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처음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이 생성되고 그로 인해 시작된다는 의미거나 혹은 초기적인 단계나 상태를 나타낸다.
‘둘’은 하나에 또 ‘하나’를 더한다는 뜻이다. 즉 영어의 더블(double)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셋’은 ‘하나’에 또 하나의 ‘하나’를 더하면 ‘새로워’진다거나 또는 ‘새로운’ 것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넷’은 ‘셋’에서 나왔다는 생각, 즉 ‘셋’으로부터 ‘내렸다’는 발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부터는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독자적으로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크므로 처음 ‘하나’에서 ‘넷’까지의 어원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어린아이들은 종종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수를 헤아린다. 아마도 지능이 덜 발달되었을 우리 조상들도 손가락을 가지고 셈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다섯’부터는 수를 헤아리는 낱말이 손가락의 동작과 형태 등에 관련돼 있다는 가정 하에서 출발하여야 된다.
‘다섯’은 ‘하나’를 헤아릴 때부터 오므리기 시작한 손가락이 다섯을 셀 때는 마지막 새끼손가락까지 다 오므려져서 이젠 더 이상 오므릴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서 온 낱말일 것이다. 즉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썼다’는 뜻에서 ‘다섯’이 되지 않았을까?
‘여섯’은 ‘다섯’을 셀 때까지 다 오므린 손가락을 다시 펴는 데(여는 데)서 나온 말인데 즉 손가락이 ‘열’려서 곧바로 ‘서’ 있는 모양이 되었다는 뜻에서 생겨난 낱말이라고 생각된다. 즉 ‘열려서 서 있다’가 ‘여섯’이 된 것이다.
다음 ‘일곱’은 먼저 ‘여섯’을 셀 때 손가락 한 개를 열고 곧바로 세웠는데 그 다음 ‘일곱’을 셀 때는 또 다른 손가락 한 개를 더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즉 손가락이 먼저 ‘여섯’을 셀 때 세워졌던 손가락과 더불어 곱으로(두 개로) 일으켜 세워진 모양을 보고 만들어진 낱말이다. 즉 ‘일’어서서 ‘곱’으로 세워졌다.
‘여덟’부터는 그 당시에 연이어 일어선 세 개나 네 개의 손가락 모양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말이 없었으므로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수를 구별하려고 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할 당시에는 ‘열’이라는 숫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장 큰 숫자로 세상 모든 것을 다 가리키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사용하여 수를 세어보아도 ‘열’ 이상은 더 펼 수 있는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아 ‘열’은 우리의 먼 조상들이 셈할 수 있는 마지막 숫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부터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셈을 세어가다가 ‘여덟’쯤 셀 때는 이제 마지막 숫자인 ‘열’이 거의 다 되어간다. 즉 ‘여물어간다(여덟)’는 생각에 근원을 하고 있는 낱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아홉’은? 역시 지혜로운 발상에서 나온 단어다. 즉 인도-아리안 언어에서 ‘아’는 부정을 나타내는 의미로 ‘아니다’ ‘부족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아홉’은 마지막 숫자인 ‘열이 아니다’나 혹은 ‘열’이 되기에는 ‘아’직도 ‘흡’족한 상태가 아니다(아홉)에서 나온 낱말일 것이다.
그런데 ‘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열’은 다섯 손가락이 다 ‘열’린 모양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낱말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 ‘열’이란 낱말은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다음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고 그 이전, 즉 한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아마도 ‘열’이란 낱말 대신 이 세상 모든 것, 전부를 뜻하는 의미로 ‘다’와 비슷한 낱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우리 조상들이 지나온 중앙아시아의 다리어지역인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도 ‘열’을 ‘다’라고 부르며 우리 조상의 일부가 건너가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일본에서도 현재 ‘열’을 ‘도’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서 전부를 의미하는 뜻의 ‘다’, 즉 ‘다 함께’ ‘모두 다’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면 그 옛날 10이 가장 큰 숫자였던 우리 조상들이 초기에 ‘열’을 ‘다’라고 불렀음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 地理志)에 나오는 옛 지명들을 해석해보면, 고구려 시대까지만 해도 열(10)을 ‘다’와 비슷한 ‘더’나 ‘덕(德)’으로 불렀음이 확실해 보인다.
“십곡현(신라)은 덕돈홀(고구려)이라고 불렀다(十谷縣一云德頓忽).”
한편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하고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 모든 것, 전부를 의미한 말로 ‘온’ 이란 낱말을 사용하게 된다. 오늘날도 이와 관련해서 ‘온누리’ ‘온갖 것’ 등의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 ‘온’은 100을 나타내던 우리의 옛 말인데, 아마도 10을 나타내는 알타이어(터키어)의 ‘온’에서 차용했거나 혹은 1을 나타내는 영어의 ‘원’또는 타미르어의 ‘온루’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온’이란 낱말을 터키어, 영어 혹은 드라비다어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차용경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즉 한반도 및 만주대륙에서 살고 있던 지배계층에서는 한반도로 들어올 당시 벌써 100 이상의 숫자개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겨우 손가락으로 열(10)정도밖에 셈할 줄 몰랐을 것이며 그후 100까지 셈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소아시아지방에서 가지고 온 낱말 ‘온’을 ‘백’이란 숫자를 나타내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또 1000을 가리키는 옛말 ‘즈믄’은 인도-아리안 계통의 다리어에서 같은 숫자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즈르’에서 온 말일 것이다.
이상의 설명이 다소 무리한 가설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으며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 ‘둘’ ‘셋’의 기본적인 낱말들은 알타이어계통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옛날 인도-아리안계통의 종족들이 사용했던 것과 독자적으로 만든 말이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런데 우랄-알타이어 학자들은 노심초사 끝에 판이한 우랄-알타이어 셈법과 우리 고유의 셈법을 접목시켜 더욱 무리한 가설을 내놓았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조금도 닮은 점이 없는데도 우리말 ‘다섯’의 근원(祖語)이 알타이어 ‘퇴르트’(tort, dorben, dugin)에 대응한다고 이해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로이 앤드루 밀러의 일본어 기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