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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거석문화
김병모 (한양대학교 박물관장)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거석문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주제인 거석문화(巨石文化)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거석문화는 한마디로 '큰돌을 가지고 만든 문화유산'을 말합니다. 거석문화와 관련해 주로 사진자료로 보여드리게 될 '고인돌'은 영어로 'dolmen'이며, 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dol'은 '테이블'이란 뜻이고, 'men'은 '돌'이란 뜻입니다.
즉, '돌로 만든 테이블'이란 뜻이지요. 'stone table'과 같은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학술용어는 그리스 사람이 정해 놓은 것이고 한문으로 번역한 사람들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술용어가 일본식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일본식 학술용어로는 '지석묘(支石墓)', 즉 '돌을 받쳐놓은 무덤'이란 뜻입니다. 우선 거석기념물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고인돌'과 '선돌'일 것입니다. 한문으로는 '입석(立石)'이지요. 그냥 '세워놓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런 조각 없이 사람처럼 생긴 돌을 '선돌'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menhir'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돌 중에는 'stone circle'이 있습니다. 돌을 원형으로 세워놓은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원형석열'이라고 하지요.
또 선돌을 일직선으로 세워놓은 것이 있습니다. 약 5∼6톤 정도되는 사람보다 큰돌들을 17열로 한 줄에 140개씩을 세워놓았습니다. 하늘에서 보면 로마시대의 군사가 이동하는 것 같은데 다른 말로는 '석열'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stone alignment'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과 선돌은 발견되었지만 원형석열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대강 이러한 거석물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설명하려합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거석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고인돌'을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흔히 '북방식' 고인돌이라 칭하는 것과 '남방식' 고인돌이라 칭하는 두 가지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돌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 놓았고 납작하고 두꺼운 돌이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탁자식'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돌이 있고 받침이 없는 형태입니다. 파보면 밑에 흙을 파서 유물을 넣어 놓은 경우입니다. 때로는 간혹 작은 자갈돌로 간단한 시설을 해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유물이 들어 있지요. 선돌의 밑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선돌'은 돌 두개가 한 쌍을 이룹니다. 흔히 '할머니 돌', '할아버지 돌'이라고 하지요, 뾰족한 것은 남성형, 둥그런 것은 여성형이라고 합니다.
통일성이나 균제미 차원에서 본다면 의미를 찾기가 어렵지만 돌 두 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탁자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탁자식으로 불리는 고인돌은 강화도나 거창에 많습니다. 주로 한강 이북에 있다고 해서 '북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탁자모양의 북방식과는 그 형태가 확연하게 다른 고인돌이 있습니다.
이들 고인돌은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하고 있다고 해서 '남방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간혹 남, 북 어느 식인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들쳐보지 않고는 알 수 없고, 유물이 없으면 고인돌 여부를 알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러나 고인돌을 약 30년쯤 본 사람은 내과의사가 환자 얼굴을 보고 병을 짐작하듯이 자연석 같은 돌을 보아도 고인돌이라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발굴해보면 백발백중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크게 유행
1960년 이후 팔당댐, 충주댐, 섬진강댐, 남강댐 등 댐 건설을 많이 했습니다. 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수몰 예정지의 모든 문화재를 조사해야 했고, 그때 고인돌에 관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거석문화의 경우 우리 고고학자들이 돌을 보고 유물 스티커를 붙이면 거의 맞습니다. 물론 이는 어떤 기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돌의 표면을 잘 보면 달걀 반 자른 것처럼 파 놓은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이 고인돌에 대고 '기복(祈福)행위'를 할 때 돌을 비벼서 여드름 자국처럼 뻥뻥 구멍을 냈던 것이지요. 몸체뿐 아니라 다리나 옆쪽에도 그런 구멍이 있습니다. 고인돌은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약 1천년간 유행하였습니다. 일부학자들은 그에 앞서 신석기시대부터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얘기입니다.
신석기시대의 도구로는 이런 큰돌을 깰 수 없습니다. 금속이 처음 나올 때부터 채석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고인돌을 만든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 몇 만 명의 사람이 한반도에 살았습니다. 구석기시대는 땅모양이 지금의 한반도와 달랐습니다. 서해가 지금의 수면 위로 노출되어 있었고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가 붙어 있었으므로 이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구석기가 끝난 후 빙하가 녹아 지금의 서해가 바다에 잠기고 일본이 바다로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서해가 생겨난 신석기 이후에 고인돌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신석기는 기원전 5천년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경우, 청동기 시대에 와서 고인돌이 생겼으며 이 당시는 중국과 일본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고인돌이 만들어질 무렵 벼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초기에 대량의 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신석기 유적에서는 벼가 한 톨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강, 대동강, 낙동강 주변의 신석기 유물을 조사할 때는 유적지의 주거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밟았던 땅을 5센티 미터 정도 파서 그 흙을 전부 떠냅니다. 그 흙을 담아 흔들면 돌맹이가 아닌 유기질이 모두 걸러져 나오게 됩니다. 곡식, 나뭇잎파리 등이 뜨면 다 건져서 촬영하고 관찰해봅니다.
그런데도 벼가 한 톨도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신석기 유적에서 벼가 나왔다고 하면 세계적으로 '큰 뉴스감'이 될 것입니다. 벼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것이므로 시베리아나 그 밖의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적도에 가까운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이죠. 갑자기 한국에 벼농사 기술이 들어오면서 같은 시대에 무덤의 형태로 고인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생전에는 벼농사를 짓고 사후에는 고인돌에 묻힌 것'이지요. 이것이 그 당시 문화현상이었습니다. 벼는 경작하기가 어렵지만, 소출은 많았습니다.
단위면적에서 나는 곡식의 양 중에서 1위가 감자이고 2위가 옥수수이며, 바로 3위가 벼였습니다. 그런데 감자나 옥수수는 임진왜란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들어왔고, 이것이 다시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바로 옥수수인 것입니다.
감자와 옥수수가 없을 시는 벼가 1등을 했던 것이지요. 한랭지대의 농작물 중 대표가 밀과 보리이며 한랭계통의 농작물만 있던 신석기 시대에 벼가 나타나자 경제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단위 면적에서 이렇게 많은 소출이 나는 농작물을 한반도에서 처음 만난 것이지요. 그러자 인구가 폭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논농사가 잘 되는 전남지역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이 땅에 묻히고 고인돌이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전남에 고인돌이 많은 것입니다. 한국에는 고인돌이 2만개가 넘고 1만9천개가 영산강 유역에 남아 있습니다.
6.25때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가장 먼저 차지하고 싶어했던 곳이 영산강유역이었는데 장기전으로 갈 경우 식량이 넉넉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벼와 고인돌을 같이 묶어서 생각할 때 전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벼농사권과 일치하는 고인돌문화권
세계지도를 통해 고인돌의 분포와 쌀농사지역을 살펴보겠습니다. 고인돌이 어디서 발견되었느냐 하면 인도, 태국, 중국해안을 따라서 나타나고 여기서 끝나면서 한국, 일본 큐슈, 오키나와까지 발견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거석문화 초생달'이라고 부릅니다. 아시아에 한해 나타나는 모양이 '초생달'처럼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넓고 넓은 중국, 시베리아에 단 한개의 고인돌도 없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쌀 농사기술자들이 4모작 하던 곳에서 잘 살다가 어떤 이유 때문에 고향을 떠나 벼농사가 어려운 지역으로 옮겨왔다는 것이지요. 십분 기술을 발휘해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한계까지 이동한 것입니다.
함경도에서 요녕반도를 잇는 북위 윗쪽에서는 벼농사를 지을 수 없고 따라서 고인돌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필리핀에서부터 한국으로 흐르는 해류가 있습니다. '흑조(黑潮)'라고 부르는 해류입니다. 학명으로는 '쿠로시오'이지요. 이것이 흐르는 방향은 필리핀에서부터 한국쪽이며 시속 6노트로 매우 빠릅니다. 여름에는 태풍을 실어 나르지요. 조선시대에는 네델란드사람 '하멜'이 필리핀에서 이 해류를 타고 난파해서 제주도에 닿은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다가 네델란드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남겼지요. 과거 베트남의 보트피플도 무동력선을 타고 제주도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흑조는 1만년 이상 흐른 것입니다. 계속 흐르던 흑조를 따라서 한 두 사람만이 이동을 했겠습니까? 플랑크톤의 이동방향은 모든 동물의 먹이사슬의 이동을 뜻합니다. 먹이사슬의 끝인 인간이 필리핀에서 한반도로 이동한 수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며, 그중에는 쌀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통일벼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만들어 온 곳이 바로 필리핀의 공장입니다. 필리핀에 IRRI라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당시 서울농대의 젊은 학자 허문회 박사님이 개량하여 우리 토양에 맞게 개발한 것입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에게 매우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배고프지 않게 해준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쌀을 왜 우리가 꼭 먹어야 할까요? 쌀을 먹던 사람이 밥을 먹지 못하면 술이나 담배, 아편을 끊을 때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쌀 중독증'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0년동안 허박사님과 참 친하게 지냈는데 "쌀 중독 현상 때문에 북한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북한 사람들에게 쌀을 너무 안주면 전쟁을 일으킬 확률이 크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입니다. 지구상에서 쌀을 먹는 인구가 52%에 달합니다.
큰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는 식량난이 엄청 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점을 이해하고 우리가 덜 먹더라도 쌀을 주어야 합니다. 고인돌을 같이 조사하자는 게 우리의 생각이고 실제로 북한에 메세지를 보내놓은 상태입니다. 개성 일대에 고인돌이 많기 때문에 경기도의 문화재를 함께 조사하자는 명목입니다.
또 한가지는 재작년부터 제가 몸담고 있는 '고인돌의 친구들'이란 시민단체에서 한국의 고인돌 중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전북 고창과 영암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키려 운동하고 있습니다. 북한 황해도에서 1만개의 고인돌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서지지 않고 한군데에 몰려있다면 등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보아야지 갯수만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전세계의 고인돌 학자들이 와서 증명을 받아야 하는 과정입니다. '쌀을 줄테니까 연구를 같이 하자, 가능하면 북한의 고인돌도 함께 등재하자'라는 양면작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전부 우리의 것이므로 가능한 일입니다. 고고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50년 동안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만 역사로 보면 이것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고 결국은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고인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똑같은 인도어의 수수께끼
슬라이드를 보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쌀이라는 것이 인도말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도에서는 '살', 또는 '챨'이고 합니다. 방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껍질을 까지 전은 '벼'라고 하는데 인도말로는 '뱌'입니다. 벼가 달리기 전 식물 수준의 풀 단계를 인도에서도 '풀'이라고 합니다. 씨는 '씨인'입니다. 벼이삭이 떨어지면 한알, 두알 이라고 인도에서는 '하아리', '두아리', '세아리' 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몹시 놀랐습니다. 내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와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도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인도의 동쪽해안에 마두라스라는 큰 항구가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인도는 언어는 북쪽의 힌두어 남쪽의 타밀어로 나눕니다. 힌두어는 유럽사람들이 인도인과 혼혈화해서 생긴 언어입니다. 원래 토착인의 언어가 언어학적으로 드라비다어이고 40개 방언중 가장 중요한 것이 타밀어입니다.
마두라스지역은 타밀어를 쓰는데 영어로 father를 '아버지', mother를 '어마지', rice는 '비아', boild rice 하니까 '밥'이라고 말하더라 이겁니다. 이런 '인도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한반도에 와서 우리와 함께 결혼하면서 살았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증명된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인도인과 한반도의 사람들이 혼혈을 이루면서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인체 부위중 '겨드랑이, 사타구니, 남녀 성기의 이름' 등이 모두 인도말입니다. 그것이 사용되는 동사, 싸움에 쓰는 욕 등이 또한 인도말입니다. 몰간 클리핀즈라는 미국사람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우리말 중 이러한 인도말이 총 405개라고 합니다. 동남아시아인의 한반도 유입의 또 다른 증거는 한국사람처럼 생기지 않고 동남아시아인과 같은 생김새의 한국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어의 말은 알타이어입니다. 우리의 주류 지배층은 기마민족이지만 비기마민족, 동남아쪽, 열대해양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사람도 얼마든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쪽의 사람들은 얼굴이 네모나고 눈이 큰 타입입니다. 초식을 하면 오랫동안 씹어야 하기 때문에 치아가 크고 턱이 발달하게 됩니다. 초식을 하지 않으면 얼굴이 계란형이 됩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약 5만년정도가 지나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돌을 보면서 그저 밭이나 논에 있는 돌이구나 하지 말고 '굉장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상스런 물건'이구나 하는 점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고인돌에서 뼈를 찾았는데 정말로 '김병모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구나'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알타이어인은 얼굴이 계란형이고 코가 낮습니다. 과거 충주댐 수몰지역에서 고인돌과 함께 발굴된 인골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주대 발굴 인골은 키 170센티, 사망 당시 나이 39∼41세, 사망연도는 2400년전쯤의 남자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두개골이 완전히 인도인처럼 생겼습니다. 이것을 믿을까요 말까요? 이 유골은 서울대 해부학 교실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고인돌에서 두개골이 나온 것은 이것 딱 1기 뿐입니다.
환경조건에 따라 진화해 온 인간의 신체
이제 슬라이드를 통해 각 인종별 얼굴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키모인의 경우 얼굴이 알타이적이며 시베리아적인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알타이계통인 것이죠. 이들의 재미있는 특징은 제아무리 눈을 치켜 떠도 실눈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사람의 경우에도 남쪽사람과 북쪽사람 역시 다르게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북아시아, 남아시아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죠. 남쪽사람의 특징은 얼굴이 네모나고 피부가 검으며 눈이 크고 몸에는 체모가 많다는 것입니다. 반면 추운 북쪽사람의 경우 눈이 작고 피부가 희며 체모가 적습니다. 추운지역 여성들이 특히 미인인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남남북녀(南男北女)'이지요.
과거 조선시대의 왕조실록 등을 살펴 보면 왕비를 간택할 때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가 흰피부이고, 둘째가 실눈입니다. 쌍커플은 절대 안됩니다. 요즘은 피부는 하얗고 눈은 쌍커플이고 코는 큰 것을 선호합니다. 남쪽과 북쪽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싶은 욕심입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여자가 미인 대접을 받으려면 동양여자 비슷하게 생겨야 합니다.
동양에서는 서양여자처럼 생겨야 선호하는데 동서가 반쯤 융화한 셈이지요. 프랑스 여배우 소피마르소는 매우 동양적으로 생겼습니다. 동양적인 외모도 인기에 한 몫했으리라 봅니다. 필리핀 원주민의 경우 체모가 많은 것은 눈썹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체모가 많은 것은 옷을 벗고 살기 때문입니다. 더운 곳에서 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모기, 파리의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첫 돌 전에 죽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솜털이 많이 덮여 있습니다. 체모가 적으면 일찍 죽으니까 자연스럽게 털이 많도록 발전한 것입니다. 반면 추운 지방에는 옷을 많이 입기 때문에 몸에 털이나 퇴화했습니다. 그리고 귀가 작고 코가 낮습니다. 동상의 피해를 줄이기기 위함이지요. 바이칼 호수근처에 사는 브리아트족의 경우, 이들은 대표적인 알타이족이며 북아시아인입니다. 체모가 적고 눈이 작습니다. 한국사람은 약 65%정도가 이런 유전인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감기에 약합니다. 감기 바이러스에 걸리면 금방 죽기도 합니다. 저항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항력도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채소를 먹지 않아 몸에 비타민이 없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비타민이 퇴치하는 바이러스가 수백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같으면 몽고같은 곳에서 보름만 있어도 잇몸이 다 헙니다. 야채를 섭취하지 못하고 고기만 먹기 때문이죠. 사람의 생체리듬은 17일만에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니 보름만에 잇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요.
적도 부근에 살고 있는 마오리족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마오리족은 옛날에는 파푸아뉴기니아에 살고 있었지요. 이들은 남자의 경우 매우 잘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에 털이 많고 남자답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눈썹이 매우 짙고 골격도 큽니다.
고인돌은 우리민족의 형성과정을 풀수 있는 '암호'
그럼 다시 고인돌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고창의 남방식 고인돌을 살펴보면, 큰 것은 1백∼3백 톤까지 가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기술로, 지렛대 기술로 움직여 쌓은 것입니다. 고창에서 작년가을에 10톤 짜리 돌로 고인돌을 만드는 실습을 했습니다. 텔레비젼으로 중계도 했습니다. 저는 매우 초조한 심정이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큰 돌이 쉽게 움직였습니다. 고등학생 80명이 했는데 10톤이 쉽게 움직였습니다.
말레시아의 선돌을 살펴보겠습니다. 말레시아의 선돌은 마치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싸움 잘하는 전사가 죽으면 살던 밭에다 선돌을 세웁니다. 즉 영토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농경민족에게는 영토가 매우 중요합니다. 고지대로 올라가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으므로 자신의 영토가 매우 중요한 것이고 선돌을 박아 내 땅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프랑스 덴마크, 영국의 고인돌은 모두 집단무덤입니다. 고인돌을 여러 개 붙여 놓고 기다랗게 터널식으로 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고인돌은 단독, 개인주택형입니다. 그것이 아주 이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고인돌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유럽의 고인돌은 동은 크지만 갯수는 적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인도네시아 고인돌의 경우 제주도 것과 똑같습니다. 인도도 한 사람당 하나를 묻었습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가 또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난생신화(卵生神話)와 고인돌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고인돌 분포도와 난생신화 분포도를 함께 지도상에 겹쳐 놓고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지역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난생신화란 '할아버지나 아버지, 왕, 조상 등이 알(卵)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신화가 천선신화(天仙神話)로써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단군신화와 부여의 해모수신화가 천선신화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천선신화는 기마민족의 신화이고, 난생신화는 동남아시아 벼농사지역의 신화입니다. 자신은 기마민족이라도 다스려야 할 민족이 농경민족이면 농경민족의 신화로 변장해야 합니다. 신라의 박혁거세, 경주 김씨의 김알지는 모두 기마민족인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면 알로 태어났다고 해놓았습니다 피지배인들에게 동질성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죠.
즉 벼농사문화권이며 난생신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권이 고인돌문화권과 일치하는데 이는 이들 간의 어떤 함수관계를 암시하는 듯 합니다. 고인돌은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우리 민족의 형성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은 선조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암호'이며, 아직 다 해석해 내지 못한 유산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돌은 분명 쌀 문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즉 '기마민족'과는 관계가 없는 동남아시아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저처럼 기마민족권의 외모를 가진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난 30년간 고인돌에 평생을 바쳐왔고 요즘에야 그 성과를 볼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논밭의 돌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1999년 6월 12일 월례강좌
한국의 재발견(舊겨레문화답사연합)과 한국관광공사는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오후 3시, 한국관광공사 지하상영관에서 월례시민문화강좌 <우리문화사랑방>을 무료로 개최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바랍니다.
전화문의 : 02-723-4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