   <무리 군> <닭 계>   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는    <한 일>  <학 학>    것을 비유한 말이다.

☞  혜소(嵇紹)는 어릴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죽은 후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    고 있었으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우이며 칠현(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가    당시 무제(武帝)에게 상주하였다.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시대    의 극결(郤缺)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관직에 오    르게 해주십시오.”  황제는 그를 비서승(秘書丞)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소     (紹)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    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한 게 학 한 마리가 닭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녜(野鶴如在    鷄群 야학여재계군).”


君子三樂(군자삼락)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군자 군><아들 자><석 삼><즐거울 락>

☞     군자유삼락이와천하불여재언    부모구존형제무고일락야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在焉    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이락야    득천하영재교육지삼락야

       仰不愧於天府不炸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        「孟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음    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


捲土重來(권토중래) :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분발하여 세력을 되찾아서    <말 권> <흙 토>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이다.

<다시 중><올 래>

☞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도 기할 수 없는 것

      승패병가불가기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참을 수 있음이 바로 남아라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俊才  강동의 자제에는 준재가 많으니

      강동자제다준재

      捲土重來未可知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으면 승패를 알 수 없을 터인데

      권토중래미가지

    위의 시는 두목(杜牧)이 항우(項羽)에 대하여 읊은 시 중의 하나이다.  항우가    죽은 지 천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두목이 나루터에서 항우의 인품을 그리며    젊은 나이(31세)로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두목의 시에는, ‘강동에 계시는 부모 형제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고 견디었더    라면 우수한 자제가 많은 곳이므로 만회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고 항우를 애석하게 여기는 정이 배어 있다.


錦上添花(금상첨화) : 비단옷을 입은 데다가 꽃을 가진다는 뜻으로, 좋은    <비단 금> <위 상>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진다는 말이다.

 <더할 첨> <꽃 화>

☞  다음 시는 왕안석(王安石)이 만년에 정계를 떠나 은거해 살 때 지은 즉흥시이    다.

       하류남원안서사

       河流南苑岸西斜  강은 남원을 흘러 언덕 서쪽으로 기우는데

       풍유정광로유화

       風有晶光露有華  바람엔 맑은 빛이 있고 이슬에는 꽃이 있다

       문류고인도령댁

       門柳故人陶令宅  문 앞의 버들은 옛사람 도령의 집이요

       정동전일총지가

       井桐前日總持家  우물가의 오동은 전날 총지의 집이다

       가초욕복배중록

       嘉招欲覆盃中淥  좋은 모임에서 잔 속의 술을 비우려 하는데

       여창잉첨금상화

       麗唱仍添錦上花  고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편작무릉준조객

       便作武陵樽俎客  문득 무릉의 술과 안주를 즐기는 손님이 되어

       천원응미소홍하

       川源應未少紅霞  내의 근원에 응당 붉은 노을이 적지 않으리라

  

錦衣夜行(금의야행) :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말로 아무리 출세해도    <비단 금> <옷 의>    남이 인정해 주지 않음을 뜻한다.

  <밤 야>  <갈 행>

☞  항우(項羽)가 함양(咸陽)에서 입성에 성공한 후 사정에 의해 고향에 돌아기지    못함을 한탄해서 한 말이다.

       부귀불귀고향여의금야행  수지문자

       富貴不歸故鄕如衣錦夜行  誰知文者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       다.  이것을 누가 알쏘냐!)


杞人之憂(기인지우) : 기우(杞憂)라고도 함.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이란  <나라이름 기><사람 인> 뜻으로, 공연히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갈 지>  <근심 우>

☞  기나라의 한 사람이 만약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여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찾    아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인 것이므로 하늘이 무너진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그리고 땅도 흙덩이가 쌓인 것뿐이라네.  그것이 사방에 꽉차서 흙이 없는 곳은    없지.  왜 땅이 꺼지는 것을 걱정하나?”

    그러자 비로소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洛陽紙價貴(낙양지가귀) : 책이 세상에 널리 많이 읽힘을 일컫는 말.  진     <물이름 락>  <볕 양>    (晉)나라 좌사(左思)가 10년이나 걸려 삼도부(三   <종이 지><값 가><귀할 귀>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그 글                     을 배꼈으므로 종이 값이 올라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삼도(三都)란 삼국시대의 세 도음, 즉 위나라의 업, 오나라의 건업, 촉나라의     성도를 말한다.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좀처럼 뜻하는 지위에 나갈 수 없어서     부(賦)의 형식으로 이 세 도읍의 활기찬 모습을 노래로 지어 세상의 귀족들을 깜    짝 놀라게 해주고자 생각했다.  10년 후 마침내 삼도지부(三都之賦)가 완성되었    다.  우수한 작품인데다가 유명한 시인이 서문을 썼기 때문에 귀족이나 부자들    이 서로 다투어 삼도지부를 복사했다.  결국 마침내는 도읍지인 낙양의 종이 값    이 올라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難兄難弟(난형난제) :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어려울 난><맏 형>   으로,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말하기가 곤란한 경우에 사<어려울 난><아우 제> 용하는 말이다.                        「世說新話」

☞  후한(後漢)의 진식(陳寔)은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함께 삼군(三     君)으로 불릴 정도로 부자간의 덕망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진기의 아들인 진군(陳群)은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 때 재상을 역임한 재능    이 뛰어난 인물이다.

    진군이 어릴 때,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자랑    하며 논쟁을 벌였다.  두 사촌끼리 서로 자신의 부친이 훌륭하다고 주장을 해서    결말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 진식에게 가서 판정을 내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진식은 두 손자에게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 말하기를, “형인 진기도     형 되기가 어렵고, 아우도 훌륭한 형의 동생 되기가 어렵다.”고 답하였다.

    즉,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못한 지 가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원방난위형  계방난위제

     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


南柯一夢(남가일몽) :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밑에서 꾼 잠깐 동안의 꿈이  <남녘 남><가지 가> 라는 뜻으로, 한때의 부귀와 권세는 꿈과 같다고 하여     <한 일> <꿈 몽>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  당(唐)나라 때의 일이다.  순우분(淳于棼)이라는 사람은 협객(俠客)으로 유명한    데, 술을 좋아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장군과 충돌    한 끝에 낙향하게 되었다.

    순우분의 집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 날마다 친구들과 그 그늘에서 술을 마시    며 지냈다.

    어느 날 순우분은 만취하여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임금 앞으로     안내되었다.  임금은 매우 반가워하며 그를 부마로 맞이할 뜻을 비쳤다.

    이윽고 순우분은 출세에 출세를 거듭하여 고관으로 임명되었고 20년 동안 정    치를 잘하여 백성들은 그를 하늘처럼 우러러보았다.  그 사이에 다섯 아들과 두    딸을 얻었는데, 아들들은 다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王家)에 시집을 가서    잘 살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 크게 패하고 아내마저 병사하자 그는 벼슬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그의 명성을 사모하여 찾아오는 귀족들이 문전성시(門前成    市)를 이루었고 나날이 그의 세력이 커졌다.  그러자 이를 시기하여 그가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투서를 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근신하도록 명    령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눈을 뜨고는 모두가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꿈으로 인해 인생의 허무함    을 깨닫고, 술과 여자를 멀리하며 도술(道術)에 전념하게 되었다.


囊中之錐(낭중지추) : 주머니 속에 송곳이 들어 있으면 뾰족하여 밖으로 뚫<주머니 낭><가운데 중>고 나오는 것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재   <갈 지> <송곳 추>    능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금선생처승지  삼년어차의  승말유소문시선생무소유야

       今先生處勝之  三年於此矣  勝末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        「史記」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으면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그 끝이 즉시 나타나        는 법이오.  그대는 나의 문하에 있은 지 3년이 되었지만, 내 좌우의 근신이 아직도        그대를 칭찬한 적이 없으며, 나도 그대에 관해서 들은 바가 없소)

    모수(茅蒐)라는 사람이 찾아와 평원군(平原君)에게 자청했다.

    “인사를 뽑았으나 아직 한 사람이 모자란다고 하니 제발 제가 수행원 속에 끼    어 가게 해주십시오.”

    평원군이 물었다.

    “그대는 나의 문하에 몇 해 동안이나 있었소?”

    “3년쯤 되었습니다.”

    “3년이 되어도 그대를 칭찬한 소문을 들은 적이 없소.  그대는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으니 단념하시오.”

    모수가 대답했다.

    “저는 오늘 비로소 주머니 속에 넣어 주기를 청했을 뿐입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열아홉 사람은 모수를 경멸하여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비웃었다.  초에 이르는 동안 모수는 열아홉 사람과 얘기    를 나눈 끝에 모두를 복종시키고야 말았다.  마침내 평원군은 모수에게서 결정    적인 도움을 입어 초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累卵之危(누란지위) : 높이 쌓아올린 계란이란 뜻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무<포갤 루><계란 란>   너지고 마는 상태.  즉, 아주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음<갈 지><위험할 위>   을 말한다.

☞     진왕지국  위어누란  득신즉안  연불가이서전야  신고재래

       秦王之國  危於累卵  得臣則安  然不可以書傳也  臣故載來       「史記」

    (“진나라는 지금 계란을 쌓아 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  나를 얻으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글로는 전할 수 없다.”고 하는 터라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에서 억울한 죄명으로 죽을 고비에서 천행으로 살아난 범    저(范雎)는 장록(長祿)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다가 마침 위나라를 다녀가는 진     (秦)나라 사신 왕계(王季)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왕계는    진왕에게 위와 같이 장록이 한 말을 전하고 이렇게 간하였다.

    “위나라에 장록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천하의 뛰어난 변사(辯士)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범저는 진왕에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대외정책을 진언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多多益善(다다익선)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많을 다><많을 다><더할 익><착할 선>

☞  한고조(漢高祖)인 유방(劉邦)은 천하를 통일한 다음, 당시 초왕(楚王)이 있던     한신(韓信)에게 반란의 기미가 있다고 하여, 붙잡아서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     (澮陰候)로 좌천시켜 도읍에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유방은 여러 장수들의 능력에 대하여 한신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는     데, 한신에게,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군대를 거느릴 수 있는 장군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신이 대답했다.

    “글쎄요, 폐하께서는 그저 10만 정도가 아닌가 봅니다.”

    “그래, 그럼 귀공은 어떤가?”

    그러자 “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라는 대답이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고조가 웃으면서, “그 <다다익선>이란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는가?”하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대답    했다.

    “그것은 별문제입니다.  폐하께서는 군대의 장군노릇은 별로 잘하시지 못하지    만, 장군의 장군다운 점에 있어서는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에게 로로    가 된 이유입니다.  더구나 폐하의 능력은 소위 하늘이 주신 재능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斷機之敎(단기지교) : 짜던 베도 도중에 자르면 쓸모가 없듯이, 학업도 도 <끊을 단><기계 기>   중에 중단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는 말이다.  단기지계 <의 지><가르칠 교>    (斷機之戒)라고도 함.             「後漢書․烈女傳」

☞  맹자가 어렸을 때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짜다가 “공    부가 어느 정도에 이러렀느냐?”고 물었다.  맹자가 “그만 저만 합니다.”라고 대    답하니, 맹자의 어머니가 칼로 베를 끊어 버렸다.  맹자가 놀라면서 그 까닭을     물으니, “네가 학업을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    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학문을 닦지 않으면 남의 심부름꾼밖에 될    것이 없다.”며 타일러 보냈다고 한다.  맹자는 느낀 바 있어 아침 저녁으로 쉬지    않고 부지럼히 배워서, 나중에 천하의 이름난 학자가 되었다.


大器晩成(대기만성) : 큰 일이나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    <큰 대> <그릇 기>  생 끝에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늦을 만><이룰 성>

☞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다.  목소리가 유연    하고 모습은 한층 눈에 띄며 수염이 4척이나 되는 이 장수를 무제(武帝)는 누구    보다도 신임하고 친근히 여겼다.

    최염에게는 사촌인 최림(崔林)이 있었는데 친척들에게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    을 보고, “동생은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인물됨을 평했     다.

    얼마 후 과연 최림은 천자의 고문이 되었다고 한다.          「老子」


☞  『노자(老子)』는 제41장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등의 선비는 도(道)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있    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며, 하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    다.  웃지 아니하면 족히 써 도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세운 말에     이런 게 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고, 평    탄한 도는 험한 것 같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와 같고, 너무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 같고, 세운 덕은 변하는 것 같고, 변함없는 덕은 변    하는 것 같고, 큰 네모에는 구석이 없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大器晩成,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상이 없다.  도(道)는 숨겨져서 이름이 없    다.  대저 오직 도는 잘 빌려 주어 또 이룬다.>

    여기에서 말한 <대기만성>의 만성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되며, 또 < 큰     인물은 늦게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塗炭之苦(도탄지고) : 석탄 속에 빠진 온몸의 괴로움을 나타낸 말로서, 심     <칠할 도> <숯 탄>    한 고통속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의 지><괴로울 고>

☞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대군을 대파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탕왕의 서사(誓詞)는 서경(書經)의 탕서편(湯誓篇)으로 남아 있    었는데, 걸왕과 싸워 대승하고 개선했을 때 탕왕은 제후들에게 걸왕의 무도함을    공격하여 말하되, “하늘은 재앙을 하나라에 내려 이로써 그 죄를 밝혔다.”고 했    다.

    걸왕의 학정을 비난한 말은 고전에 많이 보이나 그중에서도 서경의 중훼지고    (仲虺之誥)에서는 “유하혼덕(有夏昏德)하여 백성이 도탄(塗炭)에 떨어지다.”라고    했다.  걸왕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받는 고난을 ‘백성이 도탄에 떨어지다.’라고 비    유한 것이다.


同病相憐(동병상련) : 같은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불쌍히  <같은 동><앓을 병>   여긴다는 뜻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서로 상><불쌍히 여길 련> 잘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말이다.

☞  오(吳)나라의 강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따온 말이다.

    동병상련 동우상구

    同病相憐 同憂相救  같은 병자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같은 근심은 서로를                          구제한다

    경상지조 상수이비

    驚翔之鳥 相隨而飛  놀라 나는 새는 서로 따라 날고

    뇌하지수 인부구류

    瀨下之水 因復俱流  여울 아래 물은 다시 함께 흐른다          「吳越春秋」


登高自卑(등고자비) :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야 한다   <오를 등><높을 고>  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스스로 자><낮을 비>  다. 「中庸」

☞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군자지도 벽여행원필자이 벽여등고필자비 시왈 처자 호합 여고슬금 형제기흡

     和樂且耽 宣爾室家 樂爾妻孥 子曰 父母其順矣乎

     하탁차람 선이실가 낙이처노 자왈 부모기순의호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      를 타듯 하고 일찍부터 형제의 뜻이 맞아 즐겁고도 즐겁나니,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라는 글이 있다.  공자는 이 시를 읊고서 “부모는 참 안락하겠      다.”고 말했다)


登龍門(등용문) : 어려운 고비를 돌파하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문  <오를 등><용 룡><문 문> 이다.  입신출세의 관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  하진(河津)은 용문(龍門)이라고 해서 물실이 매우 험한 곳이었는데 웬만한 물    고기들은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곳을 통하여 하늘에 오르기만 하    면 용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보통 입신양명의 길로 나서게 되는 큰 시혐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세력 있    는 인물과의 만남에도 종종 쓰이는 말이다.  반면에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로서    점액(點額)이라는 말이 있는데,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시험에 떨어진 사람을    뜻한다.


馬耳東風(마이동풍) : 말의 귀를 스치는 동쪽 바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    <말 마> <귀 이>    람의 의견이나 충고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동녘 동><바람 풍>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경 읽기)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     왕거일한야독작유회

       王去一寒夜獨酌有懷

    ‘왕거일이 추운 밤에 혼자 술을 마시고 회포에 잠기다.’라는 시에 나온다.  귀    족 사이에는 사치가 만연되어 있는데 서민들의 고충을 진술해도 상대하지 않고    귀담아들어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輓歌(만가) :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르는 <끌 만><노래 가> 노래를 말한다.

☞  한고조(漢高祖)는 즉위한 후, 전횡(田橫)이 나중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    여 회유책을 쓰기로 하였다.  죄를 용서하는 대신에 낙양으로 들어와 신하 되기    를 청하였다.

    그러나 낙양성 밖 30리까지 왔던 전횡은 절개를 굽히고 한고조의 부하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살하고 말았다.  남은 가족과 부하들도 그를 좇아 모두     자결하였는데, 사람들은 전횡의 높은 절개를 사모하는 마음에 상가(喪歌)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麥秀之嘆(맥수지탄) : 맥수(麥穗)란 보리가 무성하다는 뜻으로, 옛날 번영 <보리 맥><빼어날 수>  하던 도읍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고 고국의   <의 지> <탄식할 탄>   멸망을 탄식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성어이다.

☞  기자(箕子)는 주왕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殷)의 옛성 근처를 지나게 되었     다.  전에는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건만 이제는 옛날과 너무나 변해 버린 모습에    서글퍼져서 맥수지시(麥秀之詩)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맥수점점혜 화맥유유혜

     麥秀漸漸兮 禾麥油油兮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 무성하고 벼와 기장들도 잎이                              기름지도다

     피교동혜 불흥아호혜

     彼狡僮兮 不興我好兮  저 교동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맏 맹><어머니 모><석 삼>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됐 <옮길 천><의 지><가르칠 교>    다.                   「後漢書․烈女傳」

☞  맹자 어머니가 처음 이사를 했는데, 공동 묘지 근처였다.  어린 맹자는 놀이도    상여를 메고 가는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는 자식을 기를 만한 곳이 못 되    는구나.’  이런 생각을 한 맹자 어머니는 곧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    자는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학교 부근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행동하는 광경을 흉내    내며 노는 것이었다.  그 후 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盲人摸象(맹인모상) :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사물의 일부만을 알   <소경 맹><사람 인>   면서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  <더듬어 찾을 모><코끼리 상> 다.

☞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명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오시오.  그리고 장님들을 불러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하시오.”

    장님들이 제각기 코끼리를 만져 보고 느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져 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고 큰 무와 같습니다.”

    귀를 만져 본 다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쌀을 까부는 키 같습니다.”

    발을 만져 본 장님과 코끼리의 뱃가죽을 만져 본 장님도 저마다 의견을 내놓    았다.

    “코끼리의 형상은 절구통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배가 툭 튀어나온 옹기와 같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이 큰소리로 “천만의 말씀입    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코끼리의 형상은 굵은 밧줄과 꼭 같습니다.”라고 외쳤    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것은 장님들은 코끼리    전체를 만져 보지 않고 코끼리의 일부만 만져 보았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毛遂自薦(모수자천) : 모수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고사에서 <털 모><드디어 수>   나온 말이다.  남이 추천해 주지 않으니까 기다리다 못<스스로 자><천거할 천> 해 스스로 자청해서 나서는 것을 말한다.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史記․平原君列傳」

☞  조(調)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초(楚)나라의 협조를 얻    고 조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3천명 가운데 20    명을 뽑아서 초나라에 함께 가기로 하였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이 끼기를 청하였다.

    평원군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내가 3년 동안 데리고 있었으나 장점을 하나도 발견 못했노라.”

    “나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면 뾰족이 나오는 송곳처럼 나타날 것이니 일을 맡    겨 주십시오.”

    결국 모수를 데리고 가서 회담이 성공하였다.

    초왕은 모수의 위엄과 설득에 굴복하여 조나라에 구원병을 보낼 것을 약속하    게 되었던 것이다.  귀국하자 모수는 상객(上客)으로 대접받았다는 고사에서 나    온 말이다.


矛盾(모순) :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창 모><방패 순>

☞    楚人(초인)에 有賣盾與矛者(유매순여모자)러니 譽之曰(예지왈) 吾盾之堅(오순      지견)은 莫能陷也(막능함야)라 하고

      又譽其矛曰(우예기모왈) 吾矛之利(오모지리)는 於物無不陷也(어물무불함야)니      라 하니

      或曰(혹왈) 以子之矛(이자지모)로 陷子之盾(함자지순)이면 何如(하여)요 하니      其人(기인)이 不能應也(불능응야)러라.                          「韓非子」

    초(楚)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패에 대해 말하기    를 “나의 방패는 굳고 단단하여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에    대해 말하기를 “이 날카로운 창이면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으면 어쩌겠소?”하고 물으    니 그 사람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히 도구를 챙겨 가지고 슬그머니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숨기고 말았다.

    이와 같이 어떤 말이나 행동의 이치가 서로 상반되어 조리에 닿지 않는 경우,    또는 어떤 상태나 판단이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빗대어 쓰이는 말이다.


武陵桃源(무릉도원) : 속세와 동떨어진 별천지.  즉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 <군사 무><언덕 릉>   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복숭아 도><근원 원>                                           「桃花源記」

☞  진태원(晉太元)때 무릉인(武陵人)이라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    는데 시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문득 복사꽃나무 숲을 만나 바라보니 양 언덕으로 수백 보에 이르도록 다른     나무는 없고 복사꽃나무만 있었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걸    어나가 그 숲이 다한 곳까지 이르자, 어느 산속에 물이 솟아나는 골짜기가 나왔    다.  조그마한 굴이 있었는데 꼭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문득 배를 버리고 굴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접아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는데    다시 수십 보를 걸어가니까 공간이 넓어지면서 땅이 평평하고 집들이 높게 서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좋은 밭과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이 언덕에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며, 사람들이 왕래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 크게 놀라 오게 된 경우를 묻자 사    실대로 대답하고 수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어부가 돌아가게 되자 “절대 밖의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돌    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남기고 마을에 도착하여 태수(太守)에게 보고하니 태수    가 곧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하였지만 아무도 그곳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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