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자 경향신문 게재 칼럼입니다.
복부인과 와타나베부인
복부인과 와타나베부인은 재테크로 돈을 버는 한국과 일본의 가정주부를 이르는 말인데 투자나 투기 대상 그리고 두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판이하다.
한국의 복부인은 1970년대 강남개발 시대부터 2000년대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부동산투기의 주역이다. 이들은 아파트 토지 등의 투기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 이런 여자를 부인으로 둔 남자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복부인들이 부동산 값을 올려 쉽게 돈을 버는 사이 무주택자는 더 가난해지고 한국경제는 깊은 병이 들었다. 경제정의 실종, 산업경쟁력 약화, 물가상승, 결혼‧출산의 어려움, 빈곤의 대물림과 양극화 심화 등 한국경제의 고질적 문제가 부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다 현재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의 뇌관이 되고 있는 하우스푸어도 부동산 투기와 이를 통제하지 못한 정책실패의 산물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와타나베부인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의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와타나베부인은 처음에는 저축한 돈으로 투자를 하다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일부는 대출까지 받아 투자를 하기도 한다. 투자하는 나라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뿐 아니라 호주, 동남아, 중국, 한국 등 광범위하고 투자대상 금융상품도 펀드, 주식, 채권 등 다양하다. 이들은 해외 주식이나 채권의 가격 변화, 환율 변동에 따라 수익이 크게 변하고 때에 따라서는 손실도 날 수 있다. 반대로는 이들 자금의 움직임에 따라 투자국의 주가나 환율이 크게 변동할 수 있다. 와타나베부인은 이렇게 가끔 손실을 입고 시장을 불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한국의 복부인과 달리 일본 경제에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먼저 와타나베부인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자산은 일차적인 외환보유액 역할을 하여 일본경제를 외부충격에 강하게 만들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 불안 시기에 와타나베부인은 해외 투자자산을 처분하여 일본으로 가져오게 되고 이는 일본 엔화가치를 지키고 외환시장을 안정시켰다. 반대로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자산을 팔고 빠져나가는데,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금이 거의 없어 원화가치는 폭락하고 외환시장은 불안해졌다. 일본은 와타나베부인 덕에 정부보유 외환보유액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금융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일본은 와타나베부인의 해외투자로 인해 고령사회에 진입하고도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지키고 있다. 사람이 70~80세까지 공장이나 가게에서 일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가 고령화되면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흑자를 내기 어렵다. 일본은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는 적자지만 와타나베부인 등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투자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보여 경상수지 전체로 흑자가 유지된다. 즉 일본은 원자재나 식량 에너지 등의 수입에 필요한 외화의 상당부분을 해외투자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어 머지않아 일본처럼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가 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복부인의 부동산투기로는 부족한 외화를 벌 수 없다. 오히려 부동산 값이 오르면 국내기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외국기업의 국내유치가 어려워져 수출이 줄게 된다. 또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근로자들은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 산업경쟁력 약화나 노사분규의 원인이 된다. 자영업자도 높은 임대료 부담으로 사업이 어려워진다.
한국경제가 고령사회에 들어가서도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하면서 살아남으려면 여러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일본과 같이 저축한 돈이 금융자산에 몰리고 이 돈의 일부가 해외로 투자되어 외화를 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부동산보다는 금융자산으로 흐르도록 부동산의 수익성을 낮추고 금융자산의 수익성을 올려야 한다. 돈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투자자의 도덕심이 아니고 투자의 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투자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금융기관의 국제금융능력을 키우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정책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복부인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것 같다. 부동산은 계속 띄우고 금융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송현경제연구소
소장 정 대 영
첫댓글 일본에서 해외로 유출된 앤캐리 자금이 금융위기시 다시 일본으로 유입되어 일종의 외환보유액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워요. 지금도 앤캐리자금이 유출되고 있다던데 언제 또 다시 일본내로 돌아갈지 모르겠군요. 복부인...한국의 부동산신화는 이제 끝났다고 믿고 싶고 가계자산의 비중을 소장님 말씀대로 부동산자산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증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시장 못지 않게 금융자산 또한 국제금융시장의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아 변동성을 조심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가계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이 금융자산 중심으로 되어야 함에는 적극 공감합니다.
소장님의 글은 항상 흥미롭고 창의적이어서 찾아보게 되네요. '한국경제의 미필적고의'도 꼭 사볼 생각입니다.^^
제글에 대한 관심 고맙습니다. 자주 오시고 좋은 글 남겨 주십시요.
한국의 복부인이 와타나베 부인化 하게 되는 경우 적당한 호칭을 찾아봐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