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그동안 나의 생각에는 천국에 대한 사상이 그리 짙게 나타나있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이 곧 천국이라고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먹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지상을 흠모 했다. 아니 설령 천국이 있다해도 아마 이 지상의 아름다운 어디 쯤 정도 될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성격을 읽을 때도 천국의 이야기는 그냥 환상이나 아니면 옛날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천국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천국이 왜 좋은 지를 이젠 알았다. 그렇다, 천국은 있어야 한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 천국에 가야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천국은 있어야 한다.
내가 캘커타의 나환자 마을을 방문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아니 우연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내가 가슴에 담고 다녔던 단 하나의 생각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리에서 누추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먼저 손과 발을 유심히 보았다. 우선 그가 나환자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캘커타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예상 외로 많은 나환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어디선가 모여 살고 있을거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기소르....그는 내가 캘커타에서 만난 좋은 친구다. 키가 작고 몸집도 왜소한 전형적인 인도의 빈민가 출신 다운...그런 사람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여행자 숙소인 파라곤에서 아주 가까운 도로 변에 노천 식당을 차려 놓고 주로 한국 여행자를 중심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식당이라고 해야 길거리에 의자 두 개 마주 놓고 거기에 앉아 먹어야 한다. 주방 역시 남의 집 추녀 밑에 석유버너 하나와 아주 오래된 포장마차 하나가 전부다. 간판도 남의 집 벽에 한글과 일본어로 적어 놓았다. 그의 손님들은 그냥 길거리 나무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먼저 그 집 식사를 먹어 본 한국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정말 우리 입맛에 맞았다. 그동안 내가 인도에서 먹어 본 식사 중 가장 우리 입맛에 가까운 식사였다. 더욱이 값이 아주 싸다. 내가 즐겨 먹는 새우 국밥이 25루피, 우리 돈 5백원이다.
그는 일본어도 잘하지만 한국말도 제법한다. 물론 그동안 외국으로 떠돌면서 익힌 영어 실력이 서툴게나마 있었지만 그에게만큼은 굳이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좋았지만 그 보다 더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인도 사람들에게서는 보지 못할 성실함이 그에게서 보았던 것,
나는 그에게 나환자들이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역시 그들이 어디 사는 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들이 어디에 살든지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조끼를 벗어주고 신던 슬립퍼도 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디에 사는 지 알아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이렇게 해서 마침내 그들이 사는 곳을 알아냈다.




골목과 대로를 차례로 지나치던 택시가 마침내 철길 아래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좁은 길 앞에서 멈췄다. 젊은 여자들은 그 쑤레기 더미를 헤쳐가며 무엇인가 살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나 돈이 되만한 것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가르킨다. 그 쓰레가 더미 옆으로 나 있는 도저히 사람이 살거 같지 않은 움막들이 기소르가 말한 곳이라 했다.
36도에 이르는 무더위와 가끔씩 부는 후덥지근한 바람, 더욱이 코를 자극하는 쓰레기 더미의 악취가 먼지와 뒤범벅이었다. 견디기 힘들 정도였지만 나는 그가 가르킨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길을 더듬어 갔다. 내가 조심스럽게 라는 것은 행여 오물이나 동물의 시체가 밟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그곳에도 아이들이 있었다. 젊은 여자들이 살고 있었고 갓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그동안 내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빈민가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상태였다. 차마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마져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에 식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있었다.
낯선 이방의 방문객이 왔음을 알고는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 뛰어 나왔다. 어른들도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응시했다. 나는 손을 합장하며 연신 나마스테를 외쳐가며 그들이 사는 집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았다. 차마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상황임에도 나는 웃어야만 했다. 그러고 싶었다.
만약에 누가 돼지를 저런 곳에 키운다고 하면 우리는 그 돼지 주인을 욕할 것이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저렇게 키운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돼지가 아닌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보았던 더러운 천이 깔린 낡고 좁은 침대도 없었다. 먼지가 푸석거리는 맨바닥에서 갓난 아이가 뒹굴고 그 옆엔 노인이 누워있다. 내가 보기엔 그냥 누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더러운 새끼들, 순간 나의 생각에서 뛰쳐 나온 욕 한마디....바로 인도 정부의 관리들을 향해 퍼부은 욕이다. 도대체 정치를 한다는 놈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곳이 캘커타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가? 만약 그들이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내 욕을 먹어도 쌀 것이고, 알고도 방관했다면 이보다 더 더러운 욕을 먹어야 한다. 더러운 새끼들....나는 다시 한번 더 욕을 했다. 이런 곳이 인도 땅 한 복판에 버젓이 있음에도 핵폭탄을 만들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인공위성을 만든다고?
그렇다. 천국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있어야 한다.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환자의 몸으로 다시 천민보다 더 천하게 살아가는 인도 나환자들.....그동안 내가 인도 나환자 시설으 돌아보면서 들은 바로는 인도 나환자의 대부분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소굴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나환자가 안 되는 것이 오히려 의문스러울 것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이런 환경에서 산다면 일년도 채 못가 환자가 될 것이 당연하다. 먹고 자는 것이 짐승의 우리만도 못한 곳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지상에서 살다 간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천국은 있어야 한다.
만약....나에게 천국의 자리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뭔가 잘 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 온 나에게 천국이 주어진다는 것은 뭔가 착오가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들을 보니 감히 천국을 욕심내는 것은 만용이며 사치였다. 아니다, 나는 천국에 가지 말아야 한다. 천국은 저들이 가야한다. 이 지상에서 가장 천하게, 가장 가난하게 살아 온 저들이야 말로 천국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내 뒤를 몇 줄로 따라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의 무력함을 비웃었다. 그동안 나는 따스한 가슴하나만 있으면 이 지상을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것으로는 이 지상이 아름다울 수 없다. 적어도 돼지 우리 만도 못한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인도의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간다. 연신 아파하며 수 없이 피를 올려가며 절룩거리는 가슴으로 또 하루를 삼켜 버린다. 내일은 또 어떤 상황이 나타날 것인가? 내일은 또 누구를 만날 것인가? 이젠 가난의 밑바닥을 본 것도 같은데도 여전히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밑바닥인가 했지만 밑바닥은 또 있었다.
어른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 영어를 할 줄아는 운전기사를 통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른들은 모두 구걸을 나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아예 구걸마져도 못 하는 사람들이다. 건강한 사람들이 구걸을 하러 다니면 욕을 하고, 그나마 걷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리에 누워 식구 중 누가 구걸을 하다 먹여 살리는 것이다.
착하게 생긴 어린 녀석들, 그들이 거친 옷이라고는 모두 낡고 헤진 것 뿐이다. 그나마도 못 입은 애들은 아예 벗고 산다. 오물과 먼지와 음습하기 이를데 없는 움막에서 적게는 예닐곱 많게는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이 같이 산다.
그렇다. 천국이 있어야 한다. 저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 지상에서 맛 있는 음식 많이 먹고 좋은 환경 속에서 잘 살아온 나는 정말 천국에 가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