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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비친 달’, 지명 자체가 이미 절창(絶唱)! ‘애월(涯月)’이라는 문학동네 이야기
지명 자체가 이미 절창, ‘애월(涯月)’이라는 지명을 한 번 꼽씹어 본 적 있는가? 물론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사랑 애(愛)’ 자를 쓰지 않았다. 물가 ‘애(涯)’로 표현해, 은근하면서 은유적이다. ‘물가에 비친 달’…. 많은 이들이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되어 그곳을 마음에 품었고, 또 많은 이들이 애월이라는 영감에 시심을 불태워 그곳을 노래했다. 국토의 작은 변방,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중심이고자 하는, 애월이라는 문학동네 이야기. 취재/유성욱 관광경제신문j 편집국장 사진/송영필 객원기자
▲ 해 떨어지는 한담소공원 절벽에서 맑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애월문학회 김종호 회장(좌측)과 박우철 간사.
왜 그들을 애월을 노래할까?
사랑을 아는 바다에 노을이 지고 있다 애월, 하고 부르면 명치끝이 저린 저녁 노을은 하고 싶은 말들 다 풀어놓고 있다 누군가에게 문득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과 먼 파도와 수평선이 이끌고 온 그 말을 다 받아 담은 편지를 전하고 싶다 애월은 달빛 가장자리, 사랑을 하는 바다 무장 서럽도록 뼈저린 이가 찾아와서 물결을 매만지는 일만 거듭하게 하고 있다.
시조시인 이정환은 ‘애월바다’를 써 2007년 이호우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엄격한 형식을 가진 시조가 이렇게 가슴을 저미게 하는지는 미처 몰랐다. 애월은 시심을 북돋우며, 문학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그래선지 당대의 많은 시인들이 애월을 노래했다. 애월을 소재로 한 시편들만 모아도 충분히 한 권의 시선집 엮여질 정도. 그런데 도대체 애월의 그 무엇이, 그토록 많은 시인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걸까? 물론 이성복의 ‘남해금산’이나 김영남의 ‘정동진’,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같이 특정 지역을 소재로 한 시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애월은 애월만의 특별함이 있다. 사람들은 그 특별함의 실마리를 우선 애월이라는 지명에서 찾는다. 문학평론가 장경렬의 설명을 들어보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적인 지명을 지니고 있는 곳이 애월일 것이다. ’물가 애(涯)와 ‘달 월(月)’로 이루어진 이 지명만큼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은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덕을 뜻하는 ‘애(厓)’자에 삼 수(氵)변이 붙었으니, 물가의 절벽이라 할 수 있겠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애월의 해변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달과 바다에 비친 달빛을 상상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풍광이 저절로 마음에 그려진다.’ (‘애월문학’ 창간호에서) 소설가 현기영은 애월이란 지명이 퍽 마음에 들어서, 한때 아호로 삼을까 생각한 적 있다고 밝힌다. 실제로 애월을 이름으로 삼은 문인도 있다. 애월문학회 임애월 시인은 ‘성열’이라는 본명 대신 ‘애월’을 필명으로 사용한다. 최근 애월이라는 정서에 연고를 둔 애월문학회가 ‘애월문학’ 창간호를 발행해 눈길을 끌었다. 작은 지역에 연고를 둔 문예지가 더욱 관심을 끈 건, 그 지면에 글을 쓴 이들의 화려한 면면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 황지우가 축시, 소설가 현기영, 김훈 등이 축하글을 썼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가 쓴 위트 넘치는 꽁트까지 실려 있다. 애월이라는 문학동네, 참 무언가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말 무언가 있었다. 애월문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바로 ‘표해록’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긴 조선시대의 문사 장한철과 만나게 된다.
취재팀과 함께 한담에 위치한 장한철의 생가를 찾은 김종호 회장과 박우철 간사.
‘표해록’ 남긴 장한철의 고향
현재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표해록(漂海錄)이 둘 있다. 하나는 조선 성종 때 문신 최부가 중국에 표류했을 때의 체험을 1488년(성종 19)에 편찬한 책이다. 또 하나가 바로 제주 출신 장한철이라는 문사가 1770년(영조 46년) 과거를 치르기 위해 뱃길에 올랐다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갖은 고초와 사경을 넘나들다 겨우 살아남기까지의 경과를 기록한 책이다. 장한철의 ‘표해록’은 1959년 제주도 종합 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정병욱 전 서울대교수에 의해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정병욱 교수는 ‘‘표해록’이 한국 문학사상 불후의 작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국문학사상에 하나의 새로운 별을 얻었다. 우리문학에 해양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목록이 하나 더 늘어났고, 우리 문학사상에 전형적인 중세기 산문문학을 대표하는 로맨스가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닥쳐온 재난을 겨우겨우 모면하면서 기지와 재략과 인내로 그것을 극복하고 끝내는 그 재난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행동과 아름다운 여성과의 풍류기담은 진실로 한국적인 로맨스의 백미됨에 부끄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張漢喆)은 제주 애월면 애월리 출신이다. 서울대 정병욱 교수의 최초 발굴 이후 제주 출신 김지홍 경상대 교수의 추가 연구에 의해, 장한철이 1744년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확인됐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중부(둘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장한철은 글 공부를 좋아해 일찍이 향시에 몇차례 합격했다고 한다. 1770년 10월에는 향시에 수석으로 합격을 하자, 마을 어른들과 관청에서 여비를 도와주어 서울 예조에서 실시하는 회시를 치르기 위해 뱃길에 올랐다. 그러나 느닷없이 풍랑을 만난 일행은 남쪽 큰 바다를 표류하면서 유구열도의 어느 무인도에 겨우 닿게 된다. 그곳에서 겨우 안남의 상선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구조를 받았으나, 멀리 한라산이 보이자 장한철 일행은 반가운 나머지 큰 소리로 떠들며 웅성댄다. 그러자 왕자들이 죽임을 당한 옛 원한을 지닌 안남 사람들에 의해 이들은 돛도 없는 배에 실려 바다 한 가운데 버려졌다. 다시 표류를 하다가 본토 상륙 직전 태풍으로 선체와 함께 일행 29명 중 21명이 목숨을 잃고, 8명만이 겨우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에 닿아 목숨을 건지게 된다. 장한철은 당시 사선을 넘어 겨우 살아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처음 품었던 끝ㄴ 뜻을 이루기위해 서울에 올라가 과거를 치렀지만 불행히도 낙방을 하고 만다. 고향에 돌아와 표해록을 쓴 장한철은 4년 후 드디어 과거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고 제주의 대정현감을 거쳐 강원도의 취곡현령으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표해록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장한철의 삶까지도 기가 막히게 흥미진진하다. 현재 애월 한담에는 장한철의 생가터도 남아 있다. 그런데 아쉽기만 하다. 이렇게 뛰어난 해양문학의 결정판을 두고 왜 우리는 어릴 적 ‘15소년 표류기’같은 소설을, 그것도 뒤죽박죽된 중역본을 읽어야 했던 걸까?
▲박우철 간사는 소설가 김훈의 원고를 받고는 애월 특산물인 취나물 한 박스를 원고료 대신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볼 일 보러 서울에 올라간 박간사는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김훈을 발견했다. 원고만 주고 받았을 뿐 생면부지, 박간사는 다가가 ‘취나물 이야기’를 했고, 둘은 전철에서 나와 가까운 주막을 찾았다고. 애월읍 숙이네보리빵 맞은 편 작은 골목에 있는 조그만 책방은 애월문학회 사무실이기도 하다.
애월문학회, 그리고 김석희
불후의 걸작 ‘표해록’을 남긴 장한철의 고향, 지명과 풍경에 이끌려 여기저기 문화예술인들이 거처를 튼 동네 애월에서 문학회가 지난해 4월 11일 탄생한 것은 사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애월문학회는 탄생과 함께 ‘찾아가는 문학강좌’ ‘한담 갯갓길 산책로와 만난 시낭송회’ ‘학생문학 공모전’ ‘시화전’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의 텃밭을 일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애월문학’ 창간호까지 발행하며, 그동안 감춰온 내공을 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것. ‘애월문학’이 쟁쟁한 필진을 선보인 데는, 사실 ‘로마인이야기’ 전권 완역으로 대중적 명성까지 얻은 한국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씨에 덕본 바 크다. 김석희씨는 제주시 노형 출신. 지난해 육지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내려와 애월읍 신엄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엄리로 두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애월문학회 김종호 회장과 박우철 간사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의기투합, 김석희씨 역시 애월문학회의 정식 회원이 되었으며, ‘애월문학’ 편집자문위원을 맡았다. 지역 문학회 기관지가 쟁쟁한 ‘전국구’ 필진을 선보이게 된 배경이다. 애월문학회 사무실에서 김종호 회장과 박우철 간사를 만났다. 애월읍 숙이네보리빵 맞은편 작은 골목 안쪽에 책방을 겸한 문학회 사무실에서였다. 나이를 먹었어도 역시 문학 하는 사람들은 맑았다. 이번 달 두 번째 시집 ‘그물’ 출간을 앞둔 김종호 회장의 머리는 은색, 하지만 시에 대한 열정은 젊은 그 누구에 뒤지지 않을 듯 보였다. 중학교 미술교사로 정년퇴직한 그는 시인이라는 사실이 최고의 찬사인 듯 명함에 ‘詩人’이라는 직함만 새기고는 그 흔한 경력사항들을 한 줄도 적지 않았다. 책고을 책방지기 대표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는 박우철 간사는 자칭 ‘바보 박’이다. 그 이유를 물어도 사람 좋게 함박웃음만 터뜨릴 뿐. 하지만 이어진 술자리에서 바보 박의 진가는 바로 확인됐다.
‘눈 감으면 그대 있고/눈을 뜨면 그대 없어//오감을 자극하는 생채기 외로움/환절기 감기처럼 찾아들면/하연 달그림자 벗 삼아/한 잔 출에 띄워 털지만//새털처럼 가신 님 향한 그리움/가슴 베듯 엄습하면/물러 터진 홍시에도 울컥/싸한 눈물 달랠 길 없기에/임자 없는 갈바람에 실어/책방 풍경소리에 숨어 웁니다//눈 감으면 그대 있고/눈을 뜨면 그대 없다’
‘그리움’이란 제목의 시는 ‘바보 박우철’ 간사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것 같다. 문학을 이야기 하는 기분 좋은 날, 술 한잔 빼놓을 수 없다. 애월 바닷가의 한 고등어횟집을 찾았다. 회장님 부름에 김석희씨도 발걸음을 했다. “중앙 중심에서 벗어나 사람 사는 곳마다 문화와 문학이 일구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석희씨, 애월이라는 지역문학회의 한 회원으로서 그 역시 행복해 보였다. 애월의 밤, 술잔과 함께 문학도, 사람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애월과 문학이야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닷가 횟집에서의 술자리로 이어졌다. 신엄리에 새 둥지를 튼 번역가 김석희씨도 회장님의 부름에 호출되어 동참했다. 사단법인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 본부장이기도 한 민승현 관광경제신문j 발행인과 동행한 김민선 기자도 회장님 주변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회장님 파워가 쎄긴 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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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궁금하다! 한담해양문학벨트
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 도정질의에서 강창식 도의원은 장한철의 '표해록'을 토대로 애월읍 한담에 해양문학관 건립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애월문학회에서도 해양문학벨트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애월문학회 김종호 회장은 “우선 한담의 장한철 생가 복원과 함께 표해록 상징 조형물을 한담소공원에 세우며, 12km 갯갓길 추가 조성, 해양문학관 건립을 통해 해양문학 테마가 애월의 특색 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본지는 후속기사를 통해 한담해양문학벨트 안을 자세히 조명할 계획이다.
애월문학회의 발전을 기원하며 / 관광경제신문j 유성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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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다녀갔네요. 평안하시죠. 어쩌다 인터뷰 대상이 되었네요. ㅎㅎ
시화는 벌써 보낸다는 게 완도로 여행릉 다녀오느라 아직...죄송 ^^*
선생님.
안 보내셔도 돼요...
제주에 가면 소주 한 잔 살 테니
그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