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투 마즈Mission to Mars>를 통해 본 화성 유인탐사 계획의 현실성
감독: Brian De Palma
각본: Lowell Cannon (story), Jim Thomas(more)
제작사: Touchstone Pictures
개봉년도: 2000년
출연:
Gary Sinise .... Jim McConnell
Don Cheadle .... Luke Graham
Connie Nielsen .... Terri Fisher
Jerry O'Connell .... Phil Ohlmyer
Kim Delaney .... Maggie McConnell
Tim Robbins .... Woody Blake
Peter Outerbridge .... Sergei Kirov
Kavan Smith .... Nicholas Willis
제작자: David S. Goyer(co-producer), Justis Greene(co-producer), Tom Jacobson, Jacqueline M. Lopez(associate)
Sam Mercer(executive), Chris Soldo(associate), Ted Tally(associate), Jim Wedaa(co-producer)
음악: Ennio Morricone
촬영: Stephen H. Burum
편집: Paul Hirsch
미술 디자인: Ed Verreaux
아트 디렉션: Andrew Neskoromny, Tom Valentine
세트장식: Lin MacDonald
의상 디자인: Sanja Milkovic Hays
분장: Charles Porlier
프로덕션 매니저: Heather Meehan
상영시간: USA:113분 / UK:113분 / 일본:114분 / 노르웨이:115분
제작국가: 미국
사용언어: 영어
관람등급: USA:PG / UK:PG / Netherlands:16 / New Zealand:M / Norway:11 / Singapore:PG / Sweden:11 / France:U / Germany:12
보고 평하는 이: 고장원
"우리는 무모함과 행운 덕분에, 그리고 저 밖에 딱맞는 우주비행사들을 보냈기 때문에 그나마 그 동안 큰 탈없이 우주비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미항공우주국 생리학자 존 찰스John Charles
<미션 투 마즈>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무척 썰렁한 편이다. 심지어 Matt Heffernan 같은 이는 이 영화가 ‘브라이언 드 팔머의 디즈니 버전’이라고 비아냥댈 정도니까. 나아가 그는 이 따위 영화를 SF라고 부른다면 이 장르에 대한 모욕이며 각본가는 과학 지식의 기본기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고 힐난했다. 해외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위와 대동소이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디즈니 하청을 몇번 더 받았다간 브라이언 드 팔머 역시 마이클 베이나 롤랜드 에머리히 짝이 난다는 걱정(?)까지 해주면서 말이다.
사실 <미션 투 마즈>는 드 팔머의 이름값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플롯과 드라마트루기를 속수무책으로 드러낸다. 갈수록 현란해지는 할리우드 컴퓨터 그래픽의 혁혁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연대기적으로 차례차례 나열되는 극의 평이한 전개는 하품 나오기 딱 알맞다. 팀 로빈스가 중간에 예상치 않은 감동적인(?) 최후를 맞이하지만 연기자들 또한 평이한 시나리오에 발이 묶였는지 너나 할 것 없이 이렇다 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에는 건질 만한 미덕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정말로 이 영화는 SF라는 장르의 이름에 먹칠할 만큼 제멋대로 만들어진 엉터리 사기극인가? 누구 말대로 유일하게 봐줄만한 것은 미술 디자인, 다시 말해서 인상적인 화성 풍경 밖에는 없는 것일까?
시각적 이미지만 놓고 보면 <미션 투 마즈>는 언뜻 보기에 SF영화치고 엄밀한 과학지식에 바탕을 둔 작품이 드문 현실에서 그런대로 그럴싸해 보인다. 그럼 여기서 진실은 무엇이고 빠뜨린 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는 에어록에서 진공상태의 우주로 빨려나가는 우주비행사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 선구적 SF영화 <2001년>의 진지함에 얼마나 근접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실제로 화성 유인탐사계획에 관한 최신정보를 잣대로 해서 평가를 내려보기로 한다. 아울러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서, <미션 투 마즈>에서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확장해나간 SF적 아이디어가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지에 대해서도 가늠해보고자 한다. 제대로 된 SF라면 매체의 형태를 불문하고 과학적 토대에서 출발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미션 투 마즈>는 화성탐사 여정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그리고 있는가?
사이버펑크 작가 브루스 스털링은 유인우주계획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면서 로봇 우주탐사선을 전 태양계에 풀어놓는 편이 더 생산적이라고 주장하지만(주1) , 미항공우주국(NASA)은 이에 아랑곳없이 2020년 인간을 화성에 보낼 3개년 계획(각각의 편도여행시 소요되는 6개월이 포함)을 구상중이다. 다시 말해서 화성탐사 계획은 그저 영화에서나 가능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준비중인 프로젝트인 것이다.
적어도 미항공우주국이 보기에는, 진짜 골치아픈 문제는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주2) 그들의 관심은 우주비행사들이 화성으로 가는 동안 우주에서 겪게 될 신체적, 정신적 곤경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쏠려 있다. 1997년 미항공우주국은 1988년부터 1995년 사이에 우주 비행을 한 남녀 279명의 경험을 검토했다. 분석 결과 우주비행 동안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시달린 경우는 단 3건에 불과했지만 그밖에 175가지의 생체의학적 위험이 확인되었다. 그 중 네 가지는 상당히 위험하고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아직까지는 딱히 이렇다할 치료방안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화성에 인간을 보내자면 진짜 성가신 골치거리는 (미항공우주국의 논리에 따르면) 로켓공학이 아니라 의학적인 문제인 셈이다. 그 네 가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장기간의 무중력 상태
- 우주 전역에서 쏟아지는 방사선
- 우주비행사들이 의학적 위급상황에 처할 경우
- 장기간 좁은 공간에 고립된 탓에 생길지 모르는 심리학적 문제
1. 장기간 무중력 상태로 인한 부작용의 극복 방안
생체의학적 위험은 대개 단순히 무중력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발생한다. 하긴 인류가 중력의 굴레에 얽매인 채로 수백만년을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귓 속의 연하고 작은 뼈들로 이뤄진 평형기관이 무중력 상태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최초의 의학적 문제는 이륙 직후부터 일어난다. 경험 많은 우주비행사들조차 걸핏하면 토하고 현기증과 불쾌감을 느낀다. 평형기관이 며칠에 걸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우주비행사들은 토하지 않게 해주는 약을 복용한 다음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자칫 머리를 조금만 빨리 돌려도 심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주3)
무중력은 또한 순환기 계통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보통 피는 다리와 하체에 몰려 있다. 우주비행사가 무중력 상태에 돌입하면 피가 혈관을 타고 간헐천처럼 사방으로 솟구쳐 올라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고 심장은 과도한 혈액이 몰리는 바람에 마구 쿵쾅거린다. 결국 우주비행사의 몸은 체내에 수분이 과다하다는 착각을 일으킨 나머지 이삼일 안에 약 일 리터가 넘는 체액이 몸 밖으로 방출되어 버린다. 마침내 탈수 상태에 이르고 몸 안의 피의 농도는 진해진다. 진해진 혈액은 더 이상 붉은 혈액세포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몸을 자극하게 되고, 급기야는 몇 달 안에 가벼운 빈혈증세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한편 근육과 뼈는 어떠한가? 무중력 상태에서는 한 달만에 뼈의 1~1.5%가 소실된다. 그 뿐인가. 인대와 힘줄 마저도 차차 퇴화해버린다. 움직이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고 물건을 들어올리는데도 힘이 안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3년 간을 보내면 뼈가 부숴질 위험성은 20~30%에 달한다. 비교적 사소한 스트레스만으로도 힘줄이나 근육이 종이장 뜯어지듯 끊어질 수 있다. 미르Mir 우주 정거장(주4) 의 승무원들은 이러한 퇴화과정을 막기 위해 꾸준히 신체단련을 했지만 퇴화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더욱이 일단 한번 몸이 무중력 상태에 적응하게 되면 다시 중력상태로 돌아오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스럽다. 1989년 우주왕복선 조종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맨리 카터Manley Carter는 중력에 적응하는 과정을 인생에서 가장 육체적으로 고달펐던 경험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1998년 미르 정거장에서 141일을 보낸 호주의 우주비행사 앤드류 토마스Andrew Thomas의 경우 무중력상태에서 지상으로 돌아온 뒤 한 달이 지나도 조깅만 하면 숨이 차서 뛰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미항공우주국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우주비행사들의 체면을 위해, 착륙선에서 내린 우주비행사들을 지상안전요원들이 둘러싸 부축하게 한다. 착륙캡슐에서 나와 고양이처럼 걷는 우주비행사들의 갈짓자 걸음을 외부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화성에 가기 위해 여섯 달 동안 우주 공간에 묵어야할 우주비행사들은 얼마나 신체가 쇠약해질까?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반이자 달의 두배 이상이다. 그러니 화성 지표면의 중력에 익숙해지는 일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승무원들을 부축해주려고 기다리는 지상요원이나 생활 재적응 프로그램 따위가 준비되어 있을 턱이 없으니까.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예 인공중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선의 일부나 전체가 회전을 해서 원심력을 일으키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주선 안에 인공중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고려중인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우주선 전체를 회전시키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선내 전체가 지구와 똑같은 1G의 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일부 공학자들은 이 우주선의 모양이 덤벨(역기)처럼 생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둥근 도넛 모양의 선실이 양 끝에 있고 그 사이를 긴 관처럼 생긴 다리가 연결하고 있는 형태다. 이 경우 우주선 전체가 그 중심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의 우주선은 기계적인 결함이 생기거나 유성파편이 다리 부분에 맞을 경우 두동강나기 쉬운 단점이 있다.
또다른 방법은 우주선의 방 하나에만 인공중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작은 원심력을 발생시키게 되는 이러한 방식은 중력을 골고루 배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우주비행사의 머리 부분은 무중력 상태지만 다리 아래로는 1~2G가 되는 바람에 발목은 모래주머니를 찬 듯 질질 끌리고 머리는 어질어질할 테니까 말이다.
자, 지금까지 무중력 상태가 빚어내는 여러가지 문제와 해결책을 과학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럼 영화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미션 투 마즈>는 영화라는 속성상 위에 열거한 문제들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공중력 발생 우주선을 등장시키는 기본적인 성의를 보인다. 딱히 위에서 설명한 구조의 우주선 그대로는 아니지만 기본 해법은 동일하다. 도너스 같은 선실 부분이 연료기관과 기계류로 가득찬 기둥을 중심축으로 삼아 회전하는 방식이니까 말이다. 다만 영화에서 묘사된 회전하는 선실은 너무 작은 규모라,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럴 경우에는 머리와 발에 걸리는 중력에 차이가 있어 우주비행사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SF영화에서 우주선(宇宙船)을 미학적 견지에서만 보지 않고 기능성까지 고려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이 밖에 중력이란 문제와 관련하여, <미션 투 마즈>에는 화성에 도착한 승무원들이 중력에 재적응하는 과정이 생략되어버려 아쉽다. 만약 우주선의 인공중력이 지구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면 (다시 말해서 1G라면), 승무원들은 화성 표면 위를 달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붕붕 날다시피 뛰어다녀야 마땅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출발 당시부터 우주선의 인공중력을 화성 수준으로 맞춰놓는다는 복선을 미리 깔아 놓던지…(물론 이 경우에는 지구로 귀환할 때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2. 치명적인 우주선(宇宙線)에 대한 대비
무중력 상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인체를 꿰뚫어버리는 우주선(宇宙線)이다. 우주 전역에서 무차별로 날아오는 이 방사선은 지구를 에워싼 자기장 덕분에 약화되지만 대기권 너머에서는 100% 그대로 관통당하게 된다. 대개 철입자들`iron particles로 구성된 이 우주선은 몸은 물론 두개골까지 쉽게 꿰뚫는다. 이것은 피하 조직에다 핵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장기간 노출되면 우주비행사의 DNA 구조에 손상을 일으키게 된다. 쥐를 이용해 철입자를 쐬이는 실험을 한 결과(주5) , 뇌의 도파민dopamine(주6) 경로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에 따라 냉담해지고 기억력도 감퇴하는 등 행동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알아냈다. 해부를 해보니 뇌가 방사선에 노출된 탓에 마치 산탄총을 맞은 것 마냥 작은 구멍들 투성이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주선은 또한 선내의 공기 뿐만 아니라 우리의 피부, 입 그리고 장에 서식하고 있는 박테리아와 균류(菌類)에 위험천만한 돌연변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우주에서는 면역체계도 바뀌는 듯 하므로 감염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남극 대륙에서 고립된 채 모의 훈련을 받던 우주비행사들도 T세포 결핍증으로 고생한 바 있다.
나아가서 장기간 우주선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근무한 우주비행사들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암에 걸린 위험성이 임무 수행 후 1~2% 늘어났다. 이 정도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화성행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우주비행사의 경우 암 발생 확률이 40%로 늘어나며 위험 허용가능치의 무려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충분한 보호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채 현재의 준비상태로 인간을 화성에 보내는 행위는 불법이란 얘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과학은 이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나 기계적으로나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 <미션 투 마즈>도 이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다.
3. 우주비행사들이 의학적 위급상황에 처할 경우
미항공우주국은 화성까지 가는 여행 도중 심각한 의료사고가 일어나기 쉽다고 믿는다. 궤양으로 출혈을 하거나 팔 다리가 부러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잠수함과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장기간 근무를 하는 임무에 관해 수집된 자료들은 그 체류 기간이 일 년 동안일 경우 한 사람 당 의학적으로 비상사태에 처할 확률이 6%에 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예를 들어 화성행 임무를 띤 우주비행사들이 여섯 명이라면, 적어도 그 중 한 명이 3 년이란 기간 동안 심각한 의료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무척 높아진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지구상에서의 연구결과를 응용해 추정한 것에 불과하지만, 무중력 상태와 우주선(宇宙線)이 버티고 있는 깊은 우주에서는 그 위험성이 훨씬 더 증폭될 우려가 있다.
깊은 우주에서 상처를 입은 우주비행사는 긴급철수 할 수 없다는 점만 빼고는 비슷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선내 의사는 일반 외과적 지식과 응급실 테크닉을 훈련받겠지만, 우주에서는 기존의 정상적인 외과수술 방식조차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출혈된 피가 선내로 방울방울 흩어지면서 안개를 형성할 것이다. 외과용 메스, 집게 그리고 그밖의 다른 의료도구들은 의사의 손에 들려봤자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근육조직은 정상적인 탄력성을 잃어버린다. 피가 흐르는 것이나 상처 치료 그리고 병리학 등 모든 게 우주에서는 다르다. 그래서 의사들은 땅 위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에 의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외과의학적인 의사결정은 현장에서 바로 내려져야만 한다. 화성에서 지구로 송신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 지구와 화성 사이에 전파가 오고가려면 편도로만 약 20분이 소요된다.--- 응급치료는 지구 관제센터의 지휘감독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무중력에서의 외과수술은 직관과 자연스런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장착된 특수 감지기들이 그 수술을 모니터할 수 있도록 설계중이다. 나아가서 예방 차원에서 우주비행사들의 피하 조직 안에 극소형 디지털 감지기를 삽입해 수시로 그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인권침해의 소지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미션 투 마즈>에는 의학적 응급사태라 할만한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 선장 팀 로빈스가 화성 궤도에서 자살하는 것은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기술공학적인 문제 때문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손바닥을 찔려 나온 핏방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 대신 [닥터 페퍼] 음료를 선내에 뿌려 유성 파편으로 공기가 새고 있는 부위를 찾아내는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 사람에 대한 응급처치 대신 우주선에 대한 응급처치에 각본가와 감독이 더 관심을 가졌던 탓일까?
4. 심리적 고독과 지루함을 견디는 문제
마지막 문제가 승무원들의 사회심리학적 복지환경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승무원들의 자발적인 보고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우주비행사들은 힘든 훈련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인 탓에 자기 자신이 아프다는 (더구나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시인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션 투 마즈>에서 아내를 사고로 잃고 좌절하지만 동료들에게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되도록 보이려 하지 않는 우주비행사의 행동에 반영되어 있다.
우주여행 중에는 정상적인 24시간 주기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렘수면을 누리기 어렵다. 이것은 승무원의 기분을 불쾌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맑은 생각을 하는데 장애가 된다. 화성에 도착할 때까지 우주비행사들의 거주지는 목욕탕만한 선실 안에 한정된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한다 해도 그들은 고향에서 1억 마일도 더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승무원들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동료 상호 간에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단조로운 선내 근무, 폐소공포증, 만성 수면부족 뿐만 아니라, 승무원들은 정신건강에 필수적인 일상의 친근한 인간관계(주7) 도 빼앗긴 셈이다. 고되고 고립된 환경에서 유사한 임무를 맡았던 실제 사례들을 기록한 미항공우주국의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10 % 이상이 심리적으로 적응하는데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특히 3 %는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병리학적 증상을 보일 지경이었다고 한다.
<미션 투 마즈>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처음에 이 영화는 심리적인 불안정으로 우주에 갈 수 없게된 우주비행사와 곧 출발을 앞둔 우주비행사들을 대비시켜 장기간 우주여행에서 심리적인 안정이 중요하다는 미항공우주국의 인식을 재확인한다. 그 문제의 우주비행사는 같이 훈련받던 아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성격이 어두워지고 방어적으로 바뀌는 바람에 통제본부의 신뢰를 잃은 것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이렇게 정석대로만 흘러가면 세상 일이 재미있겠는가? 오히려 <미션 투 마즈>는 이러한 약점을 영화적 복선을 강화하는 요소로 탈바꿈시킨다. 1차 탐사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긴급히 구조대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조종능력을 가진 그가 일행 중에 끼게 된 것이다. (물론 119 구조대를 파견하듯이 화성으로 구조대를 급파한다는 설정은 말도 안된다. 오늘날 1kg의 물건을 낮은 지구 궤도에 올려보내는데 드는 비용은 같은 무게의 금값과 맞먹는다고 한다. 설사 선발대가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발사 준비 기간은 제쳐두고라도 최단거리 여행기간(주8) 으로만 따져도 편도 6개월이나 걸리는 곳을 향해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곧바로 2차 구조대가 결성되어 떠난다는 각본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가 풍요로워져도 근미래에 우주로켓을 화성까지 보내는 일이 우주 탐사 프로젝트의 관료 몇 명과 우주비행사들 몇 명의 의기투합만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우주탐사는 동지애와 용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들 간의 첨예한 이해와 경제논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과학 비즈니스이잖은가. 이 점은 이 영화의 치명적인 결함 가운데 하나다.)
어쨋거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승무원이 장거리 우주여행에 참가하게 되었을 경우 그가 겪을지 모르는 심리적 강박관념에 대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미항공우주국 의료진은 오랫 동안 우주를 항해 중인 승무원들에게 그들의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어서 심리적인 불안정을 교정하는 방법을 생각중이다.(주9) 이렇게 하자면 가족들의 음성과 영상을 최신버전으로 계속 업데이트 해줄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고립감을 어느 정도나마 누그러뜨려줄 것이며, 이미 남극 대륙 탐사 임무에서 테스트된 바 있다. <미션 투 마즈>에서 다소 신파적으로 연출되어 있긴 하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사별한 아내의 과거 기록영상을 보며 선내에서 고독을 달래는 우주비행사의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은 지구의 관제본부가 그를 위해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취한 조치가 아니라 그 우주비행사 자신이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어 챙겨온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아내가 이미 죽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 그 화상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될 수도 없다. 감독과 각본가는 등장인물 한 명에게 심리적인 결함을 안겨주어 드라마의 밀도와 긴장을 높여보려 했을 뿐 과학적으로 적절한 대응조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물리법칙상의 한계를 충분히 소화해서 시나리오에 잘 녹여넣은 부분도 있다. 바로 지구와 화성이 상호 교신하려면 왕복하느라 40분씩 시간이 지연된다는 사실을 이용한 복선이다.(주10) 이러한 물리적 한계는 화성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늘 불안이 떠나지 않게 만들며, 지구의 통제본부 또한 화성 탐사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어 답답하게 한다. <미션 투 마즈>에서 지구관제센터는 화성 1차 탐사대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바로 답신을 보내도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불길한 조짐이 보여도 그 동안은 속수무책이라 바로바로 탐사임무에 수정을 가하거나 제동을 걸 수가 없는 것이다. 화성 1차 탐사대의 비극적인 최후는 통제본부와 원활한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었던 이유에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물리적인 제약이 심리적인 불안과 긴장을 자아내는 현실을 잘 포착한 통찰이 돋보인다.
그들이 화성에 간 이유
“인간을 화성에 보낸다는 일은 과학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중략)…만일 그러려면 과학이나 탐험 이상의 더 나은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중략)… 사람이 화성에 가는데 드는 비용에 걸맞는 효과적이고 널리 지지받을 만한 이유가 있을지 아직도 의문이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민음사, 1996년, 268~272쪽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이 단순히 과학적 탐구심 덕분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이제 드물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체제우위 경쟁의 대리전이었던 달 탐사 경쟁은 냉전과 함께 식어버렸다. 달 식민지에 관한 이런 저런 구상을 학자들이나 행성협회 등에서 이따금씩 청사진으로 내놓지만 정작 그것이 조만간 현실화되리라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화성 탐사에도 같은 기준, 아니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유인 우주탐사 계획에는 브루스 스털링의 지적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주선으로 편도여행만 육개월을 꼬박 해야 하는 화성 탐사 프로젝트와 구식 로켓으로도 일주일이면 다녀오던 달 탐사 프로젝트를 비교해보라.
그렇다면 인류가 굳이 화성에 가야할 까닭은 무엇인가? 이제 정치논리는 더 이상 우주탐사와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1967년 1월 27일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서명된 엄격한 협정에 따라 어느 나라도 다른 행성의 일부나 전부를 영토로 주장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남극 대륙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면 그것은 과학적인 탐구의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 같은 부자나라조차 의회와 국민이 그 탐사에 들어가는 엄청난 경비를 승인하자면 납득할만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가장 수긍하기 쉬운 것은 경제적인 이익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는 늘상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추는 법이다. 화성의 땅 한 줌도 누구 것으로 할 수 없는 이상 거기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돈을 댈 사람이 있을까? <미션 투 마즈>에는 이에 대한 정치, 사회, 경제학적인 고찰(통찰은 제쳐두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막연한 과학적 탐구심과 인류(아니면 미국민?)에 대한 사명감만 느껴질 뿐이고, 후반부로 가면 화성 탐사대는 마치 화성에 존재했던 고대 외계종족을 찾기 위해 온 것 같은 (논리상으로는 예정에 없던) 결말로 치닫는다. 대체 어떤 정부, 어떤 국민이 고고학이나 외계생물학적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화성에 사람들을 보낼까? (먼 미래를 배경으로 자유분방하게 써대는 SF소설에서라면 모를까.)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에는 화성에 가는 과정은 보이지만 그 목적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앞에 자세히 언급했듯이 화성까지 가자면 기술상의 문제, 비용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의학적인 위험까지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다.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화성까지 가는 수고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관객에게 외계인을 보여주고 싶어서?
독창성의 문제: <미션 투 마즈>는 <2001년>의 리메이크 버전인가?
이미 언급했지만 어이없게도 <미션 투 마즈>는 화성의 고대문명을 찾으러 떠난 인류 탐사대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좋다.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 정치, 사회, 경제적인 현실에 따른 타탕성 논란은 이 쯤 해두자. 인류가 화성에 간 목적을 둘러싼 논의는 접어두고, 영화가 설명하고 있는 화성의 역사와 화성인이 지구인을 키웠다는(?) 가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 부분은 영화의 후반부 플롯을 지탱해주는 근본적인 버팀목이니까 말이다.
1. 화성은 옛날 옛적에는 지구와 다름없는 환경이었지만 과연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황폐해진 것일까?
화성에는 생성 시기가 수십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꼬불꼬불한 지협이나 계곡들의 그물조직들이 남반구 고지대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것은 화성이 오늘날의 얇고 차가운 대기에 감싸인 표면과는 달리, 보다 온화하고 지구와 유사한 조건 아래 있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에 따르면 화성에는 지구의 공룡이 절멸할 정도로 큰 소행성 충돌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다. 오히려 화성은 아직 정확한 이유는 판명되지 않았지만 약 38억년 전부터 대기가 엷어짐에 따라 강과 바다가 마르고 온도 또한 급속히 뚝 떨어졌다고 추정된다. 외계 생물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이 때문에 그나마 생겨났을지 모르는 미생물이나 하등 생물들마저 얼음에 덮인 호수나 샘 밑에서 버티다가 결국에는 동사해버렸을지 모른다고 가정한다.
지구에서는 원시 박테리아로부터 인류가 생겨나기까지 무려 35억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화성은 제 아무리 초기 환경이 지구와 비슷했다고 가정한다 해도 이미 38억년 전부터 생명체가 살기 불편한 가혹한 환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영화에 나오는 화성인들은 난데없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도깨비 방망이도 없이 어떻게 그처럼 순식간에 진보된 고등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어느 한 쪽의 진화 속도가 더 빠를 경우를 고려해도 이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이다. 그럼 그 화성인은 원래 화성 출신이 아니라 우주의 저편 어딘가에서 이미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이주해온 뜨네기들일까? 영화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저 그들이 저 너머의 또다른 항성계로 떠났다는 암시만 할 뿐…
2. 지구인의 조상이 화성인이라구? 많이 듣던 얘기 아냐?
좋다. 한 번 더 물러서보자. 화성의 진화가 빛의 속도처럼 빨랐다고 우겨보자. 그렇게만 양해해준다면 다음부터는 술술 풀려나갈까?
<미션 투 마즈>는 화성에는 오래 전부터 고도로 발달한 문명인들이 있어 소행성 충돌로 화성이 절멸의 위기에 처하자 대다수는 머나먼 항성문명으로 떠나지만 일부는 지구에 정착하여 지구인의 조상이 된다고 가정한다. 참으로 낭만적인 (또는 가공할만한) 얘기다. 물론 유전공학에 능한 고등 외계종족이 인간을 지금과 같이 개량했다는 가정은 그저 영화적인 상상으로 치부해버리면 충분하지만, 과학자들은 실제로 지구와 화성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든 생명의 씨앗이 오고 갔으리라는 추론을 전개한다.
지구와 화성은 사실 40억년 전만 해도 둘 다 촉촉한 물기가 있는 행성들이었다. 그렇다면 둘 사이의 교류가 어떤 식으로든 가능하지 않았을까? 드물기는 하지만 큰 운석이 행성에 빠른 속도로 부딪치면 파인 행성 표면의 물질이 우주 공간으로까지 튀어 오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화성에서 날아온 운석이 남극에서 발견되었다고 매스컴이 호들갑을 떨었던 사례가 그 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지구와 화성이 막 행성의 모습을 갖출 당시만해도 외계의 성간 물질과 행성 사이의 충돌은 지금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일어났을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각 행성의 표층 물질들이 우주공간으로 튕겨져 나왔을 확률이 높다. 이 전제가 맞다면, 지구에서 생겨난 미생물이 우주 밖으로 튀어나간 물질에 묻어 있다가 화성의 인력에 끌려 들어가서는 생명의 씨앗을 퍼뜨렸을 수 있다. 아니면 그 역도 성립 가능하다. 칼 세이건 같은 학자는 어쩌면 이 두 행성은 당시 이런 방식으로 수억 년 동안 생명 형태를 교환한 것은 아닐까 추정한다.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화성에서 지구의 미생물이나 단세포 생물과 똑 같은 생명체나 그것의 화석이 발견된다면 이러한 가설은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넓은 맥락에서 보면, <미션 투 마즈>에 나오는 지구인과 화성인의 상호작용은 칼 세이건 같은 학자들의 추론을 좀더 극적이고 화려하게 포장한 결과라고 후하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필자가 보기에 불만스러운 부분은 이 영화가 주장하는 화성인의 실재 여부보다는 그 소재가 이제는 진부할 대로 진부해져 헌 고무신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제목에 걸맞지 않게 이 영화는 화성이나 화성탐사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며 마치 사이비 과학 컬럼니스트 에리히 폰 데니켄의 저서들이나 <2001년> 같은 SF영화의 고전을 떠올리게 한다. 아서 클라크의 단편 <파수>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2001년>은 수백만 년 전에 인류의 진화를 촉진시켰던 외계 고등문명이 달에 커다란 비석 모양의 안테나를 세워 놓았다고 가정한다.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가 화성인 얼굴 모양의 건물 안에서 화성인의 홀로그램과 만나는 에피소드는 영화 <2001년>에서 인류가 달에 도착해 외계인의 안테나(모놀리스)를 발굴해내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둘 다 공히 인류가 외계의 어머니 문명과 접촉할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측정해주는 감지기를 등장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감지기의 위치가 달에 있느냐 화성에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데니켄의 경우, 지구상 고대문명의 유적 곳곳에서 오래 전에 원시적인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외계의 우주비행사들의 자취를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로 인류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계보상의 미싱 링크missing link(잃어버린 고리)가 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발견된 화석들을 검토해보면 인류는 다른 종의 생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빠른 진화를 했고 출토된 화석들로부터 판단하건대 그 진화의 과정이 점진적이기보다는 단절적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초기 인류의 각 아종들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중간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아직 충분한 화석이 발굴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어쨋거나 이러한 의문점은 작가는 물론이고 사이비 과학자들과 아마추어 연구가들의 상상력까지 한껏 자극하여 성서의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외계의 고등생명체 내지 고등문명을 앉히려는 시도를 하게 한다. 그 결과 지구 속은 텅 비어 있고 그 안에서 발달한 초고도의 문명이 UFO를 보내오고 있다느니, 화성과 목성 사이에 지금은 소행성들의 떼로 분해되어있지만 원래는 제5행성이 존재했으며 거기서 인류의 선조가 지구로 온 것이라는 둥 근거를 확인할 수 없지만 듣기에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과학에세이나 초과학이란 허울을 쓰고 세간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화성에는 애초에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는 천재지변으로 화성의 주민들이 가장 가깝고 생명이 사는데 적합한 지구로 이주했고 그들이 유전공학을 활용해 원시인류를 네안데르탈인 또는 호모사피엔스로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가설이다. 이것은 자연진화가 아니라 인공진화이니 그 진화과정을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화석들이 아무리 땅을 파본들 나올 리 있겠느냐는 얘기가된다. 데니켄 선풍은 한 때 서구의 여러나라를 휩쓸었고 이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뒤따랐다. 이러한 전형적인 공식에 아주 충실한 <미션 투 마즈>는 굳이 이런 소재를 갖고 영화로 만들 작정이었으면 좀 더 일찍 서둘러야 했지 않았나 싶다.(주11)
결국 <미션 투 마즈>는 화성탐사는 뒷전으로 밀어두고 <2001년>의 주제를 현란한 할리우드 컴퓨터 그래픽으로 다시 한번 변주한데 불과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물론 제목이 '화성' 어쩌구저쩌구라고 해도 막상 그 안에 무슨 내용을 담느냐는 감독의 자유다. 하지만 화성 탐사시의 어려운 점들(물의 확보, 모래폭풍, 혹시 있을지 모르는 화성 바이러스, 승무원들의 몸에 붙어온 지구 바이러스의 환경 변화에 따른 돌연변이, 장거리 우주여행에 따른 기술적 의학적 문제, 식량의 재생산구조 모색, 식민지로서의 성공여부,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데에 따른 심리적 문제 등등)을 굳이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다해도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 내지 주제를 다시 꺼내 분만 요란하게 바를 이유가 있었을까?(주12) 한 마디로 말해서 <미션 투 마즈>의 가장 볼거리라고 감독이 내세운 소재 내지 주제는 독창성이 떨어지고 타이밍마저 늦은 감이 있는 최대의 약점이 되고 말았다.
결론: <미션 투 마즈>의 득과 실
전반적으로 <미션 투 마즈>는 인물의 극적 갈등이나 내면 연기가 기대에 못미치며 화면의 스케일만 거창하게 요란할 뿐 독창적인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 분석했듯이, 과학적인 근거에 맞게 묘사하려한 노력은 이제까지 보아온 우주 탐험 관련 영화들 가운데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견실한 편에 속한다. 특히 영화에서 유인 화성탐사계획이 실행되는 해가 2060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주13) , 현실의 미항공우주국은 2030년을 디데이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고 해야할까? 안타까운 사실은 과학적인 고증이 꼼꼼한 영화 수준을 넘어서 철학 내지 비젼을 보여주는 SF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이다. 브라이언 드 팔머는 갱스터 무비는 어떤지 몰라도 SF장르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참고문헌
- Jerome Groopman, In sickness and in space, 호주의 테블로이드판 주간지 [Good Weekend], 2000년 5월 13일자 41~48쪽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민음사, 1996년, 249~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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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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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실제로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일본, 호주, 핀란드, 이탈리아, 캐나다, 유럽 외계 기구 등의 공동 프로젝트로 1996년부터 2003년 사이에 25개의 소형 무인 탐사선들이 화성으로 날아갈 예정이다.
(주2) 정말 그럴까? 칼 세이건은 지금까지의 인류의 우주 탐사계획이 그리 매력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주선은 발사시 폭발하거나 표적을 빗나갔는가 하면 도착 후 기능이 고장나기도 했다. 현재 달과 행성들을 탐사한 미국 우주계획의 성공률은 아직 70%를 밑돌고 있다. (그나마 소련/러시아는 60%를 밑돈다.) 1962년 금성으로 갈 예정이었던 마리너 1호는 대서양에 떨어졌다. 아폴로 1호의 화재사고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폭발의 비극은 그중에서도 유명한 사례에 속한다. 더구나 목표가 일주일 만에 다녀오는 달이 아니라 3년짜리 스케줄로 덤벼야 할 화성이라면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주3) 만약 우주 비행사가 토하는 봉지를 무중력 상태에서 놓쳤다가는 끔찍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토한 오물이 덩어리들이 되어 선내를 떠돌면서 선원들의 뒤를 밟을테니까.
(주4) 러시아가 지구궤도에 올려놓은 소형 우주정거장. 물리과학적인 실험 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장기간 체류할 경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주5) 뉴욕 주 브룩해븐Brookhaven 국립연구소에 있는 특수 가속기는 철입자를 가속시켜 우주선과 비슷한 상태가 되도록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는 쥐나 시궁쥐 뿐만 아니라 배양 중인 세포까지도 우주선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효과를 낳는지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
(주6) 도파민은 부신(副腎)에서 만들어지는 뇌에 필요한 호르몬이다.
(주7) 단순히 섹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를 유지시켜주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말한다.
(주8) 지구와 화성은 각기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한다. 따라서 지구와 화성은 서로 가장 가까워지는 ��가 있고 반대로 가장 멀어지는 때가 있다. 가장 가까워졌을 때 지구에서 출발하면 화성까지는 약 6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주9) 이러한 방법은 이미 오래 전에 아서 클라크의 소설 <2001년 우주 오디세이>에서 묘사된 바 있다.
(주10) 다 아는 얘기겠지만 굳이 부연하자면 빛처럼 전파의 속도도 유한하기 때문이다. 전파의 속도는 빛과 똑같이 초속 30만km인데, 편도로 불과 1.2초면 도달하는 달과는 달리 화성까지 가자면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주11) 이 영화의 진부한 사례는 이 뿐이 아니다. <미션 투 마즈>에서 화성인의 우주선을 타고 먼 외계로 떠나는 우주비행사 짐 맥코넬 Jim McConnell의 이야기는 아서 클라크의 장편소설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에서 외계문명의 초대를 받아 떠나는 지구인 존의 캐릭터와 비슷하다.
(주12)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영화 <2001년>은 개봉 당시 미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고 데니켄의 저서는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편 20세기초 아마추어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정말로 화성에 고등생명체가 운하를 건설했다고 믿었으며 버로우즈의 소설 <화성의 존 카아터> 시리즈는 그러한 영향 아래서 화성인들의 세계를 창조해냈고 레이 브래드버리의 장편 소설 <화성연대기>는 텔레비전용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13) 시점이 2060년으로 설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객들이 자주 지적했듯이) 발사를 앞두고 우주비행사 관련 가족들이 송별파티를 20세기의 전원주택에서 벌이는 까닭은 왜일까?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하나는 아주 먼 미래가 아니기 때문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1>풍의 이질적인 메트로폴리스를 보여줄 수도 없고, 서기 2060년의 도시 시가지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자니 딱히 시각적인 인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그 시퀀스가 제작의도와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므로 제작비 절감상 과감히 스카이라인이 사는 마천루를 생략해버리고 복고풍(?) 주택가로 대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감독은 한술 더 떠서 현대의 승용차를 등장시켜 짖궂게도 골동품 차에 대한 우주비행사들의 기호가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떠벌리기까지 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는 첨단풍 도시는 고사하고 공중부양차(미래사회를 다루는 SF영화의 기본 아이템에 속하는) 하나 구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