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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2005년 6월.
<대담 원고>
장석원 : 먼저 선생님의 근황을 알고 싶습니다.
맹문재 : 이번 학기부터 안양대 국문과의 전임으로 가게 되어 이러저러한 학교 일에 적응하느라고 좀 바쁘네요. 지금까지 주로 문예창작과의 과목들을 강의했는데 국문과의 과목들을 강의해야 되므로 예습도 많이 해야 되고요. 학기를 마칠 무렵이 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것 같네요.
장석원 : 선생님께서는 두 권의 시집을 내셨습니다. 1996년과 200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곧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ꡔ먼 길을 움직인다ꡕ, ꡔ물고기에게 배우다ꡕ를 잇는 세 번째 시집을 먼저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맹문재 : 오늘 시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퇴고하느라고 원래 약속했던 것보다 좀 늦었습니다. 아직 교정도 몇 번 봐야 하고, 시집 해설도 받아야 하고 등등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요. 이번 시집은 <창비>에서 내는데, 8월 말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출판사에서 전해주더군요. 기다려봐야겠지요. 세 번째 시집에는 이자로 표상되는 돈 얘기가 많이 나와요. 돈에 신경 쓰며 살아가는 저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지요. 돈 얘기를 통해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장석원 : 선생님의 시집 두 권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개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시에는 도드라진 유관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시집의 「손목시계」를 보면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이제 / 그 옛날이 가득 차 있답니다 /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알알이 보속으로 채워져 있답니다” 같은 구절을 보게 됩니다. 과거와 고통과 기억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현실, 선생님 시에 반영된 현실과 과거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real world’란 무엇인가요? 선생님의 시에서 현실과 언어의 관계는 또 어떻게 설정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맹문재 : 저의 시에서 ‘과거’와 ‘고통’과 ‘기억’이라는 단어들이 인상적으로 떠올랐다고요. 저는 시를 쓸 때나 학생들과 함께 시를 공부할 때, 항상 현재진행형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고 미래에 의지해서도 위험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대신 현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에게 과거나 미래는 소중하겠지요. 과거는 살아가는 과정의 거울이 되고 미래는 삶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현재를 보다 소중히 여깁니다. 현재란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공간적인 면을 포함하는 개념이지요.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자신과 인연이 된 대상들을 최선을 다해 품는 것, 이것이 제가 현재에 대해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면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는, 저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지나간 세월의 장면들을 떠올리면 모두 그립고 아름답겠지요. 예를 들어 아주 가난한 산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오랜 세월 뒤 그곳을 되돌아보면 그리워지고 되돌아가고 싶겠지요. 그렇게도 발버둥치며 벗어나려고 했던 곳인데 왜 가보고 싶을까요? 그곳은 갈 수 없는 시간이자 공간이기에 마음 놓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미 체험한 시간이고 공간이기에 자신감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설령 하느님이 그곳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다고 하더라도 처한 상황을 해쳐나갈 방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현재 삶이란 단 몇 분도 앞을 내다볼 수 없지요. 시를 쓴다는 것은 이 불안한 삶에서 자신을 최대한 지키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현재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시를 평가할 때도 과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시인이 어느 매체로 등단했든, 어느 학교를 나왔든, 어느 지역 출신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현재의 작품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지요. 장 시인과 함께 『시작』을 맡아서 할 때 저는 시집 원고를 선정하면서 어느 매체로 등단했는지 또는 과거에 어느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었는지 등의 작품 외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생각나는지요?
아직 저와 관계된 ‘과거’와 ‘고통’과 ‘기억’의 얘기를 다 하지 않았군요. 저는 장 시인이 시작품에서 본 것처럼 과거에 대해서 고통스럽다고 여기고 있지만은 않아요. 저는 하늘 아래 첫 동네의 산골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서 정말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지천인 과일들,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산들과 하늘, 백여 통이 넘던 토종 벌통들, 아버지께서 산에 가서 한 지게씩 따오던 송이버섯, 삼촌을 따라 겨울 산을 헤매며 하던 토끼 사냥,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집에 오던 사람들…… 그 풍요로웠던 날들이 저의 가슴 밑에 채워져 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동화의 세계에서 살았지요. 저는 가끔 꿈을 꾸는 날이면 그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하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또 다른 ‘과거’가 있습니다. 아마 장 시인이 저의 시집에서 본 것이겠지요. 저는 집안 형편상 경북 포항에 있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지금은 과학고가 있지만 그때는 이름 있는 공고에 진학하는 것이 시골 학생들에게는 좋은 진학으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요.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도 무료로 보내준다는 학교의 말에 수학도 만점을 맞고 들어갔는데, 얼마 있지 않아 청운의 꿈은 깨지고 말았지요. 대학 입학에 필요한 과목들을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용접, 주조, 열처리, 압연 등 기능인을 키우는 과목들을 주로 수업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려고 몇 번이나 망설였는데, 어려운 집안 형편상 그럴 수도 없어 그저 시간만 보냈지요. 함께 진학했던 중학교 친구는 끝내 학교를 그만두었고, 많은 급우들도 그렇게 했어요. 저는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소풍이나 체육대회 날이면 앞에 나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출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었데, 이때부터 성격이 바뀌었어요. 다른 사람과 말하기도 싫었고 나서서 활동하는 것도 싫었어요. 이 얘기는 그만하는 것이 좋겠네요. 괜히 신세타령하는 것 같네요.
그래도 한 가지의 ‘과거’ 얘기는 해야겠네요.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기 때문이지요. 졸업 후 제철소에 입사했는데 근무조건이 3조 3교대인 데다가 한 달에 한 번밖에 쉬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습니다. 야근하는 날은 퇴근해서 한잠 자고 나면 코피가 쏟아졌고, 꿈속에서도 안전사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요. 밤 11시에 일이 끝나는 을반(乙班) 근무 때에는 우울한 나를 잊고 싶어 술도 많이 마셨지요. 저는 그곳에서 안전사고로 죽어간 동료들을 보았고, 그 죽음을 둘러싸고 통곡하는 유족들과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서로 떠넘기는 비인간적인 관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와 같은 연배의 고참들이 아들뻘 되는 상사에게 그저 굽실거리고, 그러면서는 돌아서서 욕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대학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승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좌절해서 그저 춤을 추러 다니고 카드를 치러 다니는 동료들도 보았습니다. 물론 성실한 동료들도 많았지요. 저는 처음에는 그러한 동료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했지만 함께 생활을 하면서 점차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배웠고, 사람들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의 불만과 절망을 희망이라는 푯대로 담아내고 싶었고, 그들을 억압하고 조종하는 모순된 구조를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얘기는 얼마 전 최동호 선생님께서 출간한 『인터넷시대의 시창작론2』(고려대학교 출판부)에 들어 있기도 합니다.
장석원 : 현실을 다루는 시들은 대부분 어둡습니다. 지상의 어둠을 직시하고 고발하고 시로 써내는 선생님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문득 건강한 기쁨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시집의 「연둣빛 발걸음」의 건강함, 즐거움, 생명력 등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 시의 색깔은 적과 흑인 듯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너무나 선명한 이분법이 시의 영역을 좁혀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맹문재 : 저의 시들이 어둡습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건강한 면도 있다고요? 그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의 시 색깔이 적과 흑이라는 말을 들으니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이 생각나는군요.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출세를 지향하다가 끝내 무너지고 만 줄리앙 소렐이 “나는 당신네들의 계급에 속할 명예가 없습니다”라고 외친 것도 새삼 들리네요. 장 시인이 말한 적과 흑이란 아마 흑과 백이란 의미겠지요. 저의 시에는 분명 구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분법의 차원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시를 쓰는 것이란 선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 싫다고 생각하는 것 등에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정답을 정해 놓은 이분법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장석원 : 저는 개인적으로 시의 리얼리즘을 회의합니다.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요. 이 시대에도 리얼리즘은 유효한 것일까요. 정해진 길이 없는데,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지상의 별은 무엇일까요. 두 번째 시집의 「별 새끼」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시인 듯합니다. 「이름」에서 “고구마는 추상적이지 않다”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추상적이지 않는 리얼리즘 시, 지상의 별을 보듬는 시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요. 좀 도발적인 질문입니다. 리얼리즘은 이제 전설 아닌가요?
맹문재 :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먼저 우리에게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요? 우리 문학사에서 리얼리즘이란 문예사조가 있었나요? 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리얼리즘은 분명 영향을 끼쳤지요. 따라서 리얼리즘이란 특정한 시대의 문예사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더 넓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920년대 중반 이후의 카프(KAPF)나 1970~1980년대에 그 특성이 도드라진 적은 있었지만, 리얼리즘은 어느 특정 시대에 묶을 수 없고 오늘날까지 한국 문학사를 이끌어온 큰 물줄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 또는 리얼리즘이냐 순수문학이냐를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리얼리즘이란 분명히 전해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한된 차원에서 리얼리즘을 논의하는 것보다 어떤 시가 진정 좋은 시냐를 논의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앞에 정해진 길은 없다라는 진단은 일찍이 루카치(Georg Luka'cs)가 한 것인데, 우리 시대의 시인들 대부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안 그런 시인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상황에 비추어볼 때 관심을 가질 사항이 못 되는 것이지요. 가령 컴퓨터가 시 쓰는 수단으로 우리 시대에는 보편화되어 있는데 만년필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고 해서 그 시인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저의 시 「이름」에서 “고구마는 추상적이지 않다”는 이념화된 대상에 대해 반항한 것입니다. 명분으로 개인의 가치를 몰아가는 것에 대해 대항한 것이지요. 한 개인을 희생하면서까지 내세우는 명분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러한 의도는 리얼리즘의 추구와도 상관이 있습니다. 진정한 리얼리즘은 추상적인 명분으로부터 개인의 존재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개인은 광고며 여론이며 스포츠 스타며 인기 영화며 각종 평가위원회의 지침 등에 의해 일방적으로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허위를 동반하고 있는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거대한 폭력으로부터 한 인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지상의 별이 아닐까요?
장석원 :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몇몇 작품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두 시집 사이에서 ‘움직이다’를 보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의 후기에서 선생님께서는 김수영을 언급하셨습니다. 선생님과 김수영, 선생님의 시와 김수영의 영향 관계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또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김수영 문학의 의의는 무엇인지요.
맹문재 : 저의 두 시집에서 ‘움직이다’를 보려고 한 점은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시를 쓴다는 것은 현재진행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진정 움직이는 시를 쓰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영의 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이 점입니다. 김수영의 시는 내용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움직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움직임에 다소 헛동작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 갖는 한계라고 생각하고, 배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장석원 : ‘움직임’을 선생님 시의 발전적 지향점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두 번째 시집의 표제작 「물고기에게 배우다」의 마지막 두 행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 나는 들어선다”를 다음 시집의 목표 좌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맹문재 : 그렇게 볼 수 있겠지요.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그 발자국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광장으로 들어서려는 것, 이것이 제가 내세우는 현재진행형의 시창작 자세입니다. 저는 부단히 움직이려고 합니다.
장석원 : 선생님의 두 번째 시집에는 「풀」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김수영의 「풀」의 일부에 영향받은 구절이 있기도 합니다. 최근 오세영 교수의 김수영론이 있었습니다.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 다음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지침을 마련한 글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던 김수영 시의 다른 부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김수영 시의 아주 많은 부분을 거세할 위험도 농후하다고 봅니다. 김수영 시의 특성 중에서 추상어와 관념어의 과도한 사용, 과도한 산문성 등이 거론됩니다. 최근에 조정권 시인은 이러한 김수영 시의 특성을 “김수영의 서술구조의 권위”라고 표현했습니다. ꡔ산정묘지ꡕ와 김수영 시의 이러한 특성을 연결시키기도 했습니다. 김수영 시의 난해성과 불가독성을 증폭시킨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황현산 교수가 지적한 대로 김수영이 한국어의 시적 영역을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을 시어적인 측면에서 서정주와 같은 위치에 놓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시에도 많은 관념어들이 현실과 연관되면서 시에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자’입니다. 현실과 관념의 관계, 관념과 시의 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맹문재 : 저는 현재 시를 쓰면서 김수영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박노해와 백무산을 넘어서려고 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대결 상대를 박노해와 백무산으로부터 김수영으로 바꾸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에 비해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지만 늘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시인처럼 감옥에 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아직까지 박노해와 백무산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백무산 시인이 대전교도소에 나오던 날, 정인화 선배와 함께 마중 가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그 순간에 가졌던 열등감이 문득 떠오르는군요. 저는 정말 두 시인에 비해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시인이 꼭 행동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저는 시와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김수영의 움직임에 대해서 배우려고 했지만, 그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면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장 명편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풀」과 동일하게 작품 제목을 정하고 한번 대결해본 것이지요. 김수영은 풀이 바람에 누웠다고, 발목까지 발밑까지 누웠다고 했는데, 저는 그것이 민중의식을 나타낸 것으로 보기에는 약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더 강하게 추구한 것이지요. 장 시인이 읽어보니 저의 시가 김수영의 「풀」보다 못하나요?(웃음) 그러면 안 되는데.
오세영 선생님께서는 2005년 1월호부터 3월호까지의 『현대시』에 김수영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실었습니다. 며칠 전 그 글이 실린 『20세기 한국시인론』(월인)이란 책을 출간해서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해 답을 못 드리고 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안양대 국문과에 전임이 되었을 때에도 축하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축하주까지 사시겠다고 당장 만나자고 하셨는데 따르지 못했습니다. 언제 한번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세영 선생님의 이번 김수영에 대한 비판은 경청할 부분이 있습니다. 시작품에 대한 해석도 날카로운 부분이 있고, 시인의 연대기와 산문까지 연계해서 살피고 있어 김수영 시세계의 전체적인 면을 조망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아쉬운 점은 김수영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는데 그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 시문학사에서 참여시가 분명 존재했는데 김수영이 아니라면 그에 맞는 다른 시인을 대안으로 내세워야 새로운 문학사가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비판은 쉽지만 대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지요. 대안은 대상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김수영도 인간인데 왜 결함이 없겠어요. 그러므로 참여시의 기준을 지금의 시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1960년대의 시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긍정할 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세영 선생님께서는 글 중에서 차라리 유치환 같은 시인을 참여시로 들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겠지요. 작품 한두 편으로 시세계를 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어쨌든 오세영 선생님의 이 글은 그동안 학위논문만 하더라도 140여 편에 이를 정도로 신화화된 김수영의 연구에 새로운 검토가 이루어지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시에 나오는 관념어와 현실의 관계가 김수영의 시와 어떤 공통점이 있고 변별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김수영의 경우보다 구체적으로 시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한 예가 ‘이자’ 같은 표상이겠지요. 정녕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가 자기 자본의 증식을 위해 이자놀이를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사회적 약자는 숱하게 무너지고 있잖아요.
장석원 : 한국 현대시의 여성화 경향, 지나친 개인주의, 쇄말적 경향, 조로 경향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대응책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맹문재 : 저는 그리 신경 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안일한 현실인식인가요? 이러한 현상이 우리 시단을 지배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경향은 좋은 시의 기준이 안 되기 때문에 결코 우리 시의 전범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단이 얼렁뚱땅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큰일 났다고 조바심을 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석원 : 선생님의 시에 대한 평가 중에는 ‘쉬운 시’가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시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시가 어렵습니다. ‘쉬운 시’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은 무엇인가요.
맹문재 : 저의 시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쉬운 시’라고 평가해도 괜찮고 ‘어려운 시’라고 평가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쉬운 시, 어려운 시에 대한 관심보다도 좋은 시, 나쁜 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평론가들은 쉬운 시는 나쁜 시라고 평가하고, 어려운 시는 좋은 시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것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의 시가 그렇게 쉬운가요? 저는 시는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가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고 또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는데, 그 상황을 담아야 할 시가 쉬워서야 되겠어요? 그렇다고 어려운 시가 좋은 시라고도 말할 수 없지요. 따라서 시운 시냐 어려운 시냐 하는 문제보다도 얼마나 정직하게 시적 대상을 간파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석원 : 두 번째 시집에 등장하는 인칭대명사 ‘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더불어 선생님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의미소들, 명사들의 특성을 알고 싶습니다.
맹문재 : 이성우 평론가가 2001년 3월호 『현대시학』에서 저의 시를 문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서술지향과 묘사지향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더군요. 이 점을 인용해보기로 하지요. “서술지향의 시편들은 삶의 과정이나 사건을 일상적 어법으로 평이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이 경우에는 1970년대 이후 크게 주목받았던 민중시 혹은 리얼리즘시의 전통에 닿아 있다. 이에 반해 묘사지향의 시편들은 감각적 대상과 그 특질을 비유적인 언어로 다루려는 특색이 역력하다. 이 경우에는 이른바 모더니즘시의 전통 쪽으로 기울어진다. 맹문재 시인은 자신의 다양한 시적 소재를 다룰 때 서술지향과 묘사지향 가운데 어느 한쪽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이번 신작시 가운데서 삶의 과정이나 사건을 평이한 언어로 다룬 「눈물 점」, 「빈집」, 「첫눈」 등의 시편과 북한 생활상을 담은 작품들은 서술시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반면에 「자석」이나 「병균을 밟다」, 「불」, 「대문」, 「불타는 라디오」 등의 작품들은 주로 비유적 이미지를 동원해 인간적 의미와 가치를 투사하는 묘사시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중략) 결국 맹문재 시의 본령은 시인의 직간접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서술지향에 있으며, 그 서술지향의 시편들에서 빛나는 부분은 적절한 묘사지향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성우 평론가의 이와 같은 진단에 비추어봤을 때 “그”는 주로 묘사시의 대상으로 쓰인 것이니 참고하면 되겠네요.
장석원 : 선생님의 시가 지니고 있는 힘, 선생님께서 지향하는 것, 시가 해야 할 것, 시인이 해야 할 것을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떠올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선생님의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건강한 정서가 선생님 시의 동력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는지요.
맹문재 : 저는 시인이란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J.P.Sartre)는 ꡔ지식인을 위한 변명ꡕ에서 지식인에 대해 명쾌하게 개념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전문가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인 양 신봉하고 통치수단으로 여길 정도로 타락한 사람들이고, 지식인은 자신이 지배계급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구분해놓았지요. 따라서 지식인이란 자기 계급의 모순이 객관적 모순의 한 형태임을 깨닫고 그러한 모순에 대항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지식인은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민중들보다 지배계급의 지지자가 되기 쉬운 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약한 계급을 옹호하는데, 저는 그와 같은 정신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장석원 : 선생님의 문학을 구성하고 있는 에너지원을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선생님께 시는 무엇인가요.
맹문재 : 앞의 질문과 연계되는 것으로 생각되네요. 저는 시를 억지로 쓰거나 어떤 수단으로 삼는 것보다 좋아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좋아서 읽고 좋아서 쓰는 것, 그것이 저의 시 쓰는 에너지원이 아닐까요.
장석원 : 권해주실 시인이나 작품(문학작품이 아니었으면 더 좋겠습니다)을 말씀해주세요.
맹문재 : 요 근래에 읽은 것 중에는 3․15의거기념사업회가 펴낸 『3․15의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제게 이 자료집을 보내주었는데 고맙다는 말을 아직 못했네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3․15의거사』를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집권세력에 대한 혁명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은 1862년의 진주민란으로부터 1894년의 동학혁명, 1919년의 3․1운동, 1929년의 광주학생 항일운동, 1960년의 2․28대구 학생시위를 시작으로 이루어진 3․15의거와 4․19혁명,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9월 노동자 대투쟁에 이르기까지의 민중항쟁에서도 여실히 보았습니다. 정말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만 혁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민중의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민중들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혁명이 일어났으니, 민중의 힘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읽은 『전태일 평전』과 이소선 여사의 회상집인 『어머니의 길』도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때 많이 아팠는데, 이 책들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미 옛날에 읽었던 책들인데도 몸이 아파서인지 새로운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거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선택해야 되는 순간을 만나는데, 그 때 필요한 거울을 갖게 된 것이지요. 옳은 것을 선택하면 마음이 편하고 안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알타이아(Althaea)의 장작이란 신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옳지 않은 일을 선택하면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장석원 : 문학의 위기와 고사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학의 위기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맹문재 : 어느 시대에나 위기가 운운되었습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랬습니다. 개화기 무렵 신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퍼머 헤어스타일을 하고 화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녔을 때, 나이든 사람들은 세상이 말세가 왔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세상의 변화를 너무나 자기 위주로 바라본 것이지요. 자신이 배운 교육이나 습관화되어 있는 관습이나 윤리를 기준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니 그와 같은 판단이 생긴 것이지요. 따라서 변화하는 세계를 긍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이 지금보다 그 권위를 상실한다고 할지라도 소멸되기야 하겠습니까? 문학이 엄연히 문화의 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데 미래의 세대인들이라고 해서 굳이 문학을 버리면서 살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변화를 긍정하고 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응방안이란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고,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고,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는 것이지요. 문학의 위기를 외부에 돌릴 것이 아니라 내부로 책임지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많은 시인이나 평론가들은 문학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터넷 때문에 문학이 죽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늘날 시인과 독자는 인터넷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지만, 시를 위협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터넷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창작 자체의 진정성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은 전지구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고 학습관이고 창작 교실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기존의 서적, 방송, 신문 등의 매체와는 달리 사용자의 요구에 거의 무한정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독자에 대한 개방과 그에 따른 방대한 정보의 제공은 이전 시대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시인이나 독자 모두 창작과 비평에 신속하면서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한국의 시단에 몸담고 있는 시인들 중에서 인터넷을 통해 시를 쓰고 시를 읽고 시를 전송하고 시를 보관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원고 청탁도 인터넷으로 하고, 작품 보내는 것도 인터넷으로 하고, 원고료 지급도 인터넷으로 하고, 정기구독도 인터넷으로 합니다. 인터넷은 필기도구이고 배달원이고 은행 계좌이고 영업사원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무조건 부정해서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할 점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상업적 자본주의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것에도 경계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문학의 위기가 운운되는 시대에 시인들이 행해야 할 자세라고 봅니다.
장석원 : 앞으로의 창작이나 저서 활동 계획에 대해서 알려주시지요.
맹문재 : 세 번째 시집이 나오고 나면 곧 『김명순 전집․시』가 <소명출판>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김명순은 한국 근대문학사에 등장한 최초의 시인이자 최초의 소설가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1세대 여성 작가 중에서 나혜석의 경우는 그의 전집이 나와 있고, 김일엽의 경우도 산문집이 나와 있는데, 김명순은 상대적으로 묻혀 있습니다. 실제로는 작품 수가 가장 많고 그 수준도 떨어지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집으로 엮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매달렸는데 이 전집으로 인해 김명순의 작품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올해는 김명순의 시집 『생명의 과실』이 나온 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함께 1925년에 출간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기념으로 시집을 먼저 내고 곧바로 『김명순 전집․소설』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또한 연말쯤에는 그동안 발표했던 평론 글을 묶어서 시론집을 낼 생각이고, 2년째 『다층』에 연재하고 있는 「1980년대 시문학사」와 포스코 신문과 『텍스트』에 연재했던 「예술과 직업」도 출간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내년에 나올 것도 같네요. 또한 올 겨울에는 번역한 디킨즈 소설을 출간할 생각이고, 내년에 나올 박인환과 김상훈 전집도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장 시인도 좋은 시를 쓰고 있고 또 논문과 평론을 성실하게 쓰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시집과 연구서가 출간될 것이라고 봅니다. 서로 열심히 해봅시다.
장석원 : 1969년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고려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