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이 먼 콩밭짬에는 확실히 온 모양이에요...분명...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 한풀 꺾이고, 새벽으로는 서늘한 기운도 제법 느껴지고,게다가 아파트 좁은 뜨락에서조차 풀벌레소리가 날로 깊어지고 있으니까요....
맑지 않던 도시의 하늘이지만 흰 구름 끊어진 곳마다 조금씩 푸르게 높아져 가니 어디론가 훌쩍 다녀오고 싶어지네요....정말...
압록 저녁-공광규
강바닥에서 솟은 바위들이 오리처럼 떠서
황홀한 물별을 주워 먹는 저녁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강도 저와 닮아
속마음과 겉 표정이 따로 노나 봅니다.
강심은 대밭이 휜 쪽으로 흐르는 것이 분명한데
수면은 갈대가 휜 쪽으로 주름을 잡고 있습니다
대밭을 파랗게 적신 강물이 저녁물별을 퍼 올려
감나무에 빨간 감을 전등처럼 매다는 압록
보성강이 섬진강 옆구리에 몸을 합치듯
그대와 몸을 합치려 가출해야겠습니다.
백로를 막 지낸 9월, 어느 토요일, 드디어 동해안으로 차를 몹니다. 여름휴가도 “길 떠나면 개고생~”하며 집지기로 대신했는데, 잠시 시간을 내니 그냥 좋았지요. 예전에 참 자주 지나던 양평~홍천~인제 도로변 풍경이 궁금해서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로 가자 했습니다. 도로가 넓혀지고 변하고 해서 옛 정취만은 못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점심은 한계령 산장에서 산채비빔밥으로 했습니다. 자욱한 안개 탓으로 산세를 굽어볼 수는 없었어요. 다시 달려 내려가 도착한 곳이 목적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동산리 조단펜션(3,4층 객실 8개에 2층 라운지가 깔끔하고 아담한 호텔식..),
http://www.jodan.or.kr/ 숙소가 참 깨끗하더군요.
아들 둘을 둔, 남편 사장과 함께 펜션운영하는 충청도 아줌마 지배인겸 조리실장이 수줍게 안내해 주는데...
앞에 펼쳐진 바다가 죽도해수욕장이라는데 아주 크지도 않고 아담했어요.
가는 길 내내 비가 와서 큰 기대를 안 하고 오히려 “자동차 지붕이 시원하게 식혀지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위안삼기로 했었더랬어요.
어차피 바닷물에 몸을 담글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착하자마자 비가 거짓말같이 딱 그치는 거에요.
방에 우선 가방부터 올려두러 갔다가 창문 열고 바다를 내다 보는데 바다위에 무지개가 뜨는 겁니다!!!
그것도 쌍무지개로...
작은 흥분이 가슴에 살아났습니다. 바다를 한 없이 바라보며....
한참을 쉰 후에 바닷가 산책을 했습니다. 아내와 딸아이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걸으며 조개를 주웠습니다. 갈매기들이 바닷가에 이렇게 떼로 앉아있는 걸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죽도라고 대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아주 자그마한 암자도 들러보고... 바위산에도 올라보고 죽도정이라 이름붙인 정자에서 진가태극권 투로도 한 차례 풀어보고, 이리저리 거닐다 바닷가 적당한 횟집에 자리잡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동해안까지 왔으니 당연한 메뉴, 싱싱한 회에 소주 한잔 걸치고, 밤에는 하늘에 뜬 별, 달 을 두루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컴퓨터를 못하니 딸아이는 좀 심심했겠습니다만....우리부부는 사극 천추태후까지 다 챙겨보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은 2층 라운지에 호박죽에다 빵과 복분자잼,그리고 우유와 커피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아담한 호텔식 펜션 관리하면서 아들 둘 데리고 공기맑은 바닷가에서 사는 것도 썩 괜찮아 보여서...친절한 사장부인에게 시골살이에 대해 살짝 물었습니다....중학생이나 되는 아들 둘 학교문제가 궁금해서요. 현남면에도 중학교가 있다는데 한 학년에 한 학급씩인데, 학생 수가 겨우 열 명을 조금 넘는다지만 나름 재미있게 잘 다닌다네요. .꼭 도회지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아이들을 몰아넣어야만 그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거 아닐가 싶어요.....
늦은 아침 식사 후에는 주문진 성당을 찾아내어 주일미사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성당내로 들어가면서 차 세우기 적당한 곳을 두리번 거리며 찾는데, 큰 나무 아래 벤치에 나이 많으신 교우 몇 분과 함께 계시던 외국인 한 분이 우리를 눈여겨 보셨던지 말을 건네 주십니다. 주문진 아산병원 소속신부님인데 본당신부님이 출장이라서 미사 대신 떼워주러 오셨다는데, 본명이 강 알레한드로라고 하셨던가..? .예전에 본당신부를 두 번이나 하신 적이 있다는 말씀도 자랑스레 하시는데...한국말도 아주 잘 하시고 신자들과 미사 후에 인사 나누며 맑게 웃으시며 한국사람들에게 푹 빠지신 모습을 보니 이 분도 한국에 뼈를 묻으실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요즘처럼 한국인 신부가 많이 배출되기 전에는 시골로 다니자면 외국인 신부님 보기가 아주 흔한 일이었더랬지요. 충북 음성에서도 그랬고, 전북 임실 치즈마을 벨기에신부님도 그랬고...
오는 길은 고속도로로 잡았습니다. 평창휴게소에서 때맞추어 점심식사를 하고
문막에서부터 차가 심하게 막혀서 아찔했었는데, 다행히 그 곳을 지나니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되돌아 왔지만 그래도 이틀동안 운전만 왕복 8시간 가량이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요.
하지만 아내와 딸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피로한 줄 몰랐고, 사실은 모처럼 바다를 한 없이 본 나도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주말에는 좀 나다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