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경주시민의 날 기념 청소년문화 경연대회 백일장
고등부 산문부문
<최우수상>
길
이교영 (선덕여자고등학교 1학년 3반)
곧게 뻗은 길에 드문드문 봄의 향취가 풍겨오는 듯하다. 봄의 향취를 따라 눈길을 돌려보니 흙냄새를 폴폴 풍기며 여러 생명들을 품어왔을 한적한 시골기도 보이고, 이래저래 쉬는 날 없이 교통체증에 시달린 도심의 아스팔트도로도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쉬는 날이라는 공휴일도 길 앞에서는 무의미한 단어에 불과하다. 그런 길을 보고있자면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생각나 안타까운 시선으로 길을 바라보고는 한다. 쩍쩍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에 난 잔금처럼 어머니의 손등에도 지난 날의 고된 날에 대한 생채기가 내려앉았다.
울긋불긋, 형용할 수 없는 젊은 날의 생기와 기품을 뽐내는 공작 동백 같았던 나의 어머니는 이제 굽은 등으로 어린 싹들을 감싸안는 향모같은 분이 되셨다.
빳빳이 펼쳐진 한지만큼이나 고왔을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눈가에는 식물의 잔뿌리마냥 끝 모르고 뻗어나간 세월의 뿌리가 자리를 잡은지 오래였다.
언제부터 였을까. 언제부터 어머니는 도심의 아스팔트마냥 두껍고 강한 분이 되셨을까... 고된 시집살이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거쳐오신 세월의 흔적인가? 끝까지 아닐꺼라고, 아니. 아니였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끝끝내 부정해보았지만 원인은 나였다.
도심의 아스팔트 한가운데 그 두꺼운 시멘트바닥을 뚫고, 뿌리 내린 민들레 홀씨와 같은 나를 위해 어머니는 그토록 두꺼워지신 것이셨다...
아, 나는 가뜩이나 힘들고 고되신 어머니의 길에 뿌리를 내린 것이었구나.
그 메마른 땅에서 어머니 몫의 양분마저 빨아올려 여지껏 자라온 것이였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나의 어머니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길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끊임없이 품고 감싸안아주며 당신의 영양분과 사랑을 끝없이 안겨주려 하시는 소중한 분.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며 함께 길을 거닐어보는 것은 아닐까...
<우수상>
다리
이주락 (경주고등학교 2학년 2반)
만약 당신이 그저 평탄한 대지 위를 걷고 있다면 당신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우연히 지나가는 개에 물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갑작스레 진도 7.2의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 글쎄, 아무래도 타인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알아맞춘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인가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어느 다리 위라고 해보자. 아래로는 급류가 흘러가고 있다면, 게다가 2008년 5월 24일처럼 바라도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면, 당신이 느낄 2가지 감정을 지금부터 논하려한다. 그것은 두려움과 희망이다.
당신은 강물을 헤쳐나가길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다리에 올라왔을테니까. 행여 다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너진다면 당신은 그 '싫은'녀석에게 당신의 몸을 맡긴 채 흘러가버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두려움을 느낀다.
보통 다리는 두 가지 방향만이 존재한다. 당신이 왔던 길, 그리고 가야할 길. 옆으로 갈 수는 없냐고? 옆으로 뛰어내리기에는 '싫은'녀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당신은 어느 한쪽을 따라 계속 발걸음을 옮겨야한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라. 당신이 다리에 올라온 이유를. 다리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이어준다. 당신은 다른 세계로 가고 싶었기에 이 다리 위에 올랐다. 이러한 신세계에 대한 '희망'이 당신이 발을 옮길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리에 대한 얘기를 조금 했다해서 성급하게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인생이라는 다리가 있다면 이는 참으로 복잡하고 긴 녀석일 것이다.
그렇다고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가 해야할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 : 즉, '두려움'과 '희망'에 충실하는 것이다. 힘들다고 스스로 걷길 포기하고 뛰어내려 탁류에 몸을 맡기는 자들도 있다. 내려가는 것은 쉬웠겠지만 다시 올라오지는 못하리라.
당신이 '두려움'에 충실한다면 위에서 얘기했듯이 뛰어내리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럼 당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계속 당신에게 속삭이는 '희망'의 목소리를 좇아 당신의 발을 당신이 가고 싶어하는 세계를 향해 내딛는 것이다. 가라. 앞으로!
<우수상>
길
전우선 (경주고등학교 1학년 5반)
중학생 때 우리집은 학교와 멀었다. 걸어서 10분이면 집에 도착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30분정도를 걸어야 했다. 그래서 집에 갈 때 마지막엔 길동무없이 나 혼자 걸어야했다. 그러면 그 길을 걷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 되었다. 여기저기 익숙한 풍경들이 물결치면 쏟아지는 생각의 빗줄기에 옷이 젖곤했다. 그 생각들이란 일상적이고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담긴 생각들은 일기장 속에 부어져 그 속에 있던 조그마한 콩나물이 자라는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룸메이트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울리는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그렇게 시작된 시간은 나에게 '생각'이라는 것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재빨리 등교해 청소하고 바로 수업이 시작된다. 중간 중간 있는 자투리시간은 그저 영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풀 시간일 뿐 '생각'을 위한 시간은 아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생활은 나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주말에 집에 가게 되면 나는 내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형산강까지 내달린다. 그러면 길 위에는 내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평소 보지 못하던 하늘의 넓음을 만날 수도 있고, 바다와 접하는 강 하구의 비릿한 냄새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길은 나의 은근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나의 길을 걷고 내일도 모레도 나는 계속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우수상>
길
손예은 (근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8반)
길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배, 짐승들이 오고가는 공간이다. 나 또한 그런 길 외에 다른 의미의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생활하며 내 인생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때 고등학교에 가면 힘들어진다는 말에 '힘들어 봐야 얼마나 더 힘들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에만 해도 그랬었다. 그러나 입학식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고등학교 생활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만큼 힘들고 괴로웠다. 빨라진 등교시간과 늦어진 하교시간...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거의 하루의 전부였고 갑자기 늘어나 버린 공부양을 따라 가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마치 내 모습은 밀려오는 파도속에 혼자 버려진 어린아이 같았다. 나 뿐만 그런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 또한 그런듯 하였다. 친구들의 말수가 중학교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친구들이 가끔 웃긴 했지만 웃고 있음에도 '난 지금 슬퍼'라고 말하는듯 하였다.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행복이란 감정이 낯설어졌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생각이라 해봐야 혼자하는 잡념에 불과하겠지만 이전에 해왔던 생각들과는 많이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난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에서 더듬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긴 하지만 분명한 목적지도 없는듯 하였고 내가 왜 이 길을 꼭 가야만 하는지도 몰랐다. 공부 잘 하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서? 아니면 부모님께 실망감을 안겨 드리기가 싫어서?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유로 이렇게 힘든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 고등학교의 최종 목표는 대학 입시라는 어느 분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이 어디였던가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대학을 간다는 것은 직업이라는 것을 갖기 위해 준비하는 것인데 내가 원하던 꿈은 무엇이었던가? 사실은 나에게도 꿈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지켜왔던 소중한 꿈이 나에게도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꿈이었는데 꿈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던것 같다. 나의 가슴속은 아무런 물기 없이 찬바람만 휘날렸고 내게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엇을까? 나의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얻어낸 정답은 내가 나를 이렇게 까지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도 세상은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진리를 왜 깨닫지 못하였을까?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만 바꾸었을 뿐인데도 난 정말 행복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주무시지 않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맞아주시는 부모님이 나에게 있다.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소중한 친구들과 항상 나를 응원해 주시는 스승님들 또한 내곁에 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꿈이란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비록 그 길이 평탄하지는 않지만 나를 응원해 주는 수많은 분들이 내곁에 있음에 감사하다. 가끔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겠지. 끝없이 이어지는 내리막길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겠지... 그러나 난 내게 주어진 길을 완주할 수 있다. 이길의 끝에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