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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사람들이 다양한 '우리'집단과의 경험을 통해, 특정 집단의 특성과는 독립적인 추상적인 '우리'개념을 갖게 되며, 그러한 개념은 일방인의 일상생활이나 관념 속에 '우리'관련 지식체계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추상적 '우리'개념에 외연과 내연을 부여하고자 자유 응답형 질문지를 사용한 조사를 실시하여 '우리'에 대한 표상의 내용을 알아보았으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어떠한 근거를 통해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는지 또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성은 무엇인지를 도식적으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우리'개념이 갖는 구조적 특징들을 논함으로써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일반적, 추상적 '우리'의 실체를 보다 명료화시키고자 하였으며, '우리'가 겪는 독립적, 역동적 기능을 사회적 표상과 관련지어 설명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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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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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로 볼 때 '우리'는 자기를 포함하여, 자기와 관련있는 무리를 스스로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모든 종류의 집단은 '우리'집단이 될 수 있으며, 내집단 성원들 모두가 '우리'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Allport(1958)는 집단 성원들이 서로 본질적으로 똑같은 의미에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그 집단을 내집단이라 규정하므로써 '우리'집단을 내집단과 동일한 개념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내집단의 경우 집단 성원성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전체집단의 한 부분으로 관련시키거나, 심리적으로 자신을 집단에 관련시키고자 열망할 때 존재하게 되는 준거집단(Sherif & Sherif, 1953)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집단은 구성원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출생과 더불어 결정되는 귀속적(ascribed) '우리'와 자신의 능력, 노력, 의지 등과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성원성을 취득하는 성취적(achieved) '우리'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집단간 상호작용과 서로의 관계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점은 앞으로의 논의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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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tz는 인간이 당연시 받아들이는(taken- for- granted) 생활세계를 '우리 관계'와 '그들 관계'가 공존하는 세계로 파악하고, '우리 관계'란 '너 지향'(thou orientation)을 특징으로 하는 대면적, 직접적 관계이며, '공감을 갖고 참여하는 관계'(Schutz, 1932/1967)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설명은 인간관계 중심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게마인 샤프트적 특성이나, 동일집단 성원성을 기반으로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내집단적 성격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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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관계 또는 '우리 집단'을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이미 주어진 객관적 실체로만 파악하는 설명들은 '우리'가 구성원의 적극적인 인지적 구획화와 관계적 특성의 자각을 전제로 비로소 형성되는 사회인지적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관계와 연합된 구성원들의 인지적, 감정적, 행동적 지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거리의 공중전화 박스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성별이나 인종이 같다 할지라도 '우리'라는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관계성이나 공통성을 확인하거나, '확인'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며, 매우 중성적인 입장에서 단지 하나의 군집(aggregate)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우리'는 성원들이 '우리'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동질감의 공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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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대한 논의에서 또 한가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점은 서구의 개인 중심적 '우리' 관계와 한국의 집단 중심적 '우리' 관계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제측면에서, 그리고 집단 정체로서의 역동적 성격에서 색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상진과 최수향(1990)은 서구의 집합주의 개념은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로 상정하므로써, 개인의 고유성이 소멸되지 않는 군집(collective pool)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인의 존재를 전제할 수 없는 동양문화권-특히 한국에서는 개인이 집단상황에서 자기의 고유성을 전체집단에 맞추어 변화, 순응시키고, 전체에 융화되므로써, 개인성의 합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집단성을 창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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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집단주의 상황을 잘 반영하면서, 동시에 우리 관계나 '우리' 집단의 특수성을 잘 나타내는 예로 '우리' 라는 말의 일상적 쓰임새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일상어에서 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을 수식하거나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우리 학교, 우리 나라, 우리 회사, 우리 가족). 이와 달리 '우리끼리.... 한다'는 표현은 서로의 친밀하고 독특한 인간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상호친밀감을 고조시키거나 어떤 것에 대한 배타적 공유의식을 확인시키는 뜻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또한 '우리 사이에 네것 내것이 어디 있느냐' 라든가, '우리 사이에 그렇게 따지면 섭섭하지'라는 표현은 개인이 상호간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이며, 분리되는 것이 오히려 '우리' 관계를 위협하는 요소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리하여 상호관계에 대한 기대가 실제와 어긋날 때 사람들은 "우리 사이에 그럴수가...."라는 표현으로 기대가 깨어진 것에 대한 애석함, 섭섭함, 절망감, 배신감 등의 감정을 표출한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간 혹은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뿐 아니라 성원들 사이의 독특한 인간관계의 특성 및 그 관계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감정적 행동적 특성까지도 함축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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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언어 사용의 실례들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이나 관념 속에 특정집단을 지칭하지 않은 상태의 '우리' 개념이 집단의 특성과 유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가정하게 한다. 즉, 다양한 종류의 '우리' 집단 경험은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우리' 개념을 성원들에게 내면화시킴으로써, 추상적 형태의 고유한 '우리' 개념이 구체적 '우리'와 별개로 그 나름의 역동을 가지고 기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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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는 이와 같은 추상적 '우리'가 한국인의 사고와 일상생활 속에 어떻게 표상되어 있으며, 그 특성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자유응답형 질문지를 통해 C대학교 학생 13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1989년 9월). 그리고 이 조사에서 나온 응답내용을 '우리'와 '우리성'의 개념화를 위한 자료로 삼았다. '우리'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내용과 간추린 응답내용을 아래에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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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적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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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감, 따스함, 흉허물이 없음, 위로, 사랑, 행복, 화합, 가족적 분위기, 동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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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한마음, 한식구, 동아리,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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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감, 단합, 단결, 결집, 의기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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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연상어들은 크게 친밀감, 따스함 등과 관련된 정서적 특성을 내포한 말, 집단의 일체감과 조화 등을 강조하는 말, 특정 목적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동아리, 패)을 의미하는 단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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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와 '우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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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속해 있는가-소속해 있지 않는가;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인가-친밀하지 않는가; 함께 있으면 편안한가-불편한가; 이해관계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가-좌우되는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가-이질감을 느끼는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가-그렇지 않은가; 지속적이고 빈번한 접촉(대면 접촉, 서신, 전화연락 등) 이 있는가-없는가; 서로 관심을 갖고 있는가-그렇지 않은가; 대화내용에 그 인물이나 집단이 자주 등장하는가-그 반대인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가-그렇지 않은가; 사상, 견해, 가치관, 느낌이 유사한가-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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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는 '하나'라고 느꼈던 점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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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목표나 일을 놓고 서로 화합하고 뭉칠 때(올림픽, 운동회, 집단대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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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체집단의 일원임을 느끼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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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함께 할 때, 그런 상황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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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나 아픔을 공유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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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생각, 느낌 등이 비슷함을 발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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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어도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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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을 갖게 된 중요 원인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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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 단결, 결집, 결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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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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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를 위한 자기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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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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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없는 사이, 격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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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식(공동 이해, 목표, 관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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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좋았던 경우는 구체적으로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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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에서 협력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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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 고독감을 줄이고 안전감, 따뜻함, 자기 지지감을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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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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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나빴던 경우는 구체적으로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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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성을 요구할 때(집단의 요구와 나의 이익이 상충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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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무시하고 침해당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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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감정의 공유없이 한 울타리로 묶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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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잘못으로 전체가 피해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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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불신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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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이나 생각이 깨질 때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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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남인 것처럼 행동하거나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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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말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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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관심이나 배려를 보이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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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자기 중심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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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내게 비밀이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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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우리'를 외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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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경우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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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감, 비참함, 슬픔, 당혹감, 좌절감, 고독감, 섭섭함, 쓸쓸함, 상실감,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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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와 함께 있을 때와 '우리'가 아닌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 행동, 제스츄어 등에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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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나 본성을 드러내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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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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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해도 되는 표현, 행동 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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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신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각에 따르는 경우는 주로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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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나만 빠지기 싫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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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목표나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내 생각 정도는 양보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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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 내 의견을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 서로 충돌이나 마찰을 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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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따르는 것이 무난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교육받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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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뚜렷이 떠오르는 사람(들)으로 누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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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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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친구, 선배, 고등학교 동창, 써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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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민족, 세계, 동포,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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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성'의 형성 - 진화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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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앞선 논의와 조사내용을 근거로 추상화된 '우리' 개념이 무엇을 근거로 형성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발전되는지를 그림을 통해 설명해보기로 하겠다. 특히 이 과정을 통해 자기중심적 집합주의와 집단주의적 집합주의 특성을 비교해 보고, 본 고의 연구대상인 '우리'를 후자와 관련된 '우리성'으로 구체화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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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성'의 형성근거와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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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 n은 개인의 고유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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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우리'의 실제 공통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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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우리' 형성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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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들이 서로 실제 공통성 지각을 통해 '우리' 인식이 발생하는 것을 보이고 있다. 개인들은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차원 중 어떤 것에서든지 공통성 또는 유사성을 지각하여야 하나, 여기서는 특히 사회적 관계에서의 유사성 지각이 '우리성' 의 출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외모가 닮았다"라든가 "취미가 같다"는 것보다는 "고교 동창이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보다는 "고교 동창이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와 같은 사회적 관계 유사성은 여타의 요소들에서 유발될 수 있는 동질감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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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 n은 자기 고유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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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우리'의 실제 공통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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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가정된 '우리' 공통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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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가정된 '우리' 공통요소: '우리' 관련 내현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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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는 실제 공통성이 공통요소의 추리, 가정을 통해 실제보다 확대된 상태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고향사람이다"라는 공통요소지각은 "사고방식이 비슷할 것이다", "도시보다 시골을 좋아할 것이다", "서로 잘 통할 것이다"와 같은 가정을 하게 한다. 이것은 특정의 공통요인이 다른 요인들과 연합되어 공변하는 것(James & Vander, 1988)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림 2>는 일반인의 '우리' 관련 내현이론(implicit theory on 'Woori')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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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 n은 개인의 고유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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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 자기 고유영역의 경계가 흐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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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 '우리' 공통요소의 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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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유영역이 줄어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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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우리' 중심으로 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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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은 '우리' 공통요소의 가정과 더불어 일어나는 몇가지 중요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우선 각 개인의 고유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동시에 개인 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최상진, 최수향(앞의 논문)의 논의에 따르면, 개인을 집단보다 중요시하는 서구사회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개인 고유의 영역을 표시하는 경계가 뚜렷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제시하고 있는 한국 문화에서의 '우리'는 전체에 대해 조화와 순응을 위해 자기 개별성의 주장을 양보 또는 억제하게 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율성, 독립성, 개별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전체적 조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성 지향이 반드시 강요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은 이 상황에서 전체적 조화를 위한 내재적 동기를 갖기도 한다(문항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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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 n은 개인의 고유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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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 자기-함몰적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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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성'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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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우리성'의 출현 ; 탈개성적, 자기-함몰적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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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는 개인의 고유영역이 전체 '우리' 속에 함몰되어 집단 중심의 '우리'가 형성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경우 물리적인 의미에서 개인 a,b,c,...n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사회심리적인 측면에서는 개인의 고유성은 통일된 전체 속으로 잠식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일단 '우리'가 강조되는 집단 상황에 접하게 되면 개인의 개별적 특성의 합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자체의 독특한 특성과 역동성이 나타난다. 집단상황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두 가지로 분리될 수 있다. 첫째는 집단 상황에서 자기 정체가 상실되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로서 집단 상황에서 자기는 익명성을 띄게 되거나, 자기 개별성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둘째로는 개인의 정체가 집단정체로 전환되는 탈개성화(depersonalization)로서 전자와는 달리 개인의 정체는 집단 속에서 상실되지 않으며, 집단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자기정체의 확인이 가능하다. 자기-함몰적 '우리'는 몰개성화보다는 탈개성화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고교동창이다'라는 집단적 정체는 동일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각 구성원의 존재를 분명하게 가정할 수 있을 때에 형성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개별성이 '우리'형성의 필요조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 각자가 개인적 수준을 넘어서 고교 동창생 '우리'라는 통일된 전체를 이루기 위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력할 뿐 아니라 그 통일성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개인적 요소의 상쇄는 암묵적으로 용인되거나 당연시 받아들여진다. 이는 개인 정체가 집단 정체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전체적 통일을 향한 개인의 변화가 '우리'형성의 충분조건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함몰적 '우리'의 형성은 인지적 측면뿐 아니라 감정적, 행동적 요소까지 결합되어 강력한 집단적 힘(syntality)을 발휘할 잠재적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개념은 집단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고 마는 몰개성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탈개성적 '우리'를 나타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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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요소의 결합은 전체적 조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인지적 유사성 지각은 '친밀감', '따뜻함'. '안정감' 등의 정서적 요인들을 자극하여, 전체 '우리'로의 적응을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일어나도록 촉매역할을 하며(문항 1, 2), 무리한 강요없이도 집단을 위한 양보나 희생이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감정적 요소가 결여될 경우 집단성원은 전체에 동조하거나, 전체와 동일시하는데 대한 저항을 느낄 수 있으며, 집단으로부터의 이탈가능성도 증가하게 된다(문항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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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사회심리학적 개념으로서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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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자기-함몰적 '우리'를 구체적으로 명료화시켜보기 위하여 '우리'의 구조적 속성과 '우리'가 집합적 단위로서 갖는 특성들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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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구조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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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와 '너'가 분리된 단위가 아니라 통일된 존재로서의 독특한 집단정체이다. 이 정체가 지니는 특성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성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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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상호간의 '우리' 지각 또는 '우리' 인식 :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자신과 상대(단수 또는 복수)를 '우리'라는 테두리에 포함시키는 것을 전제로 비로소 구체화되는 사회인지적 산물이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우리' 인식은 자기-함몰적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개개 구성원의 조화와 융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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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배타적 '우리' 인식 : '우리' 정체의 자각은 '우리'에 포함된 대상과 포함되지 않는 대상을 뚜렷이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단서를 통해 '우리'와 '그들' 을 구분시켜 분명히 명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인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배타적 인식은 '우리' 경계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경계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회심리적 압력을 낳게 되며, '우리' 구성원들은 '우리'경계 내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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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성원간 동질성의 자각 : 상호간 '우리' 인식과 배타적 '우리' 인식 동질성 자각을 수반한 것이어야 한다. 동질성을 물리적 차원(유사한 외모, 유사한 행동, 공동소유 등), 사회적 관계차원(유사한 사고방식, 유사한 성격 등), 사회적 관계차원(동일민족, 국가, 지역사회, 학교, 직장, 고향, 가족 등) 중 어느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나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집단 중심적 '우리'는 사회적 관계 차원에서의 동질성 지각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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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 동조와 동일시에 대한 비가시적 압력 : 집합단위로서 '우리'는 개인으로 하여금 집단에 대한 동일시 및 동조에 대한 비가시적 압력을 유발시킨다. 성원들은 '우리' 인식과 더불어 서로의 개인차를 거의 무시하고 유사성을 확대, 강조할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개인의 욕구, 특성, 능력이 집단 전체의 것과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것을 금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집단의 의사나 목적이 자신의 주장과 상충될 경우, 자기주장을 억제하고 설사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체의 의사를 따르는 것은 (문항 6, 10) 매우 비논리적, 비합리적 집단과정을 드러내는 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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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열거한 '우리'의 네 가지 구성적 요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자기와 타인(들)이 공통성이나 관계유사성의 인식을 통해 상호동질감을 경험함으로써 형성되는 사회인지적 집단 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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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함몰적 '우리'가 갖는 집단적 특성 : '우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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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조적 속성을 모두 갖춘 인지적 구획화가 일어나면 성원들은 자기와 타자간 관계를 조절하거나 재정비하게 되며, 각 개인의 자기 정체는 집단을 더욱 우선시하는 집합단위로 정체도 확대된다. 집단 정체로서의 '우리'는 개인의 실제 특성들이 합해진 것과는 별개의 특성을 갖는다<그림 4>. 왜냐하면 집단 상황은 개인성의 표출을 억제시키고, 단일화된 전체적 성격을 띄며, 개인들은 전체적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자기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림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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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서 나타난 바에 근거하면, 사람들은 집합 '단위'로의 '우리'에 대한 어떤 식의 설명체계 또는 상식적 이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즉 '우리'라는 추상적 자극어는 여러 가지 다양한 내용들(정서적 요소, 행동기준, 관계적 속성, 인지적 범주화의 특성 등)과 관련되어 있는 하나의 가치체계, 행위로서의 실천체계라는 점이 보고된 응답내용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라는 추상적 개념을 '우리'에 대한 사회적 표상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Moscovici(1981)는, "사회적 표상이란 대인간 의사소통과정에서 나타나는 개념체계, 진술체계, 설명체계(a set of concepts, statement, and explanation)로 그것들은 일상생활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며 사회적 세계에 대한 의견, 이미지, 태도같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현실의 발견이나 조직화를 위해 사용되는 이론체계(theories)라 했고, Emler(1987)는 사회적 표상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표출하는 신념과 이해의 형태"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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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대한 추상적 개념을 사회적 표상으로 이해할 경우, 이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우리'라는 자극어와 함께 다른 수많은 자극들을 떠올리고, 그 자극들을 해석하며, 그에 따라 행동을 유발시키는 역동적 성격을 갖는 체계임을 지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사회적 표상으로서 갖는 기능을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집단상황과 세계에 대한 개인을 방향지우고, 상황내 개인을 통제하는 질서를 설정하는 기능을 한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성원들간 사회적 교환을 가능케 하는 법칙세계와 '우리' 관련 제반사항에 대해 분명하게 명명하고(인식하고) 체계화하는 법칙세계를 제공해 줌으로써 구성원들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특성들은 '우리'에 대한 사회적 표상이 개인해석의 합에서 전환된 것이 아니며, 개인이 가진 해석 이상이라는 점에서 자기-함몰적 '우리'가 갖는 독립적, 역동적 기능을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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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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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그동안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특성으로 거론되어 온 공동체성, 가족주의 성향, 집단성과 같은 용어들을 '우리성' 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시켜 보려 하였다. 특히, '우리'를 일반적인 집단 개념과 같이 이에 주어진 정태적 실체로 파악하지 않고, 인간의 의식과 관련된 사회인지적 산물이라는 데 초점을 두어 '우리' 형성의 요건과 자기-함몰적 '우리' 형성과정을 도식으로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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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우리'를 사회적 표상 및 사회적 정체와 관련시켜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특성들을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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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 논의한 내용들은 '대학생 집단에서 얻은 조사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나타나지 않은 다양한 원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연령집단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 집단을 기능, 목적 중심적 집단과 인간관계 중심적 집단으로 구분하여 기능, 목적 중심적 집단과 인간관계 중심적 집단으로 구분하여 개별적으로 연구한다면, 한국인의 '우리'에 대한 논의의 폭을 보다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 여겨지며 나아가 한국인의 인간관계나 집단주의적 성격에 대해 '가족주의' 또는 '공동체 의식'과 같은 단일차원이 아닌 상황관련적 복수차원에서 논의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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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에 대한 현상적 관찰과 기술을 중심으로 일반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우리'의식을 '우리'와 '우리성'이라는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 개념화시키려는 하나의 시도였다. 그러나 '우리' 형성과정에 대한 모형과 '우리' 개념의 구조적 속성에 따른 명제들을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후속연구가 요구되는 바이며, 동시에 개념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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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길다... ^^ 정독해서 읽지는 못했지만.. '우리' 라는 단어만으로도 친근감과 강한 결속감이 느껴진다. 암만 봐도 좋네... '우리'
ㅎㅎㅎㅎ걍,,넘어가......ㅎㅎ시간 날때 차근차근 봐야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