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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취제로 주사한 후 칼로 아래를 찢고 집게를 자궁 속에 넣어 아이의 머리를 꺼내고 다시 그 큰 집 게를 몸깊이 찔러 넣어 약 1,2분 만에 아이를 꺼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옛날 어머니들이 아궁이에 쇠붙 이를 집어 넣어 재를 파내는 것과 같았다. 아내는 병원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를 질렀다.
나의 심장과 피가 멎는 것 같았다.
오후 2시... 14시간의 진통과 수술로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밖으로 나온 아이는 울음이 없었다. 의사들이 옆 침대 에 데리고 가서 입에 오물을 빼자 울기 시작하였다. 딸이라고 알려 주었다. 체중은 3.5킬로그램. 이제 모 든 것이 끝이 났는가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아이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태아의 위치가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오랫동안 진통하였고 집게로 꺼내는 과정에서 아이의 머리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의 머리를 보니 이마가 쑥 들어갔고 뒷머리가 크게 튀어나온 것이 너무나 흉칙해서 볼 수가 없었다. 머리와 몸에 온통 집게의 상처가 있어서 신생아실에 며칠 지내게 한 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 다. 아내의 고통받는 모습만 보아도 숨이 끊어지는 것 같았는데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니 앞이 캄캄하였다. 의사 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신생아실에 들여보내고 분만실에 다시 돌아오니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뒤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곳에서 2시간 안정을 취하고 입원실로 들어갔다. 건강하게 정상 분만한 아이들은 모두 엄마 옆에 누워 우렁차게 울고 있는데 나는 아이를 신생아실에 두고 정밀 검사진단을 기 다려야 한다니 힘이 솟지 않았다.
아내가 임신한 후 나는 날마다 아내의 배에 손을 얹고 아이를 위해 감사의 기도와 더불어 아론의 축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 풀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를 중국어로 외 워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직접 지은 노래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불러 주었다. 그러한 열매가 이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큰 소리내어 울고 싶었지만 아내를 보아서 꾹꾹 참았다. 그 후 내 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떠올렸다. 나의 어떠한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가 생각하면서 회개하였다.
저녁 5시... 나와 아내는 18시간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힘을 잃고 누워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집사님 한 분이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오셨다. 그 음식을 먹고나니 조금 나아졌다. 환자가 입원할 경우 물론 환자가 잘 먹고 건강해야 하지만 간호하는 사람 역시 잘 먹고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를 일찍 낳고 데리고 온다는 안일한 생각에 아무런 음식도 준비해 오지 않았다. 출산을 하고 서야 출산하기 전에 음식을 많이 먹고 또 진통 가운데서도 계속 먹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와 같은 방에서 진통을 하였던 한 중국사람은 음식물을 토하면서도 계속 먹더니 결국 쉽게 아기를 낳았 다. 그러나 아내는 14시간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먹은 것이 출산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그렇게 하룻밤을 병원에서 보내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서 진열대에 놓여져 있는 홍콩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항상 어떠한 음식을 놓고 나와 같이 먹기전에는 먹지 않고, 아무리 피곤하여도 함께 침대에 가서 눕기전에는 먼저 가서 자는 일이 없었던 만큼 이 못난 남편을 끔찍히도 아끼고 사랑하였던 나의 아내, 마음에 간사 함과 악독함이 없고 양과 천사처럼 순하고 착했던 나의 아내를 잃어버릴 뻔 하였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 이 나서 견딜수 없었다.
나에게 있어 아내의 위치가 그렇게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 함,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5월 25일 목요일, 병원에서 꼭 일주일만에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퇴원을 하였다. 두 번에 걸친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왔다. 우려하였던 뇌에는 이상이 없고 머리 모양도 정 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수술과정에서 어깨뼈(쇠골)가 손상을 조금 입었는데 2주후면 완전히 회복된다고 하였다.
딸의 이름을 [김에스더]로 지었다. 처음엔 [김예지]로 지으려고 하였는데 이곳에서 석달전부터 성경 에스더서를 보았는데 에스더가 끝이 난 다음날 아이를 낳았고 특히 에스더서를 통해 나는 큰 은혜를 받았다. 지금까지 에스더서는 단순히 유 다이즘 색채가 강한 것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하였었는데 다시금 에스더서를 살펴볼 때 에스더서는 유다 인의 구원을 넘어 세계 모든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논문의 초 안을 잡아 놓았다.
그리고 에스더에 관한 노래도 이미 지어 놓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이름을 에스더로 짓게 하려 는 것으로 생각되어 에스더로 짓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임신을 한 후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보지 않았다.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믿고 잘 키우기로 하였다. 그러나 막상 병원에서 딸이라고 하니 웬지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아내는 아들을 낳아 큰 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딸을 낳아 조금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성경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라는 악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열명의 아들을 둔 것으로 인해 자 랑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의 악행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자신이 그렇게 자랑으로 여겼던 열명의 아들 모두 약 20미터의 높이의 나무에 달렸지만 에스더는 그 이름의 뜻대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아들이나 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번 출산을 통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 니라는 말씀을 깊이 체험하였다. 우리는 쉽게 출산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길고도 힘든 출산을 하 였고, 또한 집 근처에 있는 동장 병원에 가려고 계획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발걸음을 무석시에 있는 산부 인과 전문병원으로 인도해 주심으로 아내와 아이 모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인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재 중국에는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살아가 는 농촌의 인구가 8억이나 된다. 그들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이제는 빚진 자로서 그들을 돕는데 힘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날 부터 퇴원할 때까지 매일 지극 정성으로 찾아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음식을 마련하여 주신 이연 일 집사님, 이재춘 성도님, 정금란 집사님께 감사드리며 그동안 많은 염려와 기도해주신 가족들과 교회 그리고 아내의 난산 소식을 듣고 상해에서 이곳까지 어린 딸 채영이를 업고 새벽부터 허겁지겁 달려오 셔서 위로해 주신 이대은 선생님 가족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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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간증 잘 읽어보았습니다. 맘이 뭉클해집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기대가 됩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