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산행 일정 : 2002년 1월 12일 19시 20분 출발. 1월 13일 0시 24분 삽당령 도착, 0시 37분 등산 시작. 1월 13일 13시 46분 대관령 도착. (총 산행 시간 13시간 9분)
3. 종주자 명단 : 최현찬(산행부대장, 경주교도소), 권종훈(산행부대장, 경주월성중학교)
4. 운전자 : 이정필(사모님)
5. 차량 제공 : 이정필
6. 도움 주신 분들 : 김칠원, 이종석
임오년 새해를 맞이한지도 벌써 2주 가량 흘러갔지만 개인적인 산행은 1월1일날 문경의 눈 쌓인 신선봉과 마패봉을 혼자서 다녀왔으며 특히 10월달에 지나간 마패봉 정상에 올라서니 그때 매달아 둔 우리산악회의 표지기가 눈보라 속에서도 어엿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을때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1월 6일날은 포항에 있는 그린 산악회를 따라 민주지산 삼도봉과 석기봉을 다녀왔지만 백두대간은 아직 실시하지 못한 상태라 이번 산행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산행이었다.
얼마전 강원도에는 많은 눈과 강풍이 불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눈이 쌓여 있을것 같아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단거리 산행이면 어떻게 해서라도 갈 수 있기 때문에 관계가 없지만 우리는 새벽부터 시작해서 워낙 먼 거리를 가야하기에... 그런데다 지난 두타산과 청옥산 구간에서 너무너무 추웠기에 체감온도는 영하 25-30도 정도 내려가는 강추위를 경험했기에...
계획에는 1월과 2월은 폭설과 매서운 추위로 차량이동 뿐만아니라 산행에도 어려움이 많을것 같아서 3월과 4월 두달간에 걸쳐 남은 구간을 종주하려고 했지만 한구간을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되도록이면 추운 겨울 눈이 쌓인 백두대간 산행도 반드시 다녀와야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가 될것 같아서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월 7일날 최현찬 산행부대장을 만나서 의사를 타진하니 가자고 해서 갑작스럽게 박일환 사무국장에게 연락해서 운전하실 분을 좀 알아봐 달라고 하니 손정락 회원이나 이정필 회원이 운전을 할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침 전번 구간에도 이정필 자연보호이사가 운전을 했기에 이번에도 이정필 회원이 사모님과 함께 가기로 해서 손정락 회원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정필 회원이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낮까지만 해도 따뜻하고 포근하며 맑던 날씨가 저녁이 되면서 구름이 끼고 날씨가 심상치 않게 변해갔다. 겨울이라 날씨에 대한 걱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18시 30분 우성열 직전회장님 가게로 가니 벌써 김칠원, 박일환 회원을 비롯해 몇분이 배웅을 나와 계셨다.
같이 저녁을 먹고 19시 20분 드디어 삽당령을 향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하늘을 쳐다봐도 별이 보이질 않는다. 걱정 또 걱정... 삼척에 도착하여 지난번 갔던 소머리해장국 집에 들러서 한 그릇씩 먹고 다시 출발하여 삽당령으로 올라가니 정상부근 도로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산은 온통 흰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 같으며 삽답령에 지난번 하산하여 한잔했던 송순란 할머니 가게는 불이 꺼져 있고 주위는 침묵속에 고요하기만 하다.
삽당령에 도착한 시간은 13일 0시 24분이다. 신발을 갈아 신고 스패츠를 착용할려니까 최현찬 산행부대장이 스패츠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눈이 많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나만 착용하게 되면 상대방의 어려움을 모르고 나 위주로 산행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같이 착용하지 않기로 한다. 이를 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배낭을 챙긴후 또 한구간을 시작하기 위해 당당하게 출발을 하니 0시 37분이다.
특히 이번 구간은 그믐인데다 날씨가 흐려 별도 떠지 않아서 대간 산행중 가장 어두운 밤이었으며, 삽당령에서 닭목재까지는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둠을 뚫고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길을 찾아나가느라 고생이 많았던 구간이다.
그런데다 신발속은 금방 눈이 들어와 녹아서 질퍽거리며 12시간 이상을 차가운 물속에 있었으니 발은 시리고 따끔따끔 하다가 나중에는 별 감각이 없을 정도로 무디어진데다 하늘에서는 싸락눈과 비가 뒤섞여 흩날리고 운무로 인해 조망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다 최현찬 산행부대장은 삽당령에서 닭목재 사이에만 네번이나 미끄러졌으며 특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할때 뒤에서 넘어지는 소리에 뒤돌아 보았을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10여m나 되는 수직 절벽 낭떠러지에다 밑에도 계속해서 급경사지대였다. 순간적으로 졸다가 넘어졌는데 다행히 암벽틈에 자란 철쭉 한그루가 있었는데 마침 가지 사이에 떨어져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만약 철쭉이 없었다든지 혹은 20cm만 옆으로 떨어졌더라도 아마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길(?)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 밖에...
날이 밝으면서 닭목재에 도착하니 최현찬 산행부대장이 떨어지면서 다리를 약간 다쳐 불편해 하면서 너무너무 힘들어 한다.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 어렵게 대관령까지 종주는 했지만 절둑이면서 너무 힘들어 하는데다 혹시나 눈이 많이 와서 차량통행이 불가능할까봐 이것저것 걱정을 많이했던 산행이었다.
운무와 가스로 인해 하산을 해서도 10m앞도 잘 보이지 않아서 대관령에 기다리고 있던 이정필 회원과 통화를 하면서도 어디가 어딘지 쉽게 분간할 수가 없어서 서로 찾는데 꽤나 오랜시간을 보낸 후에야 만날수 있었다.
처음 산행은 삽당령에서 임도를 따라 30여m정도 올라가다 보면 우측 산속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표지기가 많이 매달려 있으며 5분 정도 올라가니 길은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다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임도를 내려서는데 벌써 눈은 무릎까지 빠지면서 신발속으로 들어와 녹기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1시 5분 017 이동통신 중계탑이 설치된 지점을 지나면서 길은 좌측능선으로 접어든다. 구릉성 능선이라 눈이 쌓여 있지만 걷기는 편하다.
1시 17분 닭목령 가는 길에 강릉시 왕산면에서 세운 들미골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고, 우측은 들미골이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돌아가야 하며, 신발속에 들어온 눈이 녹아 벌써 질퍽거리며 발이 시리다. 1시 55분 다시 왕산면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길은 대용수동 가는길이며 대간은 우측길로 접어들면 노송 세그루가 나오고 그 이후 방화선이 나온다.
방화선을 따라 진행하니 길가에 커다란 소나무들이 몇그루씩 드문드문 서 있는데 걷기에는 쉬우면서도 편한 길이다. 2시 12분 백두대간 쉼터, 강릉시 왕산면, 닭목재, 삽답령이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방화선 길이 끝나고 나무가 우거진 길로 접어들어 봉우리 몇개를 오르내리다 급경사 오르막을 어렵게 오르니 바위봉우리이다. 글자 그대로 돌머리인 982m의 석두봉이며 3시 30분이다. 강릉시 왕산면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좌측길은 대용수동이라 표시되어 있으며 조망을 즐기려고 해도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 물병을 꺼내 간단히 물을 한잔 마시고는 다시 출발한다.
갈수록 신발속은 눈 녹은물로 인해 발의 통증이 심해져 시리고 따가운 고통을 느끼지만 참고 견딜수 밖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특히 석두봉을 내려서면 이후 구릉성 능선상에 참나무와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으며 능선안부 근처에는 산죽이 우거져 있는데다 허리까지 쌓인눈을 뚫고 길을 찾으면서 헤쳐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길을 잘못드는 경우에는 다시 되돌아와서 길을 찾아나가다 보니 힘도 들고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흰눈과 흐릿한 나무들, 그리고 맑고 깨끗한 눈과 사투를 벌이는 두사람...
960봉에서 내려섰다 올라가는데 눈의 윗부분은 얼어있고 지면에 닿은 눈은 녹는 상태이며 땅바닥은 얼음으로 변해 있어서 한걸음 한걸음 옮길적마다 줄줄 미끄러지면서 진행에 많은 방해가 된다. 그리고 눈이 적게 쌓인 곳에는 멧돼지들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조금전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으며 이것을 보아도 이곳에 많은 멧돼지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것 같다.
4시 25분 989.7봉에 올라서니 표지기가 많이 매달려 있고 노송들이 많이 있다. 길은 왼쪽으로 완전히 휘어지며 내리막을 내려가다 안부에 도착하니 강릉시 왕산면에서 세운 소기동(좌측)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고 누군가가 '대간꾼들 힘내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5시 30분 오랜만에 동네 불빛이 한둘 보이고 차소리도 들린다. 오르막을 올라서는데 아마 1006봉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다시 내리막을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화란봉 오르막은 힘이 들고 지루하다. 1시간 정도 거리에는 닭목재가 있는데, 전직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듯이 새벽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닭목재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지금까지 바람도 없이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추워지기 시작한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으로 덮인 정상은 참나무가 많이 자라고 별 특징이 없는것 같다. 왕산면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있고 참나무에 화란봉이라는 흰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1069m봉인 화란봉에는 6시 20분에 올라선다.
기념촬영만 한 후 바로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바위구간이 나온다. 눈이 쌓여 있어서 미끄러운데다 잠이 오지만 참고 견디면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절벽지대에서 최현찬 회원이 넘어지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 보았을때는... 이때가 6시 35분경이다. 아마 구사일생(?)했다고 할까.
다친곳이 없느냐고 물어니까 다행히 괜찮다고 한다. 계속해서 바위와 멋진 노송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절경지대를 지나니 동쪽 하늘에서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것 같지만, 구름으로 인해 오늘 일출은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급경사를 내려서자 완만한 경사의 편한 길이 나오고 닭목재를 오가는 자통차 소리가 들리는 안부에 도착한다. 휴식을 취하면서 볼일들을 보고 난 다음 잠시 내려서니 농로가 나오고 7시 26분이다.
밭이 나오고 밭가에서 우회전하니 큰 조립식 농기계보관창고가 나오고 뒤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면 닭목재이다. 706m의 닭목재에 도착하니 7시 28분이며 큰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닭목령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지도에는 닭목재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닭목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침 닭목령에는 서울에서 온 일성관광버스가 주차해 있었는데 서울 잔디밭산악회 대간종주팀이라 하면서 4시경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보다 3시간 30분정도 먼저 출발했으니 따라 잡기는 힘들것 같아 모처럼 오랜 휴식을 취한다.
백두대간 이정표에는 삽당령 13.5km, 노추산 입구 8.1km, 능경봉 10.2km라 적혀 있다. 그리고 98년 정부지원 농기계보관창고와 계항동 번영회에서 1999년 9월 9일날 세운 큰 표지석이 있으며, 2차선으로 포장된 137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또 백두대간 제24구간 등산로 표지판에는 능경(정)봉과 삽당령이 표시되어 있고, 특히 이곳은 전국최고 감자 채종포 마을인 왕산면 대기2리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으며 농산물 간이 집하장도 있다.
그러면 왜 고개 이름이 닭목재(령)일까? 닭의 목처럼 생겨서 생긴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신각을 왼쪽에 두고 난 임도를 따라 오른다. 조금 가다보면 고냉지 채소밭이 나오고 산길로 진입하는 지점에는 대간 표지기가 많이 매달려 있다. 삽당령에서 닭목재까지는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다가 러셀이 되어 있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잔디밭산악회 종주팀들이 러셀을 해 놓았기 때문에 진행이 훨씬 수월한데다 눈도 적게 쌓여있다.
다시 한참을 가다하니 오늘 처음 구름사이로 해가 잠시 얼굴을 내 보이더니 부끄러운지 또 다시 구름속으로 숨어버리고 8시 35분에 임도에 도착하여 계속 따라 올라가니 맹덕한우목장 입구가 나오고 '개조심 전기조심'이라고 쓰인 경고판이 서 있다. 목장 울타리에는 경계 철조망을 쳐 놓았으며 대간 마루금 아래쪽으로 광활한 목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울타리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 955.6m봉에서 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뀌며 왼쪽으로 철조망을 끼고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울타리를 반바퀴 정도 돌고나면 수십그루의 적송지대가 나오고 좀더 가니 갑자기 눈위에 발자욱이 두 군데로 갈라져 있다. 아마 한쪽은 길을 잘못 찾아간 것 같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난 발자욱 길을 버리고 직진해서 진행하니 쉼터가 나온다.
9시 15분 855m의 왕산 제1쉼터에 도착하니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의자 4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닭목령 2km, 왕산 제2쉼터 2km라 씌어 있다. 최현찬 회원이 화란봉 내려오다 다친 다리에 통증이 오는지 조금 쉬어서 가자고 한다. 잠시 쉬고 있으니 서울에서 온 종주팀들이 내려와서 빈 의자에 걸터 앉는다.
다시 출발하여 계속된 오르막을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선두와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중간중간 가이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10시 5분 952m의 왕산 제2쉼터에 도착하니 여기도 지나온 제1쉼터와 같은 시설이 되어 있으며 이정표에는 왕산 제1쉼터 2km, 왕산 고루포기쉼터 2km라고 씌어있다. 그리고 대관령에서 오신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우리도 여기서 또다시 휴식을 취한다.
아무리 해도 최현찬 회원의 몸이 많이 불편한 것 같다. 힘이들면 닭목재로 되돌아가라 해보지만 참고 견디면서 가겠노라고 한다. 이제 서서히 날씨도 흐려진다. 급경사 오르막이 나오고, 불이 났었는지 커다란 고목들은 불에 탄 흔적들이 간간히 보인다. 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무릎까지 차오르고 안개마저 시야를 가리는 상태에서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데 무언가가 '우-웅' 거리며 소릴내고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특별한 것이 없다. UFO소린가... 그러면 어디엔가 UFO가 있어야 하는데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10시 17분 우리 눈앞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소리의 주인공인 것이다. 눈 쌓인 추운 겨울산에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가 오늘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전기라는 놈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 기쁨의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철탑을 건설하면서 개설한 임도가 철탑을 따라 나 있으며 철탑 뒷봉우리에는 10시 27분 올라서니 잠시 후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 깊은 산속에서 많은 눈이 내린다면 우린 어쩌란 말인가. 이래 저래 걱정이 앞선다. 특히 우리야 어떻게 해서라도 대관령까지야 갈 수 있겠지만 대관령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량의 이동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1238.3m의 고루포기산 정상에는 10시 45분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왕산 고루포기쉼터라 적혀 있다. 여기도 닭목재와 비슷하게 이름이 이상하다. 고루포기(?) 무엇을 고루포기하란 말인가? 그리고 이곳도 지나온 쉼터와 같은 시설이 되어 있으면서 이정표에는 능경봉이 4km 남았다고 되어 있다. 눈이 내리면서 주위는 전혀 조망이 되질 않는다.
11시에 오목골 갈림길에 도착하니 평창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있는데 고루포기산 정상 이정표에는 능경봉이 4km라 적혀 있었는데, 한참을 지나온 이곳 이정표에는 오히려 능경봉이 4.7km, 고루포기산 0.4km, 오목골 1.6km라 적혀 있으니 어느 이정표가 맞는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오목골갈림길을 지나 11시 10분 대관령 전망대에 도착하니 '상록정신을 초석삼아 대관령을 푸르고 아름다우며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풍요로운 마을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관령 상록회에서 적어 놓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가 모두 대관령 상록회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시기와 질투 그리고 서로간의 갈등은 물론 전쟁과 같은 인류의 비극은 사라질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소중하며, 모든 인류의 염원이요 희망사항이 아니겠는가?
이정표에는 능경봉 4.1km, 고루포기산 1km라 적혀 있으며 주위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는 많이 들리면서도 안개로 인해 조망이 전혀 되지 않으며 이후 계속된 급경사 내리막길을 한동안 내려간다. 왕산골 갈림길에는 11시 30분 도착하였는데 능경봉 3.7km, 고루포기산 1.4km라 적혀 있다.
11시 45분 평창군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좌측 갈림길로 100m 내려가면 샘터가 있고, 우측으로는 왕산골이 700m, 전망대는 1.4km, 직진길은 능경봉 2.6km, 제1쉼터라 표시되어 있다. 아마 여기가 지도상의 횡계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이 내리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아마 겨울이라도 대관령에서 닭목재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분홍색의 표지기가 중간중간 많이 매달려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꽃축제 등반대회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인것 같다.
12시 18분 정상봉우리에 반공호가 있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살짝 우회하는 곳을 지나니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또 지나간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으로 인해 주위조망은 물론 능경봉이 어디쯤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다.
12시 48분 행운의 돌탑앞에 도착하니 '여러분의 정성어린 마음으로 돌탑과 추억을 만드십시오'란 문구가 적힌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돌탑하면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치악산 정상의 돌탑과 마이산의 탑사를 들 수 있겠지요. 돌 하나하나 가져다 쌓는데 기울인 정성이란 이루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듯이 이곳 행운의 돌탑도 모든 등산객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조금전까지 내리던 눈은 이제 비로 바뀌어 내리고, 미끄러운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서니 능경봉 정상으로 12시 58분이다. 대관령 휴게소 1.8km라 적힌 이정표가 있고, 표지석에는 능경봉 정상 1123m, 나라 사랑 평창군 강릉 영림서 평창관리소라 옆면에 음각되어 있다. 그리고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서 그런지 바닥이 상당히 미끄럽다.
조망이 무척 좋은 봉우리라 하지만, 지금은 비가 내리면서 안개로 덮혀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 아쉬움을 간직한채, 기념촬영을 간단히 하고 이정필 회원과 통화를 하니 벌써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니 조심해서 내려오라면서 걱정을 한다. 늘 우리의 안전산행을 위해 걱정해 주시는 모든 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느낄 뿐입니다.
능경봉에서 내려서는 입구에 헬기장이 있으며 미끄럽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밧줄이 설치된 곳이 나오고 13시 12분에 통과하는데 경주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1m가 넘는 눈이 쌓여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완만한 경사의 편안한 내리막길이며 비닐 포대가 있다면 눈썰매를 타면서 내려오고 싶은 유혹을 느낄정도이며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철에는 단풍이 절경을 이룰것 같다.
13시 27분에 샘터에 도착하고 13시 28분에 비포장도로에 도착하니 코란도 두대가 주차되어 있으며, 몇명의 사람들이 약수터에서 물통에 물을 받고 있다. 제왕산 등산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제왕산은 여기서 2km, 대관령 박물관 6.9km, 능경봉 1.1km, 대관령 휴게소는 700m라 적혀 있으며 산불감시초소도 있다.
비포장도로 우측길을 따라가면 암릉코스가 멋있는 제왕산 가는 길이며, 대간길은 좌측을 따라 내려오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난 오솔길을 따르게 되면 거대한 거북등 위에 오석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우리를 다정히 반기며 주위는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 최현찬 회원이 오늘의 아찔했던 산행순간을 이야기 하면서 다리의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면서 닭목재에서 산행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두사람 모두 정말 운이 좋은 날이란다. 왜냐하면 자기는 크게 다치지 않아서 좋은 날이고, 저는 만약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면 백두대간 종주를 같이 하자고 한 죄(?)로 인해 자기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천만다행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13시 46분에 832m의 대관령 하행선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리고 안개는 짙게 끼여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분간이 되질 않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은 지금의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기하고 있는 차량을 찾아 헤매면서 이정필 회원에게 전화를 하지만 서로의 위치 파악이 제대로 되질 않아 이곳 저곳 찾아 다니는데 많은 관광버스가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대관령을 지나다가 서울 사람들이 싫으면 평창쪽으로 보고 오줌을 누고 강릉 사람들이 싫으면 강릉쪽을 보고 오줌을 눔으로써 평창쪽 오줌은 한강으로 흘러들고, 반대쪽을 향해 누게되면 강릉으로 흘러들게 된다는 곳이다.
그리고 대관령은 하도 험하여 대굴대굴 굴러 넘는 고개라 하여 이곳 어르신네들은 아직도 대굴령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본래는 대령이라 하여 아흔아홉구비가 세상을 영동과 영서로 갈랐으니 굳이 쉼터가 아니어도 으레 쉬어감이 마땅한 곳이요, 내륙과 해안사람들이 서로 만나 발길을 멈추는 곳, 그곳에는 언제나 한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이별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면 대관령의 역사와 개척사를 잠시 살펴보면, '중종 6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고형산(1453-1528)이 민력을 동원하지 않고 몇 달 만에 대관령은 개척하여 병자호란 때 주문진으로 상륙한 청군이 이 길로 한양을 쉽게 침범하였으므로 인조가 대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고 이른바 부관참시 했다'는 전설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지만 고형산이 대관령 개척으로 동서 교류의 새 역사를 연 것은 사실인것 같다.
그리고 본래 명칭인 대령은 "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 관방편에 "지지(地誌)에 이르기를 '대관령은 강릉부 서쪽 40리에 있다. 산맥이 함경도의 검산과 분수령에서부터 본도로 들어와서 철령, 추지령, 금강산이 되고, 또 금강산에서부터 미시파령, 설악산, 소동라령, 오대산을 거쳐 이 고개가 되는데 천여리에 가로 뻗치었다.
"한지(漢枝)"에서 이른바 단단대령(單單大嶺)이라 한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러고개는 모두 산등성이가 길이 열린 곳과 서로 이어졌는데 이 고개가 더욱 험준하여 그 높이가 30리나 된다.
옛날에는 관방(關防)을 두고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강릉의 여러 고을을 관동이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고개 아래에서부터 산허리로 구불구불 이어져 모두 50여 구비를 거쳐 관방에 도달한다' 하였다."고 실려 있다.
이러한 사연을 간직하며 한시절 번영을 누리던 이곳 드넓은 휴게소는 새로운 터널길이 뚫리면서 상하행선 모두 옛영화를 뒤로 한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잠시나마 실감나게 하는 쓸쓸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휴게소 안에는 일부 산악회 회원들은 산행을 마치고 점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고 어떤 산악회 회원들은 식사를 하는데 소란스럽다. 다시 상행선 휴게소쪽을 찾아보기 위해 길을 건너는데 안개와 빙판으로 변해가는 길 때문에 차량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는 사이를 뚫고 건너니 시야에 낯익은 차량이 보인다.
서로 무사산행에 대한 인사를 나누고 다음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기 위해 대관령 기상관측소 앞까지 가서 표지기를 달아두고 따라온 차를 타고 조심조심 대관령을 탈출한다. 내려오면서도 혹시나 비가 눈으로 변할까 싶어 걱정을 많이 하지만 다행이 대관령 중턱을 내려서면서부터는 안개도 걷히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
내려오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정필 회원 부부는 우리를 삽당령에 내려주고 정동진을 갔는데 방을 구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름이 끼여 일출 구경도 못하고 대충 시간을 보내다 대관령 휴게소에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대간 종주하느라 고생이 많다며 정동진에서 모래시계를 사서 선물을 주는 고마움까지 우리에게 베푼다. 오히여 우리가 선물을 해도 시원찮을텐데...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또 한구간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면서 장시간 먼거리를 운전해 주신 이정필회원 부부와 다친 다리의 통증을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동행해준 최현찬 회원께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