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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MM곡사포 군대생활 이야기 1977 1021-1980 0714
전역패 105mm곡사포 탄피 탄피가 여유분 하나 있었는디 한미합동훈련하면서 포탄을 300여발 쏘면서 재생하지 않은 A급 1945년도 생산된 탄피로 전역패 만들다
M3 경량포
105mm 곡사포 중 경량화된 모델로, 공수부대를 위해 만들어졌다. 때문에 아래에 소개된 M2/M101 계열의 일반적인 105mm 곡사포와 다르게 더 가볍고 길이가 짧지만, 사거리는 더 작고 분당 발사속도도 떨어진다. 제식번호가 M3인 이유는 개발 당시에는 기본형인 105mm 견인곡사포의 제식번호가 M2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포신은 M2/M101 계열의 것을 짤게 만들어 사용했지만, 주퇴복좌기와 나머지 것들은 M1 75mm "Pack howitzer"의 것을 사용하여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미군의 M1 75mm 곡사포는 보병을 위한 산포(山砲·Mountain Gun)로 제작되었으며, 사거리나 파괴력보다는 직접 사람이 들고 옮길 것을 상정하여 분해가 가능하고 무게가 가벼웠다. 겨우 653㎏밖에 안 나가며, 6부분으로 나눠 운반이 가능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M3 전용의 부품들이 개발되어 교체되었다. 1943년부터 미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 쓰였다. 2,580대가 생산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이 벌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군 포병의 주력포였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국군은 M2/M101 개열의 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전쟁 도중 국군에게 M2/M101 계열이 도입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 M3는 모두 퇴역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M3 견인곡사포는 M2/M101 계열의 포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포신이 짧고 주퇴복좌기와 포가 역시 약했기 때문에 별도로 만들어진 빠르게 연소되며, 좀 약한 장약을 사용하였다(포신이 짧기 때문에 기존 장약을 사용하면 장약이 다 연소되기 전에 포탄이 튀어나가서 운동에너지의 손실이 발생되었다). 때문에 사거리는 M2/M101 계열의 2/3수준 밖에 안된다. |
M2 / M101 계열
대통령 취임시 21발발사 예포로도 사용
대한민국 국군의 주력 화포. 105mm는 포구의 지름, 견인곡사포는 자주곡사포(자주포)와 대비대는 말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트럭 등에 매달아서 이동하는 곡사포를 말한다.
국내에서 보통 105mm 포라고 하면 미국제 M101A1/A2를 가리킨다(M2A1/A2는 2차대전 중 분류호). 현재는 신형 KH179 155mm 견인곡사포에 현역 자리를 조금씩 내주고 있다.
일명 똥포라고 불린다. 보통 똥포는 60mm 박격포나 81mm를 그렇게 부르는데, 105mm 곡사포도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격시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포 반경 2~3m에 충격파 때문에 먼지기둥이 5m 내외로 솟아오른다. (포신옆에 있으면 고막나감) 대대급 TOT라도 했다간 충격과 공포. 물론 105mm 포병들이 자기 포를 보고 똥포라고 하진 않는다. 155mm나 지금은 퇴역한 8인치 포병들이 105mm의 큐트함(크기, 대포소리 모두)에 모에을 빗대어 지칭하는 말.[1]
똥포라 불리게 된 다른 이유가 있는데, 우리나라가 이 포를 처음 도입해왔을때는 무지 가난해서 실탄 사격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약뭉치와 쇳덩이를 넣고 쏘면서 훈련을 했는데(일종의 모의탄. 실탄과는 달리 탄착군 확인이 힘들다), 이것을 군인들이 똥탄이라고 불렀고, 똥탄을 쏘는 포라서 똥포라고 불렀다.
원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근대 포병의 교과서라 불리던 프랑스제 M1897 75mm 포의 후신으로 1940년에 미군이 사단포병용으로 채용한 야포였다. 전후 대량으로 뿌려댄 탓도 있지만, 야포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총 65개국이 채용하였고 지금도 상당수 국가에서 현역 운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국에게서 지원받아 이후 30여 년간 포병의 주력 야포로 활약했다. 심지어는 실물 계측으로 만든 복제품까지 생산(1973년)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국군이 이 포를 얼마나 신뢰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군에게서 불하받거나 구매한 양도 상당하여 현존하는 부품 중에도 가끔 제작연도가 1942년이라든가 하는 부품이 있는데… 이걸 만들던 공장 직원들은 '나치 독일군을 열심히 물리쳐 주세요!'라고 염원을 담아 만들었을 듯하다.
미군에서는 베트남전 때까지 잘만 사용되었으며, 그 뒤로는 신형 M102 105mm 곡사포를 배치하여 점차 퇴역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군의 재고 포탄을 어마어마하게 넘겨받아 포탄이 썩어 넘쳐나는 관계로(350만 발로 세계최대라고 한다. 한발가격 약13만원 해외판매하려 해도 배송비가 경악할 수준이라 팔지도 못한다고) 한동안은 현역자리를 지킬 듯. 현재 사용되는 포들은 거지반 국내 생산형… 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어떤 포들은 1942년이란 제작연도가 찍혀 있는 걸로 보아 만들어진 지 꽤 된 것들도 여전히 현역이다. 메커니즘 자체가 개발이 완전히 끝나 더 개발할 것도 없어서…
참고로, 국가/군 중요 행사 등에서 발사하는 예포는 전부 이걸로 쏜다고 보면 된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의 모 포병대대와 계룡대 인근의 모 포병대대가 전담부대로 지정되어 있으며, 예포 발사 시 사용되는 공포탄도 105mm용만 생산된다.
국방개혁 2020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신형 120mm 박격포로 완전히 교체되고 퇴역할 예정으로 어차피 몇 년 늦어진다고 해도 화력덕후 중에서도 최고급 화력덕후인 국방부가 결국엔 다 바꿔 버릴 것이다(기동보다도 화력을 중시하는데 안 바꿀 리가 없다).
EVO-105
미군 호크아이
그런데 화력덕후 육방부에서 지금 남아있는 105mm 곡사포를 트럭에 얹어 더 써먹을 생각을 하고 실제로 만들고 있다. 자세한건 105mm 차륜형 자주포 참조. 장수만세 사실 신뢰도가 매우 높은 포라서 이런식으로 쓰는게 포탄도 소비하고 여러모로 좋다.
2.2 장점 ¶
완성도가 매우 높으며 작고 간단한 포라서 상당히 쓸모가 많다. 우선…
• 견인포 중에서 사이즈가 작고 가벼운 축에 속한다.생각보다 엄청난 장점이다. 우리나란 중요 군사지역에 산악지역과 험지가 매우 많은데, 솔직히 못 가는 지형이 많지가 않다. 아무리 험한 길도 아무리 거지 같은 방열지도 자유자재로 갈 수 있다. 게다가 국군의 주요 트럭인 2 1/2톤 트럭에 아무 하자 없이 바로 연결이 되며, 기본적인 체력의 대한민국 사람이 4명만 되면 포 다리를 들고 옮길 수도 있다. [2] 힘만 좋으면 한 명이서도 된다. 포를 움직이는 전포병이 한 명만 남아도 방열부터 포 발사까지 다 할 수 있다!...느려서 그렇지. 헬기로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에 산악지대가 많은 우리나라에 용이하다고 교본에 나왔다. 현역동안에는 해보기 어렵지만,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훈련에서는 가끔 하는 부대도 있다. 이런 훈련은 병사들은 경험해보지 못해도 장교들은 한번 해보면 '이런 것도 있구나'하고 좋은 교훈이 될 수 있기에 빼먹지 않고 하긴 하는 듯하다. 미군도 상황은 비슷해서 M4 셔먼 전차[3]에도 포탑 변경 없이 여유 있게 실을 수 있었다.방열속도가 한국군이 보유한 견인포 중에서는 가장 빠른 편이기에, 방열 후 사격에 걸리는 시간, 그리고 사격 후 이동준비까지 걸리는 시간이 적어 적의 대포병사격을 피하는데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데 히트 앤드 런에 유리하단 이야기 [4]
• 오래 만지다 보니 그만큼 쏴본 적이 많고, 덕분에 사격 제원이 정확하다.같은 포를 수십 년째 쏘다 보니깐 매번 사격 후의 제원 측정에서 오차를 수정하여 점점 더 명중률이 상승한다. 신형 포는 도리어 정밀도 자체는 올라간다 하더라도 사격 제원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 명중률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때도 있는데, 구형포라 할지라도 105mm 포는 그만큼 많이 쓰고 오래 썼기 때문에 예상보다 정확히 맞는 편이다.
• 운용 노하우가 전국구급이다.전국에서 수십 년간 썼으니 당연한 이야기. 가볍고 부담없다는 점이 겹쳐서 아무 진지로나 들어가서 부담없이 포탄걱정 안 하고 마구 쏴댈 수 있기에 국군 입장에선 더욱 우왕 굿.필수 인원은 포반장, 사수, 부사수, 1번 포수이며 보통 3번~4번 포수까지 있고 그 임무가 정해져 있다. 견인 상태에서 포격까지 3분 내에 해치울 수 있다. 필요하다면 혼자서도 방열과 사격이 가능하지만 그때 걸리는 시간은 지못미.살상반경은 고폭탄 경우 30미터 내외지만 파편 비산 거리는 170~80m 가까운데다 탄종 또한 아주 많아 탄착점이 멀리 떨어졌다고 해서 안심할 계제가 아니다. 게다가 전투에서 한 군데에서 한 발 쏘는 것도 아니고… 부대 단위로 수십 문의 포가 수초마다 한발씩 저런 탄을 날려댄다고 생각해보자…
▣ 김풍익 소령 이야기
1921∼1950. 군인. 군번 11645.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 출신. 한국전쟁 발발시 소령으로써 포병학교 제2교도대대장으로 참전하여 의정부지역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950년 6월 26일 김풍익소령은 의정부 북방 4킬로미터 지점인 금오리(축석령)에서 적 전차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부대를 이동해 왔다.
그러나 당시 아군의 보유 화력으로는 적 T-34 전차의 장갑을 뚫고 격파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이 때 김풍익 소령은 고심하던 끝에 최후 수단으로 105밀리 야포를 직접 조준하여 제2포대 6포 반원과 함께 도로변에 포를 방열하고 직접 조준사격으로 촌탄을 발사하여 적 전차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다시 제2탄을 발사하려는 순간 적 전차포의 직격탄에 의해 부대원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전사후 중령으로 추서되었으며, 1950년 10월 30일에 충무무공훈장, 같은 해 12월 30일에 을지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 전세계 전쟁사에 곡사포로 직접 조준사격 제원이있으나 최초로 직접조준 사격하여 탱크를 부순건 처음이고 이후로도 없다. 하여 전세계 전쟁사에 기록되었다. HEAT탄 (대전차고폭탄) 발견 10초만에 쏘고 엄패하여야 한다. 탱크의 조준은 적중율은 99%이다
2.3 단점 ¶
물론 단점도 많다.
• 사거리가 짧다.사거리가 11km 수준이라 현대 야포와 비교하면 상당히 짧은 편이며, 이로 인해 사거리가 30에서 40km에 육박하는 최신 곡사포에 비해 전술적으로 불리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 탄종이 부족하다.현재 서방 포병의 대표주자인 155mm에 비하면 탄의 종류가 좀 부족하다. 위의 제원 상으론 많기는 하지만 155mm에 비해 메리트가 없어 생산중지된 것이 태반이다. 국군이 가진 재고도 죄 고폭탄 아니면 유산탄으로 알려져 있다.
• 자동화의 부재곡사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초탄의 발사 시간인데, 이는 대포병사격시에 적 포병보다 먼저 정확하게 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화된 사격통제시스템을 가진 K9등의 최신 곡사포에 비하면 그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편이다. K9 자주포가 자이로스코프 등을 통해서 항상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며, 사격제원을 받은 후,바로 포탑을 회전하여 사격이 가능한데 비해서, 수동 시스템의 견인 혹은 자주 곡사포는 진지에 도착 후 측각기와 콜리매터(collimator)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부터 인력으로 정확하게 맞춘 후에야 사격제원에 따라서 사격이 가능하다. 이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그러니 시즈탱크 변신하는데 시간 걸린다고 구박하지 말자. [5]
• 생존성이 취약딱 봐도 적 포탄의 파편을 막아 줄 장치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건 견인포 전체의 약점이긴 하나 사정거리가 짧은 만큼 그 약점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다만 아예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장갑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최신의 견인포와 비교하면 M101계열은 장갑이 좀 있다. 저 사진에서도 바퀴 앞에 튀어나온 판때기 같이 생긴 장갑판을 내리고, 바퀴 위의 장갑판 뒤에 접혀있는 장갑판을 올리면 그럭저럭 전방의 파편들로부터 포병들을 가릴만한 장갑판은 나온다.
날개안정식 분리형 철갑탄
(APFSDS Armor Piercing Fin Stabilized Discarding Sabot) 을 줄여서 '날탄'이라 부릅니다.
현대 전차가 상대방 전차의 장갑을 뚫기 위해 사용되는 탄종이죠..
신관의 종류 (1초를 1000으로 나눔)
순발신관 1/1000(초) 접지면에 닿자마자 터짐 사용처 개활지 평지나 산
비지연신관 25/1000(초) 건물 뚫고들어가 폭팔
CP지연신관 50/1000(초) 뻥커 뚫고 들아 폭발 (콩크리트 1-2m)
VT신관 지상 300미터 상공에서 폭발 개활지나 참호 (삿갓형태로)
포탄의 종류
고폭탄 : 인마살상 시설파괴 (화약연기와 먼지만 남)
연막탄 : 연막/신호 (연막
소이탄 : 4500도 열을 내며 연소 (불과 시커먼 연기)
예광탄/철갑탄/HEAT탄(전차파괴) 등이 있다
이 포탄에 전술에 맞게 신관을 장착하여 쏜다
날개안정식 분리형 철갑탄
(APFSDS Armor Piercing Fin Stabilized Discarding Sabot) 을 줄여서 '날탄'이라 부릅니다.
현대 전차가 상대방 전차의 장갑을 뚫기 위해 사용되는 탄종이죠..
날탄은 '운동에너지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폭약의 힘으로 관통하는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운동에너지만으로 적의 장갑을
관통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부여됩니다...
날탄의 단면 사진입니다. 저안에 화살처럼 생긴게 관통자입니다... 실재 저 관통자만 날아갑니다.
탄통과 관통자가 분리되어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포신에서 날탄이 빠져나와 날아가는 모습.....
저렇게 화살같이 생긴 관통자만 날아가게 되고, 폭약 없이 운동에너지만으로 장갑을 뚫고 들어갑니다.
관통자의 탄심은 통상 텅스텐으로 만들어지고,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경우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탄심을 핵폐기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걸 열화우라늄탄이라고 하죠..
그냥 화살처럼 생긴 쇠막대인데 폭발하는 화약따위는 없습니다. 저게 초속 1200미터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서
두께 1미터 정도의 철판을 관통합니다... 관통하면서 생긴 장갑체의 파편과 관통자 자체의 파편이 전차 내부에
흡뿌려지면서 안에 탑승한 승무원들을 갈갈이 찢어놓고 내부 장비들을 유폭시킵니다.
△날아가는 원심력에의해 안전핀이 뒤로 후퇴하며 도폭관이 열린다
KH178
한국군이 만든 KH178이라는 개량형이 존재하였으나 모종의 문제로 일개 포대 수준만 양산하고 뭍혀버렸다. 흑역사
인도네시아에 3개대대분 54문을 수출하기도 했다. 사거리가 기존의 105mm 견인포보다 긴 14.7km에 RAP탄을 쓰면 18km까지 늘어나는데 구경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양산되지 못한 이유는 결함이나 기존 105mm 재고탄 때문으로 보이는데, 인도네시아에 수출도 하는 걸로 봐서는 재고탄
K H 1 78
한국 곡사포 첫번째 78년제작
M102
베트남 전쟁시기 이후로 쓰인 미군의 105mm 견인포. 사실 사거리 자체는 M101과 별 차이는 없지만,[6] 몇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포가를 알류미늄 등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1.5톤 미만으로 경량화된 덕분에 헬기 수송을 하면서도 더 많은 포탄 적재가 가능해졌고, 심지어는 땅에서 험비도 끌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험비가 끌고 다니는 M102. 포판의 8개의 구멍과 크랭크 형태의 바퀴축을 볼 수 있다.
또한 포가(가신)는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있어 기존 포처럼 가신을 좌 우로 펼칠 필요가 없게 되어 편리해졌다. 대신 155mm 견인곡사포처럼 바퀴 사이에 포판이 설치되어 사격시에는 바퀴 대신 이 포판을 땅에 박아 충격을 흡수하게 된다.[7] 거기다가 허리가 부서지도록 잭(자키)를 돌려 포를 들어올리는 155mm와는 달리 바퀴를 한 번에 들어올려 포판을 땅에 내리는 방식이다. 게다가 이러한 축 구조 덕분에 한 번 방열하면 평각에 따라 포신을 고작 좌우로 46도 밖에 돌릴 수 없었던 M101에 비해서 이 포는 360도로 포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M101이 더 좋다고 징징거렸는데, 가장 큰 단점은 M102의 높이가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방열된 포의 폐쇄기 위치가 사람의 허리보다 낮아서 포탄을 장전하기가 불편했고, 차고 역시 낮아서 울퉁불퉁한 도로에 잘 걸렸다.
미 육군에서는 현재 모두 퇴역했지만, 미 공군에서는 아직 현용으로 사용 중이다. 바로 AC-130의 주포가 이것
M119
영국산 신형 105mm 포로, L118을 NATO 표준탄에 맞춰 소폭 개량한 L119가 미군에 채용된 것이다. 현재로써는 가장 최신의 105mm 견인곡사포다.
이 포의 특징은 기존 105mm 화포보다도 다소 가벼우면서도(1.9톤 정도. 다만 M102보다는 오히려 무겁다) 성능은 기존 105mm 포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역시 일체형 포가를 사용하여 가신을 좌우로 펼칠 필요가 없게 되어 30초만에 방열이 가능해졌다.
장약 7호로 발사할 경우 최대사거리가 11.6km로 비슷하지만, 8호 사격이 가능하여 13.7km 사거리를 달성하였고, RAP(로켓추진탄)을 사용할 경우 19.5km를 사격 가능하다.
1977.10.21입대 논산훈련소 28연대 28사단 262FA 2포대 3포 사수 제대
32개월27일 만기재대 1980. 7.14
77.10.21입대 논산29연대 훈련을 마치고 주특기가 130이다 101보충대에서 가마솥에 끓인 라면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훈련소에서는 라면을 쪄서 스프 끓인 물에 넣어 찌져 먹는다. 자대배치를 위해 차량에 탑승 누군가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자 다같이 합창을 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저녁에 28사단 신병훈련소에서 1박했다 다음날 다시출발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번도 길에서 보질못했던 장갑차 탱크 하나같이 참호속에 감추어진 큰포신들이(나중에 8인찌포라는걸 알게됨) 모두 북쪽을 향해 먼가 모를 불안하고 위기감과 공기가 얼어있다. 60차량은 이곳 저곳에 전우들을 내려놓고 우린 계속 북쪽을 향한다 DMZ지역을 넘으니 민가가 안보이자 내심 불안하고 도로양 옆은 지뢰표지판이 즐비하다. 시간적으로 북한 원산까지 올라온것 같다.
군번이12810***이다보니 나에서 딱 끊어 최전방이다. 동기중 그래서 가장빠른 군번이고 101보충대에서 가장 멀리 마지막으로 하차했다. 불안이 몰려온 긴장감으로 오랜 시간 소피를 보지않은 것같다 행정실에서 화장실 가겠다하니 뒤연병장에 있는데 마당한 가운데 징검다리 모양 인도블럭이 있는데 고참 왈 조금만 비껴밟으면 지뢰가 터진단다. 들어오며 양 길가에 지뢰표지판을 본터라 20미터도 안되는 화장실 길이 그렇게 멀고 힘들고 공포스럽고 다리가 떨려 딛기가 힘들었다. 크 연병장에 왠 지뢰겠어요.... 신병이다 보니 그렇쬬
브라보 중대 2포에 배치되고 일병도 달기전 기준포 3포 사수로 군생활을 마감했다.
▣ 포병 숫자
포병은 숫자가 많이 사용된다 측각수나 무전을 통해 전달되는 좌표들 때문에 헷갈리지 않기위해서이다 1mm 편차이면 8000미터에서 통상 2-300미터사이에서 혈전을 벌이는데 아군머리위에 포탄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병은 제식훈련 할 때 하나, 둘, 셋, 넷 하지만 포병은 하나, 둘, 삼, 넷 이다
내군번이 12810685 하나-둘-팔-하나-공-여섯-팔-오 이다 점호시간에 이거이 안되 참 많이도 터저다
참고로 나에 아마추어 무선 호출부호는
Amateur Radio : DS3JA 포네틱 코드로 델타-씨에라-쓰리-줄리엣-알파-인디아라 한다
▣ 기준포
한포반이 6문인데 그중 3포가 기준포이다. 이동중 보병들이 사격요청을 해오면 근처 개활지로 들어가 신속히 방열하고 기준포가 먼저 사격을 해 탄착점을 형성하고 적 가운데 포탄이 떨어지면 동재원을 가지고 6개포가 쏘고 그 재원으로 대대가 18개 포가 쏘게된다. 포병은 A(알파)1중대,B(브라보)2중대 C(찰리) 3중대이고 본부는 D(델타)라 한다, 내가 속한 곳이 B포대 3포(기준포) 사수이다
▣ 주방세제가 없던 시절이다.양고기가 나온는 날 식판에 하얗게 기름이 덮여 있다.식사를 하다보면 고참들이 먼저 밥먹고 식탁위에 놓고 나간다. 갈대를 꺽어 기름을 걷어내고 눈으로 문지르고 얼음을 깨 지급된 손수건으로 비눗칠하면 엉키고 때 뭇고 도저히 딱을 재간이 없다. 쫄병때 내손은 얼어터져 거친사포와 같았다. 일과 시간이라고 집합 호각소리는 요란하고 할 수 없이 식기 당번(고참 열외 : 드럼통에 물끓여 다시딱음)한테 들고 가면 이게 돼지 밥그릇이지 사람밥 그릇이냐며 사정없이 쪼인트 구타 음식믈 배식하고 신발턴 곳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나오면 주번하사 워카발질에 나둥굴러지고 포반 줄에 들어가면 중고참한테 어더터지고 이거이 그당시 군생활 일과이다
▣ 맞지 않으면 잠을 못잔다.
낮에는 훈련이고 작업이고 정식 일과에 병장 고참들에 운용이다 10시 취침 점호가 끝나면 중고참 상병들에 교육 구타시간이다 (뭐 이런거지 낮에 병장이 상병에게 이렇게 밖에 못해 하면) 취침나팔로 잠들려는데 중고참이 머리를 툭치며 6포상으로 집합하랜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구타 오직 생각은 빨리 맞고 들어가 잠자는 것이 소원이다. 가끔 가신 여닫이대로 패는 놈도 있었다.
▣ 잠을 4시간밖에 못잔다
전방은 15일씩 년 2회 휴가를 간다. 야간 보초를 설 곳이 많아 고참들은 훈련받는 낮에 취침.기상점호 시간대에 보초를 서고 쫄병들은 2-3시경 근무를선다 취침 점호 단체기합과 중고참 구타시간1시간 근무2시간인데 교대 전후 소요 1시간을 빼면 4시간이다. 근무를설땐 실탄 한탄창에 15발씩 2개탄창을 가지고 선다.
▣ 우리부대에서 간첩이 넘어가면서 목짤라 갔다는 말
부대내 후문 초소명이 수정초소인데 다들 곰 초소라 한다. 영문을 잘 알지 못하다. 난 이등병부터 전군 간부화 교육에 지명되어 도서를 읽을 시간이 있어서 자수간첩 김용호 수기를 보면 6.25휴전협정이 이루어 질 당시 연천 군자산에 중공군 1개 대대(?)병력이 잔류하자 북한 특수부대가 넘어와 잔류병을 인솔해 연천-신망리-합수리(우리부대 후문 수정초소)를 지나다 회식후 술에 모두 골아 떨어진 파견분대(8명) 모두를 목을끊어 진리품으로 가져감 -페쇠된 8초소-5초소-북으로 성공적으로 넘어감 이사건으로 모든 군인들이 자부대에서 일어난 일로 야기함
▣ 이틀에 한번 매복을 나간다. 실탄120발을 람보처럼 두르고 수류탄, 연막탄, 조명탄, 예광탄,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영하25도를 넘나드는 8부능선 혹한속에 판쵸우이 하나만 몸에 두른체 새벽 5시까지 매복한다. 점심을 부대에서 먹고 허벅지 허리까지 푹푹 빠져 매복 들어가면 젖은 통일화와 바지 팬티는 저녁5시가 되기도 전에 꽝꽝언다.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는 더욱더 떨어진다. 선천적으로 약시약시 못하는 성격이라 고참들에게 점호다 머다 터지는 것보다. 어려워도 이것이 더좋았다 그래 항상 지원해 매복을 나갔다. 지금생각해보면 상상이 안된다. 동상이 안걸린게 신기할 뿐이다.
여름에 매복을 나갔는데 P77무전기 스켈치음이 고요한 정적속에 울어대는 것이 신경쓰여 무전병한테 스켈취에다 놔 했는데 따닥 한번 더 돌려 무전기를 꺼버렸다 부대에선 우릴 호출하다 하다 하다 안되니 우릴 찾아 나선 모양이다. 2시경 우리 매복 좌표지점 산아래 찝차가와 한참을 있다간다. 우린 더 바짝 긴장하여 무전기가 꺼진줄도 모르고 매복을 성실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는데 부대는 초비상이다 그땐 고참이라 인솔자가 나여서 차초지종을 말씀드리니 크 내가 분대장으로 어쩔 수 없다나 그 상황에 맞는 우수꽝 스런 엄벌이 떨어졎다 알철모에 완전무장 군장에 판쵸우이 입고 군화는 한짝만 신고 취침해야하는 오전내내 연병장돌기 기합을 받았다.
어떤때는 좌표지점 못미처 매복하다 오히려 보병 5분대기조에 포위되 전멸 당할뻔한 아찔한 날도 있었다
▣ 감기
감기는 의학적으로 원인 불명입니다. 그런데
감기약은 임상실험에 의해 처방 되고있읍니다
김장섭의 개인경험
약국서 처방한 약에 잠자기 30분전 판피린 (매약)마약과 비슷 1시간 약효가있음
처방 약과 같이 먹고 목에는 워머를 두루고 ( 약2도 체온상승)
그 다음 점퍼를 얼굴에 덮고 주무시면 독감도 뚝
결론은 내쉬는 숨과 들어마시는 숨에 온도가 같으면됩니다
77년도 연천북방 DMZ서 105mm 포병 하늘도 얼어버린것 같은 혹독한 추위에 감기걸려죠
목은 타들어가고 소원이 따뜻한 보리차 한잔인데 있을리 없죠. 빼치카 곁은
갈수도 없고 어쩌다 넘 지처 목도리를하고 전투잠바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잦는데
아침기상에 감기 뚝 휴유증 하나없이 넘 신기했읍니다
우리몸에 면역체계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 환절기 마다 감기가 발생되는거 같습니다
※ 참고로 아이가 엄마 배속에서 1년간 있다 세상에 나오면 이땅에 살아갈수 있도록 면역체가
적응해야 하는 과정에 통상(봉사대 통계로볼때2-3살) (홍역)등으로 고열이 발생,
열이 상승해 대뇌를 침식시키면 정신장애
소뇌가 손상되면 운동성 장애로(뇌성마비등)이 순식간에 발생되 평생을 가게됩니다.
집에 경구용 해열제를 주방,안방.지갑등 여러곳에 놓아두고 당황하지 말고 대처해야 합니다
고열이 난다고 아이를 들처안고 병원으로 가면 늦읍니다 그전에 온도를 내리는 일부터 해야합니다
열대지방에 가면 또 열병이라는 걸 앓게됩니다. 그후 다시는 열병에 걸리지 앉죠, (저 또한 필리핀 의료봉사를 겨우 두번 같다왔는데 두번째에 같다와서 한달간 집밖에도 못나올 정도로 열병 치례를 했읍니다)그 환경에 적응하기위한 우리몸의 면역이 바뀌게됨 감기또한 계절마다 환절기에 걸리죠 같은 이치라 사료됩니다.
이후 참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했죠. 덜아픈분들은 얼굴덮고 자는게 쉽지않아 실패합니다
방안 온도도 높여봤고 가습기도 활용해봤는데 잘안됨 목티나 목도리보단 워뭐를 하세요.
저도 나이가 있다보니 잠잘때도 24시간입니다 워머를 벋으면 바로 감기입니다
▣ 1979.10.26. 사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아마 첫 휴가로 집에서 쉬는데 12.26사태 발생 신문과 방송엔 국방부에선 라운드하우스가 걸리고 미군에서는 데프콘3가 걸렸다. 라운드는 훈련상황이라 복귀를 안해도 된다. 그래도 학인차 대전역옆 헌병대를 방문했더니 복귀를 안해도 된다다. 근디 우리 동기들은 대다수 복귀를(애국심대단)했단다. 그중 한명은(고문관?알죠) 운좋게 복귀하다 부대로 걸어들어가다 대대장 차를 만났단다 차가 정거하더니 귀관 어딜가는가? 냇! 일병 누구누구 휴가중 국가 비상이라 자진복귀중입니다. 뒤에 타게네
하더니 무전기로 A(알파) B(브라보) C(찰리) 포대장 CP로 집합 도착하니 각 포대장 도열 B포대장 귀관은 훌륭한 부하를 두었어 다시 더 일주일 포상휴가 보내
▣ 1979.12.12 사태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암살사건으로 고문 전두환을 변두리로 보내려하자 전두환은제1공수여단을 국방부에 투입 군권을 장악 10시간 만에 쿠데타 성공 12월 6일 최규하 대통령 당선
▣ 1980.5.18 광주사태
전방에선 북한에서 삐라가 항상 살포된다. 상의 포켓에 들어 갈수 있는 상당히 두꺼운 북한 헌법책자 등 메스콤을 접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어쩜 더 빠른 뉴스다(내용?) 휴가병을 통해 광주사태를 알게되고 삐라가 진짜구나! 광주 사태를 더 숨길 수 없었던지 공지가 내려오고 후에 군에서 테프콘3를 발령하지 않았나 한다. 비상이 발령되자 훈련시는 물품에다 "파기"라고만 했는디 몽땅 차에 싣고 예비차에 포탄132발 포차에60여발 (훈련시에는 절때 이런 훈련없음)싣고 허스럼한 부대내에 어디서 나왔는지 우주전쟁에 나옴직한 방독면 밀패된 비닐에 쌓여있는 최신형M16이 모두 지급되고 우리졸병은 실탄한통에 아마860발들이 6개가 1박스 포장인데 포반에 1개씩 인데 6개다 떠매고 왔더군요 그렇게 신중하게 다루던 수류탄은 땅바닥에 물멧돌 처럼 나뒹굴고 보병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밤새도록 몇일씩 M60, 박격포판을 어깨에 매고 전방으로 전방으로 투입된다
▣구타금지
바로위에 경상도병력이 20여명 한꺼번에 재대하니 병장을 1년 넘게 달고 고참이되었다 나에 첫성이 구타금지 였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했다 대학재학생이 다수인 포병에서 가장 자칭 인텔리들이 소 돼지 개 모양 말을해 안들면 팰 수 밖에 없다고 (한번도 팬적없다)다만 바로 밑에서 김병장 동기들만 나가면 죽인다고 협박만 하고....이등병 졸병이 김병장님 재대안하면 안되는겨!....
졸병때에는 뭐 "고참은 하나님과 동격"이라나 해서 고참들 얼굴이 기억나질 안는다. 처다보면 패으니까 그딘 그 짧은 유신군대가 구타 못하게하니 상하관계가 근방 개판 우리동기가 6명이고 포반 사수다 보니 확 보이질 않지만 순식간에 질서가 무너진다. 이러니 한국인은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무서운 거그든요. 자유란 사전적 의미는 테두리 안에서의 자윤대. (벗어나면 법적 구속)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규칙없고 철저하게 이기적사고의 방종인것 같습니다.
▣ 화랑담배
담배는 미대륙 인디언들이 제사 의식에 사용하던 것으로 1492년 콜럼버스가 가져가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하여 퍼지게됨 우리나라는 1590년 임진 왜란시 일본군에 의해서고 그후 1602년 광해군 초에 일본서 담배씨앗을 가져와 생산 그후 담배인삼공사가 1945년 9월 승리라는 담배를 생산 군용 화랑담배는 1949년 부터 보급하여 1981년 단종되었다 한다.
77-80년 사이 군 생활한 나는 이틀에 한번 10가치씩 보급품으로 받았는데 GOP지역이라 10분간 휴식시 성냥을 구할 수 없어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하여 고참들이 공초를 버리길 기다려 주워서 불을 붙히기도 하고 못되먹어서 보는 앞에서 공초를 주우면 어더터지기 일 수 였다. 어느날인가 빼치카에 들어가 불을 붙일려다 컴컴한 속에 빼치카 담당 고참이 있어 진창 어더터지기도 했다. 초에는 필터가 없없는데 그래서 필터가 있는 시중판매 담배는 휴가병을 통해 피울 수 있었는데 고향초라 했다. 필터없는 화랑담배는 듣기론 박근혜씨가 전방시찰중 휠터없는 담배 고충을 듣고 박정희 대통령께 이야기해 바로 필터담배로 전환되었다 한다.
▣ 싸리비
가을이 오면 겨울준비 중 서울에 자매결연 맺은 초등학교에서 위문을 오는 데 그 답례로 싸리비 3,000자루를 보낸다 낫들고 전방은 다년생 나무는 부대 근처에 만 있고 거진 일년생 잡목이다 산불이 많아서 이다 하다 보니 싸리나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다. 싸리나무를 베여오고 칡덩쿨 바닥으로 벋친것만이 사용 가능 칡줄기를 반으로 쪼개 싸리비를 묶고 도끼로 끝을 끊어 다듬으면 된다. 하두 많이해서 아마 달인에 나가도 될것같다.
▣ 산불
겨울이 오면 항상 산불이 발생한다. 뭐 주위부족도 있겠지만 대부분 남풍불면 북쪽에서 불지르고 북풍불면 남쪽에서 불지르고 밤새도록 지뢰 터지는 소리가 쿵쿵한다 산 하나 타는데 얼마 안걸린다. 바싹마른 잡초는 걷잡을 수 없다. 3개월씩 불이 꺼지질 않는다 다만 부대 근처로 오면 진화 작업나간다 탄약창고도 있고해서 8초소 지역으로 진화작업가 거진 다잡았는데 방화도로 건너편으로 불이 붙어 쫓아같지만 불길에 갇히고 말았다. 동료들은 이름을 부르고 난리다. 철모가 떨어지고 불탄곳으로 전력질주해 위기를 모면했다. 산 능선에서 보니 수평선 저넘어까지 온통 시커멋다 띄엄띄엄 섬처럼 부대 근방만 둥글게 남아있다. 철모는 찻았지만 하이바가 폭타버렸다.
▣ 지뢰밭
부대 정문안에서 참호작업을 하는데 대전차지뢰가 나왔다. 약간에 지식이 있는 나는 절대건들지 못하게했다. 전차지뢰는 아마40톤 이상중력이 나가야 터지지만 탐침으로 찻았다고 파내면 대촉수장치라는게 있다 전차지뢰 밑에 대인살상용 지뢰를 하나 더 묻어놀 수 있다. 들어내면 밑에서 뻥이다
내삽끝에 나무상자가 걸렸다 파보니 씨레이션같은 긴깡통이 5개 60.50,M1총탄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6.25때 사용했던 것인가 보다. 긴깡통을 따보니 수류탄이 녹하나 안쓸고10발이 나왔다. 포대장 왈 지뢰밭에 던져해서 모두 지뢰밭에다 던졎다. 겨울에 꽁꽁얼면 하나 가져와야지 크
▣ 불꽃놀이
쫄병들에게 60.50.M1 탄두를 재거하고 탄피화약으로 도화선 처럼 연결하고 중간 중간에 예광탄을 꺼구로 묻어 불을 붙였다. 훅.땅 훅땅 하며 탄피가 도미노 쓰러지듯 하늘로 연속적으로 솟구치고 50예광탄은 장관이었다. 불줄기가 2M이상 솟는다. 60이나 50은 탄착점 사격이다 5발마다 예광탄이 들어있는데 탄두에 화약이 들어있어 날아가며 제트기모양 화염을 뿜으며 날아간다 그 불꽃을 보고 사격하는 방법이다
▣20사단 대대장 월북 여파
77년 10월 20일 20사단 60연대 대대장 유운학 중령이 무전병과 함께 월북하자 군말년경 전투사단인 20사단은 훈련 5사단과 교체된 후 얼마 안가 무장공비가 철책을 넘는 중 아군에게 발견되자 사격과 수류탄을 투척 짧은 거리임에도 실패하자 공비는 수류탄으로 철책을 뚫고 남하 DMZ지역이 완전 비상으로 차단되자 다시 철책을 수류탄으로 폭파하고 넘어 무인지경이 되자 국방부는 선임하사 인솔 하에 식사 시간 때 마다 뇌관 없는 수류탄을 20m 작은 박스 안에 던저 넣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수류탄이 무개가 좀 있어 서너번만 던져도 팔이 아팟다 20사단으로 간 동기들은 광주사태에 동원돼어 파란만장한 군 생활을 했다,
▣ 혹한기 훈련
내가 있던 전방은 통상 -20도이다 그래서 잘 못 포(쇠)에 맨손을 댓다간 쩔떡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놀래서 손을 뿌리처 때면 살점이 뚝떨어진다. 마지막 혹한기 훈련인데 육본에서 지시가 하달됬다
1포30센티 파고 2포는 60센티 3포는 90센티 파고 해서 아마120까지 팟던걸로 기억된다. 텐트를 첫는데 분대장 집합이다 포병은 원래 사수티오는 하사이고 3포(기준포는 중사이다)기준포사수인 나는 선임하사가 없다보니 이번 혹한기 훈련은 내가 대신했다 집합하니 A형텐트에서 잘사람을 착출한단다 그냥 평지에 영하22도에 달랑 얇은 천막 하난데. 짭밥으론 제일고참이지만 계급으로 잴쫄병(병장)이니 또 어쩔 수 없이 내가 손들자 내부반장 하사잴 고참이 지원했다. 텐트 앞엔 보초가 시간마다 밖에 온도 텐트안 온도를 보고한다 밖은 영하22도 텐트안은 영하21도이다.포반 병.하사 젤 고참이 들어거 있으니 소주 댓병1 하사관들이하나(아마경월소주) 근디 이건 뭐 김빠진 사이다 맛 댓병을 하나 다마셨는데도 전혀 취기가 없다. 아 그래서 하나 깨달았지요 추운지방 사람들이 독한 보드카를 마신다는 것을 50도되야 따뜻한데서 25도 소주 마시는 것과 같다는 것을
우째거나 90센티 이상은 영상을 유지했던 걸로 기억된다 넘 훈훈
▣ 사격
하루 3발 이상 사격을 해야하는데 작업으로 총쏠시간이없어 아침 점호시간에 사격조로 뽑혀 860발들이 한통을 매고 사격장에서 하루 종일 사격한다.지루해 타켓을 확인하고 내려 오면서 곳곳에 큰병 작은병(박카스병, 활명수병)을 세워 놓고 실감남게 쏘고 자동에다 놓으면 2-3초만에 15발이 나간다. 반동이 심해 씩스틴 총 덥게를 누루고 땅을 향해 쏘면 반동에 의해 수평으로 총알이나간다. 탄착점 뒤에서 총소리는 딱꿍하고 들린다
이상하게도 사격하는 날에는 타케트 약250m에 화약냄새 때문인지 개가 잘온다. 내동기하나가
쏘아 잡아 회식도 하였다.
▣ 벙커작업
흙으로 덮여있던 포상 벙커를 콩크리트 벙커작업이다 한판 비비는데 불과 몇초이다.거프집 한면씩맞아 나무망치로 두둘긴다 곰보가 나면 그곳으로 나무뿌리가 들어간단다. 이작업을 마치고 주위 능선에 무전차 벙커 참호 한나절에 40Kg 시멘트를메고 8부 능선까지 올라가야 점심을 먹었다
▣ 철책작업
아군쪽에 철책이 작전상 산뒤에 있으면 불리하기에 산 앞 8부 능선으로 당기는 작업도 꽤오래했다
생각나는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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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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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차용 화기
△.라흐티 L-39(핀란드어: Lahti L-39)는 핀란드의 반자동 대전차총으로, 겨울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쓰였다. 큰 탄창과 대전차총탄으로 급탄을 했던 이유로 상당히 반동이 심했으며, 치수 자체도 휴대성이 어렵게 제작되었고, 그래서 전선의 병사들에게 'Norsupyssy'('코끼리총'이라는 핀란드어) 라는 별칭을 얻었다. 실제로 한 발의 20mm 총탄을 발사하는데 총열 안의 최고 압력이 3000파스칼이나 되었는데, 완충기가 겨우 총수의 어깨와 총의 개머리판 사이에 패딩 하나 있는 식이니 총수에게의 파급효과가 심각했으며, 한 발 발사시에 총수의 상체가 반동에 의해 15cm 정도나 뒤로 밀려갔다고 한다. 이런 약점을 가지기는 했어도 병사들 사이에서 신뢰성과 명망이 높았던 무기이다.
△우크라이나 스나이펙스 엘리게이터 길이2m 초대형 장갑차 저격소총 25Kg 탄환길이114mm 구경14.5mm 유효사거리 2Km
거리1.6Km표적12mm장갑관통
최초의 로켓형 대전차 화기는 미국의 바주카포였습니다.바주카 포는 Mk1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만 오히려 카피하면서 나온 판저 슈랙이나 판저 파우스트가 더 좋았다고 합니다.
이후엔 소련이 로켓형 대전차무기에서 인지도를 급상승시키는데 그 계기가 된 무기가 바로 알라봉이라고 칭하는 RPG-7입니다.독일의 판저파우스트를 카피하면서 만든 RPG-2를 개량시킨 버젼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구하기 쉬우며 가격도 싼 무기중 하나입니다. 현재는 관통력 700mm급의 판저 파우스트-3가 개발
△.Rocket Launcher, M1 "Bazooka" 바주카포
고다드 박사가 바주카를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개발은 1942년 에드워드 G. 울(Edward G. Uhl)이 개발했다. 에드워드는 미군 복무 중에 바주카를 개발하고, 제대 후에는 글렌 마틴이나 페어차일드를 비롯한 방산업계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이며, 고다드 박사는 성형작약탄의 기본 원리를 연구했을 뿐 이를 실용적인 장비로 개발한 당사자는 에드워드 G. 울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쏘는 커다란 로켓포를 통틀어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원래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때 개발한 대전차 로켓 런처 M1A1에 붙은 별명이었다. 당시 미국의 인기 코메디언 밥 번즈(Bob Burns)가 들고다니던 소품용 변형 트럼펫의 이름이 'Bazooka'였는데 미군 병사들이 신무기를 보고 형태가 비슷하다고 붙인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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