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워진 편지
김근총
B향위생원 의사 인철이는 오늘 현위생국 국장으로 새로 부임된 친구 상호의 편지를 받고 만장같은 편지를 썼다.
친구에게: 그새 안녕한가? 오늘 자네가 띄운 편지를 받아보았네. 친구의 정이 느긋이 안겨오는 편지였네. 그간 자네의 소식을 몰라 궁금하던차 오늘에야 알게 됐네. 자네가 일간 국장으로 승급됐다니 물론 기쁘기도 하네만 어쩐지 나로선 서글퍼지는 마음일세. 왜냐구? 그건 차츰 말하기로 하세. 어쨌든 난 먼저 자네의 승급을 충심으로 축하하는바이네. 그리구 자네가 나의 전근을 위해 힘을 써주겠다니 고맙기 그지없네. 헌데 이젠 전근이 필요없게 됐네그려. 돌이켜보면 실로 곡절많은 《전근사》였네. 난 인젠 술을 마시지 않고선 남과 감히 말도 못하고 또 《관청》같은데는 더구나 찾아도 못가는 형편이 되였네. 무력한 나로서는 해결할수 없는 곤난앞에서 술에 모든것을 기탁하고 또 그 술로 온갖 고뇌와 시끄러움과 근심을 털어버릴수밖에 없었네. 이 밤에도 난 딸 애자가 울며 볶은 서글픈 안주를 놓고 술을 기껏 마셨네. 지금 애자는 우리 집의 유일무이한 《가정주부》로 됐네. 그 애도 인젠 알콜중독에 걸린 날 말려낼수 없다는걸 알고 도리여 권주가까지 불러준다네. 정말이지 난 자네한테 쓰는 이 편지도 술을 마시지 않고선 한글자도 써내려갈수 없네. 실로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네. 글쎄 한가정을 떠멜 기둥이 이지경이 됐으니 이놈의 집을 대체 누가 어떻게 부지해나간단말인가. 난 술만 마시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네. 인간답지 못한 자기를 두고 미친듯이 비웃기도 하고 또 덧없이 흘러보낸 지난날을 두고 가슴을 치며 통탄도 했네. 허지만 인젠 모든것이 죄다 늦었네, 늦었단말이네! 오로지 날 기다리고 있는건 상상만해도 등골이 선뜩해나는 감옥대문뿐일세! 친구, 자넨 아마 놀랄수도 있을거네. 난 지금 절망의 심연속에서 자맥질하는 인간이네… 친구, 자네도 나와 나의 안해 명숙이의 련애사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지 않나. 사랑에는 그 무슨 조건부가 없다고 하나 그때 명숙인 나의 아버지를 믿고 우리 둘다 시내에 전근해야 한다는 요구를 들어줘야 나한테 시집오겠다고 했었지. 그해 위생학교를 졸업한 명숙이는 나보다 한발 앞서 지금 우리가 근무하는 B향위생원에 간호원으로 배치받았었지. (후에는 회계사업을 하였지만.)솔직히 말하면 난 그때 얼마든지 현성병원에 떨어질수도 있었지만 그 위생학교《공주》로 불리우던 명숙이를 따먹기위해 그를 따라 향촌병원에 배치받았고 또 그가 제출한 조건을 선뜻이 받아들인후에야 그와 결혼을 하게 된것이였네. 자넨 아마 몰랐을거네. 결혼한 사흘후부터 안해는 나에게 빨리 전근을 위해 힘을 쓰라고 졸라댔다네. 그래서 나는 할수없이 현공안국 국장인 아버지를 여러번 찾아가서 사정을 해봤으나 번마다 퇴박을 맞고말았었지. 아버진 변통성이 없이 꼿꼿한 사람이라는걸 자네도 알고있지 않나. 그러다가 대동란을 맞게 되였으니까 언제 전근같은걸 다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나. 외지로 전근간 사람들도 본단위에 돌아와 《혁명》하라고 하는판이였으니까. 전근은커녕 아버지가 난데없는 《주자파》,《특무》모자를 쓰자 안해는 한숨을 풀풀 쉬며 랭가슴을 앓았다네. 그러던 안해는 처음엔 시아버지와 이른바 《계선》을 나눈다던것이 나중엔 나한테도 리혼이란 장군을 쳤다네. 하도 조직에서 그를 설복했으니말이지 아니면 우린 그때 정말 리혼했을지도 몰랐네. 친구, 그때 우린 말이 부부간이였지 실은 남남이나 다름없는 그런 무의미한 생활을 하였다네. 우리들의 감정에 금이 실렸으니말이네. 난 리혼까지를 제출한 안해를 아니꼽게 보았고 안해는 나같은걸 믿다가는 한지에 방아를 건다고 생각했으니 어찌 둘의 마음이 한곬으로 흐를수 있었겠나. 그때부터 우린 돈대문에도 싸움이요 아이때문에도 싸움이였네. 싸움끝엔 의례 서로 리혼하자며 공사에 들락날락하여 동네 개까지 짖게 하였네. 우린 그럭저럭 불화스런 나날을 보냈네. 그 기간에 자네도 들었겠지만 나의 안해를 두고 인물값을 한다는 추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네. 그가 현성에 있는 어떤 사내와 어쨌다는 더러운 소문말이네. 부아가 치민 난 어느날 술을 잔뜩 마시고나서 안해의 멱살을 거머쥐고 무지곡지 귀쌈을 갈겼네. 《이 더러운 화냥년아. 리혼하러 가자. 너같은년과는 다신 안산다.》 그랬더니 안해는 입에 침을 게질게질 물고 나한테 접어들었네. 《왜 함부로 사람을 때리는가요! 흑흑!》 워낙 칼칼한 성미인 안해는 한매 얻어맞고 분해서 쿨쩍거리며 련주포를 쏘아댔네. 《당신같은걸 믿고 사는 내가 소보다도 더 우둔해요. 리혼하자면 누가 무서워할줄 알고… 당신과 리혼하면 난 일주일안으로 시내에 전근할수 있어요. 더러운 주자파, 특무가정의 며느리란 모자를 쓰고는 천상 전근할수 없어요. 흥…》 《뭣이 어쩌고 어째!…》 난 밸김에 또 한매를 붙혔네. 정말이지 난 그날 밤에 처음으로 안해에게 손찌검을 한것이였네. 손바닥까지 다 얼얼해났네. 《이년아, 잔말말구 빨리가자.》 《흥, 누가 할 말을 제가 하면서, 가자요. 그런데 똑똑히 알아둬요. 난 전근하기 위해 시내 몇몇 남성동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뿐이였지 다른 너절한 수작은 절대 없었다는걸 말이예요. 난 어디까지나 청백해요. 두고보세요. 흥, 생사람을 잡아도 분수가 있지!…》 《……》 그날 밤, 우리 부부사이의 대판싸움은 동네사람들이 말리는바람에 그만 끓는 두부가마에 랭수를 친 격이 되고말았네.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리혼은 정말 아퀴를 지을번했네. 자네 좀 생각해보게나. 글쎄 말이 리혼이지 어떻게 어린것을 두고 리혼하겠나. 게다가 안해의 행실이 나쁘다는 근터구도 딱히 지지 못한 이상 어떻게 뜬소문을 믿고 맹탕 처사하겠나. 그래서 우린 또 그럭저럭 한집에서 살게 된것이였네. 그러던차 아버지의 문제가 해명되자 시내생활에 늘쌍 미련을 두고있은 안해는 또 전근타령을 불러댔다네. 애자의 장래를 봐서도 꼭 시내에 전근해야 한다는것이 그의 리유였네. 그러던 7년전의 음력설이였네. 난 안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어머니 뵈러 현성에 갔더랬네. 《이녀석아, 왜 왔나. 그래 이 에미가 우는 꼴을 보자구 응?…》 허참, 기가 막힌 일이지. 이것이 어머니가 우리를 보고 하는 새해의 첫인사였다네. 난 어머니의 가긍한 처지를 두고 자기절로 자기를 타매했네. 자식된 도리로 말하면 아들이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건 불보듯 뻔한 일이 안니가. 헌데 난 그러지 못했네. 아닌게아니라 죄송스럽기 짝이 없었네. 헌데 무슨 용빼는 수가 있어야지. 난 어머니가 세상없이 불쌍하게 여겨졌네. 동란때 생떼같던 남편을 떼우고 세변을 모르는 어린 딸과 그날그날을 연명해나가시는 어머니가 더없이 가련하게 느껴졌던거네. 그래서 어머니를 농촌에 모시려 했지만 그는 좀체 남편의 원혼을 두고 떠나지 않겠다구 했다네. 아들구실을 못한 난 어머니의 푸대접앞에서도 함구무언이였네. 그린듯 서있는 안해는 다치면 터질듯한 그런 기색을 짓고있다가 나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만 앵돌아지는것이였네. 오로지 철부지 애자만이 할머니품에 안겨 아양을 떨었네. 《할머니, 울긴 왜 울어요? 설날에 다…》 애자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할머니의 눈물을 찍어내며 철없이 방긋 웃기까지 했다네. 《히히, 아부지두 운다, 어른이라는게…》 정말이였네. 나도 소리없는 눈물을 떨구었네. 염통에 소금을 친듯 그렇게 가슴이 저려났던거네. 어머니의 내속을 벌써부터 알고있은 난 빌붙지 않을수 없었네. 《어머니, 근심마십시오. 설기간에 좀 운동을 해보겠습니다. 위생국장이 저의 초중때 반주임선생님이니까 조만간에 전근이 될겁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길길이 뛰며 《이눔아, 그래 그 사람이 너의 아버질 때려죽인 원쑤라는걸 몰라서 그런 쓸개빠진 소릴 줴치느냐 엉?!…》하고 손으로 구들장이 들썽하게 내리치는게 아니겠나. 뼈짬을 쑤시듯 아프게 들려오는 말이였네. 《그게무슨 대순가요. 아무래나 전근하고 볼판이지요. 뭐.》 안해가 칼칼하게 한마디 내쏘았네. 《아버질 좀 보세요. 공안국장질을 하면서도 아들 하나 전근시키지 못하고서도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흥!…》 안해는 입에서 뱀이 나오는지 구렁이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밸풀이를 하는것이였네. 《아이고ㅡ 저년이 뭐라구 아가리질이냐. 그래 귀신이 된 시애비한테 걸구들 작정이냐? 으윽, 아이고, 이내 가슴이야, 아이고, 아이고!…》 사태는 점점 더 험악하게 번져졌네. 어머니가 락루하시고 누이동생도 눈갓이 불깃해졌네. 안해는 그 꼴 보기 싫다며 어린것을 데리고 훌쩍 떠나버렸네. 하니까 새해 벽두부터 우리 집은 그만 초상난 집이 되고말았네. 난 남편의 생죽음으로 하여 놀라 심장병을 얻은 어머니가 잘못될가봐 더럭 겁이 났더랬네. 좋은 말로 어머니를 위안한 나는 새해 벽두부터 전근을 위한 《운동》길에 오르게 되였네. 난 동창들도 찾아갔고 또 아버지의 지기들도 찾아보았더랬네. 해도 그렇다 할만한 묘안은 생기지 않았네. 그저 동정이나 하고 기껏해야 힘을 써보겠다는 두리뭉실한 대답들이였네. 소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아무튼 설기간에 딱지나 떼야겠다고 작심했네. 그래도 현성에 있는 동창들이 진투였네. 그들은 나한테 한가지 묘안을 내놨는데 그것인즉 위생국장을 직접 찾아가라는것이였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위생국장은 《속죄》하기 위해서도 나를 인차 전근시켜줄것이라고들 했네. 그럴상싶었네. 헌데 어머니가 이 일을 아시는 날이면 하늘땅이 맞붙을게 아닌가. 아무튼 난 이번엔 꼭 일을 성사해야겠다고 작심했던거네. 아니면 어머니까지 여의게 될판이였으니까. 난 친구들이 시키는대로 풍천멜가방에 병술과 통졸임 그리고 탕과류들을 사서넣고 위생국장―이전의 나의 반주임인 리성재선생을 찾아갔네. 뜻하지 않은 나의 출현에 리국장은 아주 놀라는 그런 기색이였네. 그는 아마도 나의 풍천가방속에 든것을 복수의 작탄으로 여겻던 모양이였네. 내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나서 찾아온 사연을 자상히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그는 대번에 어색하게나마 웃어보이며 《그건 문제없소.》하고 단마디로 결론을 짓는것이였네. 이런 결단성있는 결론이 나를 기쁘게 할대신 도리여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네. 빨라서 3년, 길어지면 10년이 걸린다는 전근이 일조일석에 풀리다니?… 난 다른걸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네. 그저 내가 하루속히 현성에 전근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면 그만이라는 일념뿐이였네. 그때 리국장은 나에게 학교때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네. 해도 그의 말은 나의 귀에 들지 않았네. 난 풍천가방을 매만지며 생각에 자심해졌네. 감사의 뜻으로 가방속에 든것을 내놓자니 리국장이 《이녀석이 평소에는 안이랬는데 전근을 하자고?…》하는것 같아 감히 그걸 꺼내지 못했고 또 도로 갖고 가자니 그것도 꽤나 쑥스런 일이였네. 리국장의 선심에 너무 무정하게 대하는것같았으니말이네. 내가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고 좀자르고있을 대 리국장이 문득 동란때의 일을 끄집어내며 나에게 사죄하는것이였네. 난 무례하게 그의 말허리를 뚝 잘랐네. 《선생님!…》 그다음 말은 이을수 없었네. 문득 어머니의 말이 나의 뇌리를 스친것이였네. 난 금시 두주먹이 불끈 쥐여졌네. (술을 갖고 온 내가 어리석었지. 원혼이 된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아마 구천에서도 펄펄 뒤실거야. 근데 다 지나간 일이 아닌가. 문젠 전근을 하고 봐야지…) 착잡한 생각에 모대기던 난 저도 모르게 자리를 차고 일어섰네. 정말이지 그날 밤 난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네. 어머니가 갔던 일이 어떻게 됐는가고 꼬치고치 캐여물었을 때 난 《어머니, 인차 될것 같습니다.아버지의 그 공안국에 있는 친구들말입니다. 인차 전근시켜줄테니 근심말고 기다리랍데다.》하고 슬쩍 거짓말을 했다네. 그랬더니 어머니는 기뻐 락루하시며 《그걸 봐라, 그래두 친구가 친구네라.》하는것이였네. 친구, 난 난생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던거네.아니면 어머닌 또 노발대발하실게아닌가. 자네도 아마 기억하고있을테지. 우리가 선암동에서 짜개바지를 갓 벗고 소학에들어가 공부할 때 있은 일말이여. 그때 자네와 나, 그리고 몇몇 조무래기들이 웃마을 애꾸눈령감쟁이네 집에 참살구도적질을 갔더랬지. 그날 밤 우린 날랜 정찰병마냥 감쪽같이 그 령감쟁이네 참살구를 도적질해먹었지. 헌데 이튿날 학교가던 내가 그만 눈치를 챈 그 령감쟁이한테 붙잡혀 실토정하는바람에 도적질한것이 탄로되여 선생님한테서 옹근 사흘동안이나 혼빵을 먹던 일말일세. 난 어려서부터 그렇게 담이 콩알만한 사람이였고 또 거짓말을 하면 어쩐지 얼굴부터 화끈달아올라 못견디는 성미라는걸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런 내가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했던거네. 아이적에 늘 들어오던, 거짓말을 하면 혀를 벤다는 어머니의 그 엄한 단속도 싹 잊고 말이네. 아무튼 난 그때 일시적으로나마 기뻤네. 조만간에 불쌍한 그 어머니를 모실수 있게 되였으니말이네.어머니께서도 근년에 와서는 처음으로 벙글써 웃기까지 했던거네. 며칠후 난 병원으로 돌아왔네. 전근에 가망이 있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안해는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고 멋도 모르는 어린 딸도 덩달아 좋아 야단이였네. 실말이지 그날 밤 우린 악몽같던 지난날을 죄다 잊고 첫날기분이였네. 꿈도 아주 달콤했다네.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떨어질판이였던지 난 며칠후에 리국장이 띄운 편지까지 받았다네. 편지는 열흘내로 전근이 되니 그리 알라는 사연을 간단히 적은것이였네. 《열흘안짝이라?…》 뜻밖의 일에 난 머리를 저었네.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으니 말이네. 《왜 그저 멍청히 서만 있는가요? 빨리 가서 리국장을 만나지 않구. 은공을 잊으면 안돼요.》 편지를 읽은 안해가 10원자리 지전 두장을 나의 손에 놓아주며 등을 떠밀었네. 《은공?!》 그때 나의 심정은 확실히 모순상태에 처해있었네.(그래 정말 은공인가? 아니면 속죄의 표현?…) 《빨리 떠나세요. 사내대장부가 녀자들처럼 옹졸해선 못써요. 어제 일을 옛말로 여기세요. 그러다가 혹…》 나의 내속을 짚을수 있은 안해는 뒤일이 근심스러워 나더러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네. 헌데 난 도리여 무뚝뚝하게 한마디를 뱉었네. 《후에 다시 보기요. 이번 전근은 락자없을것 같으니…》 《?…》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였네. 속이 후끈 달아오른데다가 안해가 하도 재촉하는바람에 난 하는수없이 위생국을 찾아갔네. 그런데 친구.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는 일컬었지만 글쎄 열흘안짝에 시국이 변할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그새 리국장이 문화혁명문제때문에 그만 나떨어진것이였네. 난 락담하지 않을수 없었네. 빨리 끓는 밥이 선다고 일이 이렇게 뒤틀릴줄은 정말 꿈밖이였네. 난 맹랑한나머지 그래도 행여나 하고 리국장을 찾아갔더랬네. 고양이 락태한 상을 한 그는 아주 미안해하는 그런 기색이였네. 《일이 이렇게 될줄은 정말 몰랐소. 새로 부임된 박국장한테도 잘 말했으니 조마간에 일이 풀릴거요. 아직은 사업인계도 다 받지 못했으니 한달후에 박국장을 찾아 사정해보오. 어디까지나 빌붙어야 한다는걸 잊지 마오.》 (어디까지나 빌붙어야 한다?…옳은 말이야. 그래 빌붙어야지. 아무튼 칼자루를 쥔놈이 이길판이니까…) 이쯤이면 자네도 아마 짐작이 갈거네. 일이 예상외로 뒤틀리자 안해는 자기 말을 듣지 않아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며 또 바가지를 긁어댔네. 어머니한테선 일이 어찌 됐느냐 하는 편지가 자주 날아들었다네. 그놈의 전근을 두고 나와 안해는 또 전처럼 소 닭 보듯하는 처지가 되여버렸네. 한달후에 난 리국장의 말대로 새로 부임된 박국장을 찾아갔더랬네. 풍채가 름름하게 생긴 박국장은 퍽 점잖게 보였네. 첫인상부터가 마음에 들더군 나의 사정이야기를 다 듣고난 그는 사람좋게 허허 웃었다네. 《확실히 딱한 사정이구만. 연구해보겠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오. 그런데 사업을 잘해야 전근을 시켜준다는걸 잊지 마오. 알겠소?》 《네.》 내가 위생국을 나설 때 박국장이 따라 나와 《돌아가서 인차 전근신청서를 써서 올려보내오.》하며 어깨가지 다독여주는것이였네. 집에 돌아오자 바람으로 나는 원장을 뚜져 《전근신청서》를 서서 현에 올려보냈네. 한시름을 놓은 나는 사업에 이악스레 달라붙었다네. 그해 년말엔 모범으로까지 당선되였다네. 난 이쯤이면 박국장이 꼭 날 알아봐주리라고 생각했네. 헌데 한해가 지나고 이태가 다 지나도 나의 전근은 감감무소식이였네. 누이동생한테선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니 빨리 왔다가라는 편지가 가끔 날아들었다네. 해도 난 사업때문에 좀해서는 말미를 얻지 않고 어머니의 병에 수요되는 약품들을 사서 인편에 보내주었네. 그러던 어느날 난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다는 급보를 받고 현성에 갔네. 어머니의 병이 호전되니 난 전근이 어떻게 됐나 궁금하여 박국장을 찾아갔더랬네. 박국장은 나더러 전근을 주관하는 인사를 찾아가라고 하데. 난 인사를 찾아갔네. 나의 이름을 물은 인사는 머리를 저으며 서랍을 뽑아내더군. 그때 난 너무도 기가 막혀 하마트면 그한테 대들번했다네. 글쎄 이태동안이나 《연구》했다는 나의 전근신청서우에 먼지가 부옇게 끼여있지 않겠나. 정말 기막힌 일이였네. 불시에 밸이 불끈 돋았네. 허지만 난 그 순간 빌붙어야한다던 리국장의 말을 상기하고 억지로 웃으며 달라붙었네. 사정을 듣고난 인사는 나의 전근신청서우에앉은 먼지를 툭툭 털어 다른 서랍에 넣는것이였네. 그 서랍에 든것은 아마도 진짜로 《연구》하는 신청서같았네. 글쎄 생각해보게나. 이제나저제나 하고 애타게 기다리던 나의 전근은 그때에야 이 서랍에서 저 서랍으로 옮겨가는 진전밖에 더 없었다네. 정말 밸같아서는 판을 치고싶었네만 난 불쌍한 어머니를 생각하고 꾹 참았네. 《연구하겠으니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이제 오래지 않아 로임조절을 하게 되는데 전근때문에 조절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건 어디까지나 동무의 책임이요.》 《예?!…》 《로임조절》이란 말이 아마도 나를 정신차리게 했던 모양인지 난 찍소리도 못하고 집에 돌아왔네. 정말 전근때문에 사업에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로임까지 오르지 못하는 날이면 얼마나 망신스런 일인가.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의 일은 참별스레 번져졌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번의 그로임조절말이야. 뒤간에 갔다오는 새에 그만 락선이 되여 로임이 오르지 못해 목을 매고 죽었다는 그 기적적인 로임조절에서 난 그만 락선이 되고말았네. 《모범》이였으니까 의례《공헌》은 남과 비길수 있었겠지만 이른바 《정치사상》조건이 남보다 못하다는것이였던지 아무튼 눈과 귀가 밝은 군중들은 날 선거해주지 않았다네. 허참, 뭐 원장의 입을 통해 내가 오래지 않아 전근된다는 비밀이 루설되였다나… 시대가 남겨놓은 유모아적인 이야기야 더해서 뭘 하겠나. 아무튼 난 그놈의 《전근열》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을 받은셈이였거던. 그때부터 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네. 거의 매일을 술을 마셨고 출근도 바로 하지 않았네. 모든것이 다 귀찮게 여겨졌던거네. 그러던 어느 하루 어머니 병대문에 현성에 갔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박국장을 만났네. 그날도 난 술을 기껏 마신지라 담이 한결 커져서 박국장한테 걸고들었다네. 《박국장동무, 난 로임두 못오르구 전근두 못했습니다. 날 어쩔 셈입니까?》 《허, 이 동무가 취해 흙이 됐군. 빨리 집에 가서 눕기나 하오. 맑은 정신에 말하기요.》 《취했다구?…흥, 난 안취했습니다. 국장이라구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남에겐 원칙, 원칙하면서 제 안속은 다 차리면서…》 박국장의 농촌에 내려간지 1년도 안되는 아들이 현병원에 제꺽 전근되였다는 말이 그만 나의 밸을 비틀어놓은것이였네. 《이 동무가…말이면 다하는줄 아오!》 박국장은 날 무섭게 쏘아보고나서 제갈길을 가더군. 난 그만 닭 쫓던 개의 신세가 되고말았네. 한참후에야 정신을 차린 난 머리를 쥐여뜯었네. 가슴을 쳤네. 방금전 국장앞에서 함부로 실언한 자기를 저주했네. (국장한테 잘못 보였으니 인젠 끝장이야. 아, 왜 빌붙지 않구 걸고들었나? 젠장, 누굴 원망할게 있나. 다 내탓이야…) 그후에도 난 몇번이나 국장과 인사를 찾아갔더랬네. 헌데 그들의 태도는 전과 달리 아주 쌀쌀했고 말투도 꽤나 딱딱했단말일세. 《연구》해보자던 말이 차차 《원칙》을 푸는데로 넘어갔네. 누구나 다 시내에 전근하면 농천에서는 누가 사업하겠느냐 어머니를 농촌에 모셔가면 안되느냐 하는 식으로 말이네 . 아마도 나의 그 위중실언이 박국장의 마음에 닻처럼 걸린 모양이였어. (흥, 그렇게 원칙을 견지한다는 량반이 제 아들을 어떻게 올려오고?…) 난 속이 탁주독처럼 괴질괴질 괴여 못견딜 지경이였네. 허지만 그런대로 참는수밖에 없었네. 이튿날 난 또 박국장을 찾아갔네. 사죄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술은 마시지 않고 맑은 정신이 였네. 그런데 박국장은 나를 보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가오, 가오, 원래 동물 전근시키려 했는데 아래 반영이 나빠서 안되겠더군. 》하고 막 개쫓듯하더군. 난 그의 말뜻을 인차 알아차렸네. 난 금시 천길절벽이 앞을 가로막는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네. 한편 형언할수 없는 일종 반발심이 가슴속에서 욱 치밀어올랐네. 친구,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 무슨 《안면》이요. 《암거래》같은따위를 믿지 않았네. 한자리를 한답시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모두《원칙》을 견지하고 아래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잘 돌봐주는 분들이라고 믿었고 또 조직을 믿었댔네. 헌데 나에겐 차츰차츰 불신임정서가 자라났네. 어째선지 나도 딱히 몰랐네. 친구들이 암거래를 두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에게 그런 정서를 불러일으켰는지 아니면 내가 직접 보고들은 일들이 그렇게 하게 했는지 그건 나자신도 딱 짚을수 없구려. 전근때문에 정서파동까지 있다는것을 다 보아내고 로임도 올려주지 않는 밝은 세상에서 무슨몸의 암거래가 그렇게도 많겠느냐고… 헌데 박국장은 어떻게 무슨 조건으로 아들을 전근시켰을가? 정말 득세하면 단가?… 아니, 그럴수 없어, 절대 그럴수 없어. 있다면 그건 극히 개별적일거야… 친구, 사실대로 말하면 난 그때부터 흐리멍텅한 기분속에서 살았다네. 복잡한 인간관계와 알뚱말뚱한 리론앞에서 난 그만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네. 난 이렇게 덧없이 4년 세월을 흘러보냈네.병석에 누워 골골 앓음자랑을 하는 년로한 어머니는 나더러 제구실을 못한다고 욕설을 퍼부었고 안해는 아예 날 멍청이로 치부했네. 《다 내탓이야. 왜 그때 빌붙지 않고 함부로 혀를 놀렸던가. 아…》 난 후회막급이였네. 생각할수록 머리가 빠개지는것처럼 아팠네. 그런 때의 령약이 술이였네. 그놈의 술만 들어가면 만사시름을 싹 놓고 일시나마 안온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으니말이네. 난 그때부터 안해도 단속할수 없는 무골충이 되고말았네. 약담배쟁이처럼말이네. 그러던 일년전이였네. 우리 B향위생원에 옥희라고 부르는 처녀간호원이 배치받아왔었네. 그의 내막을 다소 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옥희는 어느 대대위생소에서 간호원질을 했는데 후에 우리 향위생원에 오면서부터 정식 간호원으로 되였고 또 식량도 상품량을 먹도록 수속을 했다는것이였네. 얼핏 들어봐도 옥희의 배경은 든든한것 같더군. 얼마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가 바로 박국장의 며느리감이였다네. 옥희는 짬만 있으면 손거울을 내들고 얼굴치장을 했고 또 거의 매일을 우편국이아니면 공소사출입을 하여 환자들의 의견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네.게다가 사흘이 멀다하게 현성에 드나들었다네. 그러더니 석달열흘도 채 못되여 그가 현병원에 전근되여 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더군. 그러니까 그 소문이 나의 안해란 사람의 귀에 안들어갈리 있었겠나. 그러던 어느날 점심때였네. 안해는 병술, 통졸임, 차입살 20근과 씨암탉 한마리가 들어있는 보자기를 나에게 넘겨주며 빨리 뻐스정류소에 나가 옥희를 만나라는것이였네. 그 뜻을 인차 알아차린 난 버럭 성을 냈네. 《싹 걷어치우오. 난 그따위 너절한 짓은 안할테요. 그자식한테 보낼게면 내나 먹겠소.》 《아니, 참 답답해요. 글쎄 갖다줘요. 박국장도 사람이지 어디 부처님인가요. 마음이 꼭 동할거예요. 어디 제 며느리될 사람만 전근시키구 우릴 안시켜보라지. 어떻게 견뎌내는가구…》 난 싫은대로 뻐스정류소에 나갔네. 정작 옥희를 만나 보자기를 넘겨주자니 어쩐지 가슴이 후둑후둑 뛰면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네. 《현에 가실래요? 선생님…》 옥희가 먼저 입을 열었네. 《아니, 아니, 이걸 저…》 차마 이실직고하기가 거북했네. 《이번 걸음에 박국장엔 집에도 들리겠지?》 나의 말에 처녀는 입을 싸쥐고 캐득거렸네. 나의 의도를 진작 알아차린 모양이였네. 귀청을 간지럽히는 그의 웃음소리속에서 난 일종의 모멸감을 느꼈네. 사실 그러했네. 난 전근을 하자고 몇년을 뛰여다니며 차비와 로비로 한 200원즘은 써버렸다네. 갑자기 난 안해가 나에게 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추궁을 받을가봐 두려웠네. 그래서 억지로 그 보자기를 옥희의 손에 쥐여주었네. 《이럼 안돼요. 박국장은 고정한분이여서 이러는걸 좋아하지 않는대요.》 《글쎄 그래두…》 난 이렇게 혀아래소리를 하고는 인차 돌아섰네. 숱한 사람들앞에서 무슨 못할짓이라도 저지른것처럼말이네. 그런데 친구, 그 이튿날에야 난 고지식하게 안해의 말을 들은 자기를 나무람하게 되였네. 글쎄 이런 망신이라구야! 아니 글쎄 박국장은 우리의 례물을 곧이곧대로 되돌려보내네 그려! 안해는 가마목에 앉아 푸념을 했고 난 그를 아니꼽게 흘겨보았네. 그러던 나의 눈길은 등디목에 당실하니 놓여있는 그 보자기에 떨어졌네. 그속에서 하루동안이니 굶은 씨암탉이 대가리를 삐죽이 내밀고 꾸벅꾸벅 졸고있었네. 난 그 어떤 무뢰한한테서 인신모욕이라도당한듯이 얼굴이 확 달아올랐네. 그놈의 멱중태기처럼 후줄근해진 씨암탉의 신세가 똑마치 나의 신세처럼 가련하게 보였던거네. 일순. 모욕감과 자비감으로 뒤범벅이 된 나의 마음속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울분이 욱 치밀어올랐네. 난 참을수 없어 발로 그놈의 보자기를 냅다찼네. 하루동안 나의 전근을 위한 괴상한 려행길에서 지칠대로 지친 씨암탉은 결국은 처참히 죽고말았네. 난 씨암탉의 죽음을 슬퍼했네. 어찌 보면 그것이 나의 처지같이 느껴졌기때문이였네. 한편 난 또 기뻐했네. 술안주감이 생겼으니말이네. 내가 군침을 삼키며 보자기속에서 씨암탉의 모가지를 쥐여 끌어낼 때 흰 무엇이 땅에 떨어졌네. 주어보니 그것은 박국장이 나한테 쓴 쪽지였다네. 쪽지는 전보문처럼 아주 짧았네. 《다신 이러지 마오. 동무의 사정을 알고있으니 조만간에 전근이 될거요. 사업을 잘하오.》 박국장은 확실히 청렴한《관리》구나. 내가 빌붙지 않고 걸고들었는데도 나의 딱한 사정만은 잊지 않고있구나. 무득 나의 가슴속엔 감사의 정이 느긋이 차올랐네. 한편 쪽지를 다시 읽어본 난 그만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지고말았네. 《조만간》이라고 했으니가 일찍하면 한달?…두달?…늦어지면 1년?…2년?…생각을 톺을수록 난 그만 사맥이 나른해져서 쪽지를 땅에 떨구고말았네. 그래도 나의 안해는 마음이 넓은편이였지. 새침하니 앉아만 있던 안해는 쪽지를 주어들더니 벙글써 웃기가지 했다네. 《그럼 그렇겠지요. 이번엔 꼭 될것 같애요.》 안해는 일루의 희망이라도 있는것처럼. 엄동설한에 반디불같은 불씨라도얻은것처럼 실눈을 짓고 흐뭇해하는것였네. 난 잠자코 있었네. 사발에 무둑히 담아놓은 닭고기안주에 술을 기껏 마셨네. 그날 밤 꿈자리는 또 얼마나 황홀했던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모두 옛말같구려. 그때부터 난 그저 밤낮을 몽롱한 꿈속에서 사는 인간으로 전락되고말았다네. 그건 확실히 알콜탓이였지 결코 내탓은 아니였네. 이것이 술을 안마시고는 엮어내려갈수 없는 나의 《전근사》의 골자네. 아마 그대로 다 적는다면 《리조실록》은 몰라도 전책 하나쯤은 얼마든지 묶을수 있을거네. 헌데 자넨 아마도 나의 전근의 마감끝이 어떻게 됐나 하고 궁금해할테지? 그건 아주 간단하네. 그 《씨암탉사건》이 있은후 얼마 안되여 둘의 전근령이 함께 내렸다네. 하나는 옥희의것이였고 다른 하난 나의 안해의것이였네. 옥희는 진짜 전근령을 받고 날아갔고 나의 안해는 가짜 전근령을 떼가지고 시내로 내뺐던거네. 도회지에서의 이른바 《도맡는》바람이 나의 안해를 들쑤시여 장사군으로 되게 한것이였네. 나의 안해는 박국장이 물러앉고 또 다른 국장이 올라앉았다는 말을 듣고 아마도 우리의 전근이란 이 단어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고 단정하고 감히 이런 당돌한 행동을 취한것이였네. 《도맡는》바람과 우리 위생원의 《개혁》이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건 사실이지만 안해는 끝내 집과 자기의 직업을 팽개치고 시내에 가서 장사군이 되고말았다네. 진짜로 《전근》을 한 셈이였지. 집을 떠난 안해는 처음엔 그래도 드문드문 집에 다니던것이 인젠 영 발길까지 끊어버렸다네. 나도 그를 찾아가지 않고 아마 딸년은 그래도 가끔 시내에 찾아가서 제 에밀 만나보고오는 모양이더군. 안해가 시내에 《전근》한 그 이듬해 , 말하자면 나의 전근사의 마지막 그해 이른봄 어느날 난 어머니의 병세도 알아보고 또 안해도 찾아볼겸 시내에 갔더랬네. 아, 그런데 글쎄 나를 맞아준것은 가련한 그 어머니가 아니라 세상을 든 어머니였네! 난 가슴이 막 터지는것만 같았네. 갑자기 현훈증이 나면서 하늘땅이 팽이처러 뱅글뱅글 도는통에 난 그만 제자리에 까무라치고 말았다네. 한참후에 내가 정신을 차리니 누이동생이 옆에서 쿨적거리고있었네. 《오빠, 전 어머니께서 곧 운명하실것 같아 오빠한테 전화를 치자고 했댔어요. 근데 어머닌 저의 손목을 꼭 붙잡고 놓아주질 않으며 그저 머리만 자꾸 젓는것이였어요. 이슥해서 어머닌 <제 에밀 모시지 못하는 그 애 마음인들 오죽했겠느냐! 속에 재가 들어찼을게다!…>라고 하는것이였어요…》 《!…》 나의 염통에 대못을 박는 말이였네. 이튿날, 화장터에서 어머니의 유체는 한줌의 재로 되고말았네. 《어머닌 림종시에 <내가 죽어 재가 되면 그 절반은 화장터에 남기고 다른 절반은 오빠한테 맡겨다구>라고 하셨어요. 흑흑.》 《아!…》 실신상태에 처했던 난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떨리는 두손을 정히 모아 누이동생의 손에서 골회함을 받아들었다네. 골회암은 순식간에 나의 뜨거운 눈물로 얼룩졌네. 죽어서도 남편을 묻은 땅에 그 골회 절반을 두고 나머지 절반은 그래도 아들에게 부탁해달라는 어머니의 그 유언!…아, 나는 그만 그자리에 선채 돌사람처럼 굳어지고말았네. 어머니의 삼일제사까지 다 지낸 날 오후, 난 또 술을 기껏 마시고 위생국을 찾아갔더랬네. 위생국 인사가 날 반갑게 맞아주더군. 하나마나 난 그의 앞에 나의 전근신청서를 내놓으라고 벌건 손을 쑥 내밀었네. 《아니, 웬 일이요? 동무의 전근을 토론하고있는중인데…》 난 그의 손에서 전근신청서를 빼앗다싶이 하여 갈기갈기 찢어버렸네. 그때 인사는 두눈이 데꾼해서 날 지켜보고만 있었다네. 《옹근 7년이였습니다. 7년!…7년이였지요?! …인젠 필요없게 됐습니다. 전근이!…》 《?…》 위생국문을 나선 난 그길로 식당에 들려 술을 뜨물 마시듯 퍼마시였네. 불쾌할 땐 아무리 마셔도 안취하는게 술이였네. 그래도 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어머니가없는 빈집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네. 그런데 그때 난 내앞에서 걸어가는 한쌍의 남녀를 보고 깜작 놀랐네. 글쎄 눈여겨보니 나의 안해가 웬 사나이와 한사람처럼 딱 붙어 역전쪽으로 걸어가는게 아니겠나. 일순. 난 온몸의 피가 금시 꺼꾸로 흐르면서 식은땀이 쫙 났네. 난 그년놈들의 뒤를 미행하려다가 더러워서 침을 탁 뱉고 돌아서고말았네. 친구, 자넨 안해 하나도 변변히 단속못하는 날 비웃을거네. 해도 글쎄 장사를 한다며 떠도는 그를 법인들 다슬릴수 있겠나!…까짓《도덕법정》이야 누가 대수로와나 하는가. 그런데 친구. 끔직한 일은 어제밤에 생겼네. 글쎄 방정맞게도 내가 망태기가 된 가간사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있는판에 위생원에 맹장수술해야 할 환자가 들어왔네. 내가 맹장수술쯤은 호박에 침놓듯 수월히 한다는건 자네도 잘 알고있지 않나. 수술은 아주 순조롭게 되였네. 그런데 밤에 난 술을 마시고 수직을 서게 되였는데 그 환자가 아프다고 어찌나 울어대는지 그에게 진통제주사와 페니실린을 놓아주었네. 그런데 주사바늘을 빼자바람으로 그 환자가 그만 죽어버렸네. 글쎄 그 환자가 페니실린을 맞지 못한다는걸 그만 깡그리 잊어버린것이였네!… 친구, 편지가 어무 길어졌네. 량해하게나. 이쯤이면 나의 전근문제도 인젠 영영 락착이 된셈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부질없는 조언이나마 한마디 주고싶네. 자네와 내가 죽마지우였다는걸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일세. 옛날에도 수족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는 곤장을 맞고 나떨어지거나 심하면 칼을 차고 정배살이도 갔던거네. 하니까 대낮처럼 밝은 지금 세상에서야 더 이를데 있나. 아무튼 난 자네가 나라 정사를 잘 돌보는 렴결봉공하는 청렴한 《관리》가 되길 비네. 그렇다고 내가 리국장이거나 박국장을 나무라는건 절대 아니라네. 그들은 나의 전근을 위해 진정으로 , 원칙적으로 힘을 써준분들이였는데 내가 그만 그놈의 알콜중독에 걸려 사람값에 못가는짓을 저질렀을뿐이네. 하니까 날 기다리는것은 오로지 감옥대문뿐이네. 그저애비 잃고 에미 때운 딸 애자가 더없이 불쌍히 여겨져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뿐이네. 인젠 아마도 아까 먹은 술이 싹 깨는가보네. 또 술을 마셔야겠네. 나로 말하면 마시다 죽을게 술인가보네. 이상은 취중에 한 소리니 자네 널리 량해하게나. 안녕히! ××년×월×일 인철 씀
인철이는 밤을 새워가며 편지를 다 썼다. 그리고나서 그는 또 술을 마셨다. 한참후에 그 는 속이 얼근해지자 엽초 한대를 말아물었다. 그는 자기가 쓴 편지를 들여다보며 쓰겁게 웃었다.성냥을 득―그어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인차 불이 달린 성냥가치를 편지에 갖다대엿다. 순식간에 편지는 재로 되여버렸다.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칠 아무런 리유도 없다는것을 자감한것이였고 또 이때에 와서는 더구나 의의가 없다는것을 문득 깨달았던 모양이였다. 그날 새벽에 인철이는 악몽을 꾸었다. 경찰이 그의 손목에 수쇠를 채우는 그런 악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