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자고 난리인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총성 없는 문화전쟁의 상징입니다. 중국이 2002년 66.6%의 스크린쿼터제를 도입했고, EU가 헌법초안에 문화가 통상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받는 것에서 부족해 EU 차원에서의 스크린쿼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성공적 문화정책을 벤처마킹한 것입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눈엣가시고, 나아가 유네스코가 2005년 각국의 고유한 문화정책을 국제법으로 영구히 보장하려는 '문화다양성 협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어 서둘러 양자간협정을 통해 각개격파하려는 것입니다
쿼터제로 배부른 건 몇몇 영화뿐 아닌가. 저예산 독립영화는 여전히 설자리가 없고 스탭들 처우문제도 개선되지 않고있다.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영화 발전의 필요조건입니다. 한국영화 발전에는 필요조건만이 아닌 충분조건도 필요한데, 스탭처우 개선과 내부 다양성이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국영화가 존재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계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시원한 답을 못 내오고 있는 것은 마땅히 지적받아야 하지만, 정부가 내부 다양성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들먹이는 것은 진작 했어야 할 자신들의 책임을 적반하장으로 스크린쿼터제에 있는 양 전가하는 파렴치함의 전형입니다.
농민도 희생하면서 한칠레 FTA 체결했는데...국익을 위해 영화가 희생할 수 있는것 아닌가?
큰집 망했으니 작은집도 망해야 된다는 논리? 문화와 무역 간 갈등의 역사는 192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93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진행된 GATS(서비스에 관한 일반 협정) 협상 당시에도 문화를 포함시키는 것에 실패했고, 98년 OECD가입국들끼리의 다자간투자협정(MAI)이 문화적 예외 인정 여부 때문에 파기된 것은 너무나 유명한 대사건입니다. 문화가 시장경제에 맡겨질 때 시장의 힘으로 공정한 경쟁과 균현 잡힌 교류가 불가능합니다. 문화에 대해서만 국제법에서 쿼터제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문화가 자동차, 반도체 등 일반 상품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는 한 나라의 정체성과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FTA가 세계적인 추세라는데...근데 미국과의 FTA는 BIT가 선결되어야 한다던데요?
미국과 FTA 체결하기 위해 BIT를 체결해야 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최근에 FTA를 체결한 미-칠레, 미-싱가포르, 미-호주도 BIT를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FTA도 FTA나름이지요. 93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캐나다는 문화분야를 아예 협상에서 제외한 반면, 멕시코는 협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멕시코 영화는 지금 명맥조차 찾기 힘들게 됐습니다. 첨언하면, 98년 캐나다-이스라엘, 캐나다-칠레 FTA에서도 문화가 제외되었습니다.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쿼터제로 발목 잡혀야 하나?
한미투자협정 체결이 정말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왜 영화인들이 반대하겠습니까? 외국인 투자유치를 장려하는 세계은행과 IMF보고서조차 양자간 투자협정이 외국인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우리의 영화산업은 쿼터일수 10일 축소하면 3,084억 감소하는, 21세기 국가경제를 가르는 핵심 성장엔진으로 성장했습니다. 얻는 것은 불투명하고 잃는 것은 뻔한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것은, 심청이만 죽고 심봉사도 눈도 못 뜬 채 굶어죽는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쿼터 몇 일 축소하고 예산 지원 받아 다양한 영화 제작에 쓰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스크린쿼터 축소하지 않으면 다양성 위한 예산지원이 불가능합니까? 미국이 우리 문화부 예산을 결정하나요?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는 것과 내부 다양성을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안이지요. 그런데도 내부 다양성 문제가 영화계의 화두인 것을 알고 문화부가 이를 스크린쿼터와 교묘하게 연관시키는 것은, 어떻게든 명분을 쌓고자 하는 속이 훤히 보이는 어림없는 수작이지요.
연동제가 도입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올릴 수 있잖아요?
미국도 연동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못 박았고, 한번 줄이면 다시 되돌릴 수(롤백) 없는게 국제법의 기본 상식입니다. 그리고 만약 연동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비아그라'처럼 무슨 탁월한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한참 잘 나가는 한국영화에 브레이크를 걸고는 90년대 초부터 진행됐던 고통스러운 과정을 또다시 되풀이 해보자는 건가요? 다행히 좋은 참고서 덕에 마음 다부지게 먹고 공부 좀 해보겠다는 아이한테 성적 떨어지면 다시 주겠다고 참고서 뺏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한국영화가 쿼터일수보다 더 많이 상영되고 있다는데..좀 줄여도 되겠구만.
스크린쿼터제는 불안정한 영화산업의 특성 때문에 최소 일수를 보장하는 보험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경쟁력이 생길 때는 의미가 없겠지만, 지난 90년대 초에 점유율이 16%까지 추락했던 한국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투자와 제작에 문제가 생겨 산업이 위축될 때에는 숨을 고르고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는 발판, 즉 보험금이 됩니다. 배급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산업적 특성상 쿼터제와 같이 최소한의 상영일수를 확보하는 것은 막강 자본과 물량의 헐리우드를 견제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스크린쿼터제는 언제까지 있어야 하나? 자신감도 가질만 한데...
토종 물고기와 외래 어종인 베스가 똑같이 자유롭다면 토종 물고기는 곧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두 개의 문화가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경쟁력이 생겼다고 스크린쿼터제를 없애는 것은 토종 물고기 보호를 위해 쳐놓은 그물을 걷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현 WTO 체제에서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문화정책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