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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慶州金氏大宗親會 원문보기 글쓴이: 金錫源
김정 전(金淨傳)
김정(金淨)은 병오생이고 자(字)는 원충(元冲)이며 갑자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정묘년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으며, 호는 충암(冲菴)이다.
제주(濟州)에 유배되었다가 얼마 뒤에 사사(賜死)되었다.
척언 : 제학(提學) 김정이 당화(黨禍)에 연좌되어서 제주에 장류(杖流 형장 때려서 유배함)되었는데, 해남(海南)의 바닷가에 와서 길섶 소나무 밑에 쉬면서 절구(絶句) 3수를 짓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희게 한 다음 거기에다 적기를,
欲庇炎程暍死民 모진 더위를 먹어서 죽는 백성을 덮어 주려고
遠辭岩壑屈長身 멀리 바위 구렁을 하직하고 긴 몸뚱이를 굽혔구나
村斧日尋商火煮 마을 도끼는 날마다 찾아오고, 장사하는 나그네는 불질러 태우는데
知功如政亦無人 그 공로를 알아주는 사람, 요즘 정사와 같아 아무도 없어라
하고, 또,
海風吹去悲聲遠 바닷 바람이 부니 슬픈 소리 멀리 들리고
山月孤來瘦影疎 산에 걸린 달 외로이 비치니 파리한 그림자 엉성하여라
賴有直根泉下到 곧은 뿌리가 땅 속까지 박혔음을 힘입어 /
雪霜標格未全除 눈ㆍ서리 같은 사나움도 자세를 말끔히 없애지는 못한다
하고, 또,
枝條摧折葉鬖髿 가지는 꺾이고 잎은 헝클어져 내려와 /
斤斧餘身欲臥沙 도끼는 남은 몸뚱이를 모래 위에 눕히려 하네 /
望絶棟樑嗟己矣 기둥이 되기를 바랐으나 자신을 한탄하고 /
査牙堪作海仙槎 비쭉이 나온 가지는 바다 신선의 뗏목이 될 만하구나 /
하였는데, 사림(士林)이 전해 외우면서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보유 : 처음 전적(典籍)에 제수되었다가 정언ㆍ수찬ㆍ병조 좌랑ㆍ헌납ㆍ이조 정랑을 지냈고,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 고을의 원이 되기를 청해서 순창(淳昌)에 보임되었다.
을해년에 담양 부사(潭陽府使) 박상(朴祥)과 의논하기를, “장경왕후(章敬王后)께서 빈천(賓天)하여 곤위(坤位)가 오래 비었는데, 원자(元子)는 강보(襁褓) 중에 있다.
만약 성묘조(成廟朝) 고사(故事)를 따라 후궁을 올려 정궁으로 삼는다면, 그 소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귀하게 된 자의 본 심성이다. 하물며 지금 숙의(淑儀)는 모두 아들이 있으니, 원자의 처지는 더욱 곤란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씨(愼氏)를 복위하는 것만 못하다.
허물도 없이 폐출당한 원통함을 펴고, 첩으로서 아내를 삼지 말라는 의리를 밝힘은 옛 은의(恩義)를 온전히 하고, 곁자리에서 엿봄을 막는 것이다.
박원종(朴元宗)ㆍ유순정(柳順汀)ㆍ성희안(成希顔)이 천운과 인화가 합치한 기회를 타서 힘을 쓰고, 그 공을 자부하여 군부(君父)를 겁박하고 국모를 추방하여 천하의 큰 분의(分義)를 범하였으니, 이는 만세의 죄인이다.
이제 비록 죽었으나 그 죄를 밝히고 바르게 하며 관작을 뒤미처 삭탈하고 중외에 효유(曉諭)하여서, 당세(當世)와 만세에 큰 분의는 자른 듯 분명하여 범할 수 없다는 것을 환히 알게 하면, 인륜의 근본과 왕화(王化)의 근원과 정시(正始)하는 도리가 맑고 빛나서 천지가 깜깜했다가 다시 활짝 개어 산골짜기가 드러나는 듯할 것이다. 이제 구언(求言)하는 교지를 받들었으니, 잠자코 반정(反正)의 기회를 잃을 수 없다.” 하고, 드디어 합사(合辭)하여 소장을 올렸다.
이에 대사간 이행(李荇)이 간사한 논의라고 지목하고, 조정에서 주창하기를, “장경왕후가 원자를 탄생하여서 나라의 근본이 이미 정해졌다.
만약 신씨를 다시 세웠다가 왕자를 낳는 경사가 생겼을 때 가례(嘉禮)의 선후를 따진다면, 신씨가 먼저인 만큼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게 될지 모른다.” 하고, 대사헌 권민수(權敏手)가 맞장구를 치니, 양사(兩司)가 쏠려서 추국하기를 합동 계청하였다.
육조 당상과 의정부ㆍ홍문관에 명해서 전수(專數)대로 의견을 수합(收合)하도록 하니, 모두 이르기를, 구언하는 교지를 받들고 올린 소장인데 말이 비록 적당하지 못하더라도 죄를 주어 언로를 막는 것은 불가하다 하였다. 오직 대간만은 잡아다가 추문하기를 힘껏 청해서, 이윽고 조옥에 갇히게 되었다.
사건이 측량할 수 없게 되었는데, 대신이 구원하여서 보은(報恩)의 함림역(含琳驛)에 도배(徒配)되었다. 이때부터 조정 논의가 대립되어서 서로 옳다 그르다 하였다.
병자년 여름에 비로소 공의 말이 옳다 하며, 대간과 시종이 교장(交章 교대로 소장을 올림)하여서 석방하기를 청했다. 드디어 사(赦)를 받고 영동(嶺東)에 와서 유람하였다.
이해 겨울에 속리산(俗離山) 도솔암(兜率庵)에 들어가서 글을 읽었는데, 12월에 조정의 계청으로 인해서 사예(司藝)로 임명되었고, 정축년 가을에 발탁되어 부제학으로 승진되었다.
공이 모친을 뵙느라 시골에 있다가 임명된 것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농사에 힘써서 모친을 봉양하고 여가에 경전을 연구하고 근본을 배양하여, 후일에 나라를 위해 일할 바탕으로 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때에 정암 조광조가 임금과 신하들에게 한창 신뢰를 받았는데, 서로 협력하여 다스림을 도우려는 뜻으로 공에게 편지를 보내어 벼슬에 나오기를 힘껏 권하였다.
공이 드디어 마지못해 나왔는데 수년 동안에 특별히 임금의 돌봄을 입었다. 기묘년 여름에는 갑자기 형조 판서에 승진되고 예문 제학(藝文提學)을 겸하게 되었다.
공이 정성을 다해 사퇴하면서, “젖내나는 아이가 6경의 임무를 맡는다면 심히 조정을 수치스럽게 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때에 조정의 촉망은 비록 높았으나 공은 영화가 넘치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사실은 영직(榮職)을 사퇴하고 한직에 물러나 학문에 침잠하여 도덕이 성취되어 우리 임금의 기대하는 뜻에 부응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임금의 권애(眷愛)가 한창 융숭하여서 힘껏 사퇴하여도 허락하는 명을 얻지 못 하였다.
그리하여 묵은 폐단을 개혁하고 교화를 일으키며, 사공(事功)을 떨쳐 일으키는 데에 힘쓰지 않는 것이 없었고, 군자와 소인이 나오고 물러나게 되는 기미에는 더욱이나 주의하였다.
무릇 건의하고 시행하는 데에 날카로움이 너무 드러났고 장황하기만 하면서 진보한 것이 없었으며, 속히 하고자 하는 실수를 면하지 못 하였다.
또 경솔하고 예민한 자끼리 투합하여 부추겨서 시끄러움을 일으키니, 나이 많은 신하로서 당시 논의에 용납되지 못해 배척당한 자는 원한이 골수에 박혀서 이를 갈며 입을 씰룩거렸다.
심정(沈貞)ㆍ남곤(南袞)이 홍경주(洪景舟)와 화기(禍機)를 얽어 대내(大內 임금)를 겁나게 한 뒤에, 홍경주가 언서(諺書)를 받아 비밀 교지라고 하면서 배척당했던 재상을 가만히 부추겼다. 11월 15일에 신무문(神武門)을 열기를 청한 다음 김전(金銓)ㆍ고형산(高荊山)을 꾀어서 오게 하고 이장곤(李長坤)을 협박해 불렀다.
어둠을 타 잠입하여 작은 편지로 몰래 아뢰었는데, 이것은 〈이장곤전(李長坤傳)〉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밤중에 공이 우참찬 이자(李耔)ㆍ대사헌 조광조ㆍ부제학 김구(金絿)ㆍ대사성 김식(金湜)ㆍ도승지 유인숙(柳仁淑)ㆍ좌부승지 홍언필(洪彦弼)ㆍ우부승지 박세희(朴世熹)ㆍ동부승지 박훈(朴薰) 등과 함께 하옥되었다.
우승지 윤자임(尹自任)ㆍ응교 기준(奇遵)ㆍ수찬 심달원(沈達源)ㆍ주서 안정(安挺)ㆍ검열 이구(李構)는 벌써 옥에 갇혀 있었다.
제공(諸公)이 모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 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 영결(永訣)하였다.
이날 밤에 하늘에는 구름이 없고 달빛만이 뜰에 가득하였다. 공이 시를 짓기를,
重泉此夜長歸客(중천차야장귀객) : 황천에 돌아가는 이 밤
空留明月照人間(공류명월조인간) : 공연히 밝은 달이 머물러 인간을 비춘다
하였고, 대유(김구의 자이다.)는 고시(古故詩) 체로 읊조리기를,
埋骨白雲長已矣(매골백운장이의) : 뼈를 흰구름 속에 묻으면 그만인 것을
空餘流水向人間(공여류수향인간) : 공연히 흐르는 물을 남겨두어 인간을 향하게 한다
하였고 또,
明月長天夜(명월장천야) : 장천 달 밝은 밤에
하니, 공이 화답하기를,
嚴冬惜別時(엄동석별시) : 이별을 애석해하는 추운 겨울이어라
하였다.
이렇듯 모두 조용하게 마음 편해하였는데, 밤이 밝자 유인숙ㆍ공서린(孔瑞麟)ㆍ홍언필은 석방한다는
명이 있었고, 조금 있다가 또 심달원ㆍ안정ㆍ이구를 석방하라는 명이 있었다.
제공이 서로 이르기를, “차야(次野)는 반드시 면하게 될 것이다.” 하니, 차야가 슬피 울었다.
차야는 이자의 자인데, 최후에 석방되었다.
정암이 통곡하면서, “우리 임금을 뵙고 싶다.” 하였다.
제공이 서로 권면하면서, “조용하게 취의(就義)함이 마땅하오.
울어서는 무엇하겠소.” 하였다.
서로 술을 권하며 한껏 마셨는데, 정암이, “조용하게 취의하는 것을 내 어찌 모르겠소마는
다만 우리 임금을 다시 뵈올 수 없음이 한스럽소.
만약 우리 임금을 뵈옵게 된다면, 어찌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겠소.” 하면서, 갇힐 때부터 밤새도록 통곡하던 것을 이튿날도 오히려 그치지 않았다.
제공이 옥중에서 의복을 찢어서 거기에다 소장을 써서 올리기를, “신들은 모두 미치고 어리석은 자질로서, 성명(聖明)을 만나 경악(經幄)에 출입하면서 경광(耿光 임금의 위의)에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 임금은 장차 성군이 되리라는 것만 믿고 충정을 다했습니다. 뭇사람의 뜻을 거슬렸으나 다만 임금 있는 줄만 알았을 뿐, 딴것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임금이 요순 같은 착한 임금이 되기를 바랐을 뿐, 어찌 자신을 위한 꾀를 도모하였겠습니까. 하늘의 해가 밝게 비추고 있으니, 맹세코 딴 사심이 없었습니다.
신들의 죄는 만번 죽어도 마땅합니다마는, 다만 사류의 화(禍)를 한번 개시하게 되면 국가의 명맥에 관계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천문(天門 임금 계신 궁문)이 막혀 심회를 계달(啓達)할 길이 없으나, 말없이 길이 하직함은 실로 차마 하지 못할 바입니다. 다행히 친히 물으시면 만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뜻은 넘치고 말은 슬퍼서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혹은 김구가 지었다 한다. 판의금 이장곤(李長坤), 지의금 홍숙(洪淑), 승지 성운(成雲) 및 대간이 김전 등과 함께 앉아서 공 및 조광조ㆍ김식ㆍ김구를 추국하기를, “사사로운 붕당을 맺어 궤격(詭激)한 것이 버릇되었다.
후진을 유인하여 권력 있는 요직을 점거하고 명성과 위세로써 서로 의지하며, 자기 패와 다른 자는 배척하고 자기 패에 아부하는 자는 진용(進用)하니, 국론이 거꾸로 되고 국사가 나날이 그릇되게 하였다.” 하니, 공이 공초(供招)하기를, “신은 금년 34세로서 나이 젊고 어리석으며 성품이 편벽하였습니다.
외람되게 육경(六卿)에 올라 항상 두려워했으며, 국은에 보답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논사(論思)할 즈음에는 한결같이 정도로 나오기를 힘쓰고 밤낮으로 근심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붕당을 서로 맺어서 궤격한 것이 버릇되어 국론이 거꾸로 되고 조정 정사를 나날이 그릇되게 하였다고 하나, 신은 실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정암을 우두머리로 하여 아울러 같은 죄과로 논하여 사율(死律)에 해당시켰는데, 삼공(三公)이 논의를 고집하여 사율을 감하고 금산(錦山)으로 장배(杖配)하게 되었다. 다음날 17일에 배소를 분정(分定)한 8명을 금부에 다시 모이도록 명하고, 승지 성운이 교지를 전하였는데,
“너희들은 모두 시종하던 신하로서 상하가 마음을 같이하여 지극한 다스림을 보기 기약하였으니, 너희들의 마음이 착하지 않았음은 아니다.
근래에 너희들이 조정에서 한 처사가 과오를 저지르는 데 이르러 인심을 불평하게 한 까닭에 부득이 죄주는 것이다. 내 마음인들 어찌 편하겠으며, 죄주기를 청한 대신인들 어찌 사사로운 뜻이 있었겠느냐. 너희들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은 모두 내가 밝지 못해서 그 기미를 먼저 막지 못했음이다.
만약 율대로 죄를 준다면 반드시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나, 너희들이 사심 없이 국사를 했으므로, 말감(末減)해서 죄를 주는 것이다.
너희들이 오랫동안 경악(經幄)에 있어서 보통 관원이 아니므로 특히 관대한 형벌을 행하고, 또 말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내 마음을 알고 가라.” 하였다. 나머지는 김구ㆍ윤자임전에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금산은 공의 고향인 보은(報恩)과는 백 수십 리쯤 되었는데, 공의 모친이 병중이란 것을 듣고 군수 정웅(鄭熊)에게 급히 요청하여 가서 병든 모친을 만나고 배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금오랑(金吾郞) 황세헌(黃世獻)이 공을 진도(珍島)로 압송하러 온다는 것을 듣고 공이 곧 달려서 돌아왔는데 황과 함께 배소에 도착하였다.
뒤에 이 일이 발각되자 정웅은 죄수를 놓아 보냈다는 죄책을 모면하고자, 도망쳐 돌아간 자를 잡아왔다고 말하였다. 경진년 여름에 조옥에서 국문하면서 여러 차례 형장을 가했다.
공이 옷자락을 찢어서 진정서를 적어 올리기를, “신은 본디 어리석고 망령스러웠는데, 외람되게 중임의 반열에 끼어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재주와 견식이 없어 보국할 길이 없으므로, 밤낮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물러나기를 원했으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 홀어미가 늙고 병들어서 죽음이 박두하였으나 오직 분수대로 달게 여기고 물러나 숙수(菽水)로 봉양하기를 생각하였습니다만, 위로 성은을 생각하여 어물어물하다가 뜻대로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전날 중죄를 범했으나, 성은을 입어 유배되었습니다. 어미는 자식의 악함은 모르고 지나치게 걱정하여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다가 드디어 큰 병이 나서 침석에 싸였는데, 목숨이 실낱같이 위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급보가 왔는 바,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였습니다. 멀리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조정에 서서 형편없이 행동하다가 어미에게 걱정만 끼쳐 위태로운 병이 들게 하였으니, 만약 생전에 한 번 영결하지 못하면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원통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으리라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모자간의 정리에 능히 차마 하지 못했고 또 거기다 하루 길이니 잠깐 갔다가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드디어 달려가서 손잡고 작별하였습니다.
어미가 이미 본 다음에 속히 돌아가라고 간절히 권하고, 신도 또한 감히 어길 수 없어 곧 달려서 돌아오다가 마침내 금오랑과 함께 옮겨진 배소에 왔는 바, 신의 한 짓이 대개 이와 같습니다.
이미 중한 죄를 졌고 계루된 몸으로서 사정(私情)으로 말미암아 나라 법을 범했는 바, 어린 성품이 무식하여 망령되이 행동하였으니 신의 죄가 큽니다.
그러나 신을 도망하였다고 하면 매우 원통합니다. 대저 도망이라는 것은 신자(臣子)로서 감히 할 바가 아닙니다. 신이 비록 무상(無狀)하나 국가에서 한때 재상이라는 호칭으로 대우받던 자인데, 어찌 감히 이 같은 일을 하겠습니까. 신이 도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초사(招辭)에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증거가 소소(昭昭)한데, 신이 감히 속이겠습니까.
임 상좌(林上佐)ㆍ김윤호(金潤浩) 등이 죄책을 두려워해서 빈말로 날조한 정상이 확실하고 탄로된 사단(事端)은 덮기 어려우니, 분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뿐이 아닙니다.
대저 도망하는 자는 반드시 깊은 밤에 종적을 숨겨서 남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어찌 아침에 수직(守直)하는 사람을 시켜 수령에게 알리는 자가 있겠습니까. 수직하는 사람이 만약 도망하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곧 잡아서 보고하지 않았겠으며, 수령된 자는 또 어찌 바로 군사를 내어 잡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과연 잡으려고 했다면, 어찌 수 리(里) 안에 잡히지 않았겠습니까.
신이 아침에 나올 때는 상좌들이 밥을 지을 때여서 참견(參見)한 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변질(辨質)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죄수를 놓치고 곧 뒤쫓아 잡지 않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데, 어찌 편지를 보내고 두 번이나 은밀히 음식을 주는 경우가 또 있겠습니까.
그것만 해도 도망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상좌는 또 허무맹랑하게 고하기를, 신이 단기(單騎)로 사람 하나만을 거느렸는데 피로한 말이 고원(孤院) 앞에 간신히 걸어가므로 상좌들 6, 7명이 닥쳐 잡아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더욱 심한 거짓입니다.
신이 나간 것은 밤중이라 하고 상좌들이 뒤쫓아간 시각은 도사(都事)가 들어온 뒤라 하며, 잡은 것은 다음날 밤 3경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밤낮으로 3일이 됩니다.
대저 도망치는 자는 반드시 옆길로 빨리 달려서 멀리 갈 것인데, 곧장 가는 바른길로 한참이면 닿을 거리에서 어찌 3일 동안이나 두리번거리면서 뒤쫓아 오는 자에게 잡히게 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하물며 잡힌 곳은 고원이 아니고 마월현(磨月峴) 고을 안이니 군(郡)에서 거리가 더욱 가깝고, 서로 만난 자도 임 상좌 등 6, 7명이 아니라 김윤호 한 사람뿐이었으니 신의 종과 함께 고을 원의 편지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신이 단기로 한 사람을 거느린 것이 아니라, 배소에 돌아올 때는 신의 아우 및 일가 사람들과 노복을 거느렸으며 또 말이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김윤호와 함께 사기점(沙器店)에 들어가니, 가게 사람이 김윤호 등에게 술을 대접하였습니다.
가게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고 8, 9 명이나 되었으니, 만약 면질(面質)하면 신이 홀로 갔는가의 여부와 김윤호가 홀로 왔던가의 여부도 알 수 있을 것이며, 길의 멀고 가까움도, 말이 튼튼했던가 피로했던가도 다 징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 이와 같이 확실한데 터무니없이 무함을 당하니 통곡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죄가 비록 중하더라도 사실대로라면 달게 받아도 한이 없겠습니다마는, 죄책이 비록 미세하다 하더라도 만약 공연히 무함을 받는다면 종신토록 원통함을 품을 것입니다.
하물며 도망이란 것은 신하로서 감히 할 바가 아닌데이겠습니까.
신은 통곡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멀리 귀양간 절도(絶島)에서 이런 일로써 추문한다는 명을 받았는 바 무함받은 구구한 원통함을 아뢸 길이 없어, 마침내 원통함을 품고도 잠자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금 몸소 금부에 와서 초사(招辭)를 아뢰게 되었으니, 천은이 지중합니다. 성명(聖明)의 세대에 비록 하찮고 꿈틀거리는 벌레라도 다 제곳을 얻도록 하시는데, 신이 비록 죄를 졌으나 또한 일찍이 사대부의 반열에 충수되었던 자이니, 원통하고 억울한 사정을 깊이 덮어두고 사뢰지 않을 것을 생각하겠습니까.
신 같은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자야 진실로 말할 것도 없겠지만, 성세(聖世)에 어찌 큰 흠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신을 김윤호 등과 다시 대질하게 한다면 정상이 절로 나타날 것이요,
허다한 사람의 증거를 모두 대질할 수 있을 것이니, 마침내 진실을 덮거나 뒤엎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억울함을 펴게 하여 애매함을 씻으면 은혜가 하늘 같아 만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신은 애닲고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여, 삼가 옷자락을 찢어 죽을 줄 모르고 아룁니다.” 하고, 또 세 번째 상소에는, “삼가 아룁니다. 짐승이 궁지에 빠지면 소리가 반드시 슬프니, 어진 사람이 들으면 가엾게 여겨서 마음 아파합니다.
그것이 일부러 슬픈 소리를 가려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진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자연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것입니다. 신이 본디 무상하여 성명께 죄를 지었습니다마는, 일찍이 대부의 반열에 충수되었던 자입니다.
이제 어진 청사의 아래에서 원통함을 머금고 억울함을 품어서 가슴을 두드리며 하늘에 부르짖어 스스로 마지못하고 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살펴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신의 원통하고 억울한 형상은 초사(招辭)에 자세하게 하소연하였고, 못다 말한 사정은 두 번에 걸쳐 올린 소장에 대략 갖추었습니다.
분별할 만한 자취와 근거댈 만한 증거와 살필 만한 정리가 확실하여 한두 가지가 아닌데, 다만 정웅의 두세 가지 실없는 단사(單辭)에 의거해서 바로 신을 도망했다고 단정하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조(聖朝)에서는 형옥에 조심하여 여염 소민(小民)과 천예(賤隸)들의 범죄와 도둑들의 죄까지도 반드시 상세히 분변하고 핵실해서 털끝만큼이나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숨김이 없게 하고, 조금이라도 사건에 흠이 있거나 의심스러운 단서가 있으면 그때문에 다시 핵실하고 거듭 의언(議讞 옥사에 죄를 의논하여 결정함)하여, 미진한 사정이 없게 한 뒤에 죄를 가하였습니다.
까닭에 왕법이 공평하여 죄를 받는 자도 유감이 없었습니다. 지금 신의 사건은 분변할 만한 자취와 근거댈 만한 증거와 살필 만한 정리가 확실하여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마침내 억울함을 씻지 못하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황천에서라도 신은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대저 증거를 잡아서 신을 신문하는 것은 정웅이 말한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웅이 거짓으로 꾸민 실정은 이미 황세헌을 대질한 그때에 벌써 다 드러났는데, 어찌 신에 대해서만 정웅의 말이 바르다고 하는 것입니까. 같은 일을 가지고 황세헌은 신원(伸冤)하게 되고 신은 원통하고 억울함을 품고 죽으면,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임 상좌 등은 모두 정웅에게 딸린 사람이므로 정웅을 따라 같이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자취를 저 무리가 끝내 어찌 덮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사기점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고 도로의 원근도 있어, 확실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닌데이겠습니까. 신이 이미 자복하고서 또 운운 하는 것은, 신이 이미 두 차례나 형장을 받아서 장독(杖毒)이 치올라 다리가 아프고 고달파 목숨이 실낱 같으니, 한 번이라도 형장을 더 받는다면 반드시 죽고 능히 견디지 못하겠으며, 또 위명을 두려워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정은 그렇지 않았으니 원통함이 막심합니다.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 밑에서 미진한 실정을 숨기지 못 하였으니 우러러 하늘의 해와 같은 밝음으로 그윽한 심회를 굽어비추시기를 믿습니다. 실정을 다해 궁지를 호소하는 데에 소리를 가릴 겨를이 없는 바, 만에 하나라도 살펴주시면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천위(天威)를 모독하게 되매, 벌벌 떨며 황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였다.
특별히 사율을 감해서 곤(棍) 백 대를 때리고 제주(濟州)에 위리 안치(圍離安置)하도록 명이 내렸다.
공이 일찍이 순창 군수(淳昌郡守)로 부임할 때에 정원 서리(政院胥吏)가 부탁하는 편지를 전하는데, 승지 이항(李沆)이 이름과 직함까지 썼으나 별다른 인사말은 없었다. 공이 그 편지 뒤에다가 절구(絶句) 한 수를 적어서 돌려보내기를,
曾同書榻又鸞署(증동서탑우란서) : 일찍이 서탑을 함께 하고 난서도 또한 같이 하다가
流落南荒一病軀(류락남황일병구) : 남쪽 거친 지역에 유락하는 병든 몸이 되었소
天上華銜承旨李(천상화함승지리) : 천상에서 내려온 빛난 직함 승지 이라 하였을 뿐
臨題還憶故人無(림제환억고인무) : 적으려고 할 적에 역시 옛 친구를 생각했는가 안 했는가 하였다.
이항이 이 때문에 원한을 품고 공의 사건을 뒤좇아 논핵한 것이었다. 경진년 가을 윤달에 제주에 도착해서 율시 한 수를 읊기를,
絶國無相問(절국무상문) : 멀리 떨어진 지역에 서로 묻는 이 없어
孤臣棘室圍(고신극실위) : 외로운 신하는 가시 집에 싸여 있네
夢如關塞近(몽여관새근) : 꿈속에서는 관새(국경 지대)도 가까운 듯했는데
僮作弟兄依(동작제형의) : 아이 종을 형제처럼 의지한다
憂病共侵鬢(우병공침빈) : 근심과 병은 귀밑을 침노하고
風霜未授衣(풍상미수의) : 바람과 서리 차건만 옷도 주지 않는다
思君若明月(사군약명월) : 생각하니 임금은 명월일런가
天末寄遙輝(천말기요휘) : 하늘가에도 멀리 빛을 부치네
하였다.
신사년 겨울에 도망했다는 죄목으로써 추론하여 자진(自盡 자살)하라는 명이 내렸다. 공이 왕명을 받고 얼굴빛도 변치 아니하였다. 술을 가져오게 하여 통쾌하게 마신 다음, 목사(牧使) 이운(李耘)의 손을 잡고 시사(時事)를 묻고, 형과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어 노모를 잘 봉양하도록 부탁하고, 또 절명사(絶命辭)를 읊어서 자신의 뜻을 보였다. 절명사에,
投絶國兮作孤魂(투절국혜작고혼) 멀리 떨어진 지역에 버려져 외로운 혼이 되는구나
遺慈母兮隔天倫(유자모혜격천륜) 자모를 버렸으니 천륜이 막혔어라
遭斯世兮隕余身(조사세혜운여신) 이런 세상을 만나 내 몸 죽으니
乘雲氣兮歷帝閽(승운기혜력제혼) 구름을 타고 가서 상제를 찾을까
從屈原兮高逍遙(종굴원혜고소요) 굴원을 따라가서 높이 거닐기나 할까
長夜暝兮何時朝(장야명혜하시조) 긴 밤 어두워라 어느 때나 밝으려나
烱丹衷兮埋草菜(경단충혜매초채) 붉은 마음 빛났건만 풀 속에 묻히게 되네
堂堂壯志兮中道摧(당당장지혜중도최) 당당하고 크게 품은 뜻이 중도에서 꺾이는구나
嗚呼千秋萬世兮應我哀(오호천추만세혜응아애) 슬프도다, 천추 만세엔 응당 나를 슬퍼하리
하였다.
그때 나이는 36세였다.
부인 송씨(宋氏)는 자녀가 없었으므로 형 김광(金洸)의 아들 김철보(金哲葆)를 후사로 삼았다.
공의 당질 천우(天宇) 김응교(金應敎)가 유고(遺稿)인 시와 문을 모아 편찬하여 충암집(冲庵集)을 만들었고,
허호재(許浩齋)가 공주(公州)에서 판각(板刻)하여 세상에 유행시켰다.
인묘(仁廟)가 공의 관작을 회복시키도록 명하였다. 행장(行狀)에 대략 이르기를,
“공은 천성이 장중(莊重)하여 언소(言笑)가 적었다.
문장은 정묘하고 심오하여 멀리 서한(西漢) 체재를 따랐고, 시는 성당체(盛唐體)를 배웠다.
경전(經傳)에 침잠하고 밤낮으로 꿇어 앉아서 공경하는 것을 익히고 정(靜)을 주장하는 학문을 하였다.
의견을 말하고 일을 행할 때는 반드시 성현을 표준하였다.” 하고,
또, “살림을 돌보지 않았고 청탁[關節]은 통하지 아니하였다.
추종하는 자를 문에 들이지 않았고 녹봉은 친척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하였으며,
또, “공이 남쪽으로 갈 때에 순창 고을을 지나는데, 순창의 백성 남녀노유가 술과 찬을 앞다투어 가지고 와서 길을 막고 눈물을 흘리며 머물러 가기를 권하면서, ‘옛날 우리 고을 사또였다.’ 하였다.
제주의 풍속이 잡신을 숭상하고 예제(禮制)를 모르므로, 공이 초상ㆍ장사ㆍ제사에 대한 의식을 기술하여 백성을 지도하니, 풍속이 크게 변화하였다.
여기에도 또한 풍교(風敎)의 일단을 보겠다.” 하였다. 판서 송인수(宋麟壽)가 지었다. 태상(太常)에서 시법(諡法)을 상고하건대, “널리 듣고 많이 본 것을 문이라 하고, 곧은 도로 흔들리지 않음을 정(貞)이라 한다.” 하여, 문정공(文貞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기묘록 보유 상권(己卯錄補遺 卷上)
충암공(冲菴公) 김정(金淨)의 詩 모음
영해송(詠海松):바닷가 소나무를 읊다 -김정(金淨)
海風吹送悲聲遠(해풍취송비성원) : 바닷바람은 슬픈 소리를 멀리 불어내고
山月高來瘦影疏(산월고래수영소) : 산달은 높이 돋아 수척한 그림자 성글구나.
賂有直根泉下到(뇌유직근천하도) : 샘 아래까지 뻗은 곧은 뿌리 있어
雪霜標格未全除(설상표격미전제) : 눈서리 몰아쳐도 아직 완전히 없애지 못했구나
강흥(江興):강가의 흥취 -김정(金淨)
遠峯天外翠眉浮(원봉천외취미부) : 하늘 밖, 봉우리 푸른 눈썹처럼 떠 있고
煙樹重重暗浦頭(연수중중암포두) : 안개 자욱한 나무들로 어둑한 포구.
一雨滄江歸棹晩(일우창강귀도만) : 푸른 강에 비 내리는데 돛단배 돌아가는 저녁
雁橫寒渚蓼花秋(안횡한저료화추) : 기러기 찬 물가를 가로지르는 여뀌꽃 핀 가을
기로(岐路):갈림길 -김정(金淨)
岐路紛紛者(기로분분자) : 갈림길에서 분분한 사람
應緣食與衣(응연식여의) : 아마 밥과 옷 때문이리라.
不知朝復暮(불지조부모) : 아침과 저녁도 모르고
白盡鬂邊絲(백진빈변사) : 귀밑털이 다 희어졌어라.
금강루(錦江樓):금강루 -김정(金淨)
西風木落錦江秋(서풍목락금강추) : 서풍에 나뭇잎 떨어진 금강의 가을 날
煙霧蘋洲一望愁(연무빈주일망수) : 연기와 안개 낀 마름 섬에는 아득한 수심.
日暮酒醒人去遠(일모주성인거원) : 해 저물어 술 깨니 사람은 멀리 가는데
不堪離思滿江樓(불감리사만강루) : 강누각에 가득한 그대 생각 참을 수 없어라.
강남(江南):강남 -김정(金淨)
江南殘夢晝厭厭(강남잔몽주염염) : 강남의 쇠잔한 꿈 낮 편안하여
愁遂年芳日日添(수수년방일일첨) : 근심은 꽃다운 날마다 더하여라.
雙燕來時春欲暮(쌍연래시춘욕모) : 암수 제비들 오는 때, 봄은 저물고
杏花微雨下重簾(행화미우하중렴) : 살구꽃 가랑비가 겹발에 내리는구나.
신기(晨起):새벽에 일어나 -김정(金淨)
二年流落侶魚蝦(이년류락려어하) : 2년을 유락하며 물고기와 새우 벗삼아
雙鬂蕭蕭半已華(쌍빈소소반이화) : 두 귀밑털 쓸쓸하게 절반이나 세었구나.
魂夢不知滄海遠(혼몽불지창해원) : 영혼의 꿈은 창해가 아득함을 모르고
春來無夜不還家(춘래무야불환가) : 봄이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밤이 없어라.
산우(山雨):산비 -김정(金淨)
蕭蕭山雨下茅庵(소소산우하모암) : 쓸쓸한 산 비 내리는 띠집
秋老荒城晩色酣(추로황성만색감) : 가을 늦어가는 황성에 저문 빛이 짙어간다.
故國山川魂自往(고국산천혼자왕) : 고국 산천에 혼이 절로 떠나가고
不知身在海天南(불지신재해천남) : 몸이 바다 하늘 남쪽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견회(遣懷):회포를 풀며 -김정(金淨)
海國恒陰翳(해국항음예) : 섬은 항상 구름에 덮여 어둑하고
荒村盡日風(황촌진일풍) : 황량한 마을에는 종일토록 바람만 분다.
知春花自發(지춘화자발) : 봄을 알아 꽃은 저절로 피고
入夜月臨空(입야월림공) : 밤이 되면 달은 공중에 떠오른다.
鄕思千林外(향사천림외) : 고향 생각은 일천 숲 밖이요
殘生絶島中(잔생절도중) : 쇠잔한 생애는 외딴 섬에 있어라.
蒼天應有定(창천응유정) : 푸른 하늘이 응당 정함이 있으리니
何用哭途窮(하용곡도궁) : 어찌 길이 막혔다고 울어 무엇하리오.
만망(晩望):저녁에 바라보다 -김정(金淨)
秋陰起將暝(추음기장명) : 가을 그늘 일어나 어두워지는데
迢遞倚荊扉(초체의형비) : 멀리를 바라보며 싸리 사립에 기대었다.
虛莽虁魅悄(허망기매초) : 빈 풀숲에 귀신 도깨비 슬프고
冥煙島嶼微(명연도서미) : 어두컴컴한 연기에 섬들이 희미하다.
眼穿孤鳥盡(안천고조진) : 눈은 외로운 새를 뚫어라 바라보고
思逐片雲依(사축편운의) : 생각은 조각 구름을 쫓아 의지한다.
一葦豈云遠(일위기운원) : 한 거룻배가 어찌 멀다 하이오만
人遐自未歸(인하자미귀) : 사람은 멀어 스스로 돌아가지 못한다.
제노방송(題路傍松):길 가 소나무 -김정(金淨)
海風吹去悲聲壯(해풍취거비성장) : 바닷바람 불어가니 슬픈소리 거제지고
山月高來瘦影疎(산월고래수영소) : 산에 달이 높이 떠니 야윈 그림자 성글다
賴有直根泉下到(뇌유직근천하도) : 바람소리에 곧은 뿌리 샘 아래로 뻗어가니
雪霜標格未全除(설상표격미전제) :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어내지 못한다
증석도심(贈釋道心):도심 스님에게 -김정(金淨)
落日毘盧頂(낙일비로정) : 해 지는 비로봉 꼭대기
東溟杳遠天(동명묘원천) : 동해바다 아득하니 하늘도 멀다
碧巖敲火宿(벽암고화숙) : 푸른 바위에 불 지펴 묵고
聯袂下蒼煙(연몌하창연) : 나란히 두 손 모아 안개속을 내려왔다
감흥(感興):흥이 일어 -김정(金淨)
落日臨荒野(낙일림황야) : 해지는 저녁, 거친 들에 서니
塞鴉下晩村(새아하만촌) : 저녁 녘, 갈가마귀 마을로 내려온다
空林煙火冷(공림연화냉) : 빈 숲에는 연기 차갑게 오르고
白屋掩衡門(백옥엄형문) : 초가집 사립문은 닫히어 있구나
가월(佳月):아름다운 달 -김정(金淨)
佳月重雲掩(가월중운엄) : 아름다운 달을 구름이 가리니
迢迢暝色愁(초초명색수) : 아득히 어둑한 하늘빛에 수심이 어린다
淸光不可待(청광불가대) : 그 맑은 빛, 다시 보기 어려워
深夜倚江樓(심야의강루) : 밤 깊도록 강 누대에 기대어 있노라
증별(贈別):이별하며 -김정(金淨)
回首送君處(회수송군처) : 그대 떠난 곳 돌아보니
蒼茫海日昏(창망해일혼) : 창망한 바다에 해가 진다
家山應見過(가산응견과) : 반드시 그대 고향 지나다
花落掩柴門(화락엄시문) : 낙화가 사립문 가림을 보리라
총석정(叢石亭) -김정(金淨)
八月十五叢石亭(팔월십오총석정) : 팔월보름 총석정에는
碧空星漢淡悠悠(벽공성한담유유) : 푸른하늘 은하수 맑고 은은하다
飛騰桂影昇天滿(비등계영승천만) : 날아 뛰는 달 그림자 하늘에 솟아 가득하고
搖蕩銀光溢海浮(요탕은광일해부) : 요동하는 달빛은 바다에 넘쳐 일렁이는구나
六合孤生身一粒(육합고생신일립) : 천지에 외로운 살알같은 이 한몸
四仙遺躅鶴千秋(사선유촉학천추) : 네 신선의 남겨진 자취는 천년의 학이로구나
白雲迢遆滿山外(백운초체만산외) : 울울한 산 너머로 흰구름이 멀어지는데
獨立高丘杳遠愁(독립고구묘원수) : 홀로 높은 언덕에 우뚝서니 깊은 시름 아득해진다
遣懷(견회):회포를 실어-金淨(김정)
海曲恒陰翳(해곡항음예) : 바다가 모퉁이에 언제나 어두운 구름 끼고
荒村盡日風(황촌진일풍) : 황폐한 고을엔 종일토록 바람이 이네
知春花自發(지춘화자발) : 봄을 알아 꽃은 절로 피고
入夜月臨空(입야월임공) : 밤이면 달은 빈 하늘에 떠오르네
鄕思千山外(향사천산외) : 저 수 많은 산 넘어 고향 그리며
殘生絶島中(잔생절도중) : 남은 목숨 육지와 먼 섬에 산다네
蒼天應有定(창천응유정) : 하늘이 정해준 운명 있으리니
何用哭途窮(하용곡도궁) : 길 막혔다 통곡해 무슨 소용이리요