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기에 효성(曉性)스님은 13세에 쌍계사로 출가하여 대웅전 노전 스님의 상좌가 되었습니다.
전등을 밝히는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저녁 예불이 끝난 다음부터 새벽 예불 때까지 법당 안에 등불을 밝혔습니다. 둥근 그릇 모양의 등잔에 참기름을 가득 붓고 종이 심지를 달아 밤마다 불을 밝히면 3일은 쓸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 법당 청소를 하다가 등잔을 살펴본 노전스님은 참기름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분명히 어제 기름을 넣었는데 왜 한 방울도 없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노전스님은 기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살펴보니 또 기름이 없었습니다. 등잔을 살펴보았으나 깨어진 흔적은 커녕 구멍하나 없었습니다. 괴이하게 여기며 스님은 또다시 등잔에 참기름을 채웠고, 그 이튿날도 꼭같은 일이 일어나자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밤마다 등잔에 손을 대는 것이 틀림없구나.'
그날 밤 노전스님은 13세의 효성사미를 데리고 법당의 신중단 탁자 밑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습니다. 탁자는 천으로 가리워져있어 밖에서는 그 밑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탁자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효성사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은사스님의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 게 섰거라!"
깜짝 놀란 효성사미가 눈을 떠보니, 법당 가운데의 문 앞에 키가 9척이나 되고 검은 옷을 입었는지 검은 털이 났는지 분간이 되지않는 괴물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와 팔다리와 몸뚱이가 모두 있고 우뚝 서 있었지만, 사람은 아닌 듯했습니다.
고함을 치며 神衆壇 탁자 밑을 나간 노전스님은 그에게 앉도록 한 다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이냐? 짐승이냐?"
"사람도 짐승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목신(木神)입니다."
"목신이면서 어찌 감히 부처님 전에 올리는 등잔의 기름을 훔치는 것이냐? 그 과보가 얼마나 큰 지를 모르느냐?"
"어찌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오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냐?"
"저는 이 절 밑의 화개마을 이판서댁 뒤 뜰에 서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 발들이 땅 밖으로 나와 있는데, 무식한 머슴들이 제 발등에 나무를 올려놓고 도끼질을 해서 장작을 팹니다.
판서댁에서 겨울 내내 쓸 장작을 여러 머슴들이 계속 준비하다보니, 제 발들의 이곳 저곳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맙니다. 이 상처와 아픔을 달랠 약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께 올리는 이 등잔의 기름을 발라야만 하룻밤 사이에 아픔이 사라지고 딱지가 앉습니다. 그런데, 머슴놈들이 매일 장작을 패기 때문에 며칠동안 계속 부처님의 기름을 바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네가 진짜 목신이라면 인간보다는 힘이 셀 것이 아니냐? 얼마든지 보복을 할 수 있을텐데?"
"보복을 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집의 運이 다하지 않았는지 이판서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나면 정좌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 번 읽습니다. 그 힘 때문에 지기(地氣)를 비롯한 어떤 기운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이판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판서가 죽고나면 보복을 할 생각입니다."
"내가 가서 앞으로는 머슴들이 너의 발등 위에서 장작을 패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 보복을 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인간들이 해를 가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가 먼저 해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 이상 고마울 일이 있겠습니까?"
목신은 절을 한 다음 사라졌고, 노전스님은 날이 밝기가 바쁘게 이판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이판서는 머슴들을 불러모아 땅위로 노출된 은행나무의 뿌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덮도록 하고, 허리 높이 정도의 울타리를 만들어 누구도 나무에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상을 차려 은행나무에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뒤 쌍계사 대웅전의 등잔 기름은 훼손 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13세의 사미 시절에 이와같은 일을 경험한 효성스님은 노년에 나를 비롯한 여러 승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수백년된 목신은 힘이 없어 보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늙은 이판서가 날마다 외우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가피력 때문에 어떻게 보복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어떠한 사기(邪氣)도 이판서의 집안을 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명훈가피요, '누구라도 감히 해칠 수 없다'는 관음경의 시실불감해(時悉不敢害)입니다.
관세음보살님만이 아니라 다른 불보살님께 올리는 기도에도 반드시 기도시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기도를 하여 아들.딸이나 사위.며느리, 상좌 등을 얻게 되었을 경우, 처음부터 마음에 딱 맞는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아이구, 저런 게..'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옵니다. 이것이 불보살님의 기도시험입니다.
1)
일제강점기에 해인사에 계셨던 우련스님은 상좌가 없어서 관세음보살님께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기도 회향일에 새까맣고 꼴불견인 아이가 찾아와 하는 수 없이 상좌로 맞아들였습니다. 우련스님은 그와 같은 상좌에 대해 불만이 없지않아 평소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쯧쯧, 백일기도 회향일에 들어왔기에 할 수 없이 상좌로 삼았어. 어찌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런 걸 보냈을꼬?"
하지만 그 상좌가 자라 뒷날 백용성 스님의 율맥(律脈)을 이은 경하(景霞)스님이 되었으니, 우련스님의 기도가 어찌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고 하겠습니까?
2)
해인사 희랑대의 현응스님도 나반존자께 '좋은 상좌 하나 점지해주소서.'하면서 백일기도를 하여 얻게 된 상좌가 몽견선생(夢見先生)입니다. 눈만 초롱할 뿐 잘생기지 못한 이 상좌에 대해 현응스님은 만족을 하지 못하였지만, 몽견선생은 오오사카 의전을 나와 만주에 불교병원을 세워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병원에 부처님을 모시고 많은 이들에게 염불을 권하고 불교를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기도 끝에 시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당장 눈에 딱 드는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 덕으로 얻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품고서 키우고 같이 있다보면, 남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는 사람, 사회의 어느 한쪽을 능히 지탱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기도시험에 속지말 것을 당부 드립니다. 스스로가 행한 기도를 믿고, 또 불보살님을 믿고 기도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아들딸을 키우고 며느리와 사위를 데리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속을 뿐, 불보살님은 절대로 중생을 속이는 법이 었습니다.
몇 년전 90세 가까운 나이로 돌아가신 덕운성 보살은 50대 중반에 자궁암에 걸렸습니다. 부잣집 외동 아들인 남편이 평생을 돈 쓰는 재미로 살면서 남편이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처갓집 재산까지 모두 탕진하고 죽었으므로, 덕운성 보살은 날품팔이를 하며 혼자 1남 2녀를 키웠습니다.
"말기 자궁암입니다. 앞으로 3개월정도는 살 수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시지요."
대구 동산병원의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그녀의 두 딸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자궁암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는 말기 자궁암이 반드시 죽는 병에 속하였기에, 덕운성 보살에게는 의사의 말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에게 울면서 사실을 알리자, 큰 딸은 포기할 수 없다며 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셔가 다시 진찰을 하게 했습니다.
"3달은 너무 성급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은 보장하기 힘듭니다.""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울면서 사정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를 2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대학 2학년이니,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단칸 셋방이 있는 김천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매달릴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관세음보살님 뿐이었습니다.
기도비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은 물론이요 틈만 나면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 마지막 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김천 청암사 극락암에 모셔진 42수관세음보살상(지금은 도난 당하였음)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백발의 노스님 한 분이 불단 앞에 나타나 약 세 봉지를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무릎으로 기어가 약봉지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먹어라."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부처님 앞에 놓인 다기물을 손바닥에 부어주셨고, 그 물로 한 봉지를 먹고 나자 또 물을 부어주며 말했습니다.
"또 먹어라."
"마저 먹어라."
세 봉지째 약을 먹었을 때 어떻게나 거슬리든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고나서도 그 약 냄새는 그녀의 몸과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은 그녀는 말기 자궁암이 완전히 나아 아들의 대학 졸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3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첫댓글 불보살님의 가피에 지심으로 머리숙여 합장합니다. 올려주신글 읽고나니 절로 발심이나는듯 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 관세음보살 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_()_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나투소서..거룩하신 관세음보살님.....
부처님의 가피 앞에 두손 모아 합장합니다.관세음보살 ()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부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