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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향전(淑香傳) -작자 미상
● 작품 해제
작자 · 연대 미상의 조선 후기 한글 소설. 한문본으로는 <이화정기 梨花亭記>, <이화정기우기 梨花亭奇遇記>, <이화정기적 梨花亭奇跡>으로 불리고 있다.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난 여주인공 숙향이 어려서 고아가 되고 구출자를 만나 양육되어 다시 찾아오는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 과정은 영웅소설이 갖는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특히 여성의 수난 과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여주인공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여성의 관심사를 다루면서 애정 성취의 욕구를 중요시하게 되는 추이와 관련된다. 한편, 거북의 보은(報恩)을 받고, 물 속의 신이한 존재와 사슴, 마고 할미 등이 위기 해결에 계속 도움을 주는 구실을 하는 것은 이 작품이 도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여성 수난의 상황을 깊이 의식하되 그 이유와 해결책은 관념적이거나 초월적인 각도에서 찾으려고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줄거리
중국 송나라 때, 스무 살 김전이 친구의 벼슬길을 전송하러 마을을 나가다가, 어부들이 잡은 거북을 보고 나서서 살려 준다. 다시 마을로 돌아오던 길에 강에서 배가 뒤집혀 모든 사람이 죽으나, 김전은 바로 자신이 살려 준 거북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고 '수(壽)'자와 '복(福)'자가 새겨진 진주 두 개도 얻는다. 연초 땅에 사는 장희의 딸과 결혼하여 월궁 선녀 숙향을 낳았다. 관상가 왕규가 숙향을 보고 '월궁 항아의 인간이며, 오 세에 부모와 이별한 뒤 이십 세에 다시 부모를 만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칠십에 죽음'을 예언한다.
숙향이 5세 되던 해 금나라가 쳐들어와 숙향 일가가 도망하던 중, 김전 부부는 숙향을 잃어버렸다. 도적들은 어린 숙향을 거두어 마을에 버리고 떠나는데, 숙향에게 선녀가 나타나 앞으로 십오 년 동안 다섯 번의 죽을 고비가 닥칠 것이라 일러준다. 마침 자식 없는 장승상이 숙향을 거두어 기른다. 숙향이 집안일을 열심히 하여 일할 자리를 잃은 장승상댁 종 사향은, 숙향이 장승상댁의 패물을 훔쳤다고 모함한다. 장승상 집에서 쫓겨난 숙향은 슬퍼하며 표진강에 몸을 던진다. 이 때 사향은 벼락에 맞아 죽고, 물에 빠진 숙향은 선녀가 구해 준다. (이 선녀는 김전이 전에 살려준 거북임)
이리저리 떠돌던 숙향은 갈대밭에서 불을 만나 죽게 되는 순간 화덕진군이 구해 주고, 마고할미가 거두어 수를 놓아 팔며 함께 살게 된다.
병부상서 이 위궁의 아들 선이 태어날 때, 선녀가 나타나 선이 숙향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이 때 장성한 선이 우연히 숙향이 놓은 수를 보고 숙향을 찾아 나선다. 어렵게 마고할미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김 전 부부에게 갔으나 그들은 숙향을 다섯 살 때 잃은 뒤 소식을 모르고 있었고, 숙향을 키우던 장승상댁에서도 숙향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마고할미를 찾아가 숙향을 만난 선이 고모의 주관으로 결혼하려 하는데, 선의 아버지 이 위궁이 먼저 정한 혼처(양왕의 딸)가 있음을 들어 결혼을 반대한다. 아들 선이 말을 듣지 않자, 지방 관리로 있는 김 전으로 하여금 숙향을 죽이도록 명한다. 자기 딸인 줄 모르는 김 전은 숙향을 옥에 가둔 채 죽이지는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 때 마고할미는 청삽살개를 남겨 두고 하늘로 올라간다.
숙향이 옥에서 풀려났으나 마고할미가 없으므로 방황하다가 선의 어미를 만나는데, 숙향이 수를 잘 놓고 법도가 있는 것을 본 선의 어미가 오해를 풀고 아들 선과 함께 살도록 해준다. 과거에 급제한 선을 따라 부임하던 숙향은 장승상을 만나고, 친부모 김 전도 만나 비로소 혈육의 정을 나눈다.
양왕의 딸 매향은 선을 못 잊어 괴로워하니, 이에 앙심을 품은 양왕이 황제의 불사약을 구하는데 선을 추천하여 가게 한다. 선은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며 불사약을 구하여 온 뒤 양왕의 딸 매향을 둘째 부인으로 맞는다. 선과 숙향은 늙어 칠십 세에, 신선이 따로 준 약을 먹고 하늘로 올라간다.
● 핵심정리
▶갈래 : 염정소설, 애정 소설, 적강 소설, 영웅 소설
▶성격 : 도교적, 초현실적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구성 : 하늘의 신선과 인간의 관계가 긴밀하게 구성되어 있음
▶특징 : 유교적 논리보다는 애정을 중심에 둠
▶주제 :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사랑의 성취. 인간의 천성적 애정 실현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이화정기(梨花亭記)"라고도 불리는 국문 소설로서 방각본·필사본·활자본으로 간행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주인공인 숙향과 이선의 행적이, 다른 고대 소설 작품에 흔히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 출현한 작품으로 보인다. 천상에서 득죄(得罪)한 두 남녀가 각각 적강(謫降)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이후 두 남녀는 우연한 기회에 서로 만나게 되는데, 그 계기는 숙향이 천상의 기억을 더듬어 수를 놓고 이선이 그것을 보고 숙향과 가연을 맺게 된 것이었다. 이후 부모의 반대와 숙향의 가혹한 시련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천상에서의 숙연(宿緣)을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숙향의 삶을 위주로 사건이 전개되고 애정의 문제와 여성 수난의 상황이 마련되어 있어 여성독자층의 기호에 부합한다. 논자에 따라서는 숙향의 삶을 당대 사회가 만들어낸 대다수 하층민들의 고난에 찬 삶에 대응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기본 구조는 '영웅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으로 여성의 수난을 나타내고 있는데, 적강(謫降) 소설적인 전개로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애정이 천상계에서 예정된 바임을 말하는 것에 이 작품의 독특함이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숙향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 스스로의 노력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이 초월적 구원자들의 도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거북이나 용, 사슴, 화덕진군, 마고할미 등이 그들인데, 이러한 초월적 존재들은 작품의 전개와 함께 계속 개입하면서 숙향의 위기 극복을 도와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도교적 경향을 농후하게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은 전쟁 고아로서 술집에 기거하는 비천한 존재인 숙향과 양반 사대부가의 귀공자인 이선의 결합 과정을 통해 봉건적 신분 관계의 모순과 질곡(桎梏)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숙명론적 세계관과 보은 사상이 신분 제도와 남녀 차별, 가장의 절대적 권위 등 봉건적 규범의 제반 문제점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더 알아보기
● 갈등 관계와 그 의미
<숙향전>에 설정된 대표적 갈등은 이선이 보모에게 고하지 않고 출신도 알지 못하는 천애 고아 숙향과 가연을 맺음으로써 발생된다. 남녀의 인간적 애정과 유교적 도덕관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갈등은 두 사람의 애정에 의한 결합을 부모가 인정함으로써 해결된다. 부모의 의사와 신분적 질서에 근거하는 유교적 논리보다는 인간적 애정을 중시하는 작가적 태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적가적 태도는 초현실적, 천상적 논리로 전개되는 부분과 현실적 논리로 전개되는 부분의 상호 대립에도 암시되어 있다. 유교적, 현실적 논리를 뛰어넘어 숙향과 이선이 혼인한 것은 천상에서 정해 준 논리를 따른 결과이고, 이들의 혼사 장애 역할을 한 이선의 부친은 현실적 논리로 두 사람의 가연을 인정하지 않었던 것이다.
<숙향전>의 가치는 이렇게 인위적, 현실적 장애 요인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남녀 애정을 성취시켜 준 데서 찾을 수 있다
▲출제목록
-2004년 10월 3학년 전국연합
● 작품 읽어보기
길일(吉日)을 가리어 성례(成禮)할새, 김생 부부의 단아(端雅) 준일(俊逸 : 재능이 뛰어남)한 풍채는 과연 천정(天定) 배필(配匹)이라. 장회 기쁨을 이기지 못하더니 삼 년만에 장회 부처(夫妻 : 부부) 홀연 득병(得病)하여 필경 함께 세상을 떠나니 김생 부부 향화(香火 : 조상에 대한 제사)를 극진히 받들어 삼상(三喪)을 지내더라.
김생 부부 여러 해를 지남에 집안에 가산(家産)은 풍족하나 다만 일점 혈육이 없어 매양 차탄(嗟歎 : 한숨지어 탄식함)하여 명산대천(名山大川)에 정성으로 기도드리더니 칠월 보름에 김생 부처(夫妻)가 완월루(玩月樓)에 올라 구경하더니, 홀연 하늘로부터 흰 곷 한 가지 떨어져 장씨 앞에 내려오거늘 자세히 본즉 행화(杏花 : 살구꽃)도 아니요, 매화(梅花)도 아니오. 맑은 향취가 옹비(코를 둘러쌈)하는지라. 장씨 부부가 이상히 여기고 있노라니 문득 광풍(狂風)이 크게 일어나 그 꽃이 흩어지거늘 장씨가 차탄하고 들어와 자더니 그 밤 꿈에 달이 떠오르며, 금두꺼비가 장씨 품에 들거늘 놀라 깨어 꿈 얘기를 생더러 이르니 생이 말하기를,
"나의 꿈에도 계화(桂花)가 그대 앞에 떨어지고 금두꺼비가 품에 드는게 보였으니 얼마 안 있어 자식을 낳으리로다."
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잉태하여 열 달이 차니 이 때는 사월 초파일이라. 이 날 밤에 오색 구름이 집을 두르고 향내 진동하며 선녀 한 쌍이 촉(燭 : 초)을 들고 들어와 김생더러 이르되,
"이제 부인이 오신다."
하고 부인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상서로운 기운이 집안에 가득하니 생이 기이하게 여겨 내당(內堂 : 안채)에 들어가보니 이미 순산(順産)하고, 선녀가 유리병의 향수(香水)를 기울여 아기를 씻겨 누이며 말하기를,
"이 아기는 월궁소아('달') 상제께 죄를 짓고, 태을선군과 인간 세계에 적강(謫降)하였으니 귀히 길러 하늘의 정하심을 어기지 마소서. 이 아이의 배필은 낙양 이상서집 아들이니 이가 태을(太乙)이라. 나 이제 그리로 가노니 이 아기의 이름은 숙향이라 하고 자(字)는 소아라 하소서."
하고 홀연히 가거늘, 생이 들어가 아기를 보니 설부화용(雪膚花容 : 눈 같은 피부와 꽃 같은 얼굴. 미인의 용모를 가르킴)이요, 탈속비범(세속을 벗어나 평범하지 않음)하나 다만 여자임을 섭섭히 여기고 인하여 이름을 숙향이라 하고 자는 소아라 하였다.
숙향이 다섯 살 되던 때에 오랑캐 병란(兵亂)을 일으켜 형주를 침노(불법으로 쳐들어감)하니 백성들이 피란할새 김생도 가족을 데리고 강릉으로 가다가 도중에서 도적을 만나 행장 노복을 다 잃고 다만 부인과 함께 숙향을 업고 가다가 적이 점점 가까이 오는지라. 생이 느히 달아나지 못하고 부인더러 이르되,
"사세(事勢 : 일의 형편) 위급하니 숙향을 바위 틈에 감추고 갔다가 도적이 간 후에 데려감이 어떠하뇨?"
장씨가 울며 말하되,
"첩은 숙향과 한가지로 죽을 것이니 낭군은 몸을 피하소서."
생이 말하되,
"어찌 그대를 버리고 홀로 가리오? 차라리 셋이 함께 죽으리라."
장씨가 말하기를,
"장부가 어찌 아녀자를 위하여 죽기를 취하리오? 빨리 가소서."
생이 끝내 응하지 아니하거늘 장씨 하릴없이 숙향을 반야산 바위 틈에 앉히고 꼈던 옥지환(玉指環) 한 짝을 숙향의 옷 안고름에 채우고 찬밥을 표주박에 담아 주며 이르되,
"이것을 먹고 있으면 내일 데려갈 것이니 울지 말고 기다려라."
하니 숙향이 발을 구르며 울며 말하기를,
"모친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뇨?"
하며 따르거늘, 김생이 무수히 달랠 즈음에 돌아보니 도적이 멀지 아니하거늘 숙향을 하릴없이 그 바위 틈에 버리고 장씨를 이끌어 산골짜기로 달아나더니, 도적이 다달아 숙향을 보고 묻되,
"네 부모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앉아 우느냐?"
숙향이 그 말을 다 일러 말하니 도적이 죽이려 하거늘, 그 중 한 늙은 도적이 말리며 말하기를,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를 죽여 무엇하며, 또한 그 아이 상(相)을 보니 훗날 귀히 될 것이니 죽이지 말라."
하고, 업어다가 마을 근처에 놓고 가니라.
숙향이 어찌할 바를 몰라 길가의 가시덤불 밑에 앉아서 부모를 부르며 울거늘 행인들이 불쌍히 여겨 밥도 주며 물도 주며 위로하여 말하기를,
"너를 데려가고 싶으나 우리 자식도 괴로우니 불쌍은 하다마는 어쩔 수가 없구나."
하더라.
이 때는 추구월(秋九月)이라. 한풍(寒風)이 쌀쌀하여 밤이 되자 일신이 얼어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홀연 황새 한 쌍이 내려와 날개로 덮어 주거늘 마음 속으로 이상히 여겼으나 그 따스한 기운에 잠을 자고 깨어나 보니 날이 이미 밝았는지라 부모를 부르짖으며 울더니 문득 까치가 날아와 숙향의 무릎 위에 앉아 울고 날아가거늘, 숙향이 괴이하게 여겨 까치 가는 데로 따라가 여러 산을 넘어 한 곳에 다다르니 큰 마을이 있는지라. 숙향이 울고 헤매더니 마을 사람이 물어 가로되,
"너는 어떤 아이인데 울고 다니느나?"
숙향이 말하기를,
"우리 부모께서 '내일 와서 데려가마' 하더니 아직 오지 아니하기에 속절없이 우나이다."
마을 사람이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난중(亂中)에 잃은 아이로구나."
하고 먹을 것을 주고 가는지라. 숙향이 갈 바를 몰라 주저하더니 홀연 잔나비(원숭이)가 삶은 고기를 물어다가 주거늘 먹으니, 굶주린 것을 진정할 수 있겠더라.
이 때에 김생이 장씨를 깊이 숨기고 밖에 나가서 숙향을 찾으니 종적이 없는지라. 돌아와 이 소식을 전하니 장씨 듣고 기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거늘 생이 위로하여 말하기를,
"숙향이 만일 죽었으면 시신(屍身)이 있을 것이로되, 종적이 묘연(杳然)하니 누군가가 데려간 것이 분명한지라. 전일(前日) 왕균의 말을 생각하여 설움을 억제하라."
장씨 말하기를,
"일각(一刻)인들 어찌 차마 잊으리오?"
하고 애통하더라.
2
이 적에 황태후 병이 드시되 증세 괴상하여 귀 먹고 눈 어둡고 말 못하는지라. 일국이 진동하더니, 한 도사(道士)가 와서 천자께 뵈옵고 여쭈어 말하기를,
"이 병환은 침약(鍼藥)으로 고치지 못하고 다만 봉래산 개언초와 천태산 병이용과 동해 용왕의 개안주를 얻어야 나으실 것이니 어진 신하를 보내어 정성으로 구하소서."
하니 상이 즉시 조신(朝臣 : 조정에서 근무하는 신하)을 모으고 의논하실새 양왕이 아뢰어 말하기를,
"조신 중에 이선이 가히 보냄 직하오니 얼마 아니하여 약을 얻어 올까하나이다."
상이 초공을 부르시어 말하기를,
"짐이 경의 충성을 아노니 이 약을 얻어 오겠느냐?"
하니 초공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자(臣子)되어 어찌 폐하의 이르심을 사양하리이까마는 다만 세 곳이다 인간 세계가 아니오니 돌아올 기한(期限)을 정하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하직한 후에 집에 돌아오니 부모와 승상과 상서 모두 이별할 때 다시 못 볼까 서로 슬퍼하며 정렬 부인(숙향을 가리킴)과 서로 이별할새 초공이 말하기를,
"나의 길이 사생(死生)을 모르는지라 부인은 나를 위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고 부디 보중하소서. 나의 생사는 북창(北窓)밖에 있는 동백을 보아 짐작하되 나무가 울거든 병든 줄 알고 가지 무성하거든 무사히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소서."
하니 부인이 또한 옥지환 한 짝을 주며 말하기를,
"이 진주빛이 누르거든 첩이 병든 줄 알고 검거든 죽은 줄로 아소서."
하고 한 봉글(봉한 편지)을 주며, '천태산 마고 할미께 전하라.' 하더라.
초공이 부모께 하직하고 발행(發行)하여 남쪽으로 향하더니 배에 오른지 보름만에 큰 바다 가운데 들어 대풍(大風)이 일어나 배가 물 속에 출몰하여 배 안 여러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차에 문득 한 짐승이 물 속으로부터 내달으니 그 고기 뫼 같고 뒤웅박 같은 눈이 셋이로되 불빛 같은지라. 소리질러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사람인데 남의 땅에 지세도 아니 주고 당돌히 지나 가고자 하는냐?"
하니 초공이 말하기를,
"나는 중국 사신으로 황태후 병이 중하시어 황명(皇命)을 받들어 봉래산에 선약(仙藥)을 얻으러 가니 잠시 길을 빌리고자 하나이다."
그 짐승이 말하기를,
"잡말 말고 가진 보배를 다 주고 가라."
하며 배를 잡고 힐난(詰難 : 트집을 잡아 따지고 드는 것)하거늘 초공이 민망하여 비며 말하기를,
"가져가는 것이 양식밖에 없노라."
그 짐승이 성내어 말하기를,
"정녕 보배를 짐작하거늘 정 아니 주면 이 배를 엎치리라."
하니 공이 어절 수 없어 옥지환을 내어 주니 그 짐승이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동해 용왕의 개안주니 네 어디 가서 훔쳤느냐?"
하고 배를 끌고 가니 한 곳에 다달아 그 짐승이 배를 머무르고 말하기를,
"용왕께 여쭈어 네 죄를 물은 후에 놓아 주리라."
하고 들어가더니 이윽고 붉은 도포를 입은 선관(仙官)이 나와 물어 가로되,
"네 아내가 누구의 딸이냐?"
공이 말하기를,
"내 아내는 김전의 딸 숙향이니이다."
그 선관이 들어가더니 용왕이 나오신다 하여 수중이 진동하며 왕이 나와 초공을 맞거늘 공이 가장 송구하여 나아가 재배(再拜)하니 왕이 붙들어 앞에 올려 자리를 정하고 앉은 후에 왕이 사죄하여 말하기를,
"저는 이 곳 용왕이러니 귀인(貴人)이 지나가실 줄을 어찌 뜻하였으리로? 저 적에 내 누이를 반하수에서 김 상서가 구하시어 살아나매 은혜 갚을 길이 없어 이 진주를 드렸는지라. 복(福)자를 가졌으면 사람이 오래 살고 죽은 몸에 얹어 두면 천만 년이라도 살이 썩지 아니하는 보배라. 수족(水族) 등이 다 아는고로 오늘 순행하다가 멀리서 상서(祥瑞)의 기운이 있다 하기로 알아 오라 하였더니, 아랫것들의 전언(傳言)을 들은 즉 귀인이 가신다 하기에 반가운지라. 대저 봉래산에 가시면 약은 얻으려니와 여기서 일만이천 리나 되고 십이국을 지나가고 약수(弱水)가 가려진 데 있으니 인간의 배로는 건너기 어려울가 하노라."
하고 잔치를 베풀어 관대(款待)하더니 한 소년이 밖으로부터 들어와 절하고 앉거늘 왕이 물어 말하기를,
"네 어찌하여 왔느냐?"
소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 '네 공부를 다하였으니 태을선(太乙仙)의 힘을 얻어야 선관이 쉬이 될지라. 이제 마침 황태후 병으로 약을 구하러 봉래산에 가는 길에 정녕 네 집에 들를 것이니 네가 태을을 평안히 호송하라.' 하시기에 왔나이다.
왕이 대희(大喜)하여 말하기를,
"저 손님이 태을이시니 의복을 고쳐 선복(仙服)을 입힐 것이고, 또 나의 공문(公文)을 가져간다면 별 의심이 없으리이다."
초공이 말하기를,
"저 소년은 뉘시뇨?"
왕이 말하기를,
"내 아들로서 일광노의 제자가 되었더니 스승의 명으로 상서를 뫼시러 왔나이다."
초공이 대희하여 말하기를,
"연즉(그러면) 중인(衆人)은 어찌 하리오?"
왕이 말하기를,
"보내소서."
하고 수신을 불러 분부하거늘, 초공이 용왕을 하직하고 물가에 나오니, 용자(龍子) 기다렸다가 한가지로 붉은 표자(瓢子)를 타니 빠르기 화살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