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동깊게 읽었던 책은 “장 자끄 쌍빼의”ㅡ[얼굴빨개지는 아이]란 작품이다. 산뜻한 그림과 익살스런 유머,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운치 있는 글로, 이 책은 가벼움 속에 숨겨진 감동을 찾아내는 보물찾기 와도 같은 작품 이였다. 항상 이유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마르슬랭>. 그는 현대의학으로도 어찌 할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렸는데 그것은 아무 이유도 없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림에도 항상 주목을 받았고 나중에는 그러한 시선을 견딜수 없어 혼자 노는 아이가 되버린다. 그러한<마르슬랭>은 어느날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누군가의 재채기 소리... 감기에 걸린듯한 사람의 끊임없는 재채기 소리...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그것이 누구의 기침소리 인지 궁금해 하고, 결국에는 그 끊임없는 재채기 소리의 주인공인<르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곤 <르네>의 재채기가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공통된 점 때문에 <마르슬랭>과 <르네>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얼굴빨개지는 아이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재채기 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르네>는 <마르슬랭>을 위해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었고, 운동 신경이 뛰어난 <마르슬랭>은 <르네>를 위해 운동을 가르쳐 주었다. 그 둘은 언제나 함께 다녔으며, 언제나 함께 어울렸다. 같이 자전거도 타고, 산책도 하고, 때론 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건 그 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았고, 행복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여름방학 기간동안 할머니 댁에 다녀온 <마르슬랭>은 항상 그랬듯이 돌아와 <르네>를 찾았으나 <르네>는 어느새 이사를 가버린 후였다. 실망한 <마르슬랭>은 <르네>의 편지를 찾아보았으나 편지는 어디 에도 없었고, 그렇게 그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후 <마르슬랭>은 여러 친구들을 다시 사귀며 어느새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이 된 <마르슬랭>은 여전히 얼굴이 빨개진채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약속을 하며,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업무 속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작은 여유조차 찾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 계속 되어가고 있을 뿐이 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마르슬랭>이 길을 건너 버스를 타고 가려 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끊임 없는 재채기 소리!! 순간<마르슬랭>은 그 재채기 소리가 분명 <르네>일 것이라 생각 했다. 역시 그 소리는 <르네>의 재채기 소리가 분명 했고, 얼굴빨개 지는 아이와 재채기 하는 아이는 이제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둘은 여전히 바쁜가운데도 서로만을 위해서는 끔찍했고, 다시 예전처럼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의자도 뛰어넘으며,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그들은 언젠 성공 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냥도 자주 갔으며, 아무런 사냥감을 잡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아쉬워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같이 존재 하고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이지만, 시간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그들이지만... 얼굴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하는 아이는 오늘도 서로를 끔직히 위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르네,우리 아이가 글쎄 말이지. 그 아이가 말이야. 아무래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지 뭐야... ”
“그런가, 마르슬랭? 사실 말이지. 우리 아이도 아무 이유없이 재채기를 하는 것 같더라구...” 그렇게 그 둘은 여전히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채,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 해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관건이라 할수있는것은 “장 자끄 쌍빼의” 그림들이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그림들로 <마르슬랭>과<르네>의 발고 귀여운 유년시절을 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슬랭>과<르네>는 서로의 결점이라면 결점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결점이지 결코 장점이 될 수 없는 것. 그러나 그들은 아무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재채기를 하고, 이러한 결점이 있었기에 친구가 될 수있었다. 이들은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 시켰다거나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단점을 서로 이해했으며, 어떤점에서는 그 단점을 서로 좋아해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들이 사는 모습은, 살아가는 것은 열등감을 느끼며 그 열등감의 감옥속에 갇혀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삶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부족한것만을 느끼며 그 속에서 허우적 되고, 거기에서 헤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삶이, 열등한 의식을 느끼며 부족함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 과연 행복한것일지 나는 의문을 가져본다. 내가 정말이지 이런 가벼운 만화같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은 무엇보다도 열등한 그들이 자신들의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지 않고 서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봐주며 이해하며 살아갔던 모습들이다. 만약 얼굴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하는 아이가 콤플렉스 속에 빠져서 살아갔다고 한다면, 그 둘의 첫 만남또한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비슷한 결점을 가진 운이 나쁜 사람들쯤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은 대면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으며, 그들의 헤어짐을 진심으로 아쉬워했고, 나중에 겪은 만남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여전히 얼굴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하는 아이로써의 우정을 간직 하며 살아간다. 정말이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인지 모른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상대방의 단점까지 이해하며 믿고산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힘든 일일테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 그래서 상대방의 단점을 이해하고 감싸기 보다는 열등의식 속에서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그런한 지금의 모습들에서 무엇보다 부러웠던 아름다운 모습들이 였다. 지금도 그들은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 하지 않고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고 있을 그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제게는 열등한 것은 많으나 저는 열등한 것을 자랑합니다. 열등한 것이 사실이나 열등감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연약함 속에서 주님의 강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ㅡ최일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