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월스님-글 중에서)
아함경이 이 땅에 들어온지 겨우 몇 십년입니다.
근래에 들어와서 평가받기 시작한 경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 전에는 소승불교 경전으로 치부하다, 많은 신도분들이나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이 기복신앙적인 요소에서 자유로워지고자 읽게 되어,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부처님의 진 법문 즉 살아있는 경전이지요. 이것은 부처님 사후 700년 이후 쓰여진 대승경전과 달리, 부처님 재세 시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진정한 불교경전입니다.
소승은 승려 생활한지 오래지 않았지만 부끄럽게도 아함경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저 금강경이 최고인 줄 알고 읽고 사경하고 했지만, 정작 금강경으로는 뭔가 부족하여
그 사상의 원 교리를 찾다가 아함경을 읽고, 정말 부처님 살아 생전의 육성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아함경이 처음부터 북방불교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아함경은 대승경전이 들어올 때부터 한역이 되었습니다.
다만 천태교판에 의해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을 뿐입니다ㅡ홍사성선생 주)
처음 달마조사로부터 선이 들어오면서 선문답이라고 하는 방식의 깨우침을 우선했었지요.
뜰앞에 잣나무가 어쩌네, 똥막가지가 어쩌네 하며 논쟁을 하다가 소위 큰 스님이라는 분들이 부처님이전부터 있었으나 부처님이 크게 강조하지 않으신 공사상을, 개인적인 깨우침에 근거해서 확대재생산하여 여러가지 경전을 마치 부처님의 말씀인냥 편찬하였지요. 그 팔만 사천 경전이 된 대승경전을 먼저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나 수행자들은 그 대승경전(경전이라기 보다는 법문이라함이 옳을 듯)을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제 말씀인냥 알고 공부했던 것이지요.
경전은 대승경전밖에 없었고, 더구나 여시아문 하니까 부처님의 실제 음성으로 믿을 수밖에요.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인 대승경전을 천 몇 백년 공부하던 중,
불과 몇 십년 전(우리나라에서 한글로번역된 것은 1964년 역경원이 설립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현대의 불교학 연구성과가 소개되면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최근에는아함경의 팔리어 텍스트들인 니카야가 번역되어서 이 분야 연구에 기여하고 있습니다-홍사성선생 주)에 들어온 아함경을 보니, 부처님의 행적이나 연기법 팔정도 등이 대승경전과 달리 너무 쉽게 설명이 된 것을 보고, 수준이 낮은 경전으로 마치 원시불교(소승불교)에서 보는 경전으로 치부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대학생이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쉽다고 팽개치듯이, 정작 부처님의 진 법문인 아함경을 팽개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뿌리 깊은 무속신앙 신비주의 기복신앙을 팽개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겠죠.그리고 뭔가 탁하는 순간에 깨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함경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그런 깨침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선종과는 너무나 다른 가르침에 놀라서 던져버린 것입니다.
제가 대승경전을 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더 건전하고 진정한 대승불교를 하자는 것이지요.
다만 기초학문을 배워 학력이 쌓인 후 대학교 공부를 하듯이 절차와 순서를 밟아가야 하는데,
우리 불교는 기초 학문인 아함경을 완전히 무시하고 대학교 교제로 바로 공부를 하는 경우지요.
그러니 정작 승려들과 신도들이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수박겉만 핥다가 마는 경우가 바로한국불교입니다.
-도월스님-글 중에서
아함경에는 다섯 니카야 중의 마지막 소부(小部)에 상당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용적으로 양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상응합니다.
① 장아함경은 디가니카야(Dgha-nikya 長部)에 대응되며 내용이 긴 30개의 경을 포함합니다.
② 증아함경은 마지마니카야(Majjhima-nikya 中部)에 대응합니다. 중간 길이의 222개 경을 포함합니다.
③ 증일아함경은 앙구타라니카야(Aguttara-nikya 增支部)에 대응되며 교리에서 구사되는 숫자(法數)에 따라 472개의 경을 1~10법으로 집합·정리했습니다.
④ 잡아함경은 상유타니카야(Sayutta-nikya 相應部)에 대응되며 다른 아함에 수록되지 않은 1,362개의 짧은 경들을 모은 것입니다.
이밖에 별역(別譯) 잡아함과 단권(單卷) 잡아함을 포함됩니다.
애초에 붓다의 근본가르침은 없었기도 하고 외면당했습니다.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를 주창하고, 통불교,선불교를 주창하였습니다.
교주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기복과 미신에 빠져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흐려져 온갖 비불교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이것을 이용하면서 방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불자를 탓해야합니까?
길을 잘못 인도한 지도자를 탓해야합니까?
대승불교에선 석가여래부처님과의 인연만으로 감사해야 할것같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